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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의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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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이태영
  • 작성일 : 04-01-26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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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천 0

댓글목록

이태영님의 댓글

이태영

이 사람은 일본군으로 징집됐다. 1939년 만주국경 분쟁시 소련군에 붙잡혀 Red Army에 편입됐다.
그는 (*주* 독일의 소련 침공 때 ?)다시 독일군 포로가 되어 Atlantic Wall(추정:대서양 방어선)을 건설하는데 강제 투입되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다시 미군의 포로가 됐다. 붙잡혔을 당시 아무도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국인으로 밝혀졌으며 미 정보부대에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대해 이야기 했다.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디, Utah 해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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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도깨비뉴스 리포터가 23일 오전 '김구라의 도시탈출 팬클럽' ( http://www.goora.org )게시판에서 발견한 것이다. 사진에 대한 정보는 사진 옆의 영문 설명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영문 사진 설명은 2차대전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미군병사들이 한국인 독일군 병사를 조사하는 장면이라고 돼 있다.
연합군과 독일군의 전쟁에서 포로가 된 한국인 독일 병사. 한국인이 어떻게 독일군 병사가 되어 미군의 포로가 됐을까. 사진에 대한 설명은 간략한 몇 문장이지만 그의 이력은 다시 한번 민족의 고난을 생각하게 해준다.

그러나 이 사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또 그가 현재 어떻게 됐는지도 알 수 없다. 사진에서 그의 나이는 대략 20대 후반 ~ 30대 초반으로 보인다. 꼭 60년전 모습이므로 살아 있다면 그는 85살~95살.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도 많이 있다.

도깨비 뉴스리포터는 이 사진과 주인공의 사연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검색을 계속했다. 그결과 이 사진은 프리챌에 잠간 올라왔다가 삭제 됐으며 디시인사이드 밀리터리 갤러리에도 올라와 있었다.
디시 밀갤에는 출처까지 표기돼 있었다. 출처는 2차대전 자료 데이터베이스( http://www.worldwar2database.com ).

여기서 1944년→The Normandy Invasion→ Image Gallery→22번 사진 순으로 찾아 들어 가니 위 사진이 실제로 있었다. 2차대전 당시의 기록 사진들 중 한장이었다. 따라서 합성이나 조작의 가능성은 전혀 없는 실제 사진이라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아래의 해설 외에는 어떠한 추가 정보도 찾을 수가 없었다.

도깨비 뉴스 리포터는 이 사진이 19일 영국 킬리대학 공중정찰문서보관소(TARA)의 앨런 윌리엄스 소장이 웹사이트(http://www.evidenceincamera.co.uk )를 통해 공개한 제2차 세계대전 사진 당시 500만장 가운데 한장일 수도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곳의 사진들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비롯, 영국공군이 2차 세계대전 중 서부 유럽에서 촬영한 것들이다. 웹사이트의 주소는 연합뉴스가 19일 보도한 기사에 소개된 것. 19일 이후 이 사이트는 잘 열리지 않다가 24일부터는 느리지만 열리고 있다. www.evidenceincamera.co.uk에 이 사진이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웹 검색을 통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더 얻을 수 없었지만 도깨비 뉴스의 독자들이 이 기사의 리플로 올린 글에서 여러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디서'님은 '주간한국 2002년 12월 6일자'에 "연합군의 포로가 된 독일병사 가운데 한국인이 4명 있었다"는 기사를 소개했다.

[주간한국 기사]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미국 뉴올리언스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다 정년퇴직한 스티븐 엠브로스 아이젠하워센터 명예관장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 전후의 미군의 활약을 담은 군사 역사서를 여러 권 썼다. 브루어는 6월 7일 노르망디 해변 후면도시에 낙하해 해안벙커를 방어하고 있는 독일군을 공격 했다. 이때 부루어팀은 독일말조차 못하는 4명의 동양인을 포로로 잡았다.
한국 출신이라는 그들은 1941년 소비에트 적군(赤軍)으로 모스크바 근교에서 싸우다가 독일군에 포로로 잡혔고 그 후 독일군의 노르망디 해안선 방어병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적군이 된 이유도 설명했다. 1938년 한국에서 일본군에 징집되어 39년 만주의 소련 국경에서 전투 중 포로가 되어 적군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브루어는 그러나 “4명의 한국인을 어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한반도로 돌아갔겠죠. 그리고 1950년에 그곳에 전쟁이 발생했을 때 미국을 위해 싸웠거나 미국에 반대해 싸웠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20세기 ‘역사의 변덕’이 아닐까요.” 라고 말했다.


[http://www.dkbnews.com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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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된 기사를 보니 보신분들도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만,
개인적으로 적지않은 충격을 받은 사진과 기사라 함께 보고싶어 소개합니다.
우리와는 별로 상관 없는 전쟁이라 생각했던, 라이언일병 구하기에나 나오는 전장이라 생각했던 그곳에,
나라를 잃었던 우리 할아버지들이 타의에 의해 흘러흘러 들어가 목적없이 싸우고 있었네요.
"아무도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라는 부분이 특히나 참 가슴이 아픕니다.
대륙을 횡단해 남의 전쟁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얼마나 비참하고 외로왔을까요...

..

타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한번 옮겨와 봅니다.

박유영님의 댓글

박유영

자기의 민족과는, 더구나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전쟁에다
자신의 의지는 철저히 무시되고
전쟁의 한가운데로 들어서야 했던,
앤소니 퀸 주연의 '25시'라는 영화를
보고 사연에 절절히 가슴아파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그 사연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恨으로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기구한 사연이네요.
우리의 미래에
다시는 이런 암울한 희생자가
생기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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