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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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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Jeanie
  • 작성일 : 06-09-2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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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와 사진 - 한 할아버지와의 인연

사진기로 인하여 맺어진 한 할아버지와의 인연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할아버지는 미국사람이다. 86세로 3매 3남을 두었고 지금은 막내딸에게 집을 물려주고
자신은 그 뒤곁으로 이어진 스스로 지은 아파트에서 홀로 산다. 아내는 13년전에 떠나보냈는데 이 분이 사는 곳은 할리우드의 명배우 톰 행크스가 주연, ‘시애틀의 잠 못이루는 밤’에 이어 연거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 준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라스트 신이 나오는 메인(Main)주이다(참고로 메인주는 랍스터, Robster의 본 고장이다).

저와 이 할아버지는 유산(estate)을 처리하는 곳에서 만났다. 그에게서 leica iiif black paint를 사게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헤어졌지만 이내 이메일이 오기 시작했다. 그 때마다 첨부되어져 오는 사진 한 장 한 장에 전 그만 이 할아버지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빛 바랜 그러나 아무렇게나 찍지 않은 사진 한 장에 저는 정이 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산과 거리..

그랬다. 할아버지는 6.25 전쟁의 참전 군인이었고 ‘철의 삼각지’라 불리웠던 곳에서 사경을 헤매기도 했단다. 1951년 12월 야포에 중상을 당한 자신을 15살난 소년병이 구해주었는데 그 ‘김씨’를 죽기전에 만나보는 것이 소원이고 자신이 젊음을 불태워 사수코자 했던 그 땅에 다시 가 보는 것이 행복의 정점이란다. 철원. 금화. 노동리..

그의 말, 그의 대단한 기억력, 아직 까지 차곡 차곡 보관하고 있는 우리네가 살고 있는 반도의 사진들이 그의 애착과 사랑을 엿보게 만든다. 확실히 그는 지한파이다. 그는 서울이 너무나 그립다고 했고 나는 그에게 제안했다. 함께 서울한번 가자고. 그가 흔쾌히 허락했다. 그는 자기네 가정이 대대로 카메라 샵을 운영했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는 사진가였을까..아직 물어보지는 않았으나 그의 손 때가 묻어 있는 이 사진기가 그와 친구가 되게 했고 기어코 그는 사진을 보내 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렇게 애틋한 마음으로 내 땅을.. 그리운 50 년 전의 서울을 보는 것이 참 오랜만이다.
누군가 말씀 하셨듯이 ‘빛은 신의 축복입니다.’ 아직 이 땅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제가 이 분으로 인해 1950년의 내 나라 내 땅을, 서울을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에드 할아버지 고마워요. 꼭 서울서 차 한잔 하기로 해요.

첨부사진 설명.
처음부터..
에드 할아버지와 김씨성을 가진 소년
서울 인왕산(현 청와대 자리)
추천 0

댓글목록

김영하님의 댓글

김영하

TV에 나와도 좋을 스토리입니다.
바르낙 블랙 페인트와 6.25참전용사...
김씨 소년과의 재회...
같은 사람, 같은 장소의 50년 전,후를 한 카메라로 담아보는 아련함...
부럽군요.
좋은 인연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주환/비빔면님의 댓글

양주환/비빔면

감동적인 이야기네요.. 샌프란시스코에 살고있는 저도
가끔 "Korean War Vetran" 이런 글귀가 써진 야구모자를
쓰고다니는 할아버지들을 봅니다. 고마우신 분들이죠..
혹시 방송국에 연결해서 방송으로 제작해보는것은 어떨까요..?
이곳에서 미디어회사를 운영하고계시는 교수님을 알고있습니다.

이용규님의 댓글

이용규

따뜻하고 뭉클한 이야기 그리고 사진입니다... 감사합니다.

Jeanie님의 댓글

Jeanie

후일담 하나..

사실 눈가에 눈시울이 맺히게 만든 사진은 올리지를 아직 올리지를 못했습니다.
용량이 큰지 한 시간 넘게 끙끙댔는데도 잘 안 올라가는 겁니다. 어떤 사진기로
찍으셨는지는 모르겠는데 한참 길어요.

폭격당하기전의 금화.. 흑백으로 된 이 사진이 왜 그렇게 가슴이 아프게 하는지..
스토리가 있어요. 세 가지 이야기인데..

하나는 금화가 폭격당하기전 이 에드할아버지의 친구가 사랑했던 ‘금화에 사는
처녀‘가 있었답니다. 비밀폭격사실을 미리 안 에드님의 친구는 이 처녀를 빼내어
살리게 했고 마침내 이 처녀와 결혼해 미국으로 함께 와 옆 동네에서 알마전까지
살았답니다. 하지만 불과 몇 일전 이제는 할머니가 되었을 이 금화마을의 처녀는
이생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곳으로 가셨답니다. 수년간의 암투병 끝에..
떠나면서도 그렇게 고향이 보고싶다고 하더랍니다.

또 하나는 아.. 이 에드할아버지가 특수병과로 근무한 곳이 철원이랍니다. 그런데
저도 이십 수년 전 그곳에서 사단의 부관병과에서 근무한 사실입니다. 세상에..
이 에드할아버지가 ‘ Blue Star'에 있었느냐며 부대마크를 보내오시는데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저는 그곳을 떠난 이후로 기억조차 못하고 있는데 이 분은 50년이
넘었어도 그곳을 가슴에 담고 사시고 있구나..

끝으로 하나는 바로 어제 에드할아버지가 저가 아닌 제 여식에게 주고싶다고 하시며
자기가 받은 모든 무공훈장들을 붙이셨다는 것입니다. 자기보다도 최후를 그곳에서
맞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서울과 그곳에 데리고 가겠노라는 막내딸이 고맙고 제가
아닌 제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추신: 사진 올려보도록 할께요. 저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까운 사진들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KBS와 SBS의 다큐멘타리 PD분중 아는 분이 있어 꼭 그
김씨를 찾아드리겠다고 하자 에드할아버지는 한사코 TV에 날 만큼 자기는
영웅이 아니라고 하시며 고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은 에드할아버지가 몇 차례 보내오신 글들 중 추린 것입니다.

"1.I think Kim would be about 68 to 70 years old today... if he is still alive. The war continued for a year and a half after the last time I saw him.

2.I have not been back to Korea since 1952. There is a "Back To Korea" program offered by either the Republic of Korea government or the Korean War Veterans in Seoul, I don't know which. I have not chosen to take advantage of that program as I am now too old to be running around the world (81-years-old).
3.I do appreciate your thoughts on locating Kim but I am not a hero in any sense of the imagination and do not want to play up that part of the story."

Albert kim(김정환)님의 댓글

Albert kim(김정환)

스티븐 린턴씨라...세상 좁네요...^^ 얼마전에 뵜는데...

저는 개구장이 존 린턴(인요한)선생님과 연대 외국인 진료소에서 잠시

인턴쉽을 했던 기억이 있네요...

박종만님의 댓글

박종만

감동어린 사연을 잘보았습니다
깊은 사연이있는 사진을 보고 싶군요.

황기원님의 댓글

황기원

감동적인 사연입니다......
저 역시 사진들을 볼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Jeanie님의 댓글

Jeanie

1951년 폭격전의 ‘금화’ taken by 금화처녀..

Ed할아버지 제공.

Jeanie님의 댓글

Jeanie

에드할아버지의 사진들..

위로부터 차례로;
1951 서울 II
1951 서울 III
山寺
노동리
그가 이생을 떠나기 전 다시 보고 싶어하는 춸원평야




이영준님의 댓글

이영준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소중한 인연을 잘 가꾸어가시길 바랍니다.

손지훈님의 댓글

손지훈

따뜻한 어르신을 곁에 두셔서 좋으시겠습니다.
왠지...
한국사람이 아닌데...
한국에 대해 잘 알거나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한국사람보다 더 강한 유대를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분은 왠만한 한국사람들 보다 훨씬 '한국사람' 스러우신것 같습니다.
좋은 인연... 오래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Jeanie님의 댓글

Jeanie

오늘 오후 에드워드할아버지(Edward A.Bicknell)보낸 메달이 제 딸의 이름앞으로 메인주에서 배달되어 왔습니다.

저는 이 박스를 열지않고 학교를 마친 딸이 돌아오기까지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딸이 늘상 오는 그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아빠 이게 뭐야?”
“응 그제 얘기했던 에드할아버지가 보낸 메달일거야”

좋아라하면서 아이는 부리나케 열었습니다.
거기에는 그가 받은 훈장들이 여러개 들어있었고..
그리고
미국에 있는 한국대사관이 언젠가 그에게 준 뱃지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두 개를 내가 갖고 있었는데 이제 하나는 네가 갖고 있어다오. 다른 하나는 내가
갖고 있을게.“

56년전.. 자의든 타의든 자기 청춘을 우리 땅에서 보낸 그의 숨결이 온 몸으로 느껴져 솟구친 마음을 다스리는데 참 힘이 들었습니다. 아이도 이내 숙연해졌습니다...

이윽고 아이가 물었습니다.

“근데 왜 나에게 이 메달들을 주는거야?” “왜 아빠가 아닌 나에게?”

에드 할아버지가 보낸 박스의 겉봉투엔 제가 근무했던 ‘청성부대’의 푸른별 표식이 인쇄되어 있었고 거기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와 나에게 할 일이 있다고 말씀하시려나봐:

“아빠는 통일된 남과 북이 미국의 국익에 꼭 좋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미국사람들을
설득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일거야.“
“음.. 너에게 보내준 이유는 혹시 이 생을 떠나면서도 그렇게 그 땅을 보고싶어했던 ”금화
처녀“가 생각나신게 아닐까?

살아계셨다면 에드할아버지의 나이뻘이 되셨을 할아버지, 그리고 저와 저의 아이, 고향땅의 아이들, 우리 땅의 아이들..저 북쪽에 있을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 생각나는 “서글픈 오후”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둘 에겐 꿈이 생겼습니다

권경숙님의 댓글

권경숙

아,,아침부터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글과 사진입니다,,
요며칠 너무 많은 변화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모르는 우리 세상에 대해
답답한 마음들을 이야기했는데,,,
하고픈 일, 해야하는 일들에 대해 좀더 고민하고 용기를 가져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병식님의 댓글

윤병식

감동적이 이야기와 함께 55년전의 귀한 사진들을 공유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족입니다만 처음 포스팅하신 글에 첨부된 두번째 사진은 "인왕산"이 아니라 북악산인 것 같군요.

도웅회님의 댓글

도웅회

좋은 글과 소중한 사진들 감사드립니다.

공 명님의 댓글

공 명

캐나다에 잠깐 있을 때 친구의 하숙집에 초대를 받았어요.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자식들은 따로 나가서 살고...
한국에 가봤냐라는 저의 질문에 아무말 않고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방으로 들어가시더군요...힘드셨나보다 했죠...시간이 좀 흐르고...할아버지가 나오셨는데...군복을 입고 계시더군요...자기는 50년 전에 한국에 가봤다고...본문을 읽고 있으니 갑자기 그 분이 생각이 나네요...할아버지가 있어서 내가 캐나다에도 올수 있었다고 감사하다고 했었죠...

저도 그분께 한국을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류석창님의 댓글

류석창

저도 한국전쟁에 참전하셨던 미국인 할아버지를 한 분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 가보셨나는 질문에 말없이 주머니에서 꺼내시던 참전 기념 주화가 기억나네요.
미국에 온지 2년째인 제가, 미국인에게 진심으로 Thank you 라고 말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듯 싶습니다.

기회가 되면 언제 한 번 그 분의 모습을 담아서 올려보겠습니다.

박준선님의 댓글

박준선

어떻게 이런 일이...
정말 영화같은 일이고, 카메라 하나로 이런 인연이 생기는 수도 있군요. 오늘 이곳에서 본 글들은 감동의 글들이 많네요.

오래된 물품의 동호회에 가입하니 오래된 얘기도 듣고... 정말 영화같은 일입니다...

안재영님의 댓글

안재영

가슴이 따뜻해지는군요. 좋은 글 잘봤습니다.

박만호님의 댓글

박만호

한편의 소설 입니다
김씨소년의 현나이 70대 초반 ~
멎진만남이 있엇음- - 하는 바램 임니다

Jin Woo Park님의 댓글

Jin Woo Park

The flags of our fathers...아버님세대가 만들어주신...자유가 그냥 만들어진것이
아니란사실이 참 감사하게 느껴지는군요. 이런 따뜻한 소식은 라클에서만 들을수
있고, 볼수 있는사실에 감사드립니다.

권재순님의 댓글

권재순

정말 감동적인 아침입니다. ^^

박진희님의 댓글

박진희

뒤늦게 지니님 글을 보게 돼네요...
정말 감동적인 글입니다..
지니님과 인연이 맺어져 어찌어찌 통화도 하고..쪽지도 주고받고..
지니님의 그 감성을 느낄 수 있는거 같습니다...

이기환님의 댓글

이기환

정말 감동입니다..
56년의세월을 건너서 이어진 우정..
그리고 자유란 거저 얻어지는것이다 란 한마디에
숙연해집니다...

백인식님의 댓글

백인식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한수길님의 댓글

한수길

인용:
원 작성회원 : 양주환/비빔면
감동적인 이야기네요.. 샌프란시스코에 살고있는 저도
가끔 "Korean War Vete ran" 이런 글귀가 써진 야구모자를
쓰고다니는 할아버지들을 봅니다. 고마우신 분들이죠..
혹시 방송국에 연결해서 방송으로 제작해보는것은 어떨까요..?
이곳에서 미디어회사를 운영하고계시는 교수님을 알고있습니다.

Korean War Veterans

한상훈님의 댓글

한상훈

6사단... 저도 청성부대를 나왔습니다.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방송에서 다시 볼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백발이 되었을 김씨 성을 가진 예전의 소년도 만났으면 좋겠구요.
잘 읽었습니다.^^

한수길님의 댓글

한수길

이글을 읽고 젊은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그당시 한국의 운명은 미국군에 의하여 자유를 찾았건만 빨갱이들에게 꺼플이 씌운 아이들 미국이 원수란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물어 봐라 빨갱이가 어떤 놈들 인가를 정말 이현실이 미치도록 괴롭다 은인을 원수로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ㅠㅠ

황승준님의 댓글

황승준

아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동적이네요. 그리고 옛 서울의 사진을 보게 되다니 잘 보고 갑니다.

한경승님의 댓글

한경승

감동적인 이야기 감사합니다.
정말 방송으로 볼수 있다면 좋겠네요.

최병석님의 댓글

최병석

저는 이글을 왜이제야 봤을까요?
벌서 방송했는건 아니죠?
너무나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 입니다.
사진도 잘보고 글도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류상욱님의 댓글

류상욱

눈물이 다 나려고 합니다....너무 감동적인 글이예요

조경덕님의 댓글

조경덕

인생을 살면서 좋은 인연을 만난다는 것은 크나큰 행복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 인연 오래오래 이어가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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