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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기의 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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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이태영
  • 작성일 : 03-07-13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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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형식따위

요약하면, 사진찍기는 흡사 요술과 같다. 함풍 연간에 어느 한 성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시골사람들로부터 가산을 파괴당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어렸을 때에 - 즉 30년 전에 S시에는 이미 사진관이 있어 사람들도 그다지 의구심을 갖지 않았다. 하기야 '의화권민'의 소동이 일어났을 때 - 즉, 25년 전에 어느 성에서는 쇠고기 통조림을 보고 서양놈이 죽인 중국 아이의 고기라고 하던 일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는 예외적인 일로서 만사와 만물에는 언제나 예외가 있게 마련이다.

요약하면, S시에는 이미 사진관이 있었고, 이 곳은 내가 지날 때마다 언제나 빠짐없이 감상하던 곳이다. 다만 일년 중에서도 너댓 번 지나간 것 뿐이지만 말이다. 크기와 길이가 다르고 색깔이 다른 유리병들, 그리고 반질반질하고 가시 달린 선인장은 모두 내개는 진기한 물건으로 보였다. 벽에는 액자에 들어 있는, 증대인, 이대인, 좌중당, 포군문 등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친절한 문중의 한 어른이 이를 빌려 내게 교육한 적이 있다. 그는 저분들은 모두 당시의 대관으로서 '장발'의 난을 평정한 공신이며 너는 그들을 잘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 때 나도 아주 따라 배우고 싶었는데, 그러자면 얼른 또다시 '장발'의 난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S시 사람들은 오히려 사진찍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정신이 함께 찍혀 가기 때문인데, 그래서 운세가 바야흐로 좋을 때에는 특히 찍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정신이라면 일명 '위엄의 빛'이 아닌가. 내가 당시 알고 있던 것은 다만 이 점뿐이다. 근년에 와서 또 원기를 잃을까 두려워서 영원히 목욕을 하지 않는 명사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원기는 아마도 위엄의 빛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좀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중국인의 정신인 일명 위엄의 빛, 즉 원기는 찍혀 나갈 수도 있고 씻겨서 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비록 많지는 않았지만 그 때 그래도 찾아와 사진을 찍는 사람이 확실히 있었다. 나 역시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 없었으나 운수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신당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다만 상반신 사진만은 대체로 기피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허리가 잘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청조는 이미 허리를 잘리는 형벌을 폐지하였지만, 그러나 우리는 희곡에서 포 나으리가 포면을 작두질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한 칼에 두 동강을 내니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렇다면 그것이 설령 국수라고 하더라도 역시 다른 사람이 내게 가하는 것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그런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이 옳았다 그래서 그들이 찍는 것은 대부분이 전신사진이었는데, 옆에는 큼직한 차탁자가 있고, 그 위에는 모자걸이, 찻잔, 물담배대, 화분이 있고, 탁자 아래에는 타구를 놓아 두어 이 사람의 기관지에는 가래가 많아 수시로 뱉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의 경우 서 있기도 하고 앉아 있기도 하고, 또는 손에 서책을 들기도 하고 또는 앞섶에 커다란 시계를 걸기도 한다. 우리가 만일 확대경으로 비쳐본다면 지금도 그 당시 사진을 찍을때의 시간을 알 수 있으며, 게다가 그 때에는 플래시를 사용했을 리가 없으므로 밤인가 하고 의심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명사들의 풍류는 어느 시대인들 없겠는가? 풍류객들은 벌써부터 천편일률적인 그러한 바보들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벌거벗고 나체로 진대사람을 흉내낸 사람도 있었고, 비스듬한 옷깃에 옷고름이 달린 옷을 입어 X사람처럼 흉내낸 사람도 있었는데, 많지는 않았다. 비교적 유행한 것은, 먼저 옷차림을 달리 하여 자신의 사진을 두 장 찍고 난 후, 한장으로 합쳐 두 사람의 자기가, 또는 주인과 손님 같아 보이고 또는 노인과 노복 같아 보이도록 하여, 그 것을 '이아도' 라고 이름붙이는 경우였다. 그러나 만약 하나의 자기가 거만하게 앉아 있고, 또 하나의 자기가, 앉아 있는 하나의 자기를 향해 비열하고 가련하게 무릎을 꿇고 있을 때, 그 이름은 또 달라져 '구기도' 라 한다. 이러한 '도' 가 인화되어 나오면 '조기만정방', '모어아' 따위의 사와같은 시들을 써넣게 되는데, 그런 다음 서재에 걸어둔다. 귀인이나 부호들이라면 바보들 축에 들기 때문에 절대로 이와 같은 우아한 양식을 생각해 낼 수도 없다. 특별한 행동 양식이 있다면, 그것은 기껏해야 자기는 가운데 앉고 무릎 아래에 그의 100명의 아들, 1000명의 손자 그리고 1만 명의 증손자를 줄지어 놓고 '가족사진'을 찍는 것일 뿐이다.

립스는 그의 '윤리학의 근본문제'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뜻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무릇 모든 주인은 쉽게 노예로 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한편으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이상, 다른 한편으로 당연히 노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세가 일단 떨어지면 군말없이 새 주인 앞에서 굽신거리게 된다. 그 책은 애석하게도 내 손에는 없어 그 대의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다행히도 중국에 이미 번역본이 나왔으므로 비록 발췌역이기는 해도 이런 말은 틀림없이 들어 있을 것이다. 사실을 가지고 이 이론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뚜렷한 예가 손호이다. 손호는 오나라를 다스릴 때 그토록 오만방자하고 잔학한 폭군이었는데, 진나라에 항복하자 그토록 비열하고 파렴치한 노예가 되었다. 중국에는 항상, 아래사람에 대해 오만한 자는 윗사람을 섬길 때 반드시 아첨한다는 말이 있는데, 역시 바로 이러한 속임수를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철저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는 오히려 '구기도' 만한 것이 없다. 이것은 앞으로 중국에서 만약 '그림으로 그린 윤리학의 근본문제'라는 책을 찍는다면 참으로 대단히 훌륭한 삽화가 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풍자화가라도 도저히 생각해 내지 못할 것이며 그려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볼 수 잇는 것으로는, 비열하고 가련하게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은 이미 없어졌고, 어떤 모임의 기념으로 찍은 사람들 아니면 확대한 상반신 사진들인데, 모두 늠름하다. 내가 이것들을 늘 반쪽짜리 '구기도'쯤으로 보고자 하는 것이 곧 내 기우이기를 나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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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사상가,문학가였던 노신의 초창기 잡문집인 무덤을 읽던도중 '사진찍기 따위에 대하여' 라는 짧은 글의 일부를 인용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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