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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의 그림을 배우는 소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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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권오중
  • 작성일 : 03-06-1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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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배우는 소년에게 -어느 중학생에게 보내는 편지>

중학생으로 그림을 배우고 싶다니 요새 참 신통한 소년이군요.
인터넷이라든지 비디오, 사진 같은 정확한 재현의 기술이 인기를 모으고 있는 시대에, 애매한 손으로 그리는 그림에 관심을 갖고 있다, 라고 듣기만 해도 나는 기쁩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즐겁기도 하지만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우선 그것은 무엇을 그릴까를 스스로 생각하거나 선택하거나 손을 더럽히면서 그려나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시절부터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그리라고 권장받았다고요? 사실 어릴 적부터 마음대로, 자유롭게 그리는 일 같은 것은 어른이라도 좀처럼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 말은 자기가 마주하고 있는 것에서 눈길을 돌리라고 하는 말이나 같아서, 그런 상태에서는 산다는 현장감각이 누락되어 버립니다. 실마리가 희미한 생각에 사로잡혀 화면을 아무리 주물러봤댔자 반응이 있거나 재미있을 리가 없으며, 하물며 책임을 질 수 있는 표현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내 생각에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때는 먼저 대상을 보는 법부터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상이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으로써 거기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 개, 나무, 돌, 산, 별, 자동차, 빌딩, 하늘, 말, 음, 색, 공기, 시간, 공간, 죽음 등이 모두 대상입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것들을 보거나 마음을 쓰거나 이쪽이 보여지고 있다고 생각될 때, 비로소 그것이 대상으로 되는 것입니다. 자신도 또한 언제나 타인이나 온갖 것에 보여지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상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이란 거기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반드시 거기에 관련되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개가 앓고 있을 때, 그 개한테서 병을 보거나, 일하고 있는 아버지의 다 떨어진 신발을 보고 노동을 힘듦을 알아차리거나,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으면 주위 공기의 떨림을 느끼거나, 오래된 석불의 파편을 보고는 아득한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거나 하지 않습니까? 이들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대상과 함께 거기에 있는 것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대상이나 그 주위를 잘 보아가면 이윽고 어느 것도 다 시ㆍ공간적으로 서로 연관지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대상성을 넘어 더욱 깊고 넓은 세계를 문제삼게 되는 바입니다.

우선은 마음에 걸리는 대상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대상이 어떤 보이지 않는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지를 관찰하기도 하고 생각도 해보고 형형색색으로 흥미와 상상력을 불태워주세요.

몬드리안이 시도했던 유명한 그림 시리즈 중에, 한 그루의 사과나무 가지를 정리해가는 프로세스를 나타내는 것이 있는 것을 아시나요? 그것은 나무 자신의 질서를 찾아낸 것인지, 아니면 몬드리안의 눈을 통해 그의 마음이 짜낸 것인지, 여러 가지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간에 그려보면 알 수 있듯이 그리는 행위 가운데 나무는 눈에서, 눈은 나무에서 자극을 받으면서 그림이 계속 어긋나게 됩니다. 그 어긋남이나 흔들림의 진폭 가운데에서 화가가 태어나고 그림이 진척되는 것이지요.

그리는 대상이, 거기에 존재하는 대로이든 자기의 생각 안의 것이든, 그리고 있는 동안에 조금씩 다른 것, 예상도 못했던 것이 그림에 나타나고 그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번뜩임이기도 하고 망설임이기도 한 이 소중한 현장감이야말로 바로 그림을 그리면서 느끼게 되는 더없이 행복한 시간일 터입니다.

자, 너무 가까운 것보다는 될 수 있는 한 힘에 부치는 것, 자기보다 커서 잡기 어려운 것 앞에 섭시다. 그것은 도전하면서 자기가 크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그릴까, 실마리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우선은 미술관에 있는 명화를 보는 것이 좋겠지요. 명화란 여러 전문가와 많은 사람들의 눈길에 닿고, 또 오랜 세월을 통해 볼 만한 것으로 남게 된 그림을 말합니다. 별의별 사람에게 작용할 수 있는 생명력과 보편적인 양식을 가진 그림을 고전이라고도 합니다. 그런 그림에서 물건의 배치, 화면의 구성, 붓놀림, 색의 어울림 등, 여러 요소를 보아갑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그림의 의미나 그리는 방식을 알아내기보다는 우선 마음을 열고 한동안 그림의 상황을 계속 보는 일이지요. 그러니까 될 수 있는 대로 미술관으로 발길을 옮겨 마음에 걸리는 그림에 직접 접하고 친해지고 은밀한 대화를 나누면서 배웁시다. 인쇄나 영상을 통한 그림에서는 아무래도 실물이 지니는 공기나 리얼리티가 탈락되어버리기 때문에, 대상과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어렵습니다. 정말이지 미술관에서는 별의별 그림이 마치 연인처럼 언제나 자네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밖의 대상보다 더 리얼리티가 있을 것입니다. 일상에서는 눈에 익은 풍경이나 인물, 공간, 시간 등 생각이 닿기 어려운 것들이 그림이 되면은 환하게 알게 되거나, 아주 시적인 것으로 느껴지거나, 상상력이 날개를 펴거나, 본다는 것의 쾌감이 솟구쳐 오르거나 합니다. 그것은 평상시 현실의 대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던 것을 화가가 제대로 보이게 그려줬기 때문입니다. 세잔의 사과 그림이 눈에 새겨진 뒤에는 부근의 사과가 이상하리만큼 생생하게 되살아나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좀더 자세히 그 그림의 테마나 의미, 또는 역사나 문화적 배경을 알고 싶어지면 미술사 책이나 미술전집을 읽는 것도 좋겠지요. 또 선생님이 해주신 설명이나 화가들의 얘기를 참고로 자기의 마음에 걸리는 그림을 분석하거나 말로 옮겨보나 하는 것도 보다 깊이 알게 되는 길입니다. 꼭 권하고 싶은 일이지만, 가끔은 자기 손으로 그 그림을 몽땅 베껴보는 것도 많은 것을 안겨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림을 배울 경우 두 가지나 세 가지 일을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마음에 걸리는 대상과 마주하거나, 여러 명화를 보거나 미술책을 읽거나 하면서 자신의 생각이나 그리는 방식을 키워나가야 하는 일입니다. 옛날 중국의 <<미술교과서, 芥子園畵傳>>에서 말하기를, 만권을 독파하고 가슴에 만감을 품고 만리의 길을 간 다음 붓을 잡아라,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책을 잘 읽고 생각을 깊이 하고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놀이이기도 하고 또한 배우는 일이기도 하며 훈련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실은 어른 화가가 하고 있는 것도 이것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자기의 문제의식과 미술일반의 있음새, 그리고 자기가 관련된 현실과의 사이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다잡아보면, 마음 안의 것과 밖에 있는 것과의 절실한 맞걸림으로서 말을 넘어선 대화이며 교류이고 싸움인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 있는 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찰나는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개 다음 순간에는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 아름답다와 계속 관련을 맺으면서 그 느낌을 지속해가고 싶다, 더욱 기분을 고양시켜 나가고 싶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공유해주었으면 싶다는 욕심 많은 갈망이 그림을 그리게 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꽃과 나 사이에 오가는 것이 있고 그 중간 지점에서 그림이 되어간다는 얘깁니다. 말을 바꾸면 안과 밖의 것이 만나는 장이 그림이고 그곳으로 인도하거나 그리게 하는 것이 눈이나 손입니다.

안과 밖 사이에서 짜맞추게 하거나 맞서게 하거나 하는 그리는 행위에 손의 본령이 있습니다.

손은 이 나에게 소속되어 있음과 동시에 세계에도 소속되어 있는 양의적인 신체의 일부이기에 경이적인 힘을 발휘합니다. 손으로 그린다는 것은 몸으로 그리는 일이며, 몸으로 그리는 것은 외부와 내부 양쪽이 그리는 것이 됩니다. 손의 정확함에는 한계가 있지만 대신 그 작동은 세계와 접촉하고 있다는 리얼리티를 제공해주고 또 내부와 외부의 공유감을 불러일으켜 줍니다.

손은 결코 머리의 도구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손은, 머리에서 많이 생각한 결과를 캔버스나 종이에 그대로 베껴내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머리와도 협동하지만 가장 가까운 것부터 가장 먼 것까지 포착하여 안과 밖을 큰 폭과 흔들림 가운데서 만나게 하는 짓이 쟁끼입니다. 손은 안과 밖의 매듭이라는 그 양의성 때문에 그림 그리기를 통해 세계의 무한함을 전달하는 절묘한 메신저가 된다는 거지요. 화가에게 있어서 10리밖에 안 되는 힘이 20이나 30으로 부풀어서 나타나는 것은 손이기에 가능합니다. 그림의 실마리가 되는 생각을 든든히 쌓는 일은 소중한 일이지만, 손으로 그려 가는 가운데 여러 요소가 맞부딪치고 어긋나면서 생각도 못했던 미지의 것이 나타나는 데에 그림을 그리는 신기한 맛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그림을 보면은 반드시 그린 사람의 일만이 아니라 그 밖의 갖가지가 거기에서 보일 것이고 그런 많은 깊고 먼 연상으로 이어지는 그림이 좋은 그림일 것입니다.

그림을 통해 세계와 함께 살고 있다는 구체적이고 풍부한 관련 속에서 꿈을 부풀리고 자신을 크게 키워갑시다.

그림을 배운다는 것은 보는 일의 근사함, 세계의 비밀에 접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와의 관련이 무한하며 경이롭다는 사실을 아는 일입니다.

-이우환, <여백의 예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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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님은 일민에서 열렸던 아라키 사진전에 관련된 글에서 만났던 분입니다.
아라키와 친구이고 회화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제일 작가라고 하더군요.
아직 그 분의 작품을 접할 기회는 없었고 올 해 우리나라에서 전시회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글로만 접한 작가이지만 기대가 되는군요.
위의 글에서 회화를 사진으로 바꾸어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진을 접하는 자세와 찾아 나갈 것을 생각할 때
두고두고 끄집어 내어 읽으면서 생각해고푼 좋은 글이라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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