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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8 사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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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126
▽ 이름:김순익 (orfeo@korea.com)
▽ 분류:사용기
▽ 2001/7/31(화) 12:21
▽ 조회:2155

R8 사용기

아주 예전에 딴 곳에 올렸던 글인데 약간 손보면서 다시 올립니다. 여기 올려 두는 것이 맞을 듯 해서요.

* * * * * * * *

R8을 처음 봤을 때엔 솔직히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라이카로의 전향을 결정하고, 또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R5, R6(.2), R7, R-E 등의 바디를 손에 잡아 보고 또 이곳 저곳의 리뷰들을 읽다보니 점점 R8이라는 바디를 한 번 써 봐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특히 "보기엔 투박해 보여도 써보면 놓을 수 없다"는 대부분의 R8 사용자들의 말 역시 참고가 됐다. 하지만, 내 단골 가게 주인 아저씨는 극구 반대였다. 초기 버전의 R8 바디들이 심각한 오류들을 가지고 있었고, 문제를 일으켜 고생한 적이 많기 때문이었단다. 그러나, 최근의 리뷰들에서는 그러한 문제점이 거의 고쳐졌고 안정된 단계에 들어섰다고 해서 <내가 희생양이 돼 보겠노라>고 하고 결심을 했으며 결국 시리얼 2433xxx 정도의 신동품을 구할 수 있었다. 2433xxx는 사실 최신 시리얼은 아니었지만, 홍콩에서 직접 구해왔다는 신품조차도 비슷하거나 더 낮은 시리얼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신품보단 신동품쪽으로 결정을 해버렸다. 블랙을 구하고자 했으나 구하기가 힘들다고 해서 일단 구한 실버를 쓰게 된 것이다.

R8을 처음 손에 잡으면 손잡이 부분이 좀 뚱뚱하다 혹은 손으로 잡고 있기가 약간 버겁다는 느낌이 든다. 내 손이 그다지 작은 편은 아님에도. R8의 각종 조작계는 아무래도 내 손보다 2cm 정도 더 큰 손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음에 틀림없다. 참고로 내 손끝에서 손목 첫 주름까지의 길이는 19cm 정도 된다. 바디를 단단히 쥐면 노출 모드를 설정하는 레버를 스팟까지 조작하기가 힘들 정도다. 하지만 나야 스팟을 선호하고 거기서 웬만하면 노출 모드를 바꾸지 않으니까 큰 문제는 되지 않았지만 자주 노출 모드를 변경하는 손이 작은 분은 좀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이 점 말고는 손이 작아서 불편할 일은 별로 없다고 본다. 참, 이 노출 레버는 스팟-멀티-중앙부중점 순으로 설정이 돼 있는데 가끔 스팟-중앙부중점-멀티의 순이었으면 어떨까 하고도 생각해본다.

렌즈와 바디를 받치는 왼손 중지나 약지를 뻗으면 심도 미리보기 레버에 닿는다. 이 디자인은 이전의 R 바디에 비해 크게 바뀐 부분 중 하나인데, 심도 미리보기 레버를 왼손으로 동작하는 것이 적절하며 위에서 아래쪽으로 끌어내리는 식으로 동작이 된다는 것이다. (바디를 보거나 사진만 보셔도 이 말이 이해가 되시리라.) 이 레버는 조금 뻑뻑하게 설계가 되어 있고 댐핑이 되어 있어서 왼손의 힘이 좀 많이 든다. 삼각대에 바디를 올렸을 때엔 오른손으로 밀어내려야 할 것이다. FEL 기능(정확한 라이카의 용어는 아니지만)을 사용할 때에도 이 레버를 활용하게 된다. 레버를 릴리즈했을 때에 앞서 말한 댐핑으로 인해 딜레이가 걸려서 서서히 화면이 밝아져오는 것은 은근히 멋있다. (실용적이지는 않지만.)

렌즈를 지나쳐서 렌즈의 반대쪽으로 가 보자. 이 곳에는 두 개의 스위치가 있다. 하나는 미러 락 업이고 하나는 플래쉬 후막 동조 설정이다. 미러 락 업을 명시적으로 스위치로 분리해놓은 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이 스위치를 미러 락 업 쪽으로 설정한 후 셔터 버튼을 한 번 눌러주면(반셔터가 아니라 완전히 누르는 것이다) 미러가 올라가 붙는다. 그런 다음 셔터 버튼을 다시 한 번 눌러주면 셔터가 릴리즈된다. 한 번 미러가 올라가면 이를 취소할 방법은 없다. 후막 동조는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I은 전막, II는 후막 동조로 설정이 된다.

그 위로 올라가면 모드 다이얼이 있다. m, A, T, P, F 모드와 OFF를 지원한다. OFF는 완전 OFF다. 이 다이얼은 모든 방향으로 돌아서 조작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모든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은(끝없이) R8에서는 시도 조절 다이얼 빼고 모든 다이얼에 해당된다(그래봤자 모두 세개인데... -_-). 다른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고 F 모드가 독특할 것이다. 저어기 아래쪽의 FEL 기능에 대한 설명을 읽으시라.

바디 뒷면으로 가자. 파인더의 왼쪽에는 노출 보정 레버가 있다. 레버는 2단계의 구조로 되어 있는데, 레버를 안쪽으로 밀어야 움직일 수가 있고, 안쪽으로 민 상태에서 위 아래로 움직이면 1/2스텝씩 + - 로 움직인다. + - 3 스텝까지 보정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것의 위치가 참 불만이다. 삼각대에 세워놓지 않은, 핸드헬드의 상태에서는 왼손이 바디의 아래쪽과 렌즈를 받치게 된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 노출 보정을 하려면 손을 떼어서 파인더 옆으로 엄지 손가락을 올려서 노출 보정을 행해야 한다. 안경을 끼고 오른 눈으로 파인더를 보는 나의 경우 이 때 엄지 손가락은 반드시 내 왼쪽 안경알을 건드려 기름자국을 남기게 된다. 차라리 미러 락 업이나 후막 동조 스위치를 지금의 위치로 보내고 후막 동조 스위치가 있는 자리에 노출 보정 버튼을 넣었어도 될 뻔 했다. 엄지 손가락에 딱 걸리도록 말이다. +-1스텝 이상 보정한 경우 반대방향으로 1초 정도 밀고 있으면 노출 보정 설정이 리셋된다.

파인더 위치에는 시도조절 장치와 아이피스 분리버튼, 그리고 아이피스 셔터 레버가 있다. 파인더 내부 정보로는 노출모드, 노출그래프, 노출값, 필름매수, 그리고 몇몇 지시등 등의 정보가 표시되고 파인더는 밝은편이라고들 하며(사실 내가 직접 비교해본 바로는 R6.2가 아주 살짝 더 밝았다), 표준 스크린의 가운데 스플릿 이미지는 상당히 거슬리는 편이어서(투명한 부분으로는 초점이 맞았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없다), 나 같은 경우는 격자형 매트 스크린으로 교체해서 사용하고 있다.

필름백의 뒷면에는 네 개의 버튼을 감추고 있는 덮개가 하나 있다. 이걸 열면 ISO 필름 감도 조절 버튼 두 개(+,-)와 셀프 타이머(2초,12초) 버튼이 보인다. 문제점을 지적하자. 이 네 개의 버튼은 셔터를 살짝 눌러 카메라를 깨운 다음에 동작이 가능하다. 이것은 비단 이 버튼 뿐만 아니라, 촬영 매수 확인 등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배터리를 아끼는 것은 좋지만... 필름을 감아놓지 않은 상태에서는 셔터에서 손을 떼자마자 카메라가 다시 잠들기 때문에 필름을 감는 것이 유리하다. ISO 버튼을 눌러 DX설정(자동 감도 인식)에서 override를 한 번 하면, 다시 DX 세팅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12800 감도까지 + 버튼을 계속 눌러줘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셔터는 다른 일반적인 카메라와는 달리 3단으로 조절된다. 즉, 반셔터-릴리즈로 동작하는 것이 아니라 1/3셔터 - 2/3셔터 - 릴리즈로 동작한다. 1/3셔터는 카메라 깨우기(측광 시작), 2/3셔터는 스팟 측광시 노출 고정(AEL), 셀프 타이머 동작, 릴리즈는 셔터 동작(셀프 타이머 동작시 셀프타이머 무시하고 셔터 릴리즈)이다. 이 노출 고정이 상당히 직관적이고 편리한데, 쓰면 쓸수록 그 진가를 깨닫게 된다. EOS-5의 엄지손가락 버튼도 쓸만했는데, 여기에 비할 바는 못된다. 셔터 다이얼은 M6TTL 이후로 방향이 바뀌었음을 그대로 반영한다. 즉,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속도 감소(저속셔터),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속도 증가(고속셔터)이다. EOS-5와 M6 클래식은 이와 반대 방향이어서 적응하는데에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파인더에 보이는 노출 그래프를 0으로 보내는 방향으로 돌리면 된다는 것을 깨달을때까지. 1/2스텝으로 동작하고 16"~1/8000초와 X, B 셔터를 지원한다. 기계식 셔터는 없다.

셔터 버튼 바로 아래쪽에는 노출 모드 다이얼이 있다. 점으로 표시된 스팟, 점과 네모로 표시된 분할측광, 네모로 표시된 중앙부중점 노출 모드를 지원하며, 그 조작은 앞서 이야기했듯 검지를 뻗어 레버를 셔터 다이얼 돌리듯 움직여주면 된다. (손가락을 길게 하는 법 없을까?)

셔터 다이얼 옆에는 다중노출 레버와 되감기 버튼이 있다. 다중노출을 레버로 구현하다니, 하고 재미있어했는데 알고 봤더니 이 레버를 돌리면 되감기 버튼을 눌러주어 필름 감기가 되지 않게 하는 기능을 발휘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래도 그 아이디어가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 레버로 되감기를 할 수는 없다. 되감기 버튼도 2단 동작이라서 반쯤 눌린 상태에서는 되감기 크랭크레버가 돌아가지 않는다.)

필름을 감아봤다. 흑백 현상을 직접 하는 경우가 있어 필름 끝을 남기기를 좋아하는데,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했다. 왜냐하면 R8의 필름 장착은 라이카의 SLR 역사상 제일 쉽게 구현되어 있기 때문에(라이카의 역사상...이다. 다른 니콘,미놀타,캐논 등등의 전자식 기종을 사용하는 사람은 그냥 똑같다고 보면 된다. 표시된 부분까지 필름을 끌어놓을것. -_-), 되감기시에 필름 끝이 스풀에서 빠지는 소리가 안들린다. 몇 번 시도하다가 포기할 뻔 했는데, 어라, 필름백의 손바닥 닿는 부분에 필름 돌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이발소 마크가 있다! 이걸 발견한 후로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이발소가 문닫을 때에 감는 걸 멈춰주면 된다.

또 한가지, P 모드에서 1/3셔터를 눌러 측광을 시작한 상태에서 셔터 다이얼을 돌려주면 EV값을 유지한 노출이 조리개와 셔터 속도를 변화시켜가며 보여지게 된다. EOS에서는 주다이얼로 이 기능을 구현했는데 라이카는 셔터 다이얼로 주다이얼 개념을 도입하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했다. 덜 직관적이지만 번뜩이는 재치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취향에 따라 P 모드에서 셔터 다이얼의 위치를 고속 셔터 또는 저속 셔터쪽에 위치시켜놓으면 그 취향에 적합한 노출을 제공해주는 셈이라서 쓸만하기도 하다. EOS에서는 이게 안된다. 무슨 뜻이냐면, 예를 들어 EV13(= F8, 1/125)에서 셔터 다이얼을 고속에 두면 F2.8에 1/1000 정도로 카메라가 설정해주고, 셔터 다이얼을 저속에 두면 f/16 에 1/30초 정도로 설정이 된다는 거다. 아직 이 것이 어떤 기준으로 동작하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는데(매뉴얼 읽는게 귀찮다니까 -_-).

이제 FEL 모드. 모드 다이얼을 F에 두고 표준 플래쉬(A 모드 아니라 M모드)를 장착한 후 심도 미리 보기 레버를 당기면 플래쉬가 터지면서 스팟 측광을 한다. 그 측광 결과를 파인더에 그래프로 보여주는데, 조리개 값을 조절해서 그래프가 0에 가도록 하면 그 스팟이 18% 그레이로 노출이 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모든 플래쉬를 쓸 수 있게 된다. (심지어는 스튜디오 플래쉬도 플래쉬미터 없이 쓸 수 있다...?) 새로운 기능은 아니고 F5, EOS-3, RTS III 등등의 고급 기종에는 다들 들어가 있는 기능인데 라이카 R 기종에도 그게 들어갔다는 게 반가웠다.

R8, ... 분명히 최신의 현대적인 기종은 아니다. 이미 나온지 몇 해 지났고, 또 발매 당시로써도 최신의 기능을 구현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그러한 복잡한 기능들을 최대한 단순하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로 제공하기 위한 노력들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디자인 철학이 배어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러한 노력들이 조작 편의성으로 보여진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어차피 5분할인지 6분할인지 측광은 나야 쓸 일이 없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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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클럽님의 댓글

라이카클럽

▽ No, 125
▽ 이름:차정환 (chacopy@comas.co.kr)
▽ 분류:기타
▽ 2001/8/3(금) 10:52
▽ 조회:502

Re..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현재 R8로의 업그레이드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주위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R8의 구입을 추천하시는 분들이 계신반면
R6나 R7이 더 좋으니 바꾸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사진에 대한 지식이나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감히 라이카 최고기종을 탐내 하는것이 부끄럽기는 하지만
마음속 결정을 하고도 워낙 지식이 없다보니 아직까지 오락가락 하고 있습니다.

이런차에 R8에 대한 명확한 사용기로 제 의구심을 풀어주시니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만 제 손이 작아 (손만 작은것도 아니랍니다..하하^^)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선생님의 좋은 글에 다시한번 감사 드리며
더운 계절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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