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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와 사진에 대한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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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진을 처음 접한게 아버지의 Nikon F2였습니다. 어린 시절 유난히 마르고 힘이 없었던 저는 사진 한 번 찍어보려고 떼 써서 카메라를 들면 시커먼 쇳덩어리는 어찌나 무겁던지 팔이 부들부들 떨리곤 했습니다. 셔터를 누를라 치면 안에서 누가 망치로 때리는지 철커덕! 하면서 뭔가가 심하게 흔들리는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여행을 가실 때면 그 무거운 카메라를 늘 어깨에 매고 - 그 때 가지고 다니시던 니콘 가죽가방과 가죽 카메라 케이스는 저의 부주의로 이삿짐과 함께 없어져서 마음이 안좋습니다 - 다니시곤 했습니다. 건설현장에 현장사진도 많이 찍으셨고, 여행때 가족사진도 많이 찍었습니다. 저 어릴 때는 공항에서 꼭 카메라는 검사를 하던 품몸이었습니다. "필름 한 장 버리겠습니다" 하고는 아무렇게나 철커덕!하고 한 장씩 찍었던 광경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제가 혼자 외국에 가게 되면서 아버지를 졸라서 카메라를 물려받았습니다. 그 당시엔 아버지는 무겁고 귀찮다고 자동카메라를 구입해서 쓰셨고, 그 카메라는 어차피 장롱속에서 나오지도 않았으니까요. 워낙 기계를 좋아하고, 전자식보다는 기계식을 좋아하던 저로써는 절호의 기회였고, 아버지께서는 흔쾌히 허락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사진을 취미로 하게 된 계기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 당시에는 노출을 어떻게 맞추는지도, 사진의 원리도 모르고 그저 "이게 조리개구나, 이게 셔터스피드 조절레버구나" 뭐 이런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카메라 바닥에 넣던 건전지는 셔터를 작동시키는데 쓰이는 것인 줄 알던 순진무구(?)한 학생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학원에서 선택과목으로 일주일에 2시간씩 사진특활(?)강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수업을 신청하였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노출계를 쓰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원리가 그다지 복잡하지 않아서였는지 별로 어렵지 않게 이해를 했고 그 다음부터는 사진이 신기하게 전에 찍었던 사진과 다르게 나옴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같이 수업을 듣던 친구가 파티장에서 몰래 제 사진을 찍어서 줬는데 그 사진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원래 풍경사진보다는 가족사진이나 친구들 사진을 많이 찍었지만, 그 일을 계기고 주로 인물사진만 찍었습니다. 대부분의 초심자들이 그렇듯이 저도 조리개를 최대개방으로 하고 배경을 날리는, 매우 얕은 심도의 사진들을 찍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친구들 사진을 찍으면서 구도 잡는 법도 터득하고, 카메라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다른 한 친구가 제게 흑백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그 흑백사진에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고 어디서 뽑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하는 얘기가 자기가 직접 뽑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의 사진에 대한 집착이 시작되었지요. 혼자하는 외국생활에 집에서 보내주는 뻔한 생활비로 취미생활을 하자니 방법은 하나밖에 없더군요. 걸어다니고 밥 굶는 수 밖에요. 밥 굶고 교통비 아낀 돈으로 페이퍼 사고, 필름 사고 암실 임대료 대고나면 남는 돈이 없었습니다. 어차피 아침 저녁은 하숙집에서 줬으니 점심을 굶었습니다. 그렇게 주말이면 토요일엔 사진찍고 일요일엔 암실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그 후로 학교를 옮기면서 시간적 여유가 없어져서 사진을 뽑는 비용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에는 사진잡지 3가지정도를 정기구독을 약 1년간 하면서 구도잡는 법, 기술적인 측면 등에 대해 혼자서 공부도 해 봤습니다. 그러면서 남는 용돈을 모아서 카메라를 사기로 마음을 먹고 돈을 조금씩 모았습니다. 욕심이 나다보니 빨리 찍고 싶은데 기계식인 F2로는 속도가 나지 않는 데다가, 순간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실력이 모자라서 그랬던 것인데 말입니다.

그렇게 몇달간 돈을 모으던 중에 사고가 생겼습니다. 침대에 올려져있던 카메라를 못보고 이불을 당기다가 카메라가 맨바닥에 떨어져버렸습니다. 셔터가 작동이 되긴 했으나 1/15와 1/60의 속도에 차이가 없었습니다. 고장난 것이었지요. 96년 2월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제가 있던 곳이 워낙 시골이었기 때문에 기차를 타고 니콘 전문매장이 있던 곳까지 3시간여가 걸려서 갔습니다. 직원이 이리저리 보고 작동해보더니 간단하게 "고장이 났네요"라고 하더군요. "얼마나 들까요?"라고 물어보니, 자기네 엔지니어가 뜯어 봐야 알고, 수리비에 관해서는 자기네가 1주일쯤 후에 우편으로 내역을 보내줄테니 그 때 수리할 지 말지를 결정해서 통보해주면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더군요. 만약 수리를 안하게 되면 어쩌냐고 했더니, 등기보험우편으로 발송해줄테니 걱정 말라는 이야기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연락을 받았는데 생각보다 상태가 안좋았는지 그 때 돈으로 약 70여만원의 수리비가 청구되었습니다. 생각보다 큰 수리비에 고민이 되었습니다. 새 카메라를 그냥 살까 하다가,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물건인데 그렇게 버리는 것은 안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새 카메라를 포기하고 수리를 했지요. 한달여의 수리 끝에 어느날 아침7시에 배달이 왔습니다. 꺼내보니 완전히 새 카메라를 만들어서 보냈더군요. 셔터는 물론 완벽하게 수리되었고, 삭아서 끈적대는 스펀지도 새로 깔고, 렌즈도 완전히 새것처럼 청소가 되어있었습니다. 잘 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다시 돈을 모아서 1년여 뒤에 새 카메라 F90X를 장만했습니다. 보디를 살 때 배터리 팩(그립이 되는)과 시그마의 줌렌즈를 샀습니다. 원래 기계를 좋아하고, 하나를 구입해도 여러가지로 따져보고 사는 저로써는 한 번 산 물건을 버리거나 바꾸는 경우가 없지만, 이 렌즈의 성능에는 너무도 크게 실망하여 - 중앙부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 촛점이 맞지 않더군요 - 렌즈를 바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장비의 바꿈질이었습니다. 어차피 바꾸기로 한 것, 어떤 것으로 바꿀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자료도 보고, 렌즈 평도 보면서 내린 결론은, 제가 주로 인물사진을 찍으니 거기에 적합한 85mm로 하고, 기계와 관련된 부속은 원래 메이커에서 나온 물건이 제일 낫다고 판단하여 가격도 제가 지불할 수 있는 선에 있었고, 평도 좋았던 니콘의 Nikkor AF 85mm f/1.8로 결정했습니다.

그 때부터는 F2에는 50mm F/1.2에 흑백을, F90X에는 85mm f/1.8에 컬러를 넣어서 찍었습니다. 왠지 클래식한 수동카메라에 흑백을 넣어야 더 잘 어울릴 거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 보다는 노출에 자신이 부족했던 저로서는 오히려 흑백을 찍어놔야 그 부족한 노출 과부족을 제가 암실에서 커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런 조합으로 다니던 중에, 하이킹을 다니게 되고, 광각의 필요성에 대해서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약 6개월여의 자료수집 끝에 24mm f/2.8을 장만하여 저의 니콘시스템을 완성한 것은 F90X를 구입한 때로부터 약 2년이 더 지난 후였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24mm는 잘 못 쓰겠더군요. 일단 너무 익숙하지 못한 넓은 화각에, 심한 왜곡현상-제가 잘 못 찍어서 그런 것이었지만-으로 사진을 찍기가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그래서 24mm는 거의 쓰지도 않고 그렇게 가방 속에 짐으로만 남아있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상해 여행을 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패키지 여행에 사진을 찍을 여유가 많지 않을 것 같아서 찍는데 시간 많이 걸리는 F2는 집에 남겨두고 F90X에 24mm와 85mm 두 렌즈만 들고 여행을 갔습니다. 그 여행에서, 그 동안 "가방속의 짐"이었던 24mm의 진가가 발휘되었습니다. 상해라는데가 워낙 사람도 많고, 도둑도 많고, 길도 복잡한지라, 앞사람을 놓치면 길을 잃고 미아가 되기 딱 좋은 곳이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85mm는 접고 24mm만으로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유명한 동방명주 야경과 푸동강변의 사진을 찍을라치면 24mm는 발군이었습니다. 거기에 옥불사에 갔을 때는 정월초하루여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진을 아예 찍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자동촛점, 자동노출, 깊은 심도의 삼박자가 어우러져서 드라마틱한 사진을 건질 수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니콘 특유의 강렬한 콘트라스트로 중국의 붉은 빛깔 건물과 옷들이 화려하게 나왔습니다.

그 이후에 라이카 M6로 옮겨왔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몇 가지로 정리를 하면 첫째는, 니콘으로는 느낄 수 없었던 라이카만의 화질-좋고 나쁨이 아닌 "니콘과 라이카의 차이"라고 표현하고 싶군요-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신혼여행때 안사람이 가져온 라이카의 자동카메라 - 이름은 생각 안납니다-로 찍은 사진과 제 니콘과의 비교에서 차이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니콘의 크기가 슬슬 부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크고 무겁기 때문에 여행시에 부담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셋째로, RF를 쓰고싶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SLR은 미러충격이 있고, 이로 인해 저속셔터를 쓰는데 부담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데, RF는 이러한 부담을 어느정도 덜어줄 수 있는 해결책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달리 얘기하면, 굳이 삼각대를 들고다녀야 할 경우가 좀 더 줄어들고, 이는 장비무게부담의 최소화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에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여러 조언을 여기저기서 듣고, 이왕 다시 시작하는거 완전수동으로 하고 싶어서 M6에 Summicron-M 35mm를 장만했습니다.

라이카를 쓰면서, 요즘 사진에 대한 새로운 재미를 느낍니다. 다시 써 보는 완전수동카메라, 직관적인 노출조정, RF만의 묘미, 새로운 화각에의 적응, 그리고, 사진을 뽑았을 때의 희열. 새로 사진을 배우는 기분으로 M6를 들고 다닙니다. 직장생활 중에 사진 찍을 일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짬짬이 사진을 찍어보며, 처음으로 저 무거운 F2를 잡았을 때의 기분을 다시 만끽해 보는 것도 참 좋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도, 종종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F2를 꺼내서 닦고, 고장난 부분 있으면 수리해서 쓰고, 10년지기 F90X도 꺼내서 한 번씩 사진을 찍어보곤 합니다. 워낙 물건을 손질해서 쓰는 성격이라서 - 그렇게 곱게 쓰는 것 같진 않습니다만... - 버리는 물건들은 잘 없습니다. 오래된 물건들은 그 기능이나 성능을 떠나서, 그와 함께 했던 시간에 얽힌 기억들과 의미가 있으니까요. F2는 아버지가 한창이실 때 그 카메라 들고 건설현장 뛰어다니시면서 찍으며 묻은 손때며, 저 혼자 외국에 혼자 살 때 적적한 외국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준 물건이고, F90X는 제 스스로 꼬깃꼬깃 용돈을 모아서 처음으로 장만한 제일 비싼 재산이었으니까요. 지금은 낡고 여기저기 긁힌 자국이 더 많지만, 사람이나 물건이나 시간이 지날 수록 더 정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이삿짐과 함께 없어진 사진들과 함께 제 추억의 일부도 없어졌지만, 그래도 카메라들을 보면서 그 때 찍었던 사진들과 추억들을 되뇌어 봅니다.

주저리 주저리 쓴 두서없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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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인택님의 댓글

김인택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아버님이 쓰시던 카메라를 물려 받으셨다니 부럽습니다.

구름김경훈님의 댓글

구름김경훈

사진을 접하게 대는 것도 환경적인 요인이 중요한가 봅니다

저는 처음 만지게 된 카메라가 FM2 였었습니다

▒박철우▒님의 댓글

▒박철우▒

저도 아버님이 주신 기계식카메라를 쓰고 있는데요...

어느 카메라보다도 애지중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만 모으면 저도 M을 살수 있게 됩니다.ㅎ

최_정원님의 댓글

최_정원

감사합니다. 마음에 와닿는 글...잘 읽고 갑니다~

김봉길님의 댓글

김봉길

제게는 1967년에 페트리7S(RF형)가 최초로 가진 카메라였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제겐 매우 소중한 보물이었는데 당시 필름값이 엄청 부담이어서 빈 카메라들고 다닌 적도 많았습니다. 마끼가이라고 리필필름(영화용 흑백필름 감은 것)을 쓸 수 밖에 없었지만 지금보다 훨씬 소중하고 행복해 한 기억이 납니다.
님의 글을 읽으니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군요. 아 그 카메라는 대학다닐 때 학교에 가져갔다가 도둑맞았답니다. 3-4년 썼나봅니다.

조문홍님의 댓글

조문홍

아버지가 아끼시는 FM2를 떨어트려서 굉장히 혼났던 기억이 납니다^^;;

함명호님의 댓글

함명호

옛추억이 솔솔 나는군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이 기 성님의 댓글

이 기 성

좋은글 감명있게 잘읽었습니다^^
저도 중학교때 외삼촌이 월남서 귀국시가져온 canon카메라가 갑자기 생각나는군요..
수학여행때 빌려갔다가 계단에서 떨어트려 불상사가났지만....
외삼촌께서는 아무런 화도안내시고 서울까지가서 수리해오셨던 기억이납니다.
아~갑자기 외삼촌이 보고싶군요..이번추석명절엔 꼭 찿아뵈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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