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기억의 집
페이지 정보
- 작성자 : 권오중
- 작성일 : 02-11-18 18:04
관련링크
본문
[ 책소개 ]
'나'의 직업은 소설가이고 '나'가 얘기하는 주인공은 예술작가이자 사진작가인 '나'의 친형이다. '나'는 사진작가인 형의 숙명 같은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서술한다. 예술가인 형의 삶은, 지난 개발 시대에 많은 대립이 야기됐던 사북 탄광 지역에서부터 시작된다. 역사의 칼날에 스쳐 생긴 상처를 안고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다간 형의 모습은 소설가인 '나'에 의해 재구성된다. 전형적인예술가 소설이지만 어두웠던 과거가 고스란히 살아있어 흥미롭게 읽힌다.
[ 저자 및 역자 소개 ]
저자 : 임동헌
1957년 충남 서산 출생. 서울, 강원도 등지에서 자랐으며 강원대학교 낙농학과를 졸업했다. 1985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에「묘약을 지으며」가 당선되어 등단. 단편「부칠 수 없는 편지」「실험실습실 풍경」「유년일기」 중편「물소의 잠」「바다 위의 길」장편 <민통선 사람들> <행복한 이방인> 등이 있다.
행복한 이방인 | 임동헌 | 문이당
[ 줄거리 ]
프롤로그: 소설가인 나(최병주, 37세)는 사진작가인 형(최병후, 39세)의 삶을 이야기하려 한다. 형은 두 가지 눈, 한 번은 맨눈으로 한 번은 카메라의 파인더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카메라의 파인더는 견고한 사각의 틀이다. 기억, 그것 역시 하나의 파인더와 다를 게 없지 않을까.
형의 첫 사진전인 '사진작가 최병후의 카메라가 있는 흑백 사진전 <시간의 집>'이 열리는 갤러리 안에서 나는 갤러리 관장인 유 관장과 강 큐레이터와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형은 이번 사진전에 자신이 쓰던 카메라 장비들을 함께 전시하게 했다. 형은 구식 카메라인 니콘 에프엠투만을 사용하고 흑백 사진만을 고집한다. 형이 리플릿에 해설 대신 넣게 한 <초록 말을 타고, 문득>이라는 시는 형이 가족들과 함께 어린 시절 한때를 보낸 사북 지역의 분위기를 강렬하게 풍기는 시였다. 형은 여전히 죽음의 민둥산을 끌어안은 채 어둠의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사북은, 우중충한 집들과, 땅에 닿자마자 흰빛을 잃어버리는 눈, 널어놓은 빨래에 잔뜩 묻는 탄가루로 기억되는 검은 고장이었다. 형은 희수와 희수의 오빠인 희창 형의 도움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희창 형이 일하는 문화사진관의 암실을 다녀온 날 형은 신비스러운 여행을 다녀온 사람 같았다. 형에게 사진의 전도사이자 스승이었던 희창 형은 1980년 사북 사태 때 사진 찍는 프락치로 오인받아 광부들의 뭇매에 맞아죽었다. 그날은 탄광에서 희창 형의 첫 사진전이 열린 날이기도 했다…….
갤러리에 걸린 첫번째 작품은 <삶과 꿈>으로, 석탄이 가득 실린 광차, 그리고 광차 위로 솟아오른 탄더미에 삽이 꽂혀 있는 사진이었다. 두 번째로 걸린 사진 <사랑의 방식> 속에는 새벽 안개가 자욱이 깔려 있고, 낮은 지붕들 아래 할머니가 연탄집게를 들고 있다. 새벽녘 연탄을 갈러 나온 할머니를 찍은 이 사진은 낯선 마을인 사릉에서 막차를 타고 귀가하다가 내려 새벽에 찍은 사진이었다. 전반적으로 형의 사진이 하는 말은 어둠과 빛이 어떻게 서로 의지하며 기대고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었다. 고질적인 두통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피곤해하며 치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형은 자신의 사진찍기가 자기 나름대로 타인의 상처를 껴안는 방법이라고 얘기한다.
사북 시절 형에게 청춘의 열병을 앓게 한 희수가 미대 교수가 되어 형의 사진전을 방문했다. ……사북의 옛날, 희수는 자신의 오빠가 죽은 직후 형에게 자기 오빠의 과거를 뒤밟지 말라고 당부하다가, 사진을 계속하고 싶어하는 형의 의중을 파악하고는 갑작스레 형을 떠나 버린다. 대입을 앞둔 형은 서울의 미술 학원에서 입시를 준비하던 희수를 찾아가지만 결국 그녀가 학원 선생인 대학생과 육체 관계를 갖는 장면을 목격하고 만다. 희수는 그 학원 선생이 다니던 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형은 입시에서 떨어진다…….
희수와 함께 전시회를 방문했던 조 박사가 나를 불러 형이 뇌종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들려준다. 자신의 병 때문인지, 사진전 기간임에도 형은 사북에 가볼 것을 결정한다. 그곳은 형에게 희창 형의 상처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갱도가 무너져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당한 아버지의 시신이 묻혀 있는 공간이다. 형의 사진의 작품성을 알아보고 사진작가의 길을 열어 준 코넬 씨가 한국을 방문하여 형과 나는 그와 동행하여 사북을 방문한다. 검룡소, 문화사진관 건물 자리, 사택촌 층계, 탄광 광장, 아버지의 묘 등을 둘러보며 형은 사북의 원형질을 느끼고 싶어한다. 코넬 씨는 아프리카만을 찍으며 아프리카와 모든 것을 함께한 사진작가인 칼 아킬리와 <세 마리 작은 새>를 부른 가수 밥 말리를 언급하면서 형에게 사북을 사랑하라는 말을 각인시킨다. 사북을 사랑하게 되면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게 될 거라고. 코넬 씨는 자신이 떠나온 고장인 칼레콜의 소년들이 아프리카 아이들을 도와달라는 편지를 남기고 비행기 안에서 동사했다는 기사를 읽고는 형에게 나중에 아프리카에서 만나자며 서둘러 돌아간다.
사북으로 떠난 직후부터 사진전이 성황을 이룬다. 사북에서 돌아올 때부터 몹시 지친 기색이던 형은 온갖 인터뷰들로 피곤에 시달린다. 때맞춰 민 교수의 학생들이 사진전을 견학차 방문하자 신경이 날카로워진 형은 예전 희수가 다니던 미술 학원 선생이기도 했던 유 관장에게 유 관장과 희수와 자신 사이에 얽혀 있는 복잡한 애증의 끈에 대해 발설해 버린다. 곧 심사를 정리했으나 위험한 강을 건너는 사람처럼 안타까워 보이는 형은 학생들의 연다른 질문에 답하기 시작한다. 내 사진이지만 이제 내 사진은 내 곁을 떠난 것이지 더 이상 설명할 것이 없다, 남루한 상처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은 흑백 외에 없다고 생각한다는 긴 이야기를 끝내고서 형은 바닥에 쓰러지고 곧바로 수술실로 옮겨진다. 검은 땅에 사는 사람들의 불편함이란 게 사소한 것 같지만 아주 슬픈 것이라는 형의 말을 떠올리며 수술이 끝나길 기다리던 나는 형이 시력을 잃어 가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사진전은 끝이 나고, 이제 형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형은 방을 정리하면서 나에게 자신의 묘비에 <초록 말을 타고, 문득>을 새겨 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또한 죽은 뒤의 작품에 지나치게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 싫다며 자신의 필름들을 탄광박물관에 기증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희수한테 전하는 말…….
에필로그: 형은 곁에 있으면 곧 떠날 사람으로, 또한 어딘가로 떠나 있으면 곧 돌아올 사람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 형이 이제 어느 곳에도 갈 수 없는 몸이 됐다는 것처럼 서글픈 일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은 '아우 병주에게'란 편지를 남기고 카메라 장비와 함께 아프리카 칼레콜 마을로 떠난다. 자신이 단 하나 다스리지 못한 것은 자신의 몸과 정신을 꽁꽁 묶고 있는 상처였다는 고백, 세상에는 여전히 피사체들로 가득하다는 깨달음, 자신이 찍은 피사체가 구석에 밀려 있는 이유는 중심이 되는 피사체가 자신보다 큰 여백을 갖게 해주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 사람의 냄새를 늘 그리워했었다는 심경이 그 편지에 씌어 있다. 형은 마지막으로 유고의 카지미르가 말한, 사람은 누구나 두 개의 집에 산다는 얘기를 인용한다. 무너진 집에서는 추억과 기억을 통해 살고, 새로운 집에서는 분노와 희망을 가지고 산다고. 이제 중요한 것은 형이 돌아오느냐 안 돌아오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형이 어떤 집에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일 뿐.
[ 출판사 리뷰 ]
『기억의 집』은 관찰자 시점에서 사진작가 최병후의 삶과 예술을 짚어 감으로써 과거의 기억과 상처가 우리의 삶과 예술에 드나드는 양상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는 소설이다. '나'의 형, 최병후는 현대 예술의 변화무쌍한 시류에도 불구하고 그 한가운데에서 자신만의 기억의 집을 지키고 있는 사진작가이다. 그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사북 사람들은 너무 어두운 곳을 살다 간 사람들이며 그 검은 지역과 사람들이 그에게 모든 상처의 모티프가 된다. 그가 느낀 빛과 어두움은 기억의 틀 속에서 한 편의 사진으로 작품화되고 결국 그가 경험해 온 고통의 역사는 그의 예술을 낳는 원형질이 된다.
『기억의 집』은, 상처의 공간을 쉽사리 사랑하지 못하고 또한 버리지 못하는 주인공을 내세움으로써 역설적으로 상처를 사랑해야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고 진정한 자신의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아프리카의 뒤안길을 찍어 온 사진작가 칼 아킬리와 아프리카의 설움 찬 영혼들을 위무하는 노래를 불러 온 밥 말리, 그리고 아프리카의 불행한 아이들을 도와달라며 죽어 간 칼레콜 아이들은, 최병후의 상처투성이인 사북에 대한 기억의 여로에 또 다른 물꼬를 암시한다. 그는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파국의 상황에서 아프리카 행을 결정한다. 그 결정은 자신의 상처와 새롭게 교류하기를 시도하는 것인 동시에, 사진에 대한 예술가적 욕망과 투혼을 끝까지 끌어안는 자기 의지이자 자기 내던지기의 소산이다.
최병후의 동생이자 소설가인 '나'는 마지막이랄 수 있는 이 여행에서 형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서로에게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가운데서 형의 일상과 평형을 유지해 온 그는 이제 소설쓰기로써 형을 다시 가까이 만나고 형의 삶과 예술의 결을 보듬고 만지작거린다. 형이 미지의 지역에서 꾸릴 '새로운 집'에서 '분노와 희망'으로 되살아나기를 꿈꾸며.
[ 미디어 리뷰 ]
빛과 어둠으로 남은 '인생의 얼룩'
사진 속에는 두 종류의 세포가 꿈틀거린다. 빛의 세포와 기억의 세포가 그것이다. 그러나 사진에 드러나는 빛을 뺀 나머지 빛은 소멸된다. 사진 속 피사체의 음영을 만든 빛은 인화된 사진을 통해 영원히 살아있지만 피사체 바깥에 있던 빛은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그 빛이 사라졌다고 해서 기억까지 사라질까.
임동헌씨(45)의 장편 『기억의 집』은 카메라의 뷰 파인더라는 사각의 틀에 자신의 상처와 기억을 가둔 30대 사진작가의 고통과 예술혼을 추적한 소설이다. 1인칭 화자인 ‘나’(최병주)는 사북 탄광지역에서 성장해 사진작가가 된 친형(최병후)에 대해 기술해 나간다. 형은 한 번은 맨눈으로,한 번은 카메라의 파인더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형은 첫 사진전 ‘시간의 집’을 연다. ‘나’는 형의 전시회를 도와주다가 우연히 형이 뇌종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갤러리에 걸린 첫번째 작품은 ‘삶과 꿈’. 석탄이 가득 실린 광차,광차 위로 솟아오른 탄더미에 삽이 꽂혀 있는 사진이었다. 두 번째로 걸린 사진은 ‘사랑의 방식’. 새벽 안개가 자욱이 깔려 있고,낮은 지붕들 아래 할머니가 연탄 집게를 들고 있다.
“겨울에는 검은 눈이 내리고,산에는 검은 눈이 쌓이고,그렇게 다 검은 곳이기도 했습니다.…탄을 캐는 광부들이 웃을 때 보면 이가 얼마나 눈부시게 빛났는지 모릅니다. 인생의 얼룩이란 게 어떤 건지 가르쳐 주는 빛이지요”(147쪽) 형의 기억 속에 자리한 사북사람들은 가장 어두운 곳을 살다 간 사람들이며 그 검은 탄광지역은 그에게 모든 상처의 모티프가 된다. 탄부였던 아버지는 갱도에 갇혀 사흘만에 세상을 떴고,자신에게 처음으로 사진기술을 가르쳐준 고교 선배는 1980년 사북 사태 때 탄부들의 시위 현장을 찍다가 프락치로 오인받아 뭇매를 맞고 사망했다. 늘 흑백 사진만을 고집하는 형에게 빛과 어둠은 그가 경험한 고통의 역사이자 그의 예술을 낳는 원형질이 되었던 것이다.
소설의 키워드는 형이 국제사진전에 출품했을 때 좋은 평가를 해준 외국의 사진작가 코넬이 전시회를 보려고 방한해 들려주는 말에 집약된 듯하다. “왜 사북에서 청춘을 보내면 안되는 것이었을까요? 최 작가,뒤집어 생각해 봅시다. 이곳이 그 청춘 남녀들의 성지였을 것이오. 성지란 가장 낮은 곳에서 인간의 본모습을 보는 것 아니겠소. 최 작가에게도 이곳은 사진의 성지 같은 곳일 거요”(146쪽) “최 작가가 사진을 잘 찍는 게 아니라 사북이란 곳이 최 작가에게 사진작가라는 눈을 주었다,뭐 이런 생각이 듭니다”(155쪽)
코넬은 형에게 “사북을 사랑하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이 사진 작업중인 아프리카의 칼레콜 마을로 돌아가고 형은 사진전을 단체 관람하러 온 학생들의 질문에 답한다. “남루한 상처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은 흑백 외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마친 형은 전시실 바닥에 쓰러지고 곧바로 수술실로 옮겨지지만 실명하고 만다. 겨우 기력을 회복한 형은 자신을 돌봐주던 ‘나’에게 편지 한장을 달랑 남긴 채 코넬을 찾아 아프리카의 칼레콜 마을로 떠난다.
“아우여, 눈은 내가 사고하는 바탕이었고 내가 가려하는 길이었으므로 나의 모든 것과 다름없었지. 그러므로 미련을 크게 갖지 말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나니 눈을 다 잃은 후에는 이 세상을 향해 그동안 잘 살았노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그것이 내가 해야 할 말이라는 것을 알듯 하더라”(277쪽) 임씨는 “소설의 대미를 최병후의 아프리카행으로 마무리한 것은 파국의 상황에서도 다시한번 자신을 세계 속에 던져야겠다는 예술가의 몸부림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이 소설이 고통을 가누지 못해 암담해 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불빛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국민일보 책과길 정철훈 기자 (2002년 11월 15일 금요일)
추천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