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과 모순 : 미국 현대사진 1970 - 2000 (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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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권오중
- 작성일 : 02-10-2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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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더글라스 R . 니켈 /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사진부 큐레이터
1990년대 포스트모던 사진은 이 매체에 대한 오래된 개념과 새로운
개념을 복잡하게 섞여 놓거나, 그렇지 않으면 양자를 통합시키려 시도했다.
90년대 사진에서 또 다른 주요한 경향이 있다면 사진 도구들과
시각적 인식을 여과하고 왜곡시키는 방식의 관계, 달리 말하면 사진적
재현의 현상학적 상태에 천척한 것이다.
초기 포스트모던니즘이 모든 사진 이미지는 구성된 것이라고 주장하여
중대한 공헌을 했다면, 90년대 사진은 그 구성과정의 특수한 양상과
사진을 이미지로 만드는 기술로 간주하는 전통적인 사진 작업 양쪽을
연결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사진의 가상성을 주장했던
80년대적 사고방식은, 그러한 허구가 화학적이고 시각적인 도구들과,
사진 고유의 재료를,분리되어 각각 탐구할 수 있는 구성물들을 현상학적으로
구분시키며 비롯 되었다는 점을 이해하면서 수그러들었다.
쿠바 태생의 사진가이며 매사추세츠 미술대학에서 강의하는
아벨라르도 모렐 (Abelardo Morrell ) 의 작업에서는 렌즈와 시각을 투사하는
물리적 장치에 의존하고 있는 카메라 본래의 성격을 당연하지 않게 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모렐은 다른 여러 피사체 중에서도 카메라처럼 만든 방을 찍는
작업을 진행시켰다. 그 방은 외부의 빛을 차단하고 창문에 렌즈나 조리개를
설치해 만들어졌다. 적어도 레오나르도 다빈치까지 거슬러 갈 수 있는
카메라 옵스큐라 효과는, 이러한 모렐의 작업을 통해 재현되었다.
어떤 것이든 창문 밖의 가상적 이미지는 잠시 내벽에 거꾸로 비춰지게 되는데,
이것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의 기초적 원리이다. 사실 카메라는 ' 방 ' 을
뜻하는 라틴어로, 모렐은 호텔방, 친구의 아파트, 자신의 침실을 바깥세계를
받아들이는 스크린으로 변화시킨다. 여기서 거꾸로 된 이미지는 정상적인
사진적 현실 위에 겹쳐지는데, 이는 관람객을 문자 그대로 카메라의 공간
안에 위치시킴으로써 사진의 시각적이며 기계적인 특성이 하나의 과정일
뿐임을 알게 한다.
빅 무니즈 ( Vik Muniz ) 의 1990 년 작 < 사이공 처형에 대한 기억의
표현 ( Memory Rendering of Sigon Execution ) > 은 다른 방향에서
사진적인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브라질 출신의 무니즈는
자신의 < 베스트 오브 라이프 ( Best of Life )> 연작에서 한 장의 사진 안에서
실재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회의론을 확장시켰다.
여기서 그는 인류 최초의 달 착륙이나 1968 년 사이공에서 베트콩 포로를 즉결
사형시키는 장면을 찍은 유선전송 사진 등 라이프 지에 게재된 희대의 보도
사진들을 상세하게 베껴 그렸다. 무니즈는 이런 드로잉을 기억나는 대로 그린
다음 그 결과를 사진으로 찍었는데, 사진을 기억한다는 글자그대로의 의미
뿐만 아니라, 그런 유명한 사진들이 우리의 역사 경험에 어떻게 중개되는가를
제시하는 데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 작품은 까다로운 범주의 문제까지
제기하는데, 한 장의 사진을 그리고, 다시 사진으로 찍는 과정을 거치면서
현상학적으로 사진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결된
문제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
포스트모더니즘과 그 여파로 인해 미국 사진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접근 방식을 보유하게 되었고, 그러한 대부분의 접근방식은 더 이상
상호배타적인 것 같지 않다. 1839년 사진이라는 이 새로운 매체가 발명되면서,
이제는 익숙해진 발터 벤야민의 표현대로, 기계적 재생산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카메라를 통해 진실, 객관성, 사실성, 인간 등 대부분의 서구
미술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 대부분의 문화적, 미학적 가치들이
도전받게 되었다. 이제 디지털 시대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또다른 역사
변동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1970 년대에 처음 등장해 위대한 인식에
도달했던 사진의 신뢰성에 여전히 문제가 제기되고, 또 해결되는 상황과
비견해 볼 때 소위 디지털 혁명에 대해 최근에야 논의가 시작된 것은 다소
때늦은 듯하다. 디지탈 기술은 대체로 근대 동안 사진사 전반에서 사진이
의존했던 신념 체제를 해체하고 있는 것이라고 쉽게 상징화되었지만,
디지탈 기술이 단독으로 그러한 신념체계를 붕괴시키지는 않았다.
O.J 심슨이 체포되었을 때 ' 타임 ' 지 표지에는 디지털로 변형된 이미지가,
' 뉴스위크 ' 지에는 전혀 조작되지 않은 사진이 실렸다. 이처럼 악명 높고
매우 공공연히 알려진 디지털 조작의 남용으로 인해, 기술에서의 혁신
때문이 아니라 대중의 정서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사진의 신회성이
훼손되는 것은 당연하다. 사진적 진실이 20 세기 후반의 희생자가 되었다면,
이 번 전시에 등장하는 작가들이 제시하는 진지하고 다양한 진술들은
메가바이트와 포토샵이 우리의 어휘 속에 들어오기 전부터 사진의
진실에 관해 이미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1990년대 포스트모던 사진은 이 매체에 대한 오래된 개념과 새로운
개념을 복잡하게 섞여 놓거나, 그렇지 않으면 양자를 통합시키려 시도했다.
90년대 사진에서 또 다른 주요한 경향이 있다면 사진 도구들과
시각적 인식을 여과하고 왜곡시키는 방식의 관계, 달리 말하면 사진적
재현의 현상학적 상태에 천척한 것이다.
초기 포스트모던니즘이 모든 사진 이미지는 구성된 것이라고 주장하여
중대한 공헌을 했다면, 90년대 사진은 그 구성과정의 특수한 양상과
사진을 이미지로 만드는 기술로 간주하는 전통적인 사진 작업 양쪽을
연결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사진의 가상성을 주장했던
80년대적 사고방식은, 그러한 허구가 화학적이고 시각적인 도구들과,
사진 고유의 재료를,분리되어 각각 탐구할 수 있는 구성물들을 현상학적으로
구분시키며 비롯 되었다는 점을 이해하면서 수그러들었다.
쿠바 태생의 사진가이며 매사추세츠 미술대학에서 강의하는
아벨라르도 모렐 (Abelardo Morrell ) 의 작업에서는 렌즈와 시각을 투사하는
물리적 장치에 의존하고 있는 카메라 본래의 성격을 당연하지 않게 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모렐은 다른 여러 피사체 중에서도 카메라처럼 만든 방을 찍는
작업을 진행시켰다. 그 방은 외부의 빛을 차단하고 창문에 렌즈나 조리개를
설치해 만들어졌다. 적어도 레오나르도 다빈치까지 거슬러 갈 수 있는
카메라 옵스큐라 효과는, 이러한 모렐의 작업을 통해 재현되었다.
어떤 것이든 창문 밖의 가상적 이미지는 잠시 내벽에 거꾸로 비춰지게 되는데,
이것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의 기초적 원리이다. 사실 카메라는 ' 방 ' 을
뜻하는 라틴어로, 모렐은 호텔방, 친구의 아파트, 자신의 침실을 바깥세계를
받아들이는 스크린으로 변화시킨다. 여기서 거꾸로 된 이미지는 정상적인
사진적 현실 위에 겹쳐지는데, 이는 관람객을 문자 그대로 카메라의 공간
안에 위치시킴으로써 사진의 시각적이며 기계적인 특성이 하나의 과정일
뿐임을 알게 한다.
빅 무니즈 ( Vik Muniz ) 의 1990 년 작 < 사이공 처형에 대한 기억의
표현 ( Memory Rendering of Sigon Execution ) > 은 다른 방향에서
사진적인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브라질 출신의 무니즈는
자신의 < 베스트 오브 라이프 ( Best of Life )> 연작에서 한 장의 사진 안에서
실재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회의론을 확장시켰다.
여기서 그는 인류 최초의 달 착륙이나 1968 년 사이공에서 베트콩 포로를 즉결
사형시키는 장면을 찍은 유선전송 사진 등 라이프 지에 게재된 희대의 보도
사진들을 상세하게 베껴 그렸다. 무니즈는 이런 드로잉을 기억나는 대로 그린
다음 그 결과를 사진으로 찍었는데, 사진을 기억한다는 글자그대로의 의미
뿐만 아니라, 그런 유명한 사진들이 우리의 역사 경험에 어떻게 중개되는가를
제시하는 데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 작품은 까다로운 범주의 문제까지
제기하는데, 한 장의 사진을 그리고, 다시 사진으로 찍는 과정을 거치면서
현상학적으로 사진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결된
문제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
포스트모더니즘과 그 여파로 인해 미국 사진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접근 방식을 보유하게 되었고, 그러한 대부분의 접근방식은 더 이상
상호배타적인 것 같지 않다. 1839년 사진이라는 이 새로운 매체가 발명되면서,
이제는 익숙해진 발터 벤야민의 표현대로, 기계적 재생산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카메라를 통해 진실, 객관성, 사실성, 인간 등 대부분의 서구
미술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 대부분의 문화적, 미학적 가치들이
도전받게 되었다. 이제 디지털 시대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또다른 역사
변동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1970 년대에 처음 등장해 위대한 인식에
도달했던 사진의 신뢰성에 여전히 문제가 제기되고, 또 해결되는 상황과
비견해 볼 때 소위 디지털 혁명에 대해 최근에야 논의가 시작된 것은 다소
때늦은 듯하다. 디지탈 기술은 대체로 근대 동안 사진사 전반에서 사진이
의존했던 신념 체제를 해체하고 있는 것이라고 쉽게 상징화되었지만,
디지탈 기술이 단독으로 그러한 신념체계를 붕괴시키지는 않았다.
O.J 심슨이 체포되었을 때 ' 타임 ' 지 표지에는 디지털로 변형된 이미지가,
' 뉴스위크 ' 지에는 전혀 조작되지 않은 사진이 실렸다. 이처럼 악명 높고
매우 공공연히 알려진 디지털 조작의 남용으로 인해, 기술에서의 혁신
때문이 아니라 대중의 정서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사진의 신회성이
훼손되는 것은 당연하다. 사진적 진실이 20 세기 후반의 희생자가 되었다면,
이 번 전시에 등장하는 작가들이 제시하는 진지하고 다양한 진술들은
메가바이트와 포토샵이 우리의 어휘 속에 들어오기 전부터 사진의
진실에 관해 이미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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