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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LP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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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김병인
  • 작성일 : 03-09-23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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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에서 이태영회원님이 사진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을 보고 리플로 쓰려다가 갑자기 카페에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존칭은 생략하겠습니다. 그냥 스스로에게 말하듯 풀어가려 합니다.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진 한장에 담긴 자신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 혹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마치 책장 한구석에 쌓인 레코드판을 펼쳐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집에 놀러온 후배와 커피를 나누어 마시면서 책장에 쌓인 LP판들을 뒤척일 기회가 있었다. 그 후배는 이제 막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친구라 손가락에 먼지가 묻는 줄도 모르고 판을 뒤적였다. 문득 그 친구가 놓치고 지나간 음반 한장이 눈에 들어왔다. 대학시절, 교수님 소개로 알게 된 여학생과 연애하던 시절, 그 아가씨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내가 가진 음반 외로 한장을 더 사게 되었던 음반이다. 지금이야 음악을 조금만 관심있게 들은 사람이라면 다 아는 Camel의 Stationary Traveller라는 음반이었다. 후배의 머리를 한대 쥐어박고는 난 말했다.
"이 음반은 명반이야. 두장을 가지고 있지. 한장은 뜯지도 않았어. 나중에 아들넘하고 같이 들으려고 ..."
실제로 나중에 발매된 시디는 사놓고 뜯어보지도 않았다. A면 마지막에 담긴 연주곡 stationary traveller는 지금 들어도 찌릿찌릿하다. 악기만으로도 그렇게 많은 감성을 전해줄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비단 camel의 음반 뿐이랴...
호로비츠, 카잘스가 연주한 30년대 모노랄 녹음 Kol Nidrei, 푸르트뱅글러의 베토벤, 니콜라예바의 바하, Barbielli의 Europa 어디 한장 버릴 음반이 있는가...
음악적인 면을 떠나서 모든 음반들은 나의 추억과 줄긋기 된다. 그것을 들었던 시기의 생각이나 사건들과 말이다. 아마도 음반을 사재기하듯 콜렉션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줄긋기에 동의할 것이다.
제작년부터 10년을 잊고 살았던 사진을 다시 시작하면서 모아놓은 슬라이드가 이제야 1000장을 넘었다. 그중에는 핀이 나간것도 있고, 노출을 잘못 맞춰 어둡게 나와버린 컷도 있다. 1주일에 걸쳐 한장한장 손수 컷팅해 마운팅하면서 하나하나 루페로 들여다 봤다. 놀라운 것은 한장 한장 셔터를 눌렀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더라는 것이다. 이제 천장을 갓 넘은 초보수준이라 그럴수도 있겠지만 아마 만장, 이만장이 되더라도 아마도 그 결정적인 순간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브레송이 말한 결정적 순간은 그가 말했던 의미 이외에도 찍는 사람의 인생의 한 컷을 필름에 담아내는 바로 그 순간을 의미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사진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기 시작한 이태영회원님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중계동에서

淨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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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라동균님의 댓글

라동균

좋은글에 엉뚱한 리플이 될까 두렵군요?
저도 LP에 관한 추억들로 미소를 머금고 글을 읽었습니다.
한장의 사진이 담는 기억과 한장의 음반이 가지는 기억이 각기 다른 저장 매체임에도 그곳에 뭍어버린 우리 삶에 모습들로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게 하나봅니다.

저 또한 LP에 많은 추억들이 있습니다.
그런데요, 어릴적 명동, 종로의 음반가게 구석에서 쪼그려 앉아 골라내고, 다른나라로 여행을 가서도 시간을 쪼개어 뒷골목 중고음반가게를 전전하며 모아왔던 LP들을 버티다 버티다.. 모두CD로 바꾸어버렸네요...(턴테이블 고장과 먼지가 큰 이유였으나..) 700여장의 음반들이 사과박스에 실려 팔려가던 날 왜 그리 허전하던지요.. (정말, 카잘스는 LP로 들어야하는데..T.T)

이젠, XRCD, SACD, DTS.. DVD 등의 매체로 이동할듯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빠른 유행을 타는 사람도 아닙니다. 시류와 엇갈리는 하드웨어의 엄청난 지출을 견디지 못한것뿐이지요.. ^^
가끔씩 깊은 아나로그의 맛이 그리울때가 있지만 LP를 정리한지 2년 여만에 디지털 음반으로 또 다시 음반들은 수백장이 넘어버렸습니다.

저에게 얼마전, 오래동안 사용하던 AF카메라에서 디지털로 가려는 순간, 예정하지않았던 MF- RF로의 회귀가 닥쳐왔습니다(?) 결국, 또 다시 시류와 엇갈리는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하드웨어는 바뀌었지만, 음반들처럼, 또 다시 사진들은 쌓여가겠지요?

또 어느날 묵은 음반들과 함께 오늘 찍은 사진들을 기쁜 마음으로 보게 될것입니다.

이태영님의 댓글

이태영

아이고 부끄러운 말씀이네요.. ^^;; 어제는 시간이 없어 멀리서 찾아오셨는데 대접도 제대로 못해드리고 너무 짧게 만나고 헤어진것 같네요.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제가 찾아가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언급하신 목록을 들여다보자니 정말로 무릎을 탁 치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것 같아요. 한 13-4년 전이었나요? 존경하던 니콜라예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괜히 마음이 울적해져서 밤새 그녀가 연주한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완다 란도프스카 할머니가 연주한 것도 연달아듣고 말입니다. 모노랄 녹음의 콜 니드라이, 제가 들은건 LP 는 아니고 EMI reference 시디로 나온 카잘스의 녹음인데 반주가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같은 녹음인가요? 지금 듣고 있는 요제프 시게티가 연주한 비탈리의 샤콘느만 더해주면 좀 더 완벽한 목록이 되지 않을까? 싶은 호사가적 기질도 발동을 하네요. ^^
아무튼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사진으로 보답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

홍건영님의 댓글

홍건영

저는 약 700여장되는 LP를 아직도 잘 모셔두고 있습니다
보다 잘 모셔두기 위해서 수십만원 들여서 장식장도 샀지요
좁은 집에 공간만 차지하고 있지만 가끔씩 머리속에 떠오르는 앨범을
하나 빼서 쟈켓을 감상합니다

LP가 없어지고 CD로 이동할 때 가장 애석한 것은
LP의 따뜻한 음질과 설명하기 힘든 음악적 분위기, 그런것이 결코 아닙니다
자기가 원하기만 하면 CD를 LP처럼 플레이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LP가 없어지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큰 것은 대략 12인치 x 12인치가 넘는
커다란 크기의 캔버스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약 5인치 x 5인치 크기의 CD 커버는 얼마나 경박하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지...

힙노시스가 디자인한 Pink Floyd와 UFO의 앨범커버도 좋고요
이태리, 프랑스의 이름없는 아트락 그룹의 현학적인 쟈켓들,
덱스터 고든이 길게 뿜어낸 담배연기의 아름다운 궤적 사진 등등...
세상이 경박단소화되면서 놓치는 것도 참 많습니다

박 민영님의 댓글

박 민영

벌써 17년 전이군요. 친구가 학교에 누나의 테잎이라며 하나를 보여줬습니다. 빌려서 집에서 들어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뒤 잊고 있다가 몇년전 레코드 가게, 아니 요즘은 CD 가게라고 해야하나. 거기서 먼지 쌓인 이 테잎을 발견하고 바로 샀지요. 다시 들어도 역시 명반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참 여기서 제프 벡의 blow by blow 테잎도 구했네요. LP 였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저야 한 100장정도밖에 안가지고 있지만요. 판을 조심 조심 닦아주며 바늘을 올려놓고 음악을 듣던때가 생각나네요. 지금은 바늘 구하기도 어렵고해서 먼지만 쌓여있습니다.
stationary traveller 오랜만에 한번 들어봐야겠습니다.

홍건영님의 댓글

홍건영

저는 Musical Fidelity의 A1-X와 Tannoy의 T125를 (널리 알려진 스피커는 아니더군요)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데 이 스피커 소리가 멍청해서 LP나 CD 구분이 잘 안됩니다 ^^
저같이 막귀를 가진 사람에게는 Quad같이 따뜻한 느낌을 주는 아날로그 시대의 명기 앰프에
Tannoy같이 복잡한 미로형 베이스 리플렉스 스피커를 사용해서
CD 특유의 기계음적인 느낌을 좀 억눌러주면 LP 느낌을 느낄 수 있지만
이상호님에게는 단순히 선예도가 떨어진 뭉그러진 소리일 뿐일 것 같습니다
Linn Axis같은 명기를 사용하시는 이상호님에게 제가 조언을 드릴 능력이 안되는 것 같네요
좋은 답변을 기대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오디오 샵에서 10여년전에 들었던 California Lab인지 뭔지 하는 회사에서 나온
진공관으로 아날로그 출력단을 설계한 CDP는 제법 소리가 괜찮았던
기억이 나긴 합니다

어디서 들으니 어떤 맹랑한 마이너 음반사에서는 CD 맨 앞부분에 바늘이 LP에 닿을 때
나는 특유의 스크래치 음을 집어넣고 가끔씩 바늘이 먼지를 타고 넘어가는 소리를
중간중간에 집어넣어서 감상자에게 LP의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던데 이것 또한
부질없는 교언영색일 뿐이겠죠


갑자기 예전에 매형집에서 들었던 수퍼아날로그 음반이 다시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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