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브레송의 '결정적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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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이상제
- 작성일 : 03-05-3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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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니다만, 20세기 사진계의 한 획을 그었던 대가의 제대로된 번역 사진집이
출간된 것은 무척 기쁜일입니다. 제가 읽었던 그의 책 중에서 몇 페이지를
번역해보았습니다. '결정적 순간'의 의미를 잘 드러낸 대목 같아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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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순간이 없다면 이 세상은 아무 것도 아니다."
-Cardinal Retz
난, 다른 아이들처럼, 휴일날 스냅샷을 찍을 때 쓰곤 하던 박스 브라우니로 사진의 세계에 뛰어
들었다. 어렸을 적에도 나는 그림에 관심이 많았고, 학교엘 가지 않아도 되는 목요일과 일요일엔
그림을 그리곤 했다. 점차, 나는 카메라를 통해 놀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터득하려고 시도하게
되었다. 박스 브라우니 카메라를 쓰며 카메라를 의식하기 시작한 그 순간 이후 휴일날의 스냅샷
놀이는 끝이 났고, 친구들을 찍어주는 어리석은 사진도 작별이었다.
나는 진지해지고 있었다. 무언가 특별한 향취에 취해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은 영화였다. 몇몇 유명한 영화들로부터 나는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펄 화이트의 '뉴욕의 미스테리', D.W. 그리피스의 'Broken Blossoms', 스트로하임의 초기작
'탐욕'과, 에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 드레이어의 '잔다르크'...이런 영화들은 내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후에 앗제의 인화물을 소장하고 있는 사진가들을 만났는데, 그 작품들은 뛰어났고 결국 나는
삼각대와 검정색의 호두나무 재질의 번들거리는 3X4인치 카메라를 사게 되었다. 이 카메라는
노출을 주기 위해서 셔터 대신에 렌즈캡을 열었다 닫는 것으로 작동되는 것이었다.
그 훌륭한 디테일 묘사력 때문에 한동안 정적인 세계에 빠져버렸다. 정적이지 않은 피사체들은
너무 복잡하게 여겨졌거나 또는 아마추어적으로 느껴졌다. 이때쯤에서 나는 그런 잡다한 소재들을
무시함으로써, 내가 '예술"에 아주 조금 공헌하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기도 했던 것 같다.
그 다음 난 내 필름들을 직접 현상하기 시작했다. 사진의 모든 프로세스에 능숙하게 되는 일은
꽤 즐거운 것이었다. 당시 나는 인화에 대해서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다. 어떤 종류의 인화지는
부드러운 묘사를 나타내고 어떤 종류들은 컨트라스트가 높게 나온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이미지가 제대로 인화되지 않을때마다 늘 화가나서 반쯤 미쳐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술적인
면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던 것 같다.
1931년, 스물 두살 무렵, 나는 아프리카로 갔다. 아이보리 해안에서 생전 처음 보는 미니어쳐 카메라
를 샀는데, 그것은 Krauss라는 프랑스 회사의 제품이었다. 그것은 스프로켓 구멍이 없는 35밀리 필름
을 썼다. 약 일 년 간 그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프랑스로 돌아오면서 비로소 필름들을 현상,인화
했는데, 그것은 1년 동안 고립된 수풀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불가능했던 작업이기 때문이었다.
그때서야 카메라가 습기에 노출되었고, 거대한 곰팡이들이 내 사진들을 망쳤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흑수열에 걸렸는데, 프랑스에 돌아와서는 서서히 호전되고 있었다. 마르세이유에서
약간의 수입으로 즐겁게 작업했었다. 그때 라이카를 알게 되었다. 라이카는 내 눈이 되었고,
나는 라이카 카메라를 발견한 이후 한번도 그것과 떨어져본 적이 없다. 나는 라이카와 더불어
언제든 셔터를 누를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로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생생한 있는 그대로의 삶의
순간들을 포착하기로 결심했다. 무엇보다도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삶 속에서 어떤 상황의 본질을
통째로 단 한 컷의 사진에 포획하기를 간절히 열망했던 것이다.
사진에 메세지를 담는다는 포토그래픽 르포르타주의 개념은 즉, 일련의 사진들을 통해
사진가가 개입되지 않은 채로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르포르타주에 대해 훗날 내 동료들의
작업들을 보면서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그 때는 카메라로 르포르타주를 어떻게
만드는지, 어떻게 사진으로 스토리 텔링을 하는지에 대해 조금씩 깨닫게 되는 과정중의 일부였다.
나는 비록 여행하는 법을 잘 모르지만 아무튼 그간 수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보통 한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가기 전에 그동안 본 것을 소화할 수 있도록 시간을 충분히 갖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일단 한 곳에 도착하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지내기 위해 그 곳에 정착할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
난 절대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는 여행가는 아니었던 것 같다.
1947년,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프리랜서 사진가들이 모여 "매그넘 포토"라는 회사를 세웠다.
이 회사는 수많은 나라의 잡지에 사진과 이야기를 제공하고 있다.
뷰화인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지도 벌써 25년이 흘렀다. 그러나, 나는 아직 내 자신을
아마추어로 간주하고 있다. 비록 이젠 더이상 취미파 사진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글. 앙리 까르띠에-브레송, "마음의 눈, 사진과 사진가들에 대한 소고", p20-23
댓글목록
인남환님의 댓글
인남환우리학교 이경홍 교수님의 말에 의하면 순간이 아니라 찰나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순간은 미국에서 잘못번역하여 우리나라에 넘어온거라고하네요...결정적찰나이
이상제님의 댓글
이상제
"찰나"
산스크리트의 ‘크샤나’, 즉 순간(瞬間)의 음역인데, 《대비파사론(大毘婆沙論)》 권136에 따르면, 120의 찰나를 1달 찰나(一刹那:tat-ksana, 순간의 시간), 60달 찰나를 1납박(一臘縛:lava, 頃刻의 뜻), 30납박을 1모호율다(一牟呼栗多:muhrta)를 1주야로하고 있으므로, 이에 따르면 1찰나는 75분의 1 초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설도 있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1찰나마다 생겼다 멸하고, 멸했다가 생기면서 계속되어 나간다고 가르치는데, 이것을 찰나생멸(刹那生滅)·찰나무상(刹那無 常)이라고 한다.
"순간(instant)"
눈의 깜박임(Blick des Augues)에서 유래하는 '순간(Augenblick)'이란 말은 이미 중세의 고지(高地) 독일어에서 시간적 의미를 갖고 있었으나, 후일에 와서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는 '지금'이라는 지극히 짧은 시간적 규정을 갖는 말로 사용하게 되었다. 철학사상(哲學史上) 순간의 개념을 처음으로 규정한 것은 플라톤이다. 그는 순간(to exaiphns: 돌연)을 운동(kinsis)이나 정지(stasis)로 변화하는 시점(始點), 또는 운동과 정지 사이의 일종의 기묘한 것(atopon:장소를 갖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하여 시간(chronos)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파르메니데스篇).
S.A.키르케고르는 《불안의 개념》 속에서 플라톤의 순간의 규정에 언급하면서, 순간을 일체의 과거적인 것과 미래적인 것을 갖지 않는 현재적인 것 자체의 것, 영원과 시간이 서로 접촉하는 이의적(二義的)인 것으로 파악하였다. 일반적으로 순간은 단순한 시간적 규정을 나타내는말일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높여져 영원한 현재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어의카이로스도 그 한 예이다.
"모먼트(moment)"
원어 모멘트(moment)는 라틴어 모멘툼(momentum)이 어원이며, 원래 의미는 mouere('움직이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한다. 일반적으로 어떤 것을 움직이고 결정하는 근거라는 의미로 쓰인다.
또한 철학 용어로는 어떤 것의 전체에 대한 구성요소를 뜻한다. 이 경우, 전체와 그 구성요소로서의 계기의 상호관계를 정적(靜的)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 전체를 운동하고 생성·발전하는 것으로 보고, 계기를그 한 국면(局面)이나 한 분지(分肢)로 생각하는 것이 이 말의 본뜻에 들어맞는다.
"결정적 순간"
프랑스의 사진작가 카르티에브레송이 1932년에 선보인 사진집에 《결정적 순간Images la sauvette》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이후 이말은 유행어가 되었다.
카르티에브레송은 "결정적 순간이란 렌즈가 맺는상(像)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지만, 그것이 시간을 초월한 형태와 표정과 내용의 조화에 도달한 절정의 순간"이라고 하였다.
(네이버백과사전)
"찰나"가 1/75초로 시간적 의미를 갖는 반면, 플라톤적 "순간"은 시간 속에
는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인 현재"를 의미한다는군요.
"순간(instant)"의 의미를 플라톤적으로 해석한다면 정확한 번역이 될 수도
있겠고, "찰나"도 1/75초로, 카메라의 셔터스피드를 연상시켜서 괜찮은 것
같습니다. (올드 라이카 카메라들은 1/75초라는 스피드가 다이얼에 있지요.)
영어권에서는 "decisive moment"로 번역하고 있는데, 모먼트는 전환점,
계기라는 뜻이 있어서 HCB가 의도했던 의미와는 약간 거리가 있어보입니다.
"시간을 초월한 형태와 표정과 내용의 조화에 도달한 절정의 순간"이라는
뜻에 찰나도 순간도 모두 합당하다고 생각되는군요. 다만 moment라는 영역
표현은 오류가 있어보입니다. instant가 정확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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