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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대한 短想 혹은 독백?

페이지 정보

  • 작성자 : 이치환
  • 작성일 : 03-07-28 16:58

본문

화장실에서 일을 보면서 비발디의 사계를 듣기는 처음이다.
모든 에너지를 뒷쪽에 집중하고 있을 때 경쾌하고 감미로운 봄의 멜로디가 그 집중을 흩트렸다.
오늘 아침 화장실에서 들은 비발디는 거실에서 쇼파에 파묻혀 오로지 음악에만 온 신경을 밀집
시켜 듣던 그 비발디였지만 기분은 전혀 달랐다. 거실에서 듣는 비발디는 초현실적인 무아의
감정세계로 나를 인도하곤 한다. 그래서 기분이 우울하거나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나를
곤경에 빠트릴 때, 비발디가 음으로 그려주는 환상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오늘 아침 화장실의 비발디는 작은 즐거움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뜻밖에 듣는 의아함과
신기함, 그리고 이어진 유머러스한 생각과 실행. 아무도 보지 않기에 가능했던 신나는 즐거움이
있었다. 리듬에 맞춰 엉덩이 힘주기. 아~ 비로소 난 음악을 내 일상 속에서 즐긴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일상'이라는 제목으로 사진을 만들어 보인다. 사소하고 지극히 평범한 것으로
지나쳐 버렸던 일상 속에서 문득 재발견한 자기의 모습 혹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 온 삶의 환경을
보여준다. 그런 사진 속에는 다른 사람들이 미쳐 눈치채지 못한 사진가 혼자만의 즐거움 혹은
새로운 인식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된다.

사진가에 의해 발견되어 비로소 시각적으로 어떤 메세지가 담겨지는 그런 것들은 대부분
그 사진가에게만 국한되는 의미를 가지나, 때로 그런 것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가지게도 한다. 이런 일상적 소재의 사진을 새로운 시각 언어로 인식되어지게 한 사진가는
아마 로버트 프랭크가 대표적일 것이다.

새로운 인식은, 본능과 잠재된 기억, 지식, 그리고 농축된 경험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대체로
직관에 의해 '깨달음'처럼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는 종교적인 깨달음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인식'을 가지기 위한 예술가들의 노력은 안타까울 정도로 처절하다.
특히 시각예술 장르의 예술가들은 더욱 심하다. 음악은 음 그 자체가 4차원의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매체이고, 문자로 표현되어지는 글은 4차원적인 작가의 상상력을
그대로 나타낼 수 있기에 비교적 표현에 자유로움을 가진다.

그러나 시각 표현은 그렇게 자유롭지가 않다.
시각 예술 중에 조각, 혹은 설치 미술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3차원의 공간 속에 작가가
설정한 4차원적인 상상의 세계를 임의로 펼칠 수 있고, 그렇게 펼쳐진 표현물을 보며 시공간을
초월한 4차원적인 상상의 세계를 쉽게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화도 작가의 상상 속에 이미 구성된 4차원적인 세계가 있고, 재료나 표현기법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유롭다.

시각 예술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사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진은 실체를 대상으로 작가의 직관을 표출하는 것이므로 우선 표현 대상에 많은 제한이 있다.
그리고 랜즈와, 노출과, 필름과, 현상과 인화방법, 빛의 조건, 기후, 날씨 등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변화에 의해 이미지가 결코 작가의 생각대로만 표현되어지지 않는다.
만들어진 프린트를 보며 조금만 변경시킨다면....하고 아쉬워한다 해도 더 이상 어쩔 수가 없다.

혹자는 '있는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사진'이므로 기기와 기술만 좋으면 가장 쉬운 것이 사진인데
뭐가 힘든가? 라고 사진을 쉽게 폄하시키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눈으로 보여지는 것을 보이는
그대로 찍어내는 사진이야말로 프린팅이고 말 그대로 카피니 정말 쉽다.
바로 세워진 건물은 뷰카메라의 틸트나 PC랜즈를 사용해서 바로 세워 찍어주면 되고, 현실의 어떤
사건이나 상황은 퍼스팩티브의 과장이 없는 표준 계열의 랜즈를 사용해서 In focus로 찍어만 주면
정확하게 표현되는 것이니 걱정하고 고민할 여지가 없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사진으로 추구하는 '삶에 대한, 즉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이렇게 정형화된
방법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 문제다. 사진인의 상상의 세계 안에서는 하늘이 땅
아래로 깔리기도 하고, 건물의 선이 곡선으로 휘어지기도 하고, 미인의 얼굴이 추녀로,
겨울이 봄으로, 무가치한 것이 귀중한 것으로도 변한다. 그러나 현실을 대상으로 하는 사진은
상상대로 표현되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construct photography나 시퀀스, 몽타즈, 꼴라쥬 등의
회화적 기법까지도 동원된다.

사진인이 사진을 카피의 매체가 아닌 '재인식의 매체, 창조의 매체'로 알고 있는 한,
사진사에 이름을 남긴 사진인들이 그래 왔듯이, 사진을 업으로 평생 메달리는 전업작가뿐만
아니라, 사진으로 삶을 깨우치려는 진지한 아마추어 사진인들도 실험적인 작업에 메달린다.
지극히 제한적인 피사체를 대상으로, 단순한 2차원의 세계인 프린트에 자신이 그린 4차원의
세계를 표현해내기 위해......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기 위해, 그리고 그 인식을 사진으로 제대로 표현해내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진인들이 랜즈를 사고 팔고, 필름을 종류별로 테스트하고,
그런 생각으로 만든 사진을 포스팅해서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기다리는 한편 다른 사람의
사진을 보고 또 보고, 사진에 대한 여러 가지 글을 읽으며, 모든 방면의 지식과 경험을
차곡 차곡 쌓으며 노력한다.

포스팅되는 한장 한장의 사진이 모두 이러한 노력의 과정이다. 그런 마음으로 사진을
살펴보며 그 안에 감춰져 있는 '그 사람만의 새로운 인식'을 찾아내고 음미하며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사진이 유희가 되는 것을 방지하고, '내 자신은
무엇이며, 왜 사진을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는 길로 이끌어 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2003. 7. 28. 2일 동안 태안반도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아직도 그 기분에 젖어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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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도웅회님의 댓글

도웅회

안녕하세요,

편안하면서도 생각케 하는 글입니다.
그리고 저도 3일간 태안반도 근처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이제막 도착했습니다.
3일동안 흐리거나 비가 내려 저는 좋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맘껏 바다에서 놀지못한 점을 못내 아쉬어 하고 있습니다.^^
이제 라이카클럽에 들어와 보니 반가운 이름들이 포럼과 갤러리에 보이는 군요. 한 3일동안 밀린 글과 사진들을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참 좋네요.
좋은글 다시금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 도웅회 배상 -

여인우님의 댓글

여인우

입니다.

부드럽고 소소한 일상속에서 작은 부딪힘으로 남는 글은 즐겁게 읽었습니다. 그 구현의 문제에 대해 언제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되것 같고 해보면 아닌 것 같고~ 언제나 그런 순환속에서 울고 또는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사진이라는 의미가 일상을 들어내는 실마리라는 것 보다 자신의 아우라와 관련된 그런 생각으로 다가가는 사진

매력있습니다. 진정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치환님의 댓글

이치환

도웅희님도 그곳에? 전 금요일에 신두리에 들렸다가 태안반도 서쪽을
타고 내려오며 그냥 아무곳에나 들려 느낌만 마음에 담았습니다.
바람처럼 그렇게 스치고 왔습니다.

신두리는 흑백 이미지로 3시간여 36커트 2롤 촬영했는데,
촬영하면서 인화 톤을 어떻게 가져가야할지 결정하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신나는 여름 추억 만드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언제 충무로에 가시면 연락주십시오. 달려가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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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우님은 충무로에서 내게 루사를 사고자했던 분과 함께
슬쩍 지나치면서 본 것 같습니다. 참~ 그 분 루사 반환한다고 하시더니
아직 연락이 없군요.

여인우님 이미지 크롭핑 감각과 테크닉은 완숙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직도 부족한가요?

한번 만나서 대화할까요?
어쩌면 원하는 것을 채우는 방법에 약간의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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