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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뽕짝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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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이태영
  • 작성일 : 03-02-05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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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진을 찍는가? 에 대한 대답으로 '그저 좋아서' 라는 학부1학년생 따위의 유치한 대답을 피하고자. 이미 오랜시간을 같이해온 사진에 대한 당위성을 찾기 위해서 그렇게 오랜시간 고민했던거 같다. 굳이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올해 말을 즈음해서 그나마 있던 타자와의 소통의 의미도 잃어버리고. 그냥 개인의 역사성에 대한 변명 정도로 사진을 계속 해서 찍어왔던것 같다. 그리하여 얻었던 결과가 애초에 시작할때의 생각이었던 유치한 즉물성에서 얼마만큼 떨어졌는가?를 생각해보면 스스로 한심하기도 하다. 영화를 하는 아는 형은 나에게 두가지 대답을 해준다. '니가 아직 사진을 모르거나, 또는 사진이 니가 원하는 것을 하기에 궁극적으로 맞지 않거나'

고작 일주일도 안된 몇일전, 끌레르몽 페랑 영화제의 대상수장작이었던 '알리스의 휴식'을 보곤 그동안 수면밑에 겨우겨우 잠재워두었던 고민들이 문득 치솓았다. 개인의 역사성을 뛰어넘는 이데올로기. 그래 내가 왜 영화로써 겨우 개인의 역사성따위에만 천착했던 걸까? 그 형은 나에게 니가 너무 영화의 세례를 많이 받아서 그런 것들을 사진을 통해 이루려 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이야기 한다. 영화로 돌아갈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찍을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은 영화를 할때는 거의 한적이 없는 것 같다. 결국에 닥치는 철학의 문제, 윤리학의 문제, 미학의 문제들이엇는데, 더 나아가봤자 누구나 직면하는 자본의 문제.사진을 시작하면서는 그런 고민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기술적 완성을 위해서만 급급해하는 자신을 보곤 한다. 왜 나는 사진을 찍었던가? 타자를 의식하지 않는 자신만의 사진속에서 나는 무엇을 실현하려고 하는 것일까?

'나의 일기' 라는 영화를 만들었던 '난니 모레띠' 가 생각이 난다. 그를 이전에는 지적으로만 좋아했지만, 이젠 진정한 존경심이 일기 시작한다. 삶을로서의 영화. 그리고 투쟁의 연장으로써의 기록. 그리고 삶에 다가선 카메라. 왜 우리는 삶에 다가가려 하지 않고 그저 멀리서 그들을 관찰할 생각만 하고 있는것인가? 하는 생각이 무수히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자기 머릿속의 고민하나 해결하지 않고, 어찌 피사체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것이야 말로 정말 배부른 풍류정도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영화를 통해. 그리하여 내가 완성한 나의 작품을 통해서 관객과 호흡하며 얻을 수 있었던건 그들에게 세계관의 확장을 제공하는 것이었고 그리하여 그 세계의 정치적 당위를 인정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진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것인가? 세계관의 확장도 아니고 당위를 보상받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값비싼 자위를 하고 있는건 아닌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소시민으로써 어떻게 사진으로써 이데올로기를 보여줄수 있을까? 따위의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스스로를 보며 구역질이 나고 얼굴에 침을 밷고 싶어진다.

달랑 한장의 사진을 찍어놓고 10시간 이야기하라면 이야기 하겠는데, 그것이 사진 자체의 당위를 위한 행위로 전락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산문가 타입이었던가? 사진에서 재능부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수시간의 영화로 보여줄수 있는 그모든것을 어떻게 단 한장의 사진으로 표현해낼수 있을까? 그리고 사진한장을 통해 나는 얼마만큼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을까? 훈련받은 감상자를 요구하는것도 아니고 단지 나는 사진한장을 함께 호흡하면서 치열하게 대화를 나눌수 있을 동지 한명이 절실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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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태영님의 댓글

이태영

하하. 참. 간만에 술하잔하고서 컴퓨터 앞에 앉았었더니 괜한 소리를 적어놓았네요. 이구 부끄러워라..

방정석님의 댓글

방정석

말 나온김에, 허접한 몇 마디 적어 봅니다.

아트가 꼭 이데올르기(한 국가나 단체의 이데올르기가 개인의, 가족의, 소사회의 이데올르기이보다는 권력의 수단과 방법이듯)를 담아야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주변의 일상적 잡담을 통해서도,
무의식적인 습관을 통해서도,
자신(개인, 가족 등)의 가치나 세계관은 자연스럽게 표현될 것이라 봅니다.
문제는 개인의 작품가치를 기득권자(단체)의 관점을 통하여 판단하려하고, 그 의미까지 찾으려는 것에 있을 겁니다.

한 장의 사진을 통하여
이 모든 것을 짜넣으려는 욕심이
유치뽕작(쓸모 없는 스케일, 진지함을 가장한 나태함, 의미의 부제 등)
을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요.
"품위"는 귀족주의 만큼의 컴플렉스 입니다.

님의 진지한 고민을 통해 저도 한번 되돌아 봅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요.

신찬진님의 댓글

신찬진

여러 분들께서 위에서 말씀하신 것과 관계없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됩니다만 그저 생각나서...


인터넷에서의 익명성이라는 것은, 자신의 닉네임이라도 알린 연후에는
어떠한 폐쇄 그룹보다 강력한 자아도취 및 무언의 도모를 하게 되있나 봅니다.
Photosig에 올라온 사진들 중에서 의미를 가지고 연속되어 게시되고 있다는 느낌의 사진들의 작가를 찾아서 죽 한꺼번에 훑어 보면서,
이쁘기만한 사진들이 400 point를 넘게 받고 있고, 그 보다 훨씬 나아보이는 제대로 된 작가의 사진(너절함을 숭고함으로 치장하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사진,포인트를 올리기 위해 올리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사진)
에는 100 포인트도 채 기록이 안되있는 것을 보면서 그 작가에게 메일을 보내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이런 난장 바닥에 왜 사진을 꾸준히 계속 올리며, 그럴만한 근거나 사상이 있냐고?(즉, comment 하나에 가슴설레며, 어찌하면 점수를 더 받을 수 있을까 하고, 바로 그것 때문에 포토샾 연구하고 어떤 사진이 인기있나 검색하는 대부분의 중생들이 설치는 바닥에서 댁은 아닌것 같은데)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혹시 자신의 사진 흐름과 같은 느낌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면 즐거울것 같아서...' 라고.


진지함을 가장한 나태함..., 의미의 부제..

방정석님이 하신 이 말씀을 나름대로 느껴봅니다.

너절한 것을 숭고한 것처럼 바꿔치기하려는
자기 기만과(습관적인 경우도 많겠지만) 습관적 음모, 나태, 편함만을 추구,
등등이 떠오릅니다.

무엇에 미쳐서 그런것을 양산 했다하면 다음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것이 습관적 음모가 되어 버린다면 이미 다 틀려버린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는 사진가분이 저에게 늘 하던 말씀을 떠 올려봅니다.

'사진가에게는 하루에도 수 없이 지나가는 찰라의 의미적 순간들을 담아야 할 의무와 권리가 주어진다. 어찌보면 그것이야말로 수 많은 논제 중에서, 바로 사진가의 사명 그 자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자신을 photographer라고 마음속에 선언한 순간부터 저절로 지게되는 의무와 동시에 권리일지 모른다. 그것이 아니라면 사진가의 사진적 성실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필요도 없다. 기념사진을 촬영할때조차도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 순간 이런 의무와 권리를 지닌다. 그는 사진을 잘 찍어야 하는 의무와 사진을 남길 권리가 주어진다.'

이태영님의 댓글

이태영

장공순님, 방정석님,신찬진님 좋으신 말씀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고작 제수준이란게 그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부끄러울 따름이네요. 괜히 술에 취해 횡수를 한건 아닌지..
방정석님 말씀을 듣고 문득 생각이나 적어보아요. 뭐랄까, 스스로 그런 거대담론에 영문도 모른채 빠져있는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없는건 물론 아니지만, 뭐랄까? 주변의 일상이나 무의식적 잡담들을 무수히 양상해 놓으면 문득 이건 정말 말초적인 자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해서 말입니다. 물론 거대담론? 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일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성장과 발전에 대한 제 스스로의 무의식적 발로는 도무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제 주변의 남루한 생활들을 그저 관조어린 시선으로 담아내기엔 아직 제가 연륜이 짧은 탓이 거의 다겠지요. 어깨에 힘을 한참을 더 빼야 할 것 같습니다. 지적하신대로 '진지함을 가장한 나태함' 이라는 말에는 내심 뜨끔하네요. 사실 왜 아직껏 일생의 화두인 '정신의 분자화'에 대한 전공에 대한 관심을 사진을 통해서는 표현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건지. 아직 머릿속 교통정리가 원할하지 않은 탓 인가 봅니다. 더 배워야 겠지요.
신찬진님이 언급하신 바 처럼, 아니 공자의 말을 빌어 '아는자 좋아하는자에 못하고 좋아하는자 즐기는자에 비길수 없다' 는 말은 정말로 수긍을 하면서도, 스스로는 사진을 즐기고 있는지 되묻는다면 참 난감하기 이를데 없네요. 어떨때는 괜한 혼자만의 잡생각에 괴롭다고 할까요?
사진을 한번 찍으러 나가면 머릿속에 미리 찍고싶은 이미지를 그리고 나가곤 해요. 그리하여 사진을 찍는 행위는 그 이미지를 형상화 하는 작업이 되는 셈이죠. 아직 고작 이미지뿐이긴 하지만, 그러다보니 굳이 사진을 찍지 않고 머릿속으로만 그 이미지를 조작,가공하여 발전시켜 보려고 애를 썻나봅니다. 말그대로 모래성이지요.
모든것의 초탈? 은 그 모든것을 다 이루어보고 그것의 덧없음을 직접 보아야만 이룰수 있는건 아닐까? 하는 미련한 기대를 아직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달마스님이 본다면 호통칠만한 형국이죠. 선을 귀납의 부정으로써 이루려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저도 장공순님 말마따나 네박자 스탭을 밟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여러 좋으신분들의 고견을 잘세겨듣고 열심히 노력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궁 윤경님의 댓글

궁 윤경

약 10여년전 런던의 조그만 펍에서 어느 건축가와 농담으로 주고 받았던 이야기 인데 갑자기 생각나서 적어 봅니다.
그 건축가가 갑자기 저에게 뭍더군요, 이 세상에서 가장 춤 잘추는 사람이 누구일것 같냐구요, 저는 별로 춤에 관심도 없고해서 그냥 마이클 잭슨 정도 아니겠냐고 하고 흘려 버렸죠. 근데 그 친구 왈, 그가 직접 볼 기회가 있었는데 하면서 맹인 가수"스티브 원더" 얘기를 하더군요.......... 생전 처음보는 춤 같은데 그 춤이야 말로 진정 음악과 육체만이 함께한, 남의 춤을 본적도 없고 춤에 대해 배운적도 없는 스티브 원더만의 순수한 춤이 었다고..........

조만간에 모든 고민을 뒤로하고, 사진에 대한 식상한 고정 관념을 뒤로 한채 출사를 나가볼려고 합니다. 스티브 원더가 음악만 가지고 춤을 추었듯이 저도 제눈과 그것을 기억해줄 카메라만 가지고서요..

정성시님의 댓글

정성시

아, 유익한 말씀들입니다.

정문교님의 댓글

정문교

영화는 소설이고...
사진은 시 입니다.

시인의 마음으로 사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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