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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소설] 버쓰이어 (Birth-year) #4 마지막 화

페이지 정보

  • 작성자 : 현재덕
  • 작성일 : 06-04-05 11:31

본문

M3용 6군 8매 렌즈의 아이(EYE)가 뿌옇게 흐려져 있는 경우는 참 난감하다. 오늘처럼 단골 손님이 매입을 요구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야무지다는 소릴 항상 듣지만 속으로는 제대로 독하지 못한 최과장은 오늘도 결국 줄 돈 다 주고 이 렌즈를 매입해 버렸다. 아마 사장이 올드 렌즈를 볼 줄 안다면 잔소리 꽤나 하겠지만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상관없다, 영업은, 손해를 보지 않는 것보다 마음을 잃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고 최과장은 언제나처럼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과장님, 그런데요"
"그런데요는 또 무슨 그런데요, 너 아까 정리해 두라고 한 박스들은 다 정리했어?"
"아니, 그건 금방 할거구요, 전에 그 아가씨요"
"누구?"
"M4 팔아달라고 하고 달랑 100만원 받아간 아가씨요"
"아 그 분~"
"포클 게시판 보니 결혼한다던데요? 아니, 벌써 했으려나...?"
"했겠지"

별 일 아니라든 듯 덤덤하게 대꾸하며 손으로는 계속 6군8매 즈미크론의 아이를 닦고 있는 최과장의 옆에 바짝 붙어 서며 반도카메라의 막내직원 계승은 계속 말을 이었다. 이 화제가 끊어지면 바로 창고에 가서 독일에서 날아오는 동안 독일 먼지까지 뭍여온 듯한 라이카 박스들을 먼지 온통 뒤집어써 가며 정리해야 하는데, 그것보다는 아무래도 상사와의 대화가 훨씬 재미있다.

"근데 우리가 그거 부탁받은 대로 안 팔고 다른 사람한테 한 이삼백만원 받고 팔면 어쩌려고 그랬을까요? 그 아가씨 그렇게 이 험한 세상 물정을 모르나"
"야 이대리, 넌 일본에 보내 그렇게 꼼꼼하게 오버홀에 리페인트까지 했다는 정성 앞에서 그런 상상이 나오냐?"
"어? 그게 리페인트였어요? 어쩐지 검정 칠이 새것처럼 깨끗하다고 했네"
"관동카메라에 보내서 한 거래더라. 거기 작업이 정말 괜찮지"
"문종범씨는 깜쪽같이 모르고 사간거 맞죠?"
"그럼, 여자분이 그렇게 신신당부 했는데. 나도 이 직업 십년에 는 건 연기력 밖에 없는 것 같아. 하하"
"카메라 장사라는 게 그 자체가 연기죠 뭐"
둘은 그야말로 정말 그럴듯한 말이라고 생각하며 동시에 짧은 생각에 빠졌다.






...................... 에필로그


하판의 레버를 90도 돌리고, 엄지와 중지로 양 옆을 조심스럽게 잡아 한쪽 끝부터 하판을 벗겨낸다. 바디를 아래로 기울이자 하얀 일포드 델타 100이 미끄러지듯 필름실을 빠져나온다. 끝단이 조금 빠져나와 있는 새 필름과 달리, 다 찍은 필름은 완벽하게 통 속으로 들어가 있다. 필름 피커나 다른 도구가 없이는 이미 찍어버린 필름을 통에서 다시 꺼낼 수 없다. 그 통에서 꺼낼 수 있는 건 이제 '필름'이 아니라 '기억'이다.

종범은 필름을 돔케 F-6의 한 파티션에 집어 넣으며 몸을 일으켰다. 문 밖은 완연한 봄이었다.

M4의 블랙 페인트가 4월의 봄볕에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fin*
추천 0

댓글목록

최준석님의 댓글

최준석

마지막 반전이 참 재미나군요..
재미있었심다. ~~

이영준님의 댓글

이영준

그 통에서 꺼낼 수 있는 건 이제 '필름'이 아니라 '기억'이다...

정기훈님의 댓글

정기훈

아......말씀하신 기억 하나 가슴에 묻고 살고 싶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상제님의 댓글

이상제

제가 읽은, 카메라가 나오는 소설 중에 최고였습니다.
익숙한 이름들이 나와서 더욱 그랬는지도...ㅎㅎ

M4 중고시세가 올라가는 것은 아닌지
슬며시 걱정도 됩니다. ^^

박장필님의 댓글

박장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멋진 반전...

이상제님 말씀대로 이글 읽으면서 혹시나 하고 저도 제가 태어난 해의 M4 시리얼을 찾아보려 했는데, 그 해에는 생산이 없었더군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에서 카메라 구매욕을 느끼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거든요.

아무튼 정말 잘 읽었습니다. 모쪼록 즐거운 기억 많이 만드시길...

오장원님의 댓글

오장원

재미있었습니다. 시점이 자주 변해서 그런지.. 저에겐 좀 어려워서 몇번을 봤네요 ㅎㅎ

이문호님의 댓글

이문호

내용이나 구성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Flash Back처럼 바뀌는 장면과 반전...

1편
http://leicaclub.net/forums/showthread.php?t=33987

2편
http://leicaclub.net/forums/showthread.php?t=34001

3편
http://leicaclub.net/forums/showthread.php?t=34109

정성시님의 댓글

정성시

낯익은 이름들, 늘상 있음직한 이야기를 절묘하게 풀어내시니 재미가 솔솔합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한율식님의 댓글

한율식

우연히... 읽은 글인데...
내용이 정말 가슴에 와닿네요....
자꾸만 옛 생각이.... 머리속을 헤집어 놓아서...
혼란스러운 저녁입니다...

정웅태님의 댓글

정웅태

작년부터 연재(?) 되었던 글이군요.
오늘 처음 봤기에 망정이지, 작년에 봤으면 참 결말이 궁금했을 것 같습니다.
재미나게 잘 봤습니다.

이충환님의 댓글

이충환

현카피님 글들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종범님의 댓글

문종범

주인공 등장입니다~ ^_^

소설을 재미있게 읽다보니 진짜로 M4 블랙페인트 바디를 구해야하나 하는 생각마저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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