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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룩스 사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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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클과 SLR클럽에 올렸습니다만, 아무래도 라이카 사용기이니 여기에도 올려봅니다. 혹시 지나친 중복이라 생각드시면 말씀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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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룩스는 제 로망이었습니다. p&s를 사야겠다 결심한 순간부터 검은색 미니룩스만을 간절하게 바랬고, 곧장 이베이 잠복에 들어갔습니다. 그건 바로 아래 사진들 때문이었습니다. 지인이 오래전 아일랜드 여행에서 미니룩스로 찍은 사진들이죠. 저런 사진을 찍어내는 카메라를 가질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달여를 이베이에서 잠복근무하던 중, 귀하게 올라온 검은 미니룩스를 덜컥 잡아챘습니다. 사실 블랙모델이 실버보다 훨 비싼편이어서 굳이 블랙을 구해야 할 필요가 있나. 1/300초 정도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으. 다들 아실겁니다. 미니룩스 블랙은 정말 예쁜 카메라거든요. 물건을 판 사람은 이스라엘 판매자였습니다. 보아하니 이 인간. 판매 전력이 정말로 화려합니다. 심지어 카르티에 시계도 있습니다. 부유한 수집광 아니면 장물애비가 아닌가 싶어서 잠시 흠칫 했는데, 대답도 친철하고 빠르게 해주는 걸 보니 못믿을 인간은 아닌듯 했습니다(이베이에서 물건사기란 얼마나 가슴 조이는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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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겠습니다. 글의 초장부터 김을 팍 새게 만들기는 싫습니다만 꼭 먼저 언급하고 넘어가야 하는 미니룩스의 단점이 있으니까요. 소포를 받자마자 기쁜 마음에 풀고 전원을 켜니. 으악. 셔터가 중간에 걸려서 열리지 않는겁니다. 이런 xx가 E02 에러먹은 카메라를 보냈구나. 길길이 미친년 널뛰듯이 날뛰는데 자세히 보니 E02에러라는 글이 액정에 뜨지를 않습니다. 마이너한 문제인 것 같아 충무로 라이카 수리점에 가져갔더니 갑자기 완벽하게 작동을 시작했습니다. 점원말에 따르면 자주 안쓴 물건인데다 장거리 운송되어 충격을 받은 경우에는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다더군요.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들 아실겁니다. 미니룩스에는 콘탁스 T3의 배리어 에러와 맞장을 뜨는 E02에러가 있다는 사실을. E02에러신은 제게도 강림하셨습니다. 아멘.

곧 동생이 학회 덕분에 남미로 열흘간 출장을 가게 됐습니다. 같은주에 출장이 있던 저는 미놀타 TC-1을 가져가고, 미니룩스는 동생에게 대여를 해주었죠. 그러나 미니룩스를 대여해준 지 4일뒤 페루 리마에서 국제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니가 빌려준 시커먼 카메라 고장났다". 첫마디에 심장이 내려앉더군요. "카메라 렌즈가 안나온다. E02인가 먼가 에러라고 뜬다"라는 말에 잠시 기절. 평생 가기힘든 남미까지 간 동생, 결국 36판짜리 두통 밖에 못찍었답니다. 동남아도 유럽도 아니고 남미에서 하필 E02신이 강림하시다니. 그런데 동생이 브라질의 리오 데 자네이로에서 찍은 몇장의 사진들. 그게 저를 기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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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리오 데 자네이로에서 찍어온 사진들입니다. 날씨가 흐렸음에도 불구하고 꽤 투명하고 사랑스러운 사진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아. E02에러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겠네요. E02 에러란 렌즈가 들어오고 나오는 부분의 회로 기판에 이상이 생기는 걸 말합니다. 그러니까 렌즈 셔터가 작동하도록 본체와 렌즈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연결회로가 끊어지는 거죠. 간단한 수리지만 아예 새 부품으로 갈아야 한다는 소리고요. 수리를 맡기면서 물었습니다. "이거 한번 수리하면 안걸리는 거 맞죠? 다들 그러던데". 대답은 희망적이었습니다. "음. 저한테 지난 5년동안 수리받은 분들중에 다시 오신분은 없습니다". 그러나 보장은 없다는 소리입니다. 수리비는 23만 1천원. 그래도 환율이 상승해서 싸진겁니다. 작년까지만해도 26만원이었다죠. 23만원이면 꽤 쓸만한 중급 자동카메라를 구입할 수 있는 돈입니다. 속이 쓰리지만 할 수 없는 일. 일단 꺼내서 한 대 쳐줘야 겠다 싶어서 겹겹이 싸인 비닐봉지를 풀었습니다. 아아. 이 카메라 너무 잘생겼습니다. 평생 같이 살기로 마음 먹습니다. 그리고 속사케이스도 곧 구입해버렸지요.

미니룩스는 '큰' 카메라입니다. t3와 tc-1은 굳이 값비싼 속사케이스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도 작은 카메라들에 속사케이스는 오히려 거추장스럽지요. 하지만 덩치가 그렇게 소담하지 않은 미니룩스는 속사케이스가 꽤나 어울립니다. 저는 인터넷을 뒤지고 뒤지고 뒤지고 한 두시간여를 구글링(googling)하다가 결국 스코틀랜드 네스호 근처의 한 카메라 상점으로부터 속사케이스를 구입할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겁니다. 이상하게도 이 속사케이스를 쓰는일이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입니다. 그냥 검은색 가죽 번들 케이스도 충분히 역할을 다 해내거든요.

미니룩스의 크기에 대해서는 수많은 불평들이 있습니다. 무겁고 커서 P&S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말도 많지요. 네 그렇습니다. 모토로라 레이저처럼 당신의 최신유행 스키니 진의 뒷 주머니에 쏘옥 들어가주는 화끈한 패션 아이템은 못될겁니다. 하지만 이게 그렇게 악명을 얻어야 할 정도로 큰 카메라인가. 개인차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저에게는 아닙니다. 다른 P&S와 비교하면 상당히 묵직한 카메라일지언정 P&S로서의 역할을 해내지 못할만큼 비대한 고질라는 결코 아니에요. 손목에 척 감고 다녀도 괜찮고(하도 튼튼해서 떨어뜨려도 다칠 염려가 없거든요), 점퍼나 심지어 면바지의 주머니에 쏘옥 잘 들어가기도 합니다. 액티브 시스템이라 포커싱이 빠른것도 P&S로서는 장점입니다. (그래도 사시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아래 사진들을 참고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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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퀄러티는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미니룩스의 수마리트 40/2.4 렌즈는 정말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대한으로 개방하더라도 결코 디테일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너무나 정밀해요. 콘트라스트가 T3와 TC-1만큼 강렬하지는 않지만, 정밀한 디테일에 있어서는 가장 멋지게 기능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겁니다. 미니룩스, T3, TC-1를 비교한 Contax T3 vs Contax G2+G35 vs Leica Minilux vs Minolta TC-1(클릭하세요)를 참고해보세요. 이 글의 아래에 있는 한 미국 네티즌의 덧글 "I didn't expect such a definitive difference. The Leica Minilux is such a clear winner"도 일견 수긍이 가지요. 그러나 물론 염두에 두어야 하는것은, 세 카메라 모두 우위를 따질 수 없을만큼 굉장한 녀석들이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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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 스냅입니다. 강렬한 컨트라스트를 자랑하던 tc-1의 인물 스냅과는 달리, 아주 맑으면서도 디테일이 촘촘히 살아있는 사진이 나옵니다. 행복해보이는 사진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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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저 일상의 사진들을 부담없이 척척 찍어내는 것도 좋습니다. 크기가 크지만 미니룩스는 정숙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미니룩스 수마리트 렌즈의 느낌은 (많은 미니룩스 사용자들이 이야기하곤 하는 바로 그) '청명함'입니다. 일단 렌즈가 p&s 카메라중 가장 밝은 축에 속합니다. 찍혀나오는 이미지가 너무도 밝고 청명해서 tc-1이나 t3, 혹은 리코 gr시리즈 처럼 강렬한 컨트라스트를 망막에 때려주지는 않습니다. 뭐랄까요. 조금 '덜' 트렌디하다고나 할까요. 조금 '덜' 광고사진스럽다고나 할까요, 조금 '덜' 화려하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그것때문에 미니룩스의 이미지를 몰개성적이라고 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위에도 이미 설명했지만 정밀한 디테일을 살려내는 능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모든 p&s를 모조리 다 써보고 결국 미니룩스로 정착한 제 지인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결국 가장 애착이 가는것은 미니룩스로 찍은 사진들"이라고 합디다. 저는 아직 여러가지 카메라를 두루두루 써본편이 아니지만 그말도 믿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미니룩스를 두고 "미니룩스의 가격은 렌즈값이고 바디는 번들"이라고 할까요. :-) 아래 사진들은 주로 홍콩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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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찍은 몇몇 스냅사진들입니다. 맑고 청명한 가운데 디테일들이 확실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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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사진에 문제가 없었다는 것도 놀랄만한 일입니다. 손각대로 찍은 사진들이라는 걸 믿으시겠어요? 그러나 홍콩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중 가장 놀란 사진은 바로 아래 사진입니다. 아주 적절한 시간대에 적절한 피사체를 찍은 행운이 있었지만, 수마리트 렌즈의 장점을 이처럼 잘 설명해주는 사진도 (제가 찍은 허접한 사진들중에서는) 드물겁니다. 중경삼림의 무대가 되었던 청킹맨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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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수리가 가능한 E02에러를 제외한다면) 미니룩스의 약점은 있습니다. 그건 바로 40mm라는 비교적 좁은 화각과 0.7m라는 최단초점거리입니다. 홍콩에 미니룩스와 tc-1을 둘 다 가져갔었습니다. 높은 빌딩들이 숲을 이룬 홍콩에서 미니룩스는 좀 갑갑하게 느껴졌죠. 빌딩을 모조리 프레임에 다 담아내는 tc-1은 시원시원했구요(하지만 여기에도 장단이 있습니다. tc-1은 넓은 화각이 시원하다는 이유로 원거리 풍경만 잔뜩 담아왔더군요. 너무 사진들이 시원시원하기만 해서 나중에는 '좀 가까이서 찍을걸'이라고 자책했답니다. 대신 미니룩스는 뭔가 디테일을 즐길만한 사진들이 많았어요). 또한 미니룩스는 음식이나 자잘한 물건 등, 일상적인 스냅을 찍기가 조금 불편한 감도 있습니다. 0.7m라는 최단초점거리때문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질문을 던지곤합니다. 미니룩스는 그저 '라이카'라는 이름값에 기대인 p&s 카메라가 아니냐고요. 그래서일까요. 이상할 정도로 미니룩스는 다른 상급의 p&s 카메라들에 비해 한국에서의 인기가 적습니다. 그건 위에서 말했다시피 이 카메라가 묵직하고, 40mm에, 최단초점거리도 조금 멀고, 또한 E02 에러라는 수리 가능하나 수리가 꽤 높은 문제를 태생적으로 안고있기 때문입니다. 왠지 트렌디하지 못하죠('GQ'같은 잡지라면 '쉬크하지 못하다'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미니룩스가 토해놓은 사진들을 보면서, 꽤나 커다란 수마리트 렌즈가 묵직하게 나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저는 항상 만면에 미소를 가득 짓습니다. 이 묵직한 녀석이 언제나 믿음직하다는 것을, 이 묵직한 녀석이 너무나 섬세하고 결이 고운 사진들을 만들어줄 거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책상위에는 검은색의 미니룩스가 떡하니 앉아있습니다. (예전에 이런 표현을 한번 쓴 적이 있는데) 중세의 건축가들에게 이 물건을 타임머쉰으로 보낸다면, 아마도 가장 값비싼 왕가의 교회를 짓는 벽돌들과 함께 사용했을것이 틀림없어요. 먼 훗날에 라이카사(社)가 라이카의 전당을 짓는다면요? 키득키득. 저는 제 미니룩스를 단단한 주춧돌의 한 모서리로 기증할겁니다. 녀석의 한 귀퉁이에는 음각으로 조그마한 글씨를 아래와 같이 새겨둔 채로요.

"투박하고 묵직하지만 가장 섬세하게 세상을 보았던 똑딱이. 여기에 잠들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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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찬조출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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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강태우님의 댓글

강태우

T3와 고민하고 있는 중에 심히 기울게 하는 내용이네요. 글 너무 잘봤습니다.

GoBlue(이승희)님의 댓글

GoBlue(이승희)

사진좋습니다. 야간사진도 놀랍습니다.

T3 1년정도 사용하다가 5년째 Minilux/CM 사용중인데 너무좋습니다.
R, M 도 있지만 사용빈도로 보면 요놈이 2/3 정도 되는 메인이 되버렸습니다.
P&S 에서 outfocusing 이만큼 잘나오는거 없죠.
크기는 무난하고 사진찍을때는 딱인데 무게는 좀 만 더 무거웠으면 바램이 있습니다.

김완호님의 댓글

김완호

매우 공감가는 사용기이네요. 맑고 깨끗하다. 동감합니다.

이승준_버즈라이트님의 댓글

이승준_버즈라이트

와.. 사진 잘 찍으시네요 부럽다~!!!
난 아무리 찍어도 칼라 감각이 쫌 없는듯 ^^ 연습을 얼마나 해야 보일라나~! ㅜㅜ

김형배님의 댓글

김형배

미니룩스의 주마릿 렌즈는
가장 라이카스러운 렌즈라고 하던
지인의 말이 생각나는군요..

좋은 사용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성민^^님의 댓글

조성민^^

미니룩스 1주일전에 손에 들어왔습니다.
이글 많은 도움이 되겠군요^^

청명함...
자꾸 가슴에 맴돕니다 ^^

김주홍님의 댓글

김주홍

미니룩스의 사진들 지금에서야 이렇게 다시 확인해봅니다.
역시 미니룩스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영도님의 댓글

박영도

작은 카메라 같으데 사진 잘 찍히네요. 공부해봐야겠습니다.

이종원(JW Lee)님의 댓글

이종원(JW Lee)

꼭 손에 넣어야 할 카메라인 것 같습니다.
기변은 없다 기추만 있을 뿐..

조성민^^님의 댓글

조성민^^

아.. 대략느낌이 이정도군요... 뿌듯.
첫롤 느낌이 대략난감이여서 많이 고민했거든요^^
필름 바꾸고 두번째 롤 채우고 있습니다.
또 기대되고 기대하게 하는 카메라임은 분명하네요...
좋은사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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