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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포토에 대한 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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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이태영
  • 작성일 : 03-10-2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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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않은 시간이었지만 사진에 대해 열정이 불타오르기 전 난 미술을 먼저 배울 기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뚱딴지 같은 일이었지만, 불현듯 미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려 찾아간 화실은 일반적인 입시화실이 아니라 어느 기성 화가분이 만들어놓은 개인 작업실이었다.
그저 죄송스러울 뿐이지만 버릇없이 찾아간 그곳에서 난 배움에 대한 댓가 하나, 마지막까지 지불하지 못하고선 그렇게 복터지게 가르침만 얻어온것 같다.
개인적인 모임이 있었기에 이미 전부터 미술을 계속해온터라 별다른 준비과정은 필요없었다.
다만 나에겐 너무 좋았던건 밤을 세어가며 붓질을 해대던 그 화폭에 담겼던 리얼리즘을 벗어나지 못했던 사진들이 그 분을 만나서 구상을 벗어나 추상으로 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20호가 넘는 굵은 붓을 가지고 스윽스윽 그어대는 붓질들은 형태를 어느덧 파괴하고 있었고 그 자리엔 이미 대상이 사라지고 말았다.
나 역시 인지하지 못하고 그렇게 그림을 한장 두장 그려나가는 동안 내 눈앞의 피사체는 그렇게 지상에서 종적을 감추고 만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추상은 결코 우리가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추상은 아닌것이다.
그것은 물론 내가 반추상에 머물고만 탓도 어느정도 있긴 하겠지만 추상이 추상으로만 읽히는 까닭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구상에 얽매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자꾸 이미지 속에서 어떤 텍스트를 찾아내려는 내재된 관성들이 우리로 하여금, 그 시도의 실패를 결국 구상의 반대의 개념으로만 추상을 이해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추상 속에는 이미 구상이 스며들어 있고, 반대로 구상속에도 이미 추상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나의 이 추상적인 관념을 화폭에 담기 위해 꼭 추상의 형태를 가질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어찌보면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서 화폭을 뭉게 뭉게 피어나는 붉은 색감의 덩어리로만 묘사하거나, 우울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짙은 파랑으로 꿈틀대는 덩어리를 그린다던지 한다는건 어찌보면 아주 유아적이고 일차원적인 의식의 표현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사실 그런식의 표현들은 국민학교 미술시간에도 수 없이 많이 관찰할 수 있다.
지금도 생각나는 대목인데 국민학교때 미술선생님이 클래식을 한곡 틀어주며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그려보라고 했더니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알록달록한 빛깔로 마치 구름처럼 화면을 채웠던 기억이 난다.
사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부분의 추상이 이정도 수준인 것이다.
우리네의 특별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구상을 뒤트는 일도 어느정도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물론 구상의 차원에서 전개되지만 다소간의 추상적이며 다소간에는 초현실 적이리라.
하지만 난 그러한 표현법에 대해서 다소 거부감을 가지는 편이다.
물론 취향나름이긴 하겠지만 그 역시 1,2차원적인 영역에서 얼마 나아가지 못했다는 생각에서이다.
차라리 그러려면 숨긴다 라는 것이 내 주의인 것이다.
혁명적인 의식과 시각의 대전환을 보여주지 못하는 어설픈 자아의 발로로써의 작품들은 다들 의식과잉의 산물에 다름아닌 것이다.
세련되지 못한 방법을 통해 보여지는 작가의 날것 그대로의 작품은 어떻게 보면 천박한 것이다.
물론 이 지점에서 고귀한것과 천박한 것에 대한 논쟁이 생길수도 있을것이지만 그건 이 글의 주된 테마가 아니므로 다음에 기회가 되면 논의 하도록 하자.
어찌 되었건 사진을 보며 사진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직관적인 충격과 정서적인 재반응보다 먼저 작가의 의식과 의도가 먼저 보여지는 사진들은, 대체로 작가가 도달하고자 한 목표지점에 도달하지 못한 인내심 부족을 여과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어설픈 습작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사진은 대체적으로 성질급한 사람들의 장르라는 말에 난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표현에 대한 욕구는 강하고 그것을 제어할 통제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퍽이나 매력적인 장르가 바로 사진인 것이다.
때문에 문득 문득 자신의 불안정한 자아에 대한 통제력의 상실을 과도한 이성에의 집착, 지식에의 추종, 권위에의 동경등으로 보상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바로 과잉자아의 사진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난 스트레이트 포토를 좋아한다.
사실 내가 표현하는 사진의 이미지는 모두가 다 나의 자화상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때문에 난 그저 눈앞에 놓여있는 한 풍경을 담았을 뿐이지만 사실 내 사진은 추상이나 다름아닌 것이다.
아도르노는 현대의 도구적 이성을 말하며 인간들의 욕구를 설명한바 있다. 그건 바로 타자의 객관화 물량화 수량화 도구화를 통해 스스로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서고, 다시 그 객체속에 자기 자신을 투사하여 대량 복제 해내는 일련의 알고리즘을 이야기한다.
즉 그런식으로 대량복제된 얼터에고라고 할만한 객체들은 결국 주체자 자신의 무한 복제를 의미하며, 죽지않고 무한 번식하는 신적인 존재로 향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사실 아도르노의 이 논문은 이런 도구적 이성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왜 예술이 그러한 이성에 앞설수 밖에 없는지를 역설하며 마무리 지어지긴 하지만 앞서 언급한 투사와 복제의 알고리즘이 우리 내부에도 어느정도 있음은 인지할만 한 사실인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마치 우리의 친자식을 낳듯이 하나의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 우리의 내면을 담고, 또한 그 자체가 바로 내 자신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 안에는 이미 내 자신이 들어있는 것이고,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들어있고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들어있는 것이다.
앞서 제목을 스트레이트 포토에 대한 열망으로 시작하기는 했으나, 결국에 와선 스트레이트냐 아니냐 하는 것은 단순히 보이는 것을 가지고 논하는 말장난에 지나지밖에 않게 된다.
사실 보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우리가 사진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은 사진이 사진일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고찰인 것이다.
내가 사진을 찍음은 결코 아름다운 피사체를 담기 위함도 아니며, 색이나 빛 을 담기 위함도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을 담기 위한 목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사진에서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진실이 아니라 사진의 내면에 흐르고 있는 내 자신의 투사체이자 염사체 인 것이다.
결론지으면 나의 스트레이트 포토에 대한 열망은 아주 간단하다.
내 자신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것. 나의 의식을 표면의 밑바닥에 숨기는 것. 그리하여 드러나지 않는 모든 순간에도 내 자신을 지속시키는 것.
인간의 관념마저 질량보존의 법칙에서 그다지 멀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해본다면 어떠한 것이 자신의 창작행위를 하는데 있어 더 효율적인? 것인가 하는것은 쉽게 추론해볼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의식을 날것으로 드러내느냐 드러내지 않느냐 하는것은 물론 취사선택의 문제이겠지만 길지않은 경험을 되돌아볼때 관념의 언덕하나를 넘지 못하고 풀어내는 자신의 자서전은 결국 그 언덕을 미끌려 내려오게 하지 않았나싶다.
결국 누구나 다 이르고 싶어하는 어느 경지 또는 지점에 대한 열망의 이야기인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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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득상님의 댓글

김득상

" 내가 사진을 찍음은 결코 아름다운 피사체를 담기 위함도 아니며, 색이나 빛 을 담기 위함도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을 담기 위한 목적인 것이다. " 이 말이 참 심난하게 다가오네요... 브레송의 글을 읽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글이 브레송의 아류라는 말이 아니라, 결국 정점에 다다르는 길과 방법이 다를 뿐 그 목표는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박지은님의 댓글

박지은

좋은 글 잘보았습니다.

이준원vw님의 댓글

이준원vw

아직 무슨내용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어떤식의 사진을 찍어야되는지 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안종현님의 댓글

안종현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박유영님의 댓글

박유영

인용:
원 작성회원 : 김득상
" 결국 정점에 다다르는 길과 방법이 다를 뿐 그 목표는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오래 전에 보았던 글인 것 같은데 다시 보니 새롭습니다. 김득상님께서 달아놓으신 댓글의 의미도. 덧붙여서
이태영님의 글귀 한구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내 자신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것. 나의 의식을 표면의 밑바닥에 숨기는 것. 그리하여 드러나지 않는 모든 순
간에도 내 자신을 지속시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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