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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rrari Testar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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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임인환
  • 작성일 : 04-01-14 01:14

본문

예전에 학교다닐때, 아마 90년대 초반이었을 겁니다.
아주 운좋게 페라리를 잠시 운전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가까운 분께서 페라리를 가진 분이 있었는데,
제 소원중 하나가 페라리 운전해보는 거라고 조르고 졸라서
잠시 아주 잠시 ... 아마 약 10분정도 운전을 해봤었습니다.
기종은 88년산 빨간색 테스타로사였습니다.

클러치를 넣다가 시동꺼뜨렸습니다.-.-
클러치가 무거워 기어 넣으면서 울컥.
또 꺼졌습니다.-.-;
기어넣는 연습을 몇번해보고 조금씩 움직이는데 성공했습니다만
급가속...
놀라서 급브레이크.
또 시동이 꺼지더군요.-.-;;
엔진반응을 알고 나서 조심스럽게 움직이면서
운전을 했습니다.
아아.. 그 놀라운 엔진음..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좌회전... 유턴을 해야하는 곳에서
유턴을 약 10km/h로 하는데, 이런이런
뒷바퀴가 미끄러집니다.
유턴을 하고 보니 180도 회전이 아닌
270도 회전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난감.
그런 저속에서도 차체의 스핀이 일더군요.-.-;;;
슬금슬금 저속에서 엉금엉금...-.-;;;;
제게 30분정도의 시간이 주어졌었는데,
결국 10분만에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저는요, 이 차 운전 못하겠어요T.T;;;;>
아마 제가 어렸을때여서 그런지 넘 소심하고..-.-;; 심약해서..-.-;;
그랬나 봅니다. 지금이라면 당차게 웽-웽- 운전할 수 있었을 텐데...

암튼, 그때 느낀 점은 차가 아무리 멋지고 좋다고 해도
운전하는 사람이 예술로 운전해야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냥 밟으면 되지 않냐구요?
페라리는 드래그레이스용차가 아닙니다.
직진로에서 빠른 속도를 내는데에는 머스탱 같은 차가 더 좋을 겁니다.-.-
민감한 반응과 응답성으로 최적의 코너링을 할 수 있는 차가 페라리입니다.
그리고 그걸 이해하는 자가 그 차를 <예술>로 운전할 수 있을때의 이야기입니다.
예술로 운전하기...

왠 자동차이야기냐구요?
제가 사용하는 카메라가 마치 페라리 테스타로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워핸들도 안되고, ABS도 없고, 좌석도 두개뿐이고,
승차감을 정말 불쾌(?.. 사람에 따라)할 정도로 시끄럽고
서스펜션은 너무너무 딱딱하고...
차중에 비해 엔진출력이 과하다보니 코너링은 커녕 스핀...-.-;
결코 아무나 운전할 수 있는 차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카메라 이야기로..
처음에는 똑딱이 자동카메라를 사용했습니다.
사진 정말 잘찍는다고 친구들이 추켜세워주더군요.
그리고 똑딱이 자동디카를 사용했습니다.
첨단 얼리어댑터라고 다들 신기해 하더군요.
너무너무 편합니다. 그냥 누르면 나옵니다. 말그대로 P&S!
게다가 아주 잘나옵니다.(물론, 취향과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요)
그러다 어느날 DSLR을 사용했습니다.
이건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옵션을 선택 해야했습니다.(렌즈)
사용시에도 선택의 연속이었습니다.(조리개)
굉장히 무거웠습니다.-.-;
가방도 바꿔야 했습니다.
그리고 SLR을 사용했습니다.
여기선 필름도 신경써서 선택해야 했습니다.
더 좋다는, 더 비싸다는 사진장비는
점점 더 많은 옵션과 선택과 좌절을 요구했고
점점 더 불편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다니!
그러나 그게 재미있고 사진도 월등이 멋져졌습니다.(제딴에는..^^
사진이라는 취미가 뭔지 알아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아버지께서 제게 67년산 M4라는 넘을 주셨습니다.
이 카메라의 명성은 사진 좀 한다는 사람이라면
숭배의 대상이니 어찌 제가 몰라보겠습니까.
그런 넘이 내손에 들어오다니... 이런 행운이!

그런데.
매뉴얼포커싱이란 고난도(?) 테크닉을 평생처음 발휘해야했습니다.-.-
그리고 평생 처음으로 노출계없이 뇌출계로 사진을 찍어볼때의 난감함.
35mm를 쓰던, 135mm렌즈를 쓰던, 똑같이 보이는 그 밋밋한 파인더의 황당함.
처음엔 명성때문에 멋졌지만,
제게는 점점 애물단지가 되어 갔습니다.
그래도 단지 그 명성때문에 억지로 억지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진찍히는 사람들은 명성을 전혀 모릅니다.
그저 구닥다리 똑딱이 허접카메라로 봅니다.
뽀대 같은건 없습니다.
게다가 가방도 다시 작은 걸로 구입해야 했습니다.
팔고 다시 DSLR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습니다.
간혹 아버지께 거짓말도 했습니다.
캐논 85mm로 찍은 사진을 주미크론50mm라고 하기도...(죄송합니다)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물려받은 카메라, 절대 팔 수 없었습니다.T.T
계속 억지로 사용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희열을 느낀 사진 한장을 얻게 됩니다.
제가 M4로 얻은 최초의 만족스러운 사진.
아.. 감동이었습니다.
아마 일년전, SLR사용할때, 이 정도의 사진은 뽑아낼 수 있었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저의 감동은...

저는 이제 페라리 테스타로사로 멋지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코너링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명차도,
명카메라도,
그 기계를 예술로 사용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못만난다면,
정말 둘 다 불행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카메라를 물려주신지 꽤 지났지만,
이제야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라이카클럽 여러분께 신고드립니다.
저, 제 카메라가 좋아졌고, 이제 제법사용한다라고요.
아.. 물론 예술로 사용하지는 못하고,
이제 겨우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요.^^;

긴 넉두리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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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임인환님의 댓글

임인환

9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페라리 테스타로사가 어디있었냐고 물으신다면...
예, 맞습니다.
그때, 우리나라에는 한대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차를 운전해 본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건 순전히 노파심에서 덧붙이는 말씀인데,
제가 외국에서 정신 못차리고 좋은차나 타보고 다니고,
비싸보이는(?) 카메라 사용하는 넘으로 보실런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냥 평범하고 저렴한 회사원입니다.-.-;;
필름값/인화비 아까와 하는...
객기에 7롤찍고 현상 못해서 쩔쩔매는...-.-;

이명근님의 댓글

이명근

마치 감동의 서사시 같네요..ㅡㅜ"..

무언가에 짜릿함을 느낀건 저와 같네요..^^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정진원2님의 댓글

정진원2

> 제가 M4로 얻은 최초의 만족스러운 사진.

조만간 저도 그런 사진을 찍게 되지 않을까 희망하면서

님께서 찍으신 최초의 만족스러운 사진을 감상할 기회를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어떤 사진일까 몹시 궁금합니다. ^^;

임인환님의 댓글

임인환

만족스러운 사진을 찍은 건 사실이지만,
저희 가족사진이라서 공개할 만한 사진은 아닙니다.^^;
그냥 똑딱이였다면 진작에 해결할 수 있었을지 모를 사진이지만,
똑딱이라면 그 색감과 계조와 분위기를 제대로 나타내지 못했을거라고 생각하면서
제 나름대로 매우 만족했습니다.
<좋은 사진>이었다면 다들 말리시더라도 공개했겠죠.^^
앞으로는 갤러리에 올릴만한 사진도 찍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리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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