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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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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허석도
  • 작성일 : 11-02-27 22:42

본문

처음 올리는 글이라 조심스럽습니다.
오래 전 이야기이긴 하지만 색다른 경험의 기억이라 올려 봅니다.

-------------------------------------------------------

나이가 들면서 별 생각 없이 듣고 쓰던 말들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말도 그 중의 하나이다.

스위스 베른에서였다. 베른은 스위스의 수도로 전통적인 유럽풍의 건물들이 도로 양편으로 늘어서 중세 도시를 연상케 하였다. 도로에는 작은 벽돌이 방사형 모양으로 촘촘히 땅에 박혀 있었는데 옛날 마차가 다니던 길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었고 거기에 전철까지 지나고 있어 어지러운 듯 보였지만 전혀 거북하지 않았다. 거리에는 사람들로 붐볐지만 서두르는 모습은 없었고 모두들 여유가 있었다.

엽서에서나 보았던 그림같은 풍경과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상큼한 공기를 연신 들이 마시며 일행과 함께 길을 걷고 있는데 그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거지였다.
승강장 바로 옆에서 대나무를 잘라 만든 동전통을 앞에 놓고 구걸을 하고 있는 거지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는 벽에 기대어 앉은 채로 무릎에 턱을 괴고 있었는데 손가락에는 진짜인지 모르지만 아주 큰 보석이 박힌 반지를 끼고 있었고 손목에는 로렉스 시계까지 차고 있었다. 오뚝한 콧날과 시원스런 눈매와 꼭 다문 입, 윤기 나는 백발과 성성한 수염까지, 세월의 연륜과 함께 지성미를 물씬 풍기는 모습이었다.
거기에 연갈색 모피코트의 털 달린 모자로 머리를 가볍게 덮고 있어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셔터 소리에 그는 고개를 한 번 들더니 관심 없는 듯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꼼짝하지 않는다. 카메라의 LCD 창으로 확인해 보니 뭔가 아쉬웠다. 얼굴만 클로즈업시켜 다시 찍는다. 그래도 뭔가 부족했다.
바로 빛이었다.
그늘에 앉아 있는 그의 표정이 전혀 살아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를 바로 옆의 양지바른 곳으로 옮기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이 때를 기다렸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일행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말도 글도 통하지 않는 낯선 길에 걱정이 앞섰지만 떠날 수는 없었다. 갑자기 프랑스의 사진작가 가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결정적 순간’이란 구상과 구도가 가장 적절한 최상의 순간으로 사진가와 대상이 찰나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한다. 나는 큰 작가나 된 듯한 기분으로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며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동전이 흩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지나가던 신사가 동전통을 보지 못하고 차 버린 것이다. 몇 닢의 동전들이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순간 기회라고 생각했다. 신사와 함께 동전을 모두 주워 담은 뒤 그 통을 햇빛이 있는 자리로 옮겨 놓고는 손짓발짓하면서 거지에게 그쪽으로 옮길 것을 권하였다. 의외로 순순히 말을 들어준다. 햇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면서 명암이 뚜렷하게 살아난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그렇게 애써 자리를 바꿔 사진을 찍으려 하니 도통 고개를 들지 않는다. 다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거지가 고개를 들면서 이쪽을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눈매에 순간적으로 당황하였지만 감각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는 목례 한 번 하고는 일행을 찾아 나섰다.

귀국해서 짐을 풀자마자 가장 먼저 이 사진을 컴퓨터로 확대하여 보았다. 사진을 보는 순간 나로 모르게 중얼거렸다. 분노의 얼굴!
무어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얼굴에서 풍기는 느낌은 분노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을 찍던 순간에 느꼈던 당황함도 바로 이 분노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엇이 그의 얼굴을 이렇게 분노로 만들었을까.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에서 그가 가졌던, 분노로 얽힐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삶을 상상하면서 옆에 있는 거울을 당겨 내 얼굴을 들여다 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나는 지금 어떤 얼굴을 만들어 가고 있는가…….
추천 0

댓글목록

정규택님의 댓글

정규택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담으신 문제의 그 사진이 무척 궁금해집니다.
어떤 분노감일까~~ 상상은 해보지만 잘 그려지지가 않습니다.

제 얼굴도 다시 한번 뒤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 얼굴은 어떤 모습으로 보여질까.?
내 얼굴은 어떤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이 좋을까.?
내 얼굴은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는 것일까.?
내 얼굴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
.
.
감사합니다. 꾸벅~

김 용진님의 댓글

김 용진

[무엇이 그의 얼굴을 이렇게 분노로 만들었을까.]

글을 쓰신 의도가 위 인용 문장에 대한 답을 구하는 건 아니시라는 건 알지만,
또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모르면서 댓글 쓰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이 글만 읽고 판단하자면
그 걸인의 분노는 사진 찍는 분을 향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자신의 하루하루는 막막한데
자신을 옆에서 지켜보며 셔터를 집요하게 누르는 외국인.
저라면 당연히 화가 날 것 같습니다만...

의도하신 바와 다른 댓글을 달아서 죄송합니다.

임규형님의 댓글

임규형

잘 읽었습니다.
사진을 보지 않아도 선명하게 어떤 모습이 떠오릅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으로서 인물사진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저도 당연히 생각을 많이 해보았습니다.

어쩌면 카메라가 맨 눈 보다 시선의 권력이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시선의 힘에서 약한 사람은 사진 속에 담기는 것에 관대하거나 자연스럽기가 쉽지 않겠지요.

언젠가는 소통과 이해가 있는 인물 사진을 해보리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오만을 비판하는 사진을 해보리라 생각하며 글을 읽습니다.

신 정식님의 댓글

신 정식

제가 근자에 모로코엘 다녀 왔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무지하게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 하더군요.
아이들 마저도 사진기를 들이대면 욕을 하고 심하면 돌까지 던지더군요.

허락을 구하려 말을 건네면 100% 거절이구요...
내내 대화를 잘 하다가도 사진찍자 소리만 나면 손사래를 치더군요.
상인들은 물건을 사야 간신히 한 컷...
아니면 걸인이나 아이들은 돈이나 먹을 것 등을 주어야 간신히 한 컷...
아니면 도촬인데... 도촬은 제 생리상 내키지 않고...

그러다가 어느 아침 카페에 앉아 차 한잔 하고 있는 남자를 테이블과 어우러지게 한 컷 찍어 봤습니다.
아무 반응이 없어 " 되었구나.. "하고 돌아서서 나중에 LCD 창에서 얼굴을 확대하며 확인을 해 보니
정말 험악한 " 분노 "의 표정 그 자체였습니다.

제 경우야 그나라 문화적, 사회적 사정이 그러하니 이해를 했습니다만
허선생님의 경우는 왜 그랬을까요...
하지만 분노의 표정을 보고 느낀 감정은 아마 저도 이해할 것 같습니다.

허석도님의 댓글

허석도

글이란 참 묘한 매력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 글을 쓴 이후로 지금까지 거지의 분노가 사진으로 인한 일시적 분노를 보였다는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는데
주신 댓글을 읽고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
어쩌면 스위스 거지의 분노는
'자신의 삶이 만든 분노'가 아닌 동양인의 '카메라로 인한 일시적인 분노'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쓴 글은 완전히 주제가 빗나간 글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의 의도는 '인생이 만들어가는 자신의 얼굴'이었습니다.
저의 짧은 소견이나
혹은
대상이나 상황을 의도하지 않았지만 진실과는 다른 왜곡을 부를 수 있다는 상황의 역설에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주신 댓글과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근데
당시 사진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싣는지 알 수가 없네요. 가르쳐주시면 사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진인구님의 댓글

진인구

게시판에서 사진 올리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아래 댓글다는
길쭉한 메모판이 있지요?

그 밑에.. "작성완료" 우측에
go advanced 라는 곳을 누르시면
그 메모판이 확장됩니다.

그 확장된 메모판 상단에

스마일 표시가 보이죠? 그 오른 쪽에 "클립" 표시가 있죠?
그 클립 표시를 누르시면 (한 1-2초 걸릴 때도 있음)
갤러리에서 사진 올릴때와 마찬가지의

사진올리는 창이 하나 열립니다 (아.. 혹시 팝업창 안열리게 셋팅 해놨으면, 인터넷 브라우저
상단 메뉴 중에 "즐겨찾기" 옆에 "도구"라고 있죠? 그 도구을 클릭해보면 "팝업 차단" 이 있는데, 그걸 누르면 차단시키는 것이고, 다시 눌러서 해제하면 됩니다.

사진올리기 창이 뜨면
"찾아보기" 버튼을 누르면 컴퓨터 내의 폴더가 뜹니다. 거기서 올린 사진을 찾아서 클릭하고, "올리기" 버튼을 누르고 1-2초 있으면 그 밑에 올라온 사진파일이름이 생깁니다.
또 하나 더 올릴려면, 다시 "찾아보기", "올리기" 반 복 하면 계속 올릴 수 있습니다.

유인환님의 댓글

유인환

인용:
원 작성회원 : 진인구
게시판에서 사진 올리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아래 댓글다는
길쭉한 메모판이 있지요?
- - - -


토요 사랑방 방장님 자상하심 이란 - 참으로 끝이 없습니다 - ^^

허석도 님이 울산에 계시니
토요일 사랑방에 나오시라고 초대할 수도 없고 -

허석도님의 댓글

허석도

진인구님의 자상한 설명에
울산의 추적추적 내리는 비조차 정겹게 느껴집니다.
거기에 유인환님의 마음의 초대까지 곁들여 주시니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다시한 번 감사드리면서 분노의 사진 올려 봅니다.

유인환님의 댓글

유인환

허석도님

사진에 나타난 표정이 참 리얼하네요-

좀 더 큰 싸이즈로 올리셨더라면 -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서
이 글타래 읽는 회원들에 대한 서비스로
사진을 더 크게 만들어 교체 하셔도 좋겠네요
가로 싸이즈 800-900 픽셀 정도로 요 -

사진 교체도
진인구 방장님이 알려드린 방법으로 하시면 됩니다
원래 사진을 삭제하고 새로 올리시던가
아니면 교체 기능을 사용하시던가 -

허석도님의 댓글

허석도

유인환님 말씀대로 수정하였습니다.
말씀대로 하니 보기가 훨씬 편하네요.
고맙습니다.

유인환님의 댓글

유인환

인용:
원 작성회원 : 허석도
유인환님 말씀대로 수정하였습니다.
말씀대로 하니 보기가 훨씬 편하네요.
고맙습니다.


새로 올리신 사진으로보니
그 사람의 눈동자 표정까지도 확실히 보여 좋습니다.

크게 올리신 사진으로 보건대
그 남자의 눈동자 표정과 촛점 방향으로 판단해 본다면
제 생각에는
그 사람의 분노란
사진 촬영자에 대한 분노라고 볼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 됩니다.
세상에 대한 분노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
- - -

뭐 그런 분노 아니었을까 - 하고 생각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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