그림그리기와 사진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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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김대원
- 작성일 : 05-02-1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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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잘 그릴 수 없었다. 내가 눈으로 바라본 사물을 손으로 펜을 이용해서 그리면 이미 그것은 내가 보았던 그 사물이 아니었다. 난 내가 본 사물을 그대로 그리고 싶었지만, 손은 번번이 내 욕망을 뭉개버렸다. 너무 늦게 그림을 그리려고 했기 때문일까? 어느 누구도 내게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학교 다녔을 때, 미술시간은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제멋대로 놀게 하는 시간이었을 뿐이었다. 학교에선 뭔가를 항상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기를 애쓰는데, 유일하게 학생들에게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배우고 싶어 했던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대학교에 들어와 미술학원에 다닐 생각은 하지 못하고, 내가 그림을 왜 그릴 수 없는지를 공부했다. 좌뇌우뇌이론에 바탕을 두고서, 좌뇌로 그림을 그리려 하기 때문에 사물의 윤곽선이나 명암이 보이지 않고 대신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 사물에 대한 관념으로 그림을 그리려 하기 때문에 그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그래서 사물을 ‘컵‘이나 ‘얼굴‘로 그리려 하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선을 파악하고, 명암을 파악해서 그리려 하면 된다고 해서, 시도해 보았지만, 그것도 헛일이었다. 그러다 그림 그리는 것도 시들해졌다.
나이가 한참 들어서, 카메라에 관심을 가졌다. 나이 서른에 접어들고도 몇 년이 지나서 말이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던 그 욕망을 사진을 찍는 것으로 해소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카메라를 샀고, 카메라로 사물을 자유로이 찍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곳곳에 저항세력이 있었다. 나에게 시비를 걸지 않는 자연은 너무나 멀리 있었고, 가까이에서 사람들을 찍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사람들과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에게, 사진을 위한 소통은 있을 수 없었다. 마누라 얼굴만 찍을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싫증내기도 전에, 마누라가 싫증을 냈고, 사진에 대한 열정은 시들해지고, 대신 카메라에 대한 열정만 새록새록. 처음 가졌던 캐논 EOS5를 팔고, 대신 콘탁스 G2를 신품 set로 샀다. 콘탁스 이전에 나는, 니콘 F3 수동카메라를 사용했다. 그냥 수동카메라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캐논 칼라사진에 익숙해져 있던 난 니콘의 색감이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 물론 니콘 렌즈를 다양하게 사용했으면 F3에 대한 이미지는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F3를 샀을 무렵, 난 마누라와 인도여행을 준비 중이었고 여행경비가 빠듯하여 비싼 렌즈에 투자할 여유가 없었다. 인도 여행 중에 마누라는 EOS5를 사용했고, 내가 F3를 사용했기 때문에 F3에 맞는 싸고 ZOOM비가 높은 렌즈 하나가 필요했다. 그래서 산 게 TAMRON28-200mm렌즈였다. 인도 여행에서 돌아 온 뒤, 두 카메라와 렌즈들의 무게에 스트레스를 받은 나는 작아서 휴대하기 편하고, 카메라와 렌즈 성능이 좋은 새로운 카메라를 노렸는데, 그 결과가 콘탁스 G2였다. G2의 색감이란. 너무나 선명한 색깔들. 두 번째 인도여행에서 포지티브로 찍었는데, 카메라를 지님으로서 받는 스트레스 없이 좋은 사진들을 많이 만났다. 그러나 G2는 기계란 느낌보다는 전자제품이란 느낌이 더 들었다. 카메라의 생김새도 자동카메라와 비슷하고, 초점도 자동으로 맞추고, 내가 할 일은 구도만 정하면 되는, 너무 싱겁기만 한 카메라였다. 기계식카메라에 대한 욕망과, 라이카에 대한 욕망이 합쳐져서 지금은 라이카 R5에 표준렌즈와 100mm MACRO, BESSA R2에 35mm summicron을 함께 쓰고 있다.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림그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림을 그려보려는 노력은 지금은 하지 않지만, 그림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 왜 그림을 그리고 싶어할까? 말로 할 수 없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갈증. 너무나 말이 많은 세상에서, 말을 하지 않고, 글을 쓰지 않으면서, 내 생각을 다르게 표현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손으로 하는 일을 내가 싫어하는 듯하지만, 무엇인가를 손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욕구가 크기 때문이 아닐까?
난 왜 손으로 무엇을 만들어 보려는 욕망이 클까? 손으로 하는 일은 내가 모든 과정에 개입한다는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 일은 내가 개입하는 영역이 좁기만 할뿐이다. 내가 하는 일은 고작 구도와 노출을 정하는 일이다. 그 외 나머지 일은 기계가 알아서 해준다. 사진을 현상 인화하는 일도 내 손을 거치는 작업이 아니다. 그러나 그림은 다르다. 일을 하는 모든 과정에 내가 개입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과정에 내가 개입해야 하는 그림은 한정 생산일 수밖에 없지만, 많은 기계적인 과정을 기계에 맡겨 놓음으로써, 훨씬 창조적이고 풍부한 작업을 카메라를 통해서 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 안타까워하기보다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활용해서, 내가 원하는 사진을 만들어 나가는 작업이 그래서 필요한 시점이다.
댓글목록
현재덕님의 댓글
현재덕
저는 카피라이터로 십수년째 일하고 있지만 종종 글보다 그림이 훨씬 빠르고 쉽게 그 의미를 전달한다는 것을 깨닫고 놀랍니다. 디자이너나 PD 동료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입니다. 그림은 말하려는 의도를 드러내지 않고도 말해지고, 길게 말하지 않아도 길게 전해집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며 늘 위안합니다. "그렇지만 글은 [깊게] 전해진다"
그럼에도 욕심엔 끝이 없으니 형이나 저나 글쟁이이면서도 사진을 찍고 그림을 기웃거립니다. 단지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제 생각으론 그렇습니다.
오기동님의 댓글
오기동
저는 어러서 그림 그리기를 좋아 했고 미대에 진학해 지금은 디자인을 가리키는 입장이지만 글로 마음을 표현하는것이나 그림으로 마음을 표현 하는것이나 사진으로 마음으로 표현하는것은 통하는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물을 보고 느끼고 사실에 근접하게 하는 표현이 있는가 하면 보고 느낀 것을 재해석하고 자기만의 표현 방법으로 표현을 하는것 있다고 생각됩니다..
후자의 것이 취미나 자기의 예술세계를 표현 하는 방법이겠죠..표현의 방법이나 수단 그리고 숙달등의 차이가 있고 또한 그것을 보고 느끼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평가도 달라 지겠지만 그것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자기의 만족이 제일 중요하겠죠...자기가 만족하고 자기가 즐기고 또한 주위에서도 같이 즐거워하고 만족해 준다면 그야 말로 더없이 좋은 것이겠죠..
자기의 하는 행위 자체를 즐기수 있다면 그것 이상으로 행복한 일이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림 그리기가 좋아서 이일을 택했지만 가끔은 가기의 만족을 위한 일이 아닌 크라이언트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는 일(모든 디자인의 일이 그렇다 생각됩니다)이 되기 때문에 스트래스가 되는것 같습니다...
사진의 경우도 오더를 받아서 찍으면 그리 스트래스를 받고 또한 재미도 없는데, 그냥 산책을 하면서 찍거나 사람들의 모습을 담을 때는 즐겁더군요..ㅎㅎ
김대원님도 그림을 그리시고 싶으시다면 어떤 구애도 받으시지 마시고 즐겁게 그리시면 어떨까 생각됩니다..
지금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분위기가 좋아서 두서 없는 글을 적고야 말았습니다..
송화중님의 댓글
송화중
어렸을때부터 미술을 배웠고.. 지금은 그림 그리면서 먹고 살고 있습니다.. 영화.. 게임쪽을 오가면서 작업했지만.. 먹고 살기는 아주 힘들군요. ^^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욕망이 강하신듯 합니다. 무엇이든 기초가 중요하겠지요. 그림을 그리는것도 요즘은 많이 디지털화 되가고 있지만.. 그림의 기본은 아직도 손맛임에는 변함이 없는듯 합니다. 시간을 내셔서 학원. 학교를 불문하고 배움의 길을 한번 찾아 보심이 어떨지요. 대형 서점 가면 기초 드로잉에 대한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독학도 가능합니다.
일단 기본적인 드로잉에 대한 정립이 된다면, 드 다음부턴 회원님이 표현하시는 것을 찾아가시면 될듯 합니다.
그림과 사진은 비슷합니다. 사진도 사진기만 사면 되는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지식? 스킬을 습득해야지요. 나중에는 자신의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 더 많아집니다.
그 때가 더 힘들더군요.
에고.. 잘난척을 너무 했습니다. -.- 그림 그리고 먹고살지만 실력은 아직 아마추어인것을.. ^^
저는 사진은 취미이지만.. 사진이 정말 어렵습니다. 남들이.. 너는 미대출신이니 사진도 잘 찍겠다.. 이런식으로 나오면 바로 꽁지 내립니다. 사진 다 감추고요.. ^^
그림은 언제든 시작할 수 있는 좋은 취미입니다. 한번 도전해 보심 어떨지요. 그림을 생계수단이 아닌 취미로 하는것.. 아주 행복한 일입니다. 하시다가 어느정도 실력이 쌓이시면 전시회등으로 자신을 알릴수도 있구요.. 그러다가 정말 프로 작가가 될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희망이 보이는데요.. ^^
김대원님의 댓글
김대원미국 소설가 스티븐 킹에게 그를 알아본 독자가 다가와 "저도 어렸을 때 꿈이 작가였답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저는 뇌전문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답니다" 라고 대답했답니다. 그의 꿈이 진정 의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고 싶으면 글을 쓰면 되지, 왜 꿈으로 남겨두었냐는, 약간의 비아냥거리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말할 때 마다 이 일화가 생각나서 당장 그 소망을 실천해내라고 내부에선 말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주저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습니다. 그림 그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많은 소망들에 밀려 아직은, 아직은 하면서 쉬이 시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만간 시간을 내어 다시 시작해볼 생각입니다. 좋은 말씀들 감사합니다.
김영균님의 댓글
김영균
그림에 사진을 활용할 목적으로 사진에 손을 대어 지금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그림도 사진도 모두다 표현의 한 방식일 뿐 입니다.
저는 그 둘을 매칭 시키려는 모색을 하고 있으며..
각각의 표현에도 충분하게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림이 그리고 싶으면 그리고, 사진이 찍고 싶으면 찍고, 사진기를 소유하고 싶으면 소유하면 되지 않습니까?...^^
예술가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떻습니까?
마음이 시키는데로 움직이신다면... 마음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이러한 넋두리는 없을 것입니다...
용기를 가지세요 김대원선생님.~
백종하님의 댓글
백종하
사진은 그림 그리듯이 찍기 보다는 음악 듣듯이 찍고, 말 하듯이 찌고, 시 외우듯이....
락 듣듯이 찍는사람, 크래식 듣듯이 프린트 하는 사람, 째즈 듣듯이 사진 감상 사람....
사진은 비록 시각예술이지만 그 느낌은, 사람을 움직이게하는 힘은
그림보다도 음악에 가까운 느낌....
눈을 감아도 들리는 소리.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공기의 움직임. 눈에 감동을 주기 보다는 가슴에 감동을 주는 사진, 느낌으로 알 수 있는 사진....
그 감성, 느낌, 움직임, 에너지, 기쁨, .....
아..... 또 사진찍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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