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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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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이태영
  • 작성일 : 07-02-02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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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들은 밖으로부터 내부로 요구되는 움직임에 충실하고, 배우들은 내부의 감정적 동요를 외부로 드러내는 움직임에 충실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내게 드러내는 것에 있지 않고, 그들이 내게 감추는 것에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그들 내면에 누가 있는지 그들 스스로가 미리 예단하지 않는 것이다.

모델들과 나 사이에는 :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통하는 텔레파시적인 교환, 예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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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께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유성 영화의 등장은 그때까지 광장을 독차지한 채, 그 주변을 온통 가시철조망으로 꽁꽁 둘러쌌던 무대 공연 극장의 문들을 열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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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두 종류가 있다 : 연극의 방법을 사용하고 (배우, 연출 등) 복제하기 위하여 카메라를 돌리는 영화들; 시네마토그래프의 방법들을 사용하고 창조하기 위해서 카메라를 구사하는 영화들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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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연극적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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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토그래프란 움직이는 이미지들과 소리들을 가지고 하는 글쓰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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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화 작품은 연극 무대에서 보여지듯한 스펙터클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스펙터클은 뼈와 살로 된 현존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작품은 사진적 연극이나 시네마에서처럼 스펙터클의 사진적 복제일 수는 없다. 스펙터클의 사진적 복제들 가운데 어떤 것은 회화나 조각의 사진적 복제와 비교될 수 있다. 하지만 화가 도나텔로의 <세례 요한>이나 베르메르의 <목걸이를 한 젊은 여인>의 사진적 복제는 이 조각이나 화폭이 지닌 힘과, 가치와, 가격에 훨씬 못미친다. 그 복제물은 아무것도 창조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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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의 작품들은 고문서보관소에 넣어둘 역사가의 자료일 뿐이다 : 19OO년에 X씨와 Y양은 코메디를 어떻게 연기 했더라? 하는 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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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마치 국외자처럼 시네마토그래프 속에서 겉돈다. 배우는 외국어를 모르듯이 시네마토그래프의 언어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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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진적 연극 혹은 시네마에서는 연출가 혹은 디렉터가 배우들에게 극연기를 하게끔 주문한다. 그리고 연기하는 배우들은 사진 찍힐 따름이다; 이어서 연출가 혹은 디렉터는 이 사진 이미지들을 적당히 배열한다. 이런 시네마는 연극을 진정으로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 즉 살아 있는 배우들의 생생한 현존, 배우들에 대한 관객의 생생한 반응이 결여된 연극의 사생아이다.

자연스러운 것이 살아 있으면, 오히려 자연 그 자체는 죽는다 - 샤토브리앙

훈련에 의해서 습득되고 유지되는 '자연스러움'을 위해서 극예술은 '자연'을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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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있어서 연극의 이런 자연스러움을 위장한 톤보다 더 위선적인 게 없다. 그것은 삶을 재복사하는 것이고, 꾸며진 감정들 위에 삶이 표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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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토그래프에서는 이런 식보다 저런 식으로 몸짓을 하고 대사를 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것은 비논리적일 뿐이고 의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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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와 나무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성도 없다. 그 둘은 서로 다른 각자의 세계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연극 무대의 나무는 진짜 나무를 흉내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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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을 존중하라. 있는 그대로의 본성보다 본성이 더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드러나는 것 조차도 바라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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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시네마토그래프, 이 둘이 각자 소멸되지 않는 한 둘의 결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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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네마토그래프의 영화 작품에서는 표현이 모방, 몸짓, 그리고 음성의 억양(배우들 혹으 ㄴ배우 아닌 것들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미지와 소리의 관계에 의해서 획득된다. 누구도 분석하지 않고 아무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시네마토그래프 속에는 재구성하는 자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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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하나의 색이 옆에 붙어 있는 다른 색들과의 접촉을 통해 다른 색으로 변환되듯이 한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들과의 접촉으로 변형되어야 한다. 블루는 그 자체로는 분명 블루임에도 불구하고 초록색 옆에서, 노란색 옆에서, 붉은색 옆에서는 같은 블루가 아니다. 변형 없이는 예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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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토그래프의 진실은 연극의 진실일 수도, 소설의 진실일 수도, 회화의 진실일 수도 없다. (시네마토그래프가 사람을 사로잡는 자기만의 독특한 수단과 연극, 소설, 회화가 지닌 나름대로의 고유한 수단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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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속에 배열된 단어들처럼 이미지들은 그들 각자 위치와 주변 이미지와의 관계에 의해서만 힘을 뿜어내고 가치를 드러내는 게 시네마토그래프의 영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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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립된 어떤 이미지가 무언가를 명료하게 표현하고, 나아가 그 이미지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은유까지를 포함하고 있다면, 이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들과 접촉되어 변형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 다른 이미지들도 그 이미지에 대해 어떤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 이미지도 다른 이미지들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는 이미지 자체로서 존재할 뿐이지, 그에 대한 반작용도 일지 않을 것이다. 그 이미지는 시네마토그래프의 체계 속에서 부동의 존재이고 손상 불가능한 존재이다. (시네마토그래프의 체계 그 자체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 그 체계는 단지 무엇인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미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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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비록 의미 없어 보이는) 이미지들에도 나를 적응시켜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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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의 의도를 손상하거나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 범주 안에서 불쑥불쑥 치미는 이미지들의 과잉을 마치 다리미질하듯이 납작하게 눌러 버려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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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선택하기
모 델의 음성은 나로 하여금 그의 입술, 그의 두 눈, 그의 얼굴을 상상케 한다. 모델의 음성은 그의 초상화, 외양뿡이 아니라 내면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는 초상화의 전체를 그려준다. 마치 눈으로 확인해 가며 그린 것보다 더욱 선명하다. 그건 귀만으로도 획득되는 최상의 문자 해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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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브레송,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Notes sur le cinematographe); 모델들, 동문선 현대신서, 오일환, 김경은 옮김 :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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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한상훈님의 댓글

한상훈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옮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태영님의 댓글

이태영

로베르 브레송은 일반적인 메쏘드 연기를 하는 배우의 개념을 거부하고 시네마토그라피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직관적으로 영혼을 내보일 수 있는 모델의 개념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인간으로써 한 존재의 내면을 그대로 필름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 것이죠. 실제로 많은 로베르 브레송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작품속에서 영혼의 구원 혹은 죽음을 읽어내곤 합니다. 사진을 찍으며 모델의 외피만을 담는데 급급한 어떤 경향에 있어서 한번쯤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인 사형수 탈옥하다, 무셰트, 어느 시골사제의 일기 같은 것을 보면 극중 등장하는 모델들의 영혼이 만져질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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