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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계 _ m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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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박기열
  • 작성일 : 05-06-23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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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고 부족한 글솜씨지만 제 카메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낡은 사진 속의 아버지는 지금의 나만큼 젊다.
그 사진 속 아버지 어깨에 걸쳐있는 카메라를 지금 내 손으로 어루만진다.

Canon의 추억

모터드라이브가 내장된 EOS-1 바디의 셔터음은 소음기를 단 권총보다 짜릿하여 무엇이든, 누구든 명중시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손아귀에 꽉 차는 묵직한 그립감과 적당히 검고 적당히 오돌토돌한 촉감이 한동안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 사실이다.
알카라인 AA배터리 8개만 있으면 레버를 당겨 필름을 넘길 필요도 없고 다이얼을 확인할 필요조차 없이 복잡한 데이터를 일목요연하게 파인더 속 세상으로 전달해준다.
이는 카메라에서 눈을 뗄 필요조차 없는 인터페이스의 편리성을 말하는 것이다.
힘을 빼고 가볍게 셔터를 눌러주면 ‘징-징’ 소리를 내며 거리를 조절하고 알아서 피사체와 자신과의 거리를 가늠한다.
장전된 필름의 갖가지 정보와 노출 값, 반사경이 들렸다 내려앉게 되는 속도까지 계산해내는 이 카메라를 들고 안 다녀본 데가 없을 만큼 혼자서 일당 백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28-70, 80-200의 거리를 지원하는 두 대의 줌렌즈는 내가 의도한 시점과 시선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기록하도록 도와준다. 그 당시 “일본 놈들 카메라도 감칠 맛 나게 잘 만드네." 하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내게 사진은 업(業)이 아니다. 내가 주로 하는 도예 작업의 일부로써, 내 생각을 정리하고 담아두는 일기장의 역할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 이유로 나에게 이 카메라는 충분히 무겁고 충분히 과분했는지도 모른다.

Leica 라는 기계

사진이란 것에서 조금씩 힘을 빼고 난 후 내 눈에 들어온 카메라가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릴 적부터 항상 내 주위에 있던, 그래서 나를 기록한 모든 사진의 도구가 되었던 카메라였지만 그때서야 투박하고 단순한 그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다.
그것은 독일에서 만들어낸 라이카(Leica)라는 카메라이다. 여기서 널리 알려진 라이카의 탄생신화를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또한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발전하는 광학시대에 여전히 칼짜이즈 렌즈가 좋다던가, SLR(Single Lens Reflex)카메라가 없던 시절,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이 사용했던 카메라라는 등의 지극히 주관적인 언급 또한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후에 그도 SLR카메라를 사용한다.)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도 훌륭한 작가들에 의해 좋은 사진을 남기고 있는 이 카메라는 수집가들에 의해, 또 일부 취미 사진가들의 입을 통해 회자되는 무수히 많은 전설을 낳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부풀려 꾸며진, 말 그대로 ‘전설’ 일 뿐이다.
일정 기간 전에 제작된 몇 가지 모델들은 철저히 수작업을 통해 완성되었고, 그런 인간적인 공정은 현재의 첨단 광학이 만들어내는 빈틈없이 얄미운 인화물과는 다른 정렬되지 않은 기호를 제공하고 그 계산할 수 없는 무언가를 사람들은 아우라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다른 기종에 비해 매우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 점도 라이카의 입지를 튼튼하게 한다.

지금은 숙달이 되었지만 처음 필름을 교체할 때는 몇 번을 반복하고 확인했는지 모른다. Canon의 그것에 비해 몇 배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약간의 불안감까지 동반한다. 그 것 뿐인가? 노출계가 내장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항상 따로 노출계를 들고 피사체 앞에서 광량을 찍어내야 하는 불편함도 만만치 않다. 객관적인 비교 하에 이 카메라는 배터리가 필요없다는 것 외에는 다른 카메라에 비해 그 어떤 메카니즘적 메리트가 없다.

왜 나는 Leica를 쓰는가?

Canon을 처분했지만 가급적이면 내 작품은 직접 촬영해야한다는 욕심 때문에 SLR 카메라가 필요했다. 그래서 Leica R8을 구입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카메라는 M4라는 세미코마(semi-coma)상태에 빠져 저지른 나의 실수였음을 고백한다.
이게 문제다. 라이카에서는 약간의 기능만 첨가되어도 첨단이 되어버린다. 일본의 카메라에 비해 전혀 뛰어날 것도 없는 기능과(디자인은 제외하자) 퀄리티에 마니아들은 알면서도 열광하며 격려한다. 마치 ‘라이카는 그래도 된다.' 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이 카메라의 단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절대 우기지 않는다. 지금부터 내가 이 카메라를 고집하는 몇 가지 이유가 설명된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 많은 학자들이 언급했던 심오한 철학적 의미는 보류하겠다. -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혹은 사람과 피사체 사이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심리적, 화학적 작용이며 행위이다.
잡지사를 위해 유명인사나 모델의 강렬한 포즈를 잡아낼 일이 없는 나는 카메라로 내 주변의 소소한 일상과 나를 우수에 젖게 하는 감동적인 풍경, 기억하고픈 사람들을 기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럴 때 레인지 파인더(Range Finder) 카메라인 M4가 제 몫을 다해낸다.
시커멓고 육중한 Canon Eos-1 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찍어왔지만 내가 원하는 표정은 M4가 담아내는 요즘의 모습들이다. 오래되 보이는 낡고 작은 카메라를 사람들은 크게 경계하지 않는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거의가 ‘어디 한번 찍어보라’는 식이다.
셔터를 누르면 타이어에 바람 빠지듯 ‘칙’ 소리(사람들은 그 것을 '매미 소리'라고 들 한다.) 한번으로 상황은 종료된다. 한마디로 찍은 사람이나 찍힌 사람 모두 뭔가를 기대했다가 한 순간에 김빠지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엥? 찍은 거냐?”가 공통적인 반응이니 말이다. 그런 카메라를 향해 얼굴에 힘을 줘 오버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에서 나오는 결과물은 편안한 표정과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의외의 눈빛을 내게 선물한다.

나는 바쁘지만 바쁘지 않다. 아니 바쁘기 때문에 능력껏 ‘느림’을 즐긴다.
노출계가 측량해 낸 빛의 양만큼 조리개를 열고 닫기를 반복하며 그 양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는 순간에도 어떻게 찍을지 다시 한번 생각한다. 이중상을 합치시켜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약간 지루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긴장을 연장시켜주니 나쁘지만은 않다. 그리고 필름을 갈아 끼우는 그 여유로운 시간동안 내 주변의 풍광을 둘러본다. 나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삶에 대한 명상이자 내 주변에 대한 깊숙한 고찰이기도 하다.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또 다른 미적체험을 가져다준다. 마감 시일에 맞춰 일을 할 때의 집중력과는 전혀 다른 깊고 밀도 있는 사유의 힘을 허락한다.
산업화가 가져온 물리적, 습관성 정신적 기계화에 의해 단련되어진 감성의 취약함을 오히려 카메라라는 기계가 매워주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러니라기 보단 들뢰즈가 말한 매끈한 공간으로 가고자 하는 나의 욕망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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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효성님의 댓글

이효성

‘어디 한번 찍어보라’ + “엥? 찍은 거냐?”에 두표입니다.

윤영수님의 댓글

윤영수

저를 라이카카메라 소유자로 만든 기열씨.
학기말이라 성적내느라 바쁘다더니 언제 이런 멋진 글을.

좋은글 잘보았습니다. *^^

김병인님의 댓글

김병인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어디 한번 찍어보라’ + “엥? 찍은 거냐?”
여기에 저도 올인입니다. ^^;

하효명님의 댓글

하효명

"그런 카메라를 향해 얼굴에 힘을 줘 오버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에서 나오는 결과물은 편안한 표정과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의외의 눈빛을 내게 선물한다 "

특히 공감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 했던 자연스럽고 편안한 표정에 놀라게 되지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선후님의 댓글

박선후

지난주 일요일 사촌결혼식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신부대기실에서 사촌과 그의 친구들이 어두운 렌즈가 달린 똑딱이디카로 사진을 찍길래
흑백으로 이쁘게 찍어 인화해줄 목적으로 제 MP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제 사진기를 이상한 눈으로 보더니만
바로 거절하며 대신 자신의 디카로 찍어달라고 하더군요..

주변사람을 편하게하고
때로는 별것아니어 보여 찍히기를 거부하는 사진기인가 봅니다. ^^

경우선님의 댓글

경우선

깊이 공감합니다..^^
한템포 쉬는 느릿한 촬영이면서, 좋은 표정을 놓치지 않는.. 그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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