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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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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이태영
  • 작성일 : 04-03-28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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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여 사진기에 손을 대지 않은것 같다.
언제나 안절부절못하며 하루라도 사진을 찍지 않으면 안될것만 같은 관념에 사로잡혀 있던것이 지난 오랜 시간의 일인데, 그러고보면 아마도 고작 한달일지언정 가장 오랜기간 사진기를 손에 대지 않은것 같다. 그동안 그럼 무얼했는가? 나름대로는 바쁘다고도 생각을 해보고 사진에 대한 내적 에너지의 고갈이라고도 생각을 해보았다. 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새로운 렌즈와 새로나온 마음에 드는 필름 몇롤 들고 나가면 멋진 사진이라도 찍을것만같은 자만과 허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정신병자처럼 길을 가다가 조그마한 사물, 풍경들을 보곤 프레이밍하는 버릇이 들기도 하고, 문득 문득 어슴푸레해지는 저녁길을 걷다가 지금의 노출값은 대략 조리개 얼마에 셔터얼마군 하며 읖조리기도 했다. 아마도 관성처럼 스스로의 내적인 욕구도 이해하지 못한체 스스로를 이성으로 다스리면서 동일한 행동을 반복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오랜시간동안 새로운 장비, 새로운 시간, 새로운 장소 라는것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무언가 작품을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해오곤 했다. 이곳이 아닌 어느 다른곳에서 지금의 내가 아닌 또다른 내가 되어 라는 상투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반복해오며, 자꾸 머릿속의 이상과 나의 두 다리가 디디고 있는 이 대지의 굳건함을 분열된 자아상으로 가지고 있었던건 아닌지 모르겠다.
오늘 오랜만에 사진기를 들고 바깥 나들이를 갔다가 사진을 찍지 못하고 왔다. 오랜시간동안 사진에 담기는 것은 어떤 content 가 아니라 process 그 자체라고 생각을 해왔기에, 멋진 장소가 아니라도 바라봄에 따라 좋은 사진은 무수히 널려있다고 늘 생각해오긴 했었다. 때문에 완성된 한장의 사진 보다는 그 이전의 단계, 즉 작가의 머릿속에 있는 상상의 이미지가 더 가치있는거라도 나름대로는 자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사진한장도 찍지 못하고 그냥 들어오면서, 나의 머릿속이 이렇게 공허했었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아니 공허라는 단어도 너무나 사치스런 표현을지도 모르겠다. 나태함으로 가득찬건지도 모르지.. 예전에 이 라이카클럽에 적었던 다른 한 글에 담긴 어느 분의 리플. 진지함을 가장한 나태함. 정말로 오랜시간 나의 머릿속을 강타한 말이었는데, 나름의 기간 몸부림처보았어도 그 명제에서 얼마 벗어나지 못한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에 사로잡힌다. 리얼리티를 상실한 머릿속과 리얼리티를 벗어나지 못하는 두 다리의 분열은 늘 적절한 통제를 거치지 못하는 행위와 언사를 뱉어내기 일수이다.
오늘은 어느 누군가와 오랜시간 이야기를 하며 내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내뱉은 언어에 의해 스스로 속박당하고 있는것 같다고 말이다. 얼마전에 이치환 선생님이 찍었던 도웅회 선생님의 사진을 보다말고 어떤 리플을 보았는데, 거기엔 선생님께서는 어떤 사진을 찍고 싶습니까? 라는 아주 심플한 질문이 있었다. 평소 존경하던 선생님들인지라 내 마음이 투사되어 마치 나에게 하는 질문마냥 느껴졌다. 대체 내가 찍고자 하는 사진은 무엇이지? 한참은 내 마음의 풍경이라 적어보기도 하였지만 어느순간은 너무나도 무책임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은 점 하나만 찍어놓았는데, 그것 역시 스스로의 내적 결핍에 대한 디펜스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하나 생각하면 할 수록 딜레마에 빠지기만 했다. 그러다가 다시 든 생각이 바로 위에서 말한 스스로의 언어에 스스로가 속박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고작 쌓아놓은 성이 얼마 되지도 않는 모래성인데 그걸 자꾸 위태위태하게 부여잡고 있으니 더 나아가질 못하는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카메라타령 렌즈타련등도 다들 그런 부족한 자아에 대한 보상심리가 아닌가? 어찌 새로운 화각의 렌즈 하나가 나의 부족한 내면을 보상해 주겠는가? 그것을 자꾸 장비에 투사하고 보상받으려다보면 남는것은 금전적 낭비와 스스로에 대한 어설픈 자만심 뿐일 것이다. 짧은 기간 수십종의 라이카 바디도 써보고 수십종의 라이카 렌즈도 써보면서 나름대로 이것저것 아는척도 많이 해보는데 이게 다 내적 갈등에 대한 하나의 어설픈 탈출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자체를 즐기는 정말로 매력적인 심성의 소유자도 있겠거니와 나 같은 사람은 도무지 그럴 위인이 안되는 것이다. 도웅회 선생님이 지금 나에게 당신은 무슨 사진을 찍고 싶습니까? 라고 물어보신다면 난 뭐라고 답할까? 분명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면 난 또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어설픈 상투적이고 지적인 답안을 내놓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 지점이 문제의 시작이고 끝인것이다. 스스로에 의해 스스로 속박당하는것. 고작 나이도 얼마 먹지도 않아서 자꾸 스스로를 완성시키고자 하는 욕구들이 가랭이 찟어지는 결과만을 낳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 든 생각은 다시금 애벌레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이것이 또다시 하나의 방어기제가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스스로에 대해 스스로 붙여주었던 단어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새로운 언어로 스스로의 좌표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냥 늦은밤에 드는 생각을 글쩍거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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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병인님의 댓글

김병인

항상 무엇이건 파고 들어가 속속들이 알아내고야 마는 이태영님의 글을 보면서 감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열정이 저에게서는 이미 식어버린 탓에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겠지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름대로 생각하게 된 것은 현명한 사람과 똑똑한 사람, 따뜻한 사람과 냉철한 사람, 치밀한 사람과 덤벙대는 사람, 이런 식으로 비교되는 여러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놀랍니다. 그중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해보게 되지요. 재미있는 것은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조금씩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모든 이가 가진 성격의 일면이 있다는 것이죠.
사진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있을수도 있고, 단순하게 내 아내가, 혹은 내 아이가 찍고 싶어 사진을 시작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어떤 사진이 옳고, 어떤 사진이 그르다는 생각은 일찍 접었습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죠.
어차피 누구였던 내가 찍는 사진의 스타일은 먼저 찍은 사람이 있습니다. 제 사진을 보면서 어떤 사람의 스타일을 카피했구나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일 뿐이죠. 왜냐하면 저는 그저 셔터를 끊고 싶었던 때 셔터를 끊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것을 알수록 그 지식은 결국 굴레로 작용하게 됩니다. 내 스타일은 독특해야 하고, 내 사진은 누구의 카피인 것이 싫다는 것은 별로 옳은 생각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카메라가 사진을 찍어주는 단순한 하드웨어인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것이 옳은 것 처럼, 사진 역시 내가 찍고 싶어 찍은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을 가지는 것이 오랜 시간 사진을 사랑할수 있는 근본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두서없이 몇자 적어보았습니다.
신중하게 쓰신 글에 너무 가벼운 댓글이 아닌가 죄송스럽습니다.

이치환님의 댓글

이치환

솔직한 고백에 찬사를 보내며,
신혼이니 사진은 잊고 사랑에 더욱 몰입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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