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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과 손덱. 도구와 주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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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현재덕
  • 작성일 : 06-11-0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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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M을 쓰는가-라는, 혹은 그와 비슷한 자문으로 시작하는 글을 참 많이도 읽었다. 대개는 머리를 주억거리며 읽었고, 가끔은 피식, 먼저 느낀 이의 오만함을 입가에서 완전히 감추지 못하고 웃으며 읽었다.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간 이는 또 나를 보고 그리 웃을 것이다 생각하면 그게 미안해할 일은 아니겠다.

엠을 쓴다. 이런저런 궁리와 조악한 생각의 타협으로 엮인 길을 이리저리 돌고 돌아보니 손 안에 남아있는 것이 엠이다. 중학생 때부터 들고다닌 것이 사진기라 세상 그 어떤 기묘한 사진기를 쥐어줘도 별 감흥이 없는데,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직 엠을 잡으면 설렌다. 그 차가운 금속의 질감 때문인지, 세인들의 입을 달구어 온 신화 때문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사실, 나는 라이카 렌즈의 우월함이라는 '실용적' 가치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아니, 세상의 다른 모든 '실용적' 가치에 관심이 없다. '실용적' '현실적'이라는 말이야말로 내가 가장 혐오하는 단어이다. 말머리에 "...지만 현실적으로는...." 라고 전제를 다는 사람과는 마주하기 싫다. 옳고 그름, 좋고 싫음의 구분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생각하는 나다.

그러니, 엠을 쓰는 것은 이것이 내게는 '가장 옳은' 것이어서이지 가장 좋은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어서가 아니다. 이것이 가장 '좋아하는' 느낌의 것이기 때문이지 가장 '좋다고 하는' 것이라서가 아닌 것이다.

그런 것으로, 린(LINN)의 손덱이 있다. 초고가의 레퍼런스급 기기 이야기로 날 새는 줄 모르는 호사가들에게야 이제 더이상 별 것 아닌 초라한 AD플레이어지만, 내게는 이십년 이상 꿈꾸었던 가장 '옳은' 아날로그 플레이어이고,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아날로그의 이미지이다. 고장나지 않는 한, 아니 고장나면 전국의 명장을 찾아다니며 고쳐서라도 이 기기는 죽을 때까지 쓰게 될 것이라는 예감을 가진다. '오랫동안'이라는 관용구로서가 아니라 정말로 내게 주어진 생의 시간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언젠가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내 손 안의 이 엠은 아마도 나보다 더 오래 살아갈 거라고. 내가 죽은 후에도 여전히 동작하고 사진을 만들어낼 거라고. 그러니 어쩌면 이 기계들이야말로 영원히 사는 셈이라고.

주체인 나는 사라지는데 도구인 이것들은 계속하여 살아간다. 적절히 손보고 애정으로 살핀다면 수백년의 시간을 너끈히 살아낼 이 도구들을 보며 유한한 나의 생을 원망하게 되는 건 인지상정일까...

손덱을 평생 내치지 않을 것처럼 아마도 엠 역시 그러할 것이지만, 분명히 해두건데 그것은 이 작고 단단하고 차가운 사진기가 무슨 대단하고 신묘한 기계라서가 아니라, 대단하고 신묘한 나의 생을 함께할 자격이 있는, 그 정도의 기품이 불어넣어진 몇 안되는 '도구'들 중 하나인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니콘이 아니고 라이카인 게 아니라, 라이카가 아니면 안되도록 정해진 사람이기에 라이카인 것이다. 더 우월하거나 더 잘난 게 아니라 그저 그런 '종류'의 사람으로 정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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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진정훈님의 댓글

진정훈

저도 손덱을 구해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손덱을 사용하신다기에 혹시 LP12와 이톡3arm의 조합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는지요? 고견을 부탁 드립니다.(참고로 저는 클레식을 주로 듣는데, 현재 로이드 신트라2 스피커와 쿼드 44/ 606엠프, 토랜스320으로 무던하게 쓰고 있습니다. 320을 손덱으로 바꾸려고요.)

김태윤1님의 댓글

김태윤1

저는 LP12손덱에 링고, 서커스 킷이면 더이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은데요? ^^

돌덩이처럼 단단한 플레이어가 들려주는 치밀한 음상보다는 어딘지 허술해보이고 건들거리는 구형 플레이어가 들려주는 여유로움이 그립습니다.

진공관을 고집하는 이유와 비슷하기도 하고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허름한 레가 플라나3라도 구해봐야겠습니다.

Kenneth J. Park님의 댓글

Kenneth J. Park

인간에 욕심이란 끝이 없는것 같읍니다, 바꿈도 많으면 습관이 되는듯 싶고, 나 역시 고집인지 60년대말 월남전때 구입한 M3와 M4를 아직껏 고집하고 있고, 70년경에 구입한 Thorens TD124 와 Garrard 301 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데 아직껏 Camera 나 Turntable 이 고장 한번없으니 저와 같은 사람이 사용 하기에는 편한것 같읍니다. 아나로그도 잘만 사용하면 전혀 불편함을 못느낌니다.

현재덕님의 댓글

현재덕

달아주신 답글을 늦게 보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진정훈님 / 우연의 일치네요. 저도 토렌스 320을 쓰다 지금의 손덱으로 왔거든요^^ 음질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 부분은 빼고, 기계적으로 말하자면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져 진동에 강한 플레이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플로팅 방식인데도 음반 재생중 테두리를 주먹으로 쾅쾅 있는 힘껏 내리쳐도 전혀 바늘이 튀거나 하우링이 생기지 않습니다. 저도 이런 말을 전에 들을 때는 과장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직접 겪어보고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물론 이렇게 되려면 플레이어의 세팅이 정확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자신이 없어서 아날로그 플레이어 부문에서 꽤 유명하신 분을 모셔다 세팅했습니다. 그분의 샵에서 구입했구요.

전원부는 발할라, 암은 이톡3입니다. 카트리지는 저렴한 슈어의 M97XE를 쓰고 있습니다. 가격은 싸지만 모든 면에서 극히 표준적인 카트리지입니다. 저는 MC포노단을 지원하는 크렐의 프리앰프를 쓰고 있지만 이 카트리지에 만족하기 때문에 MC 카트리지로의 업그레이드를 고려하지 않고 있을 정도입니다. 파워앰프는 마크레빈슨 no.27, 메인 스피커는 스펜더의 SP100을 듣고 있습니다.

진정훈님의 댓글

진정훈

라클의 오디오 수준도 라클의 취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것 같군요. 위의 의견들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라이카적 취향 : 치밀함과 단단함,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여유로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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