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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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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하헌우
  • 작성일 : 03-08-0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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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무리가 따르겠지만 디지털 세대와 아날로그 세대를 억지로 구분한다면 저는 디지털 세대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7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입니다. 어릴 적부터 모든 분야의 디지털화는 시대의 대세였고 아날로그는 구시대의 유물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저라는 사람한테 컴퓨터나 디지털이라는 것은 도통 맞지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세상의 많은 것들은 아무래도 아날로그를 기반으로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전 음악을 좋아하는데 음악 또한 그것이 어떤 과정으로 재생되든지 간에 결국 그 결과물은 아날로그적인 것이니까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세상을 둘러보니 디지털이 아날로그의 영역을 마구 넘나들고 있더군요. 제가 80년대에 처음 접한 컴퓨터는 그야말로 <조금 진화된 계산기>에 불과했었는데 어느새 컴퓨터는 정보처리와 계산기능을 넘어서 커뮤니케이션의 도구 그리고 직관과 감성의 세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초기 컴퓨터에서 단순한 비프음이나 단색의 점의 집합으로 표현되던 소리와 영상이 이제는 꽤 그럴듯한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의 디지털에 대한 관심은 순수한 디지털적인 부분보다는 디지털이 아날로그적인 세계를 구현해 내는 분야였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오디오와 카메라가 아닐까 싶습니다.

전 사실 사진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습니다. 어릴적에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던 펜탁스 35mm SLR이나 영화에나 나올법한 롤라이플랙스 이안 리플렉스 카메라도 제겐 별다른 흥미를 끌지 못했습니다. 어찌보면 사진은 디지털 기술이 먼저 저를 유혹한 첫 장르가 아닐까 합니다. 사진을 모르는 사람의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지만 기존 필름카메라의 결과물보다 디지털 카메라의 결과물이 훨씬 대단해 보였던게 저의 사진에 대한 소박한 첫 인상이었습니다. 당시 카메라에 대한 저의 판단기준은 오로지 <해상도>였고, 원경을 찍어서 멀리있는 간판글씨가 가장 또렷하게 나타나는 카메라가 저의 선택 일순위였습니다. ^^

그러던 중 모 인터넷사이트에서 본 Leica Digilux 1의 색감에 반하게 되었고 차츰 사진에 있어서의 제 취향도 디테일보다는 색감과 계조를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결국 라이카 디지룩스와 클론 모델인 Panasonic LC5라는 디지털 카메라로 기변을 하게 되었구요.

사진에 대한 눈뜸은 기존의 디지털 카메라 결과물보다 150여년 동안 축적되어 온 은염사진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했고 나름대로 사진집이나 사진사 관련서적들을 탐독하면서 카르티에-브레송, 케르테스, 스티글리츠 등의 위대한 사진가들의 이름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라이카클럽을 알게 되면서 비록 필름스캐닝한 온라인상의 이미지이긴 하지만 라이카 필름 카메라의 결과물을 처음 접하면서 느낀 충격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로는 도저히 재현할 수 없는 색감과 계조, 심도표현은 제가 가지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를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게 하더군요.

또한 이 곳의 사진들의 경향도 디지털카메라 사이트에서의 사진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정적이지만 회화적이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깊이가 있고 기교보다는 사진가의 심미안을 느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오래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 그런 깊은 맛이 있었습니다.

사실 Leica 카메라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여기서 활동하는 것이 클럽 자체의 분위기를 흐리지는 않을까 염려도 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가 Leica DC Vario- Summicron이라고 쓰여진(이게 진짜 줌미크론이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렌즈를 달고 있긴 하지만 이 곳은 엄연히 필름 카메라 모임이니까요.

최근에는 주제넘게 갤러리에도 부끄러운 사진들을 올려보고 있습니다. 장비소개도 없는 정체불명의 사진들을 올리는 것이 갤러리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것 같기도 해서 조바심도 나지만 몇몇 선생님들이 칭찬도 해 주시고 해서 더 만용을 부리고 있습니다. 갤러리에 디지털 사진을 올리는 것이 부적절하다면 언제든지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카메라보다는 이 곳 사진이 좋아서, 그리고 다른 사이트에서 느끼기 힘든 이 곳만의 분위기가 좋아서 찾아오는 사람이니 너그러이 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Leica 카메라를 쉽게 구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저 자신이 아직 그렇게 좋은 카메라를 만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준비를 한 다음에 좋은 카메라를 구입해야 한다는 법도 없고 어차피 좋은 카메라를 쓰다보면 사진실력도 늘게 되는 거겠지만 필름 카메라에 대한 기초지식도 없는 사람으로서 덜렁 고가의 명품 카메라를 구입한다는 것이 제겐 너무 지나친 허영같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디지털 고유의 편의성과 장점은 쉽게 포기하기 힘든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비록 색감과 계조가 떨어진다 하더라도 무한정 많이 찍을 수 있고, 바로 결과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나친 다작으로 인해 좋지 않은 촬영습관을 가지게 되는 면도 있지만 또 그 이상으로 많이 찍을 수 있어서 얻게 되는 메리트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디지털 카메라가 없었으면 제가 사진이라는 것을 좋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컴팩트형 디지털 카메라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물론 여기 많은 분들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여기 여러 선생님들의 사진에 대한 열정을 보고 있노라면 실로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복잡하고 번거로운 현상, 스캐닝 작업으로 정성들여 올리신 사진들 옆에 너무나 손쉽게 디지털로 찍은 값싼 사진들을 올려대는 것이 부끄럽고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라이카클럽은 카메라만이 아니라 사진을 사랑하는 분들의 모임이니까 갤러리에서도 순수하게 사진적인 관점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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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인한님의 댓글

이인한

하헌우님.

정성을 담아 올려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농담처럼 사견을 말한다면, 님의 마음 가짐은 라이카클럽이 지향하는 방향과 꼭 맞고 님의 글은 라이카클럽에 꼭 어울리는 글이라 생각되는군요.^^
평이하면서도 균형을 잃지않은 님의 글을 읽고, 요즈음 무더위를 이길 수 있는 신선한, 요즈음 용어로는 cool하다고 하나요,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사고과 취향, 한계과 지향을 솔직하게 열어놓고 대화를 청하며 사귐을 원한다면, 라이카가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떻겠습니까? 마음 열린 분들과 언제든 교제가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좋은 글에 감사드리며, 이후로 사진을 통한 멋진 사귐을 기대하겠습니다.

(사족 하나, 가끔은 카메라라고는 Leica M만 만져보아서, AF나 Digital을 보면 전혀 다룰 줄을 몰라 겁이 나는 이도 있답니다.^^)

임장원님의 댓글

임장원

두분의 글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제 주변에 오랜시간 사진 생활을 하신 어른이 계십니다. 요즘도 라이카 R6에 슬라이드 필름넣고서 늘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십니다.
제 기억으로는 어릴때 지금은 팔고 없지만 저희 농장에 찾아 오셔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일하시는 모습을 찍은 사진으로 사진전에 입상도 하시곤 하셨습니다.

얼마전 가까이서 뵐 기회가 생겨 그분께 저의 카메라를 소개하고 디지털의 편리함을 설명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아드님이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하여 사진활동을 하니 빌려서 한번 써 보시기를 권해 드렸습니다.

저의 생각에는 그 어른이 너무 좋아하시면서 당장에 그 디지털에 관심을 보이실 줄 알았는데 이후 상해에서 다시 뵈었지만 별 다른 반응이 없으셨습니다.

의아해서 여쭈어 보았더니 당신께서는 오랜동안 길들여진 그 바디에 다른 불편함이나 부족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날 밤 상해 황포강의 야경을 담는 제게 이런 저런 고언을 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난 기계는 영 소질이 없어......"

두분의 글을 읽으면서 나름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하헌우님 같은 겸손함이 없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고,
사진계에서는 그래도 오랜 세월 선배이신 분들의 자리에 너무 무모하게 뛰어들었다는 불경함도 느껴 졌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여기는 정말로 사진과 인생, 그리고 철학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이라 너무너무 좋습니다.

전 아나로그와 디지털에 양다리를 걸쳐 있는 소위 말하는 386세대의 후반부에 속합니다. (67년 86학번) 그래서 라이카를 접하면서도 디지털 바디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전 그것을 거꾸로 배운다는 말을 합니다만 디지털로 시작해서 아나로그로 귀착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게는 이 라이카 클럽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부끄러움도, 경솔함도 그 용기로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합니다.

그래도 하헌우님처럼 전 기대합니다.
이곳에서 저의 사진에 대한 철학과 인생이 새로운 길을 잡게 되고, 선배님들의 모습을 조금씩 닮아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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