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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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박유영
- 작성일 : 06-08-29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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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런 것이 문의 역할이라면 담을 쌓고 또 문을 낸 까닭은 무엇인가. 그러고 보면 문의 또 다른 본질은 ‘열림’
이다. 그러나 그 열림은 선택적이고 제한적이어서 때로는 까다로울 수도, 어떨 때는 까닭도 없이 한없이 후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문 앞에서 나는 생각한다. 風磨雨洗로 새겨진 다양한 문양들 앞에서 문고리를 열어주던 이의 손길, 문지도리로 열
치고 들어서던 이의 땀내음, 문지방을 넘어서던 신발들에서 떨어져 내린 흙들과 그들의 옷자락이 스쳤을 흔적들.
그 앞에서 당당하고 또는 가슴 떨렸을, 아니라면 조바심치고 비참하게 돌아서고 말았던, 이제 문은 남았으나 그들은
사라져 흔적조차 남지 않은 사람들의 사연을, 문짝에 여울지는 빛과 그림자를 보며 나 또한 가슴 떨며 추억한다.
나는 또 추억한다, 내 삶에 새겨진 수많은 열림과 닫힘의 순간들을. 아니 열어야 할 때 열지 못하고 닫아야 할 때 닫
지 못했던 쓰라린 순간들을 더 아프게 추억한다. 내가 열지 않아서 답답해했던 소중한 이들의 좌절과 속절없이 열고
서는 한동안 앓아야 했던 서글픈 회한, 새로운 것들의 두드림을 외면하고 꽁꽁 닫아걸었던 필생의 소심함과 덧없는
것들에 활짝 열려서는 시간들을 흘려버린 내 우둔함을 추억한다.
내 삶에도 죽음은 예기치 않았던 순간에 찾아오리라, 한 번 태어난 이 땅의 모든 생명체들이 그들 나름의 사연을 안고
그 순간을 맞이한 것처럼. 나의 문양들이 어떤 모습일지, 그것을 어루만져 줄 사람 몇이라도 있어 잠깐이라도 내 삶을
추억해줄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흔적조차 남지 않을 평범한 삶, 그래서 더 소중한 사람들, 시간들, 공간들을
문 앞에서 나는 생각한다.
댓글목록
송 준우님의 댓글

담으로 상징되는 고립과 폐쇄라는 본질의 한계...
그것이 문의 태생적 특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렇지만 그건 너무 건조하고 딱딱하기조차 해서
사부님 사진을 앞에두고
저는 사랑하는 이의 대문앞에서 서성일때의
두근거림을 가만히 추억해봅니다
감사합니다...
박유영님의 댓글

이 글을 저의 홈페이지에 올렸더니 아내가 보고 아내의 인터넷 서재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아내의 댓글을 보고 한낮에 저도 눈시울이 붉어집
니다.
"옆지기가 얼마전부터 쉰목소리가 나더니 감기인줄 알았는데 며칠전 병원에
가보고 성대결절임을 알았다. 직업상 목을 많이 쓰는 일을 하기도 하지만 그
동안 몸도 마음도 많이 고단했던가보다. 구비구비 지나온 고갯길을 목을 빼
고 돌아보는 일은 쓸쓸함이 아니라 목메임이다. 문이 열리고 펼쳐질 아름다
운 햇살과 그 길에서 모른척하고 주울 갖가지를 희망하며 벅차오름이다. 작
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고마움이다.
옆지기 출사 때 몇번 따라가 보면 문, 특히 이렇게 나뭇결이 살아있는 한옥문
만 보면 미칠듯 매달리는 모습을 보곤 한다. 문고리를 보고도 마찬가지다. 이
런 점에서 우린 통한다. 문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이 우리를 매혹한다. 문고리
가 가지고 있는 에로티시즘이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상상력이 없다면 삶
은 얼마나 무미건조할까. 상상의 힘이 없다면 우리를 집어삼키려는 시간을 견
디는 일에 얼마나 힘이 들까.
나도 생각한다. 내 안의 문, 적지 않은 문들에 대하여... 앞으로도 열릴 수많은
문들의 닫혀있는 고리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 앞에 다가오는 소박하고 다감한
문의 열림에 대하여... 날마다... 얼마 전 나는 한옥문의 길게 지른 빗장을 소재
로 수필을 쓰기도 했다. 그것도 옆지기의 사진에서 얻은 단상에서 출발하였다.
어젯밤 옆지기의 글을 앞에 두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문에 갖는 그의 애착은 삶에
대한 열정,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기에, 그림자까지도 안으려는 소심
한 가슴이기에... 아니, 그보다 더 소심한, 사랑한다는 말을 이렇게밖에 하지 못하
는 나를 보기에...
마이페이퍼 링크 주소 : http://www.aladdin.co.kr/blog/mypaper/942601
윤재경님의 댓글

빼꼼히 열린 문을 사이에 두고 나누시는 사랑이야기...너무 아름답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조차 억누르게 만드는 뜨거운 마음을 이미 나누고 계십니다.
아픈 목이 더 메어지실 것 같습니다.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
김기현님의 댓글

경고 !
박유영님은 차후 더이상 이 라클 게시판에 "마눌 자랑"의 분위기를 조성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제 경우는 마눌과의 관계를 놓고 볼 때,
결혼과 함께 열고 닫을 문도 없어진것이라 여기고 그렇게 살아왔던것 같군요.
그래서 어떤 때는 절도없이 함부로 들낙이는 일에 방자함과 교만함도 많았었고,
닫고 열어야할 순간을 가늠하는 지혜로움도 잊고 살아왔던것 같습니다.
더러는 다른 여자가 더 가치있어보여
이따금씩 다른 여자를 탐하기도 하였고,
그 탐하는 마음이 도를 넘어(?) 새로운 삶을 살고파서 함께 시골로 줄행랑을 놓아보기도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내 인생에서 "문"이란 화두를 놓고 내 자신을 돌아보면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새로 고민하게 됩니다.
단 한가지 내가 만든 문이 매우 내 편의에 따라 열리고 닫힘을 변덕스럽게 했을지라도
내 이익에 따라 문을 열고 닫기를 구분하지 않은 삶에 자족하려 할 따름입니다.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한 글 잘 읽었습니다.
송 준우님의 댓글

가만히 생각해보면
가끔씩 라클에 들어오셔서 확인하신다는 풍문이 도는걸 감안하면....음 음 음
M신정섭님의 댓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입니다...
오늘 하루도 분명 무심코 수많은 문들을 넘나들겠지요...
그러나 오늘은 이전과는 다를 것 같습니다...
좋은 글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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