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억을 제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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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최재영-_-
- 작성일 : 07-01-15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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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하기만 한 생각이지만, 여러분들의 생각 또한
듣고 싶어서 이렇게 올리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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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막, 서울에 도착했다.
강릉에 대한 아쉬움은
10살 때나, 지금이나,
이틀을 머무르나, 일주일을 머무르나
매한가지인걸 오늘에서야 느꼈다.
서울에 오기 전,
오촌 큰댁집을 들렀다가, 바다를 보러갔다.
오손도손 재밌는 얘기 하며 도착한 바다는
마치, 바다에 하이타이를 뿌려놓은듯이 여기저기 거품을 두둥실 띄워낸다.
철썩 철썩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는 정말 엄청난 장관이었다.
이 때,
형의 한 마디.
"사진기 갖고 왔나?"
"아니."
아차. 싶었다.
이런 엄청난 장관을 못 찍고 가버리게 되다니..라는
아쉬움이 엄청난 장관 만큼이나 엄청났다.
사진기에 대한 미련은 '어쩔 수 없지 뭐-' 라는 생각과 함께 날려버리고
내 마음속에, 내 눈속에 그 장면들 하나하나를 집어넣으려 노력했다.
더 잘 기억할 수 있게, 떠올리면 다시 꺼내어 볼 수 있게 말이다.
버스를 타고 오는 길
"여행의 즐거움" 마지막 부분을 또다시 읽는다.
아. 이거였지.
라는 생각.
(본문)
아름다움을 만나면 그것을 붙들고, 소유하고,
삶 속에서 거기에 무게를 부여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의미가 있었노라" 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우리가 결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곳에서만 자주 나타나거나,
계절과 빛과 날씨가 보기 드물게 조화를 이룬 결과로 나타나곤 한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소유할 것인가?
어떻게 공중에 뜬 열차를, 할바 사탕처럼 생긴 벽돌을
잉글랜드의 골짜기를 붙들 것인가?
카메라가 하나의 방법이다. 사진을 찍으면 어떤 장소의 아름다움을 보고
촉발된 근질근질한 소유욕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다.
귀중한 장면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불안은 셔터를 누를 때마다 줄어든다.
아니면 아예 우리 자신을 물리적으로 아름다운 장소에 박아 놓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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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킨은 아름다움과 그 소유에 대한 관심을 통해 다섯 가지 중심적 결론에 이르렀다.
첫째, 아름다움은 심리적인 동시에 시각적으로 정신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복잡한
요인들의 결과물이다.
둘째,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에 반응하고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타고난 경향이 있다.
셋째, 이런 소유에 대한 욕망에는 저급한 표현들이 많다.
넷째,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며,
그것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요인들을 의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의식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이 그런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에 관계없이,
그것에 대하여 쓰거나 그것을 그림으로써 예술을 통하여 아름다운 장소들을 묘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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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태만에 워낙 익숙해 있기 때문에, 만일 어떤 사람이 한 장소에서
발을 멈추고 데생을 하는 데 필요한 시간 동안 그곳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으면
유별나다고, 어쩌면 위험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무 한 그루를 그리는 데는
적어도 10분간의 예리한 집중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예쁜 나무라 하더라도
행인을 1분 이상 잡아둘 수 있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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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사진은 무엇이 문제인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러스킨은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끔찍한 19세기가 인간에게 쏟아 부은 모든 기계적인 독 가운데
그래도 그것은 한 가지 해독제를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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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진이 그것을 찍는 사람들 다수에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그의 열의는 사그라졌다.
사람들은 적극적이며 의식적으로 보기위한 보조 장치로 사진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을 대체하는 물건으로 사용하였으며,
그 결과 전보다 세상에 주의를 덜 기울이게 되었다.
사진이 자동적으로 세상의 소유를 보장해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 알랭드 보통 _ "여행의 기술" _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하여
나는 어쩌면, 아니 지금까지
그래왔을것이다.
너무 멋진 장관을 보면,
그 장관을 더 눈여겨 보기보다는,
재빨리 셔터를 누를 준비와 거리 맞추는데에만 관심을 가졌었고,
그 결과물에 집착해 온것이라 생각된다.
사진은 기억을 재생시켜 주는 연결고리와도 같다.
사진을 보면 사진을 찍을 때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르곤 한다.
추억이 담긴 사진은 큼지막한 무언가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끄집어 낸다.
큼지막한 무언가는 결국 A -> B 와 같은 식의 연결 고리가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렇다면, 사진은 기억의 연결고리인 동시에 기억의 틀을 한정시켜버리는
도구가 되는것은 아닐까?
사람의 시선을 빼앗아 버리는 것.
집중의 방향을 본질적인 곳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는 것.
사고의 틀을 한정 시키는 것.
이게 바로 사진기의 본질적인 면 일까?
댓글목록
Jeong-Yoon Lee님의 댓글

저는 무엇이든지 잘 잊어버리는 사람이라 제한된 양이나마 사진으로 남겨두는게 훗날 회상할 때의 이정표가 되주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하지만, 그 재영님 말씀처럼 아름다운 그 순간! 찰나!를 사진찍는데 집중하느라 놓쳐 버리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목을 읽는 순간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라는 반대되는 의미의 카피라이트가 떠오르던데, 의도하셨겠지요? ^^;
김기영~님의 댓글

여행과 사진..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봐야할 내용이네요..
무작정 랜드마크에서 셔터만 눌러댔던 모습이 후회되기도 하고,
여행지의 느낌이 녹아있는 사진을 인화한 후 다시 한번 감흥에 젖어보기도 하고..
참으로 오묘한 관계가 아닐수 없습니다..^^
김jaeweon님의 댓글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사진 못지않게 눈에도 마음에도 담아두자며 필름에 눈에 가득 담아온 풍경들,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면 마음속에는 한줄 글귀처럼 아름다웠다....라는 생각만 떠오르고 머릿속에 남아있는 이미지는 사진에 박혀있는 딱 그 이미지만 떠오르더라구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찍어온 필름 현상 맡기는 시간이 점점 길어집니다.
성연창님의 댓글

가끔 여행의 동반자가 아니라 그 목적이 되어버리는게 사진이기도 하지요. 정작 무턱대고 '출사'랍시고 나갔다가 그 날의 결과물 만으로 만족도를 따지는게 너무 기계적이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비슷한 사례로 거수들의 콘서트에서 일제히 폰카메라를 꺼내드는 관객들을 보면 쓰신 글과 같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최_정원님의 댓글

예전 일본을 여행할 때, 지브리라는 애니메이션 뮤지엄에 간적이 있습니다. 이웃집 토토로 등등을 그린 작가가 만든데인데...
거기 입구 사진 촬영 금지 푯말에 "추억은 가슴속에 가져가세요"란 말이 있더군요...
묘했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예전 사진을 보면서 "정말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란 걸 느낍니다...
이율배반적인 이야기겠죠? ^^
최재영-_-님의 댓글

모두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다들 공감해 주시니, 왠지 고마움이 느껴지네요.ㅎ
-정윤님
그 카피를 반대로 인용한것 맞습니다.
신찬진님의 댓글

마음으로 찍는 사진...
굳이 푼크툼(Punctum)이란 개념을 언급하지 않아도,
정지된 시간속에 이른바 막힌 시야를 강요하는 사진이란 매체에서
우리는 항상 과거의 무엇인가를 각자 만들어 내고 있나 봅니다.
수백장 수천장의 본인이 만든 사진들 중에서 정작 벽에 걸거나 책상 한구석 서랍 어느 한켠에 놓아두고서, 오래도록 아프거나 슬픈 또는 기쁘거나 행복한 기억을 되새기고 싶은 사진은 어떤 사진일까요...
마음으로 찍지 않는 사진은 그래서 아무리 화려한 계조와 현란한 기술이 가미되어도
결국 지워지나 봅니다 머리에서..
황진식님의 댓글

조금 엉뚱하지만 전 아주 멋진 곳에 가면 사진을 찍지 않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대신 마음껏 보고 느끼기만 할뿐입니다.
이수진#님의 댓글

저도 눈으로 마음으로 먼저 찍도록 노력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파인더를 눈에 대고 바라다봤을 때 전체에서 안 보이던 일부분이 보이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손영대s님의 댓글

그 어떤 기억이나 감상도..
신이 주신 망각이라는 선물 앞에서는 어쩔수 없습니다..
철학자나 사상가의 한 마디 말보다는..
제 손에 들린 30년전 제 돌사진이 제게 주는 의미가 더 크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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