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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사지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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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강태훈
  • 작성일 : 02-05-23 16:52

본문

하석준님을 비롯한 경주의 무장사지를 찾는, 찾을 분께 드립니다.

안녕하세요,경주에서 근무하는 강태훈입니다.
지난 겨울 무장사지를 갔다 와서 아래와 같이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저는 평소 늘 라이카 클럽에서 도움을 받아 왔는데 이번에는 제가 약간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같아 기쁩니다.
아무쪼록 경주에서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돌아가십시요.


아 래

1. 무장사지 가는 길

무장사지를 가는 길은 상당히 멀고 찾는 길이 쉽지 않다. 그 때문에 찾는 이도 거의 없고 그곳에서 다른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곳을 안내하는 표지판 또한 그곳 120m 전방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없다. 삼국유사에도 "그윽한 골짜기가 아주 떨어져서 산은 깎아선 듯하며 장소가 침침하고 깊숙하여 주위가 절로 적적하니 이야말로 마음을 휴식하고 도를 즐길 수 있는 신령스러운 장소"라고 하였다.
내가 가는 길을 설명한다 해도 그곳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경주시에서 그 가는 길 곳곳에 상세한 표지판을 세워놓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생각된다. 무장사지를 가려면 우선 보문단지 내 육부촌(六部村)건물 맞은 편, 그러니까 자동차극장 좌측 길을 따라 일단 천북가는 길로 들어서야 한다. 그 길로 700m 가량 고갯길을 올라가게 되면 천북과 암곡이 갈라지는 곳에 이르는데 거기에서 암곡가는 길, 즉 우측길로 접어 들어야 한다(나는 무장사지를 처음 갈 때 천북으로 한참을 가다가 되돌아 왔었다). 그 길을 따라 계속 오르막을 올랐다가 내려가게 되면 우측에 덕동호가 보일 것이고 그 길을 따라 3.2㎞ 가량 가게 되면 덕동로(덕동호를 따라 도는 길)와 갈라지는 곳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계속 1.3㎞ 가량 직진을 하면 폐교된 왕산초등학교 건물(지금은 '에코랜드'라는 사기업이 사용하고 있다)을 지나게 되고 그곳에서 200m 가량 더 가게 되면 왕산리마을회관에 이르게 된다. 그곳에서 400m 가량 진행하면 아스팔트포장이 끝나고 콘크리트 포장길이 시작된다. 그 길을 따라 계속 300m 가량 직진하면 비포장길이 나오고 그 비포장길을 따라 400m 가량 직진하다보면 아직 다리가 아직 설치되어 있지 아니한 냇물을 건너야 하고 그 냇물을 건넌 후 약 100m 더 진행하면 작업용 트럭이 주차하는 곳(차량이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도록 쇠줄이 쳐져있고 경고판이 붙어 있다, 행여 쇠줄이 내려졌다고 해도 인부들이 어느 사이에 다시 쳐두기도 하기 때문에 차를 끌고 더 들어가면 돌아 올 때 차를 놔두고 와야 하는 낭패를 보기 쉽다)이 나오는데 그곳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2킬로 가량 걷다보면 길 바닥에 가로 3∼4m 세로 4∼5m 가량 되는 시멘트 포장한 것이 보이는데 여기서 우측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무장사지'라고 쓰여진 나무로 된, 유일한 표지판이 보인다. 그 표지판에 따라 150m 가량 걸어가면 드디어 무장사지 아미타조상사적비 이수 및 귀부를 만날 수 있고 그 곳에서 오던 길로 20 여 m 가량 되돌아 나오다가 돌무더기 있는데서 좌회전(탑 먼저 간다면 우회전이다)하여 30 여 m 가량 가면 무장사지 3층석탑을 만날 수 있다.

2. 삼국유사에서

무장사는 신라 제38대 원성왕의 아버지인 효양 대아간으로 추봉된 명덕대왕이 그의 숙부되는 파진찬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절이다. 절의 위쪽에는 미타를 모신 전각이 있는데 이는 소성왕의 왕비인 계화왕후가 왕이 세상을 뜨자 지극히 슬퍼하면서 왕이 살았을 때의 아름다운 행적을 죽어서도 드날리고 그의 명복을 빛나게 하고자 생각하였다. 이 때 서방에 미타라고 부르는 큰 성인이 있어 지성으로 그를 믿고 받들면 구원하여 준다는 소문을 듣고 왕비는 "이말이 참말일진대 어찌 나를 속이리요!"하고는 즉시 자기가 입은 화려한 의복을 희사하고 궁중의 재물을 털어 이름난 재인바치(匠人)들을 소집하여 미타상 하나와 아울러 따르는 귀신무리들을 조성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 보다 앞서 이 절에는 늙은 중이 한 명 있었는데 문득 꿈에 신선같은 사람 하나가 석탑의 동남쪽 언덕 위에 앉아서 서편을 향하고 대중을 위하여 설법하는 것을 보고 이곳이 필시 부처님이 머물던 곳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를 숨기고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이곳은 바윗돌이 우뚝 솟아 있고 개울물이 빠르게 부딪쳐 흐르는 곳이므로 목수는 돌아보지도 않았고 다들 좋은 터가 못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터를 개척하자 평탄한 곳을 얻어서 큰 집을 세울 만 하고 아주 신령스러운 터나 다름 없으므로 그 터를 보는 자들은 깜짝 놀라 좋다고 칭찬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근래에 와서는 불전은 무너졌으나 절만은 남아 있으니 세간에 전하기로는 태종이 삼한을 통일한 후 병기와 갑옷을 이 골짜기 속에 간직해 두었다 하여 이 때문에 무장사라고 이름지었다.

3. 무장사지 아미타조상사적비이수 및 귀부

이 석조물은 비신은 없고 비신을 받쳤던 귀부와 비신의 머리 위에 얹었던 이수만 남아 있다. 1915년 근처 사람들이 빨래판으로 쓰고 있던 비석파편이 발견되어 이 석조물이 무장사지아미타조상사적비이고 이곳에 무장사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비석파편은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안내판에 기재되어 있는데 위 박물관이 국립경주박물관인지 아니면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가르키는 것인지 모르겠다. 귀부는 밑바닥의 전면의 길이가 약 170㎝, 측면길이는 115㎝ 가량 되고 땅바닥에서 이수까지의 높이는 약 135㎝인데 위 귀부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현재 쌍귀부의 머리부분은 둘 다 잘려 있고 이수의 오른쪽부분도 깨어지고 없다. 귀부의 발은 형식화되어 있고 귀부의 등 중앙에 사각형의 비석받침(앞면의 폭은 약 120㎝, 그 높이는 20㎝ 가량인데 실제로 십이지상을 조각하는 공간의 크기는 가로 24㎝, 세로 13.5㎝ 가량 되었다)을 만들고 그 네면에 십이지상을 조각하였다(앞뒷면에는 각 십이지상 넷, 측면에 각 십이지상 둘씩을 조각하였다). 뒷면의 왼쪽에서 두 번째에 조각된 쥐, 그 옆(뒷면의 왼쪽에서 세 번째)이 돼지 및 오른쪽 옆면(왼쪽 측면은 깨어지고 없다)의 왼쪽에 있는 용은 그 새김이 선명하고 생동감이 있어 보이지만 나머지는 식별하기가 쉽지 아니하다. 이처럼 귀부에 십이지상을 조각한 예는 드물다. 이수의 앞뒤 각 면에는 용 두 마리가 구름 속에서 앞발로 여의주를 맞잡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이 귀부와 이수는 보물 제125호로 지정되어 있다.

4. 무장사지 삼층석탑

이 탑은 원래 넘어져 파손되어 있던 것을 1963년에 탑재(塔材) 일부를 보충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세웠다. 2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나 상층 기단부에 탱주를 두지 않고 면석 3면에 2개의 안상(眼象)을 조각한 점이 특이하다. 이와 유사하게 상층기단부에 안상을 새긴 탑으로는 경주남산 남산리 계곡의 한 지류인 승소곡(僧燒谷)에서 경주박물관내(박물관 들어서면서 왼편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로 옮겨온 승소곡 3층석탑이 있는데 승소곡 3층 석탑에는 상층기단 뿐만 아니라 1층 옥신에도 안상을 새기고 특히 1층 옥신의 안상 안에 사천왕상을 새긴 점이 무장사지 삼층석탑과 다르다(사진 참조).
무장사지 삼층석탑의 1층 옥신(탑신)은 가장 높고 큰 편인데 그에 비하여 2층과 3층은 급격히 작아졌다. 그 때문에 1층 옥개석이 2, 3층의 옥개석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커서 이 탑은 지대가 높은, 안내판이 있는 동쪽이나 2층 옥개석이 많이 손상된 쪽인 남쪽 보다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 서쪽에서 바라 볼 때 훨씬 아름다워 보인다. 옥신의 각 면 귀퉁이에는 층마다 우주가 있을 뿐 다른 장식은 없다. 옥개받침은 각층이 5단이다. 1층 옥신 윗면 중앙에 네모난 사리공이 확인되었다. 현재 상륜부는 모두 없어져 복원당시 노반(露盤)과 복발(覆鉢)을 새로 만들어 보충하였다. 무장사의 건립연대에 비추어 볼 때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후반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탑의 높이는 4.95m이다. 보물 제1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추천 0

댓글목록

이병년님의 댓글

이병년

꾹임다.

마치 무장사 가는 길에 서있는 것 같은 설명이네요. 저절로 따라 가게 만들 듯한...

경주를 찾은지도 제법 오래되었습니다. 매년 여름 휴가를 경주에서 보내곤 했지요.
뭐, 별다른 일 없으면 늦여름에 또 찾을 작정입니다.
무장사지를 석준님이랑 같이 가볼까 싶었는데, 호젓하게 혼자 가겠다고
협조를 해주지 않는군요.
음...

경주 들를 때, 꼭 연락드릴께요^^



꾹~

하석준님의 댓글

하석준

예전에 제가 속했던 모임 -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 에서
대략....4-5년전에 무장사터 길에 나무팻말을 세운 적이 있습니다.

장항리 절터에 세웠던 나무팻말은 관에서 큰 철제간판(?)을 만드는 바람에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지만요....

보셨다는 그 팻말이 우리가 세웠던 건지...아님 다른 건지 궁금하군요.
아....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들인데...이번에 가서 확인해봐야겠네요.

무장사터,
아.
거기에는 쌍귀부가 있었지요. 맞아요.

무장사터, 그리고 숭복사터. 창림사터.
그리고 한번도 가보지는 못한 법광사터...(여기는 포항처가댁에 갈때마다 짬을 내서 가봐야지가봐야지 하면서도 못가봤군요)

하지만, 무장사터가 알게모르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굳이 그곳에 있는 귀부와 탑때문만은 아닐겁니다.

열 개의 개울(누구는 12개라고 하는데 직접 세어보진 못했습니다 )을 건너가며 걷는 그 길이 너무 좋기때문이죠.
그 길을 걸으며, 들풀이며 들꽃이며, 나무의 얘기를 해주던
잘 알던 경주토박이분은 장가가서 이미 경주를 떠나버린지 오래고....
아쉬움을 갖고 길을 걷게 될 것 같군요.

그래도...
그 길의 끝에 무장사터가 있기때문에, 그리고 무장사터에 가기 위한 그 길이기때문에... 그 산길도, 개울도, 무장사터도 기억에 남는 것일테지요.

아직까지, 무장사터 가는 길이 넓혀지거나 하지 않은 것은 다행스럽다는 생각입니다.(모르죠, 지금은 어떨지. 마지막 가본 것이 4년전이니까...)

차라리,
길이 불편해서, 그리고 찾는 사람이 없어서,...
손대지 않고 그냥 지금처럼 내버려두었으면... 하는 것은
저만의 욕심일까요?

이번 길에는 '사진'은 뒤로 미루고 다니렵니다.
언젠가부터 '사진' 한 장 '건지겠다'는 생각으로 어디를 가더라도
여유있게 돌아보며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셔터누를 꺼리를 찾아 왔다갔다 하기 일쑤였는데...
좀 제 정신을 차려야할 것 같습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프린트해서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언제 한 번 경주에서 뵙죠^^;

하석준님의 댓글

하석준

답사 모임에서 몇명 번개형식으로 가는 겁니다.
꾹님이 시간되면 따로 움직이려고 했는데, 일요일 오전 12시 전까지 통영가야한다니까. 어쩔수 없는거지뭐

인용:
이병년 님께서 작성하신 글
꾹임다.

마치 무장사 가는 길에 서있는 것 같은 설명이네요. 저절로 따라 가게 만들 듯한...

경주를 찾은지도 제법 오래되었습니다. 매년 여름 휴가를 경주에서 보내곤 했지요.
뭐, 별다른 일 없으면 늦여름에 또 찾을 작정입니다.
무장사지를 석준님이랑 같이 가볼까 싶었는데, 호젓하게 혼자 가겠다고
협조를 해주지 않는군요.
음...

경주 들를 때, 꼭 연락드릴께요^^



꾹~

정태인님의 댓글

정태인

경주사신다는 분을 만나니 매우 반갑습니다.
남산의 마애불도 잘 있나요?
서산으로 해가 지는 모습은 늘 장관이었습니다.
남산 팔각정이며, 그 아래 비구니 절도 하나 있었지요.
통일전 근처에 말입니다.
제 아버지의 고향이시니 가까운 친척 몇 분들이 사시긴 하지만,
잘 가지는 못합니다.
그립네요. 그곳에서 보냈던 학창시절의 그 순수함도 말입니다.
자주 뵙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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