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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카메라 제카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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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김상지
  • 작성일 : 14-09-2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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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제삿날이었다.
마루에서는 어머님과 처, 제수씨, 여동생들이 모여 앉아 음식 장만에 여념이 없다.
떠들썩한 가운데, 집안에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마루는 상을 차리기 위해 깨끗이 치워져있다.
안방에서 나는 동생과 마주 앉아있다. 무슨 긴한 일이 있어서였을까.
동생은 뭔가가 담겨져 있는 꾸러미를 풀고 있었다. 푸는 손에 망설임 같은 것이 느껴진다.
뜻밖의 물건이 나왔다. 카메라였다.
반지르르한 윤기가 감도는 검은 색의 묵직한 이안 리플렉스 카메라.
언뜻 보기에도 귀티가 물씬 느껴지는 오래된 사진기였다.
속으로 롤라이플렉스라고 생각했다. 2.8F 모델일까. 그러나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테이킹 렌즈와 뷰잉 렌즈가 별도로 분리 되어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폴딩 형태의 이안 리플렉스였다. 입에 침이 고였다.
웬 카메라냐고 동생에게 물었다. 아버지가 갖고 계시던 것이라고 했다.
어이가 없다. 아버지 돌아가신지 30년이 훨씬 넘은 마당에, 불쑥 아버지의 유품 카메라가 나타나다니.
동생은 아버지 돌아가신 후 나와 별도로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다가 이 카메라가 나오길래,
나 몰래 챙긴 후 지금까지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섭섭하고 화가 났다.
아버지 유품을 별도로 챙긴 것은 그렇다고 하자.
그러나 집 기둥뿌리 썩는 줄 모르고 클래식 카메라에 빠져있는 나를,
그 것도 장남인 나를 이렇게 철저히 무시하고 외면해도 되는 것인가.
어머니에게 따졌다. 어머니 당신은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모를 수 있을까. 그러나 이내 수긍이 갔다.
나도 아버지가 생전에 카메라를 만지신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았던가.
모든 식구들이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본다. 저 양반이 왜 화를 내느냐는 표정들이다.

카메라는 일습(outfit)이었다.
진 고동색 가죽케이스도 있었고, 렌즈 캡과 필터 셋 등 악세서리도 있었다.
케이스에는 벼라 별 것들이 다 들어 있다.
아버지의 명함 쪼가리도 있었고, 마산 추산동 옛 집 부근의 사진관 명함도 있었다.
심도와 노출 상관관계를 적어놓은 수첩, 그리고 빛바랜 흑백 사진들도 있었다.
젊은 어머니가 마산 추산동 옛 집 마당에서 막내 여동생을 안고 찍은 사진도 있다.
가죽 냄새와 담배 냄새 등이 어우러진 아버지의 체취가 확 풍긴다.
테이킹 렌즈는 별도의 부착된 캡이 붙어 있다.
윗 고리를 아래도 당겼더니 찰칵하고 열린다.
푸른 색 코팅이 영롱한 렌즈는 짜이스 테싸(Zeiss Tessar)였을 것이다.
테이킹 렌즈 쪽에 무슨 글자가 새겨진 명판이 있다. 그 게 무슨 글씨였을까.
동생더러 왜 이제 이 카메라를 내놓느냐고 했더니, 묵묵부답이다.
그 묵묵부답에는 나 줄라고 내 놓는 것이 아니라는 뜻도 있을 것이다.
조바심이 났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이 카메라를 내가 가질 수 있을까.
동생에게 카메라를 일단 나에게 두고 가라고 했다.
렌즈를 보아 하니 내부에 이물질도 좀 들어있는 것 같고,
또 전반적인 기능상태도 봐야 한다고 했다.
동생은 나를 잘 안다. 그 말은 곧 내가 이 카메라를 갖는다는 뜻이라는 것을.
동생의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안 좋다.
그 표정에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진다. 슬픈 표정의 아버지가 동생의 눈 안에 있다.
카메라 케이스 말고, 또 그 케이스를 운반용의 배낭 같은 것도 있다.
주머니가 많이 달려있다. 한 주머니의 호크를 돌려 열었다. 느려빠진 무슨 음악이 흘러나온다.
테이프가 풀려 느려빠진 그 음악은 ‘사운드 옵 사일런스’ 경음악이다.
아, 아버지가 이런 음악도 즐겼었나.
또 한 주머니에는 찐쌀 같은 것이 비닐주머니에 담겨져 들어 있었다.
맞다. 아버지는 생전에 찐쌀을 참 좋아하셨다.

꿈 얘기다. 언젠가 꾼 꿈이다.
참 희한하고 이상스런 꿈이라, 아침에 일어나서도 잠시 멍했다.
아버지는 생전에 사진 같은 잡기는 즐기지 않으셨다.
그런데 왜, 아버지의 그 카메라가 나타난 것일까.
그 것도 동생이 챙겨간 상태로 나타나 나를 안타깝게 하면서 나타났을까.
이즈음, 나의 정신적 스테이타스와 무관치 않은 것이라 본다.
올드 카메라에 빠져 산지도 이제 십 수년이 넘었다.
그 사이, 그 것들을 통해 정신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입은 혜택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카메라에 대한 욕심이 문제다.
물욕이 너무 앞선다는 얘기다. 오로지 그 것에만 올 인하는 형국이다.
그 와중에 소진되어 가는 것이 너무 많다. 나도 그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좀 혼란스럽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그 건 그렇고, 꿈에 나타난 아버지의 그 카메라가 어떤 것이었을까.
기억을 되 살려볼 때 제카플렉스(Zeca-Flex)가 아니었을까 한다.
1937년에 독일에서 출시된 이 이안 리플렉스는‘지주 폴딩(strut-folding)'형의
독특하고도 고급스런 카메라로 수집가들의 군침을 돋우었다.
Welta사의 페르펙타(Perfekta)와 더불어 소량생산으로 인해
희귀 수집품(Extreme Rare Collection)에 속하는 클래식 카메라다.
그 카메라를 수년 전에 구입할 기회가 있었는데, 놓쳤다.
그런데, 얼마 전 그 게 eBay에 하나 나왔었다.
여러 이유로 또 날려 보냈다.
요즈음 그 카메라가 눈에 아물거린다.

아, 제카플렉스,
꿈속 아버지의 카메라 제카플렉스.
추천 0

댓글목록

김승현님의 댓글

김승현

오....멋진 사진기와 그것에 얽힌이야기
잘보았습니다.^^
어느집에나 그런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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