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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구, 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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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박삼정
  • 작성일 : 11-02-18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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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구, 짱구

4월 5일 오전10시 4명이 부산 성지곡수원지를 한바뀌 돌았다.
가빠른 수원지 둑길을 올라서니,
산(山)들로 둘러싸인 못가에 활짝핀 목련과 벚꽃이 봄비에 젖어 촉촉한 상태로 내는 색상이
참으로 아름다워서 절로 탄성이 나왔다.
아!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런 아름다움이 아닐까? 할 정도였다.

일행중 사진을 시작한지가 얼마되지 않은 한분이 벚꽃과 하얀목련을 카메라에 담느라고
몇걸음 가서는 멈추곤 하여 일행들을 계속하여 길가에 세워 두었다.
목련꽃과 겹쳐보이는 마음이 여리고 순수하던 어릴적 내 친구, 짱구와 같이 왔어도 동행들을 잊고 스케치에 정신이 팔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잘 그리던 내친구, 짱구는 큰머리에 앞으로 툭 튀어나온 이마하며,
옆으로 불거진 광대뼈와 겁이 많은 듯한 커다란눈아래 길게 내려온 코에 두툼하면서 길다란 입술에 거칠은 얼굴피부로 처음보는 사람들은 대체로 혐오감을 느끼기에 충분하였으나,
나에게는 순진무구한 친구로 하얀 목련꽃을 연상 시켰다.

집에 와서도 하얀 목련꽃이 눈에 아른거려 진공관오디오에 불을 지폈다.
영화 "엘비라 마디간"의 주제곡으로 쓰였던"모짜르트의 피아노협주곡21번 2악장"을 프리드리히 굴다의 연주로 들었다.
모짜르트가 작곡한 곡중 가장 슬프도록 아름다운 곡이기에 낮의 그 천국같던 풍광과 겹쳐 황홀해진다. 이어서 평소 즐겨듣던 멘델스존의 바이롤린협주곡을 올렸다.
나는 특히 이스라엘이 낳은 바이올린의 거장, 이착펄만을 좋아 하였다.
소아마비의 신체적장애를 극복한 불굴의 강인함이 여린바이올린 선율과 함께 애톧함이 묻어 나는 진한감동 때문에 울적할 때마다 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착펄만의 신체적불구와 내친구, 짱구의 어릴적 모습이 떠오른다.
유아기 부터 중학교 시절까지 한동네에서 박상용과 함께 자랐다.
다들 짱구라고 놀려대면 상용은 "좋은 이름 두고 왜 짱구라고 부르는가?" 라며 성을 내고는 으슥한 골목길의 전봇대에 기대어 서서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면서 혼자 있기를 좋아 하는 것 같았다.
특히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도중의 옆동네를 지나다가 아이들에게 밉도록 못생긴 얼굴에 머리는 남들보다 두배나 더 커보이는 짱구머리 아이에게 돌을 던지거나, 심지어 손찌검 까지 당하는 날은 더 그랬던 것 같았다.
나중에 중학생인 상용의 형이 이사실을 알고는 옆동네아이들을 불러다 혼을 내면서 상용을 짱구라고 놀리거나 때리지 못하도록 하였다.
나도 등. 하교길은 가급적 이 친구와 함께 다닐려고 기다려 주거나 또는 그가 나를 기다렸다.
어릴 때부터 이 친구는 만화보기를 좋아 하였고, 그림을 곧잘 그리는 재주가 있었다.
내얼굴도 연필로 여러 번 그려 주었으나 나는 미간이 넓고 작은 눈에 납작한 코하며 내 얼굴의 못난점이 더 두드려져 보이는 그 그림들을 별 탐탁하게 여기지 않자 그 친구는 매우 섭섭한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5. 6학년 때는 상용과 같은 반에서 뒤쪽 줄에 나와 나란히 앉아 공부를 하였는데 공부시간에도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을 그리거나 또는 멍하니 앉아 있는 등 공부는 등한시 하는 편에 속했다.
그러다 중학교에 들어 가면서 학교도 달랐고,
나는 학교가 파해도 대부분 학교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거나 같은 반 친구들과 놀다가 해가 져서 어두어 져야 집에 가므로, 동네아이들하고는 점차 멀어지기 시작하던중 우리 집이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면서 상용과는 헤어지게 되었다.

팔구년쯤 지난 어느 겨울날,
부산의 극장가인 남포동을 지나다 어릴 때 친구, 짱구같이 생긴 사람이 그 많은 인파 속에 있었다.
다른 친구 같았으면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텐데 유난히 뒤퉁수가 많이 튀어 나왔고 ,
내또래에 키가 컸기에 쉽게 알아 볼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사람사이를 밀치면서 그 친구에게 다가가서 “상용아" 하고 불렀다.
그도 처음에는 어리둥절한듯 나를 쳐다보더니 “너 정삼이제?” 하면서 또 특유의 씩 웃는 표정을 보여주었다.
어릴 때 표정과 똑 같았으나 얼굴은 엄청 미남이 되어 었다.
반가워서 “너 어디 있노?”라고 물었더니 부일극장에서 간판 그리는 보조기사로 일하고 있단다.
지금은 바쁘다면서 상용의 근시각에 부일극장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는 헤어졌다.
나는 친구들과 음악다방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온통 그 친구생각뿐 이었다.
나중에 부일극장으로 갔고, 극장앞의 커다란 간판에 그려진 영화주인공들의 멋진 장면이 꼼꼼이 잘 그려져 있었다.
이게 내친구가 보조기사로 함께 그려넣었다고 생각하니 어째 그가 대견해 보였으나,
어릴적의 그림그리는 재주를 이렇게 상업적인 작업에 썩히는가 싶은게 어째 그 재능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1970년대 그 당시는 영화관람객들이 극장 간판에 그려진 주인공들이나 영화의 장면사진들을 보고 입장권을 사는 경향이 있었기에 그림그리는 사람들의 기술에 따라 관람객의 수가 좌우되리 만치 중요하였으므로 간판그리는 기사의 처우가 대단히 좋았었던 시절이었다.
물론 나중에 알았지만 부산에서는 부일극장이 간판을 제일 잘 그린다는 평을 얻고 있었다.
상용은 나를 근처의 술집으로 데리고 갔었다.
둘이 마주앉아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지난 세월 동안 상용의 형이랑 가족근황 그리고 자라면서 겪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그 뒤로 종종 그에게 공짜영화, 특히 이미자나 라훈아등 인기있는 쑈 공연이 있는 날이면 꼭 우리집으로 전화까지 해서는 초대를 하였고, 또 종종 술잔을 마시면서 젊음을 토로하곤 하였다.
내가 술값을 낼려고 해도 학생이 무슨 돈이 있느냐고 하면서 한번도 내게 돈을 낼 기회를 주지 않았었다. 그러다 내가 학교를 마치고 취직하면서 그와는 또 헤어졌고,
그 뒤로 지금까지 그를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요즘은 극장도 소규모의 복합상영관으로 바뀌었고,
웬만한 선전물은 사진확대로 대체되어 옛날처럼 직접 그리는 작업이 없어진 지 오래 되었기에, 무얼하면서 사는지 몹시 궁금하다.
지금도 옛날의 그 일극장앞을 지나갈 때는 그를 생각하게 되고,
나의 둘째 막내딸을 그림공부 시키면서 상용의 생각을 가끔씩 하게 되었다.
그림 그리는 재주와 머리가 커서 창의력이 뛰어났던 그도 제대로 미술공부를 하였다면,
화가로 크게 성공할 수 있었텐데...... 하고 나 혼자서 되묻곤 하였다.
그리고 유명화가여서 연락처도 쉽게 알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어려었을 적의 놀림감이 되기에 충분하였던 선이 굵었던 얼굴과 청년으로 성장하는 동안 남들보다 더 넓게 그리고 앞으로 튀어 나온 이마 아래 커다란 눈이 더 깊어 보이면서 길고 높은 코 아래의 두툼한 입술이 전체적으로 강인한 인상을 풍기는 잘생긴 얼굴로 내 가슴한켠에 남아,
오늘처럼 봄비에 촉촉히 젖은 하얀 목련꽃이 가련해 보이는 날이면 그 순진무구하던 그친구가 그립다 못해 눈물이 맺힌다.
나도 이제 나이가 어지간 하기에, 어릴 적의 순수한 그 마음으로 되 돌아가고 싶어서 인가?
내일 아침에는 아파트정원의 하얀 목련꽃을 필름카메라로 찍어 액자에 담아 두어야 겠다.

박삼정씀.[/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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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박 강 민님의 댓글

박 강 민

글을 읽고 문득 고개를 돌려 창밖을 봅니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담배 한 개피 피워 뭅니다.
친구들 얼굴이 하나 둘 셋 스쳐가네요.
첫사랑 생각에도 이처럼 가슴이 저려오지는 않았었는데...
봄에는 그리운 사람을 마냥 그리워만 할게 아니라 좀 찾아 봐야겠습니다.
성지곡 수원지, 남포동, 부일극장.. 단어 하나하나가 고향샘을 자극하는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박 삼정 선배님...

ps. '나는 학교가 파해도..' 라는 말을 오랜만에 들으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

홍건영님의 댓글

홍건영

동양화가이신 제가 아는 어떤 분도 그림에 재능이 있는 것을 그 분의 형님이 아시고
형님의 손에 이끌려 영화관 간판 그리는 분에게 갔다고 합니다
그 당시는 그런 일이 아주 일반적인 일이었나 봅니다
좀 후에 제 선친께서 호남의 유명한 동양화의 대가분에게 소개를 시켜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됐지요

친구분께도 제 선친처럼 예술의 길로 인도하신 분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조철현님의 댓글

조철현

글이 참 정감있습니다.
한숨에 읽었네요.^^

노현석님의 댓글

노현석

얼마전 연락이 끊어진 군대 친구를 만났습니다.
멀리 진영 사는 친구는 일산으로 이사를 와 있었구요.
그간의 많은 일들을 뒤로하고, 회 한접시와 소주 몇잔에 서로 마주보고 웃고만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시절은 시간이 지나도 아름답네요.

좋은 글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다시 연락이 된 제 군대 친구에게 이야기해줘야 겠습니다.
이런 글이 있었다고......

박삼정님의 댓글

박삼정

졸필을 정감있는 좋은 글로 읽어 주셨다니 너무 고맙습니다.
이글은 제가 어릴적의 짱구머리에 못생겼던 친구가 미남 청년으로 내 앞에 나타났지만,
저는 항상 어릴적의 왕따당하여 여린마음에 혼자 어두커니 하늘을 쳐다보거나,
또는 그림에 열중하는 모습이 각인되어 꽃셈추위에 피는 하얀 목련꽃과 같이 겹쳐 보였기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감사드립니다. 박삼정배.

유인환님의 댓글

유인환

박삼정 회원님

프리드리히 굴다와 이츠하크 펄-만을 좋아 하시는 군요 -

음악 들을 때 불 지피시는 진공관 앰프가 어떤 놈(?) 인지도 궁금해 지는데요 ?

박삼정님의 댓글

박삼정

진공관 앰프가 KT-88이 아니라 진공관과 TR의 하이브릿드 방식을 너무 과장되게 "불을 지핀다"고 표현해서 송구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만족하고 잘 듣고 있습니다. 감사.

김재현님의 댓글

김재현

소설의 한 부분을 읽는듯이, 참 재미있고도 유익한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ㅎㅎ.

어휴.. 오디오라....... 덜덜... 해드폰 하나가 백오십만원이 넘는다죠...?

박삼정님의 댓글

박삼정

아닙니다. 하이앤드 중에서도 성능대비 가격대가 싼 오디오도 많습니다.
그리고 굳이 오디오세트가 아닌, 컴퓨터 스피커로도 훌륭한 소리를 즐길 수 있습니다.
오디오로 듣는 건 일주일에 한번정도이고, 주로 PC에 연결한 JBL스피커로 음악을 많이 듣습니다.
졸필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삼정님의 댓글

박삼정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 집앞에 하얀목련이 활짝 핀걸 보았습니다.
아직은 꽃셈바람이 옷깃을 여미도록 쌀쌀한데,
목련화는 왜 이리 일찍 피어나서 이 추위에 온갖 시련을 다 겪고 있는지,
어릴적 내친구, 짱구처럼 애처러워 보였습니다.

박삼정님의 댓글

박삼정

[quote=박삼정;283195]오늘 아침 출근하면서 집앞에 하얀목련이 활짝 핀걸 보았습니다.
아직은 꽃셈바람이 옷깃을 여미도록 쌀쌀한데,
일찍 피어나서 추위에 떨고 있는 듯이 보여 애처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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