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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가 그린 것이 그림이냐 낙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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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진인구
  • 작성일 : 12-06-03 18:38

본문

난, 사진에 대해서, 흔히들 하는 말인,

"사진은 절반은 감상자의 몫이다"라는 말.. 그거 동의할 수 없다.

촬영자의 의도와 다르게 감상자 맘대로 해석하는 거... 그거 틀린 것이다.

누가 틀렸는가?
둘중 하나가 틀린 게 아니고, 촬영자의 의도와 다른 해석을 하면
그건 감상자가 100% 틀린 것이다.

단, 촬영자가 제대로, 의도대로 사진을 찍어 보여주지 못할 수 있다.
그땐 촬영자도 틀린 것이지만,
그 경우에도 감상자가 촬영자와 다른 해석을 한다면, 감상자도 틀린 것이다...


이게 내 평소의 주장인데..
워낙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마이너리티 군에 속하는 것인지 몰라도
그냥 대부분의 사람들은
.. 그려? 그건 네 생각일 뿐이고... 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뭐 내가 무슨 예술가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느 진짜 유명 사진가가 그런 말이라도 한 게 있으면 인용해서..
.. 봐라.. 이 분도 이케 말씀하셨다... 라고 증거를 내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그냥 나 혼자 .. 남이 뭐라케도 내 맘이다... 라고 넘어가고 있었는데...



얼마 전, 이미 고인이 된 유명화가의 전시에 대한 기사가 있었는데
그 화가가 추상화가인데.. 그분 생전에 주장한 말이...
자기 그림은 뭘 그린 건가.. 뭘 표현한 건가.. 하는 건

감상자가 알아서 봐라... 뭐 이런 말이었다 한다..



그 분이 유명하신 건 인정하겠는데..
뭘 그린 건지는 보는이가 알아서 봐라.. 하셨다면... 그건 인정못하겠다.



극단적으로
원숭이가 손길, 발길 가는대로 그린 그림인지 낙서인지를
사람들이 보고..

아.. 진짜 멋지다...

원숭이한테.. 이거 뭘 그리신 건가요? 라고 물어보면..

원숭이가 답하겠는가?



원숭이가 그린 그림을 그림으로 간주하지 않고 낙서로 간주하는 이유는
바로, 그림 그린 자 (또는 동물)가 자기 그림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 왜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 뭘 표현하고자 한 건지..
뭐 그런 작가/화가의 의도가

그래서 그게
분명해야한다는... 내 의견이 옳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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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노현석님의 댓글

노현석

서구의언어철학이발달하게된 배경에는 진실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전달하는수단으로서의 언어가 중요하다는배경이 있습니다
그림 혹은사진(이미지)가하나의자의적언어 라면 어떤 해석과전달력을가질까 하고생각해 봅니다.좋은화두를 던지시네요....

박유영님의 댓글

박유영

진인구선생님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려서 당연히 어떤 시점까지 지배적인 주류의 예술관은 수용자의
참여를 인정하지 않는, 다시 말하면 창작자의 의도에 대한 수용자의 미적 관조만을 인정해왔던 것이지요. 그에 비해 현대
적 예술관은 수용자의 역할에 대해 개방적입니다. 최근의 예술적 시도에서도 드러나지만 작품과 수용자의 경계가 무너지
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작품의 생성과 전개에 수용자를 참여 시키기도 합니다. 그럼으로써 작품과 수용자 사이의 상호작용까
지도 가능하다고들 합니다. 그러니 극단적으로 원숭이의 낙서처럼 의도가 없는 경우와 단순하게 비교하기는 어렵겠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한 용운의 시 '님의 침묵'에 둥장하는 님에 대한 한 용운 선생 본인이 의도한 함의가 무엇이었는지 짐작하
기도 쉽지 않으려니와 또 그 '님'의 의도가 흔히 말하는대로 조국 광복이나 부처님의 현신이었다 하고 그렇게 한정하자고 한
다면 '님의 침묵'이란 시는 일제 강점기 이후 한계효용이 다한 시이거나 그 시를 읽는 사람 가운데 불교에 귀의한 사람에게
만 감명을 주는 편협한 감상의 대상이 되고 말 우려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예술작품의 해석 다양성이란 기본적으로 예술작품이 갖는 의미의 외연을 넓혀줄 뿐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오래도록 감
상의 여운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적 토대 정도로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강정태님의 댓글

강정태

저의 단견으로는 두 분 다 맞는 말씀 같습니다.
그러니 감상자가 작가의 의도를 알던 모르던
자기식으로 해석해서 좋은 느낌을 갖고 귀감으로 삼는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

오동익님의 댓글

오동익

원숭이는 그렸다고 그렸는데 보는 사람이 낙서로 보고 있군요.

한지영님의 댓글

한지영

작품이 완성되면 작가는 죽고 독자는 태어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인구님의 댓글

진인구

흠.. 원숭이가 그린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이군요... ^^

이태영님의 댓글

이태영

작가가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을 얼마만큼 확신할 수 있을까요?

홍건영님의 댓글

홍건영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이제서야 읽고 있습니다. 며칠전 두모악을 갔다가 사온 책이거든요. 134 페이지부터 137 페이지 사이에서 (적어도 풍경사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 있어 일부를 베껴 봅니다.


사진 속에 표현된 분위기는 사진가의 감정(마음)을 통과한 선택된 분위기다. 사진은 사진가의 감정(마음)을 통과해 해석된 분위기이다.

...

본다는 행위에도 육감이 동원되어야 한다. 만져보고 느껴보고 들어보고 맡아보고 쳐다보고 난 후 종합적인 감동이어야 한다. 일출과 일몰 사진을 통해 내가 감상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은 둥근 해가 떠오르고 넘어가는 과정의 풍경뿐만이 아니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그 감동까지 함께 나누고 싶다.

그래서 난 사진에 제목 붙이는 것을 거부한다. 전시회를 열 때도 전체 제목만을 고집한다. 사진마다 제목을 붙임으로서 감상자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 설명을 부탁해오면 단호히 거절한다. 설명할 수 있으면 글로 표현했을 것이다. 설명할 수 없기에 사진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의 주관만을 강조해서 사람들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싶지는 않다. 작가의 의도를 헤아리다 보면 감상자의 감동이 줄어들 수 있다.

...

사진은 이미지의 미이라이다. 내가 원하는 사진은 박제된 동물이나 새가 아니다. 새의 생김새나 크기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다. 새가 숲에서 즐겁게 노래하는 모습, 무리끼리 지저귀는 소리에 숲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런 분위기에 빠져들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나는 그런 숲의 분위기를 사진으로 표현하려 한다.

...

사진도 보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나 자신을 위해 찍는 사진이 아니라 보는 사람을 위한 사진이다.

허영주님의 댓글

허영주

글도 사진도 그림도
내어 놓는 순간 부터
전적으로 감상자의 몫이다

저의 생각은 그렇습니다~~^^

저는 저의 사진에 더러 글을 달고 있습니다만
스스로 하나의 감상자가 되어 봅니다

글 자체도
보는 이의 느낌과 해석을 존중합니다

물론 그 글은 사진에 대한 전적인 설명도 해설도 아닙니다
그저 부연입니다

사람과 원숭이의 행위가 비교 될수는 없겠지요만
원숭이가 만일 그림을 그렸다면

사람이 들고 있는 바나나를 채 가듯이
어떤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고

사람은 원숭이 세계를 모르니
사람의 방식으로 그것도 보는 이에 따라 달리 느끼게 되겠지요~~^^

극단적인 대비에는 언제나
모순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진선배님 언제나 재미있는 글을 던져
많은 생각을 만들어 주시니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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