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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렌즈의 3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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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윤세영
  • 작성일 : 04-03-06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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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카렌즈의 3세대


라이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꿈꾸는 일이지만 여유만 있다면 지금까지 생산된 모든 라이카렌즈를 사용해 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전설이 된 여러 명렌즈들에 대하여 소문이나 서적을 통하여 보고 듣게 되면 언제나 이 명렌즈를 구해서 사용해 볼까 마음이 급해지고 이미 정신은 혼미해지고 이성을 잃게 된다. 렌즈의 설계와 생산기술은 옛날보다 현재가 크게 앞서 있을 것이 분명하지만 현대의 렌즈들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기만 하다. 그리하여 옛날의 명렌즈를 손에 넣게 되면 천하를 얻은 듯이 기뻐한다. 그러나 꿈속의 렌즈들이 보여주는 결과에 대해서는 희비가 엇갈리고 렌즈의 바꿈질이 시작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이러한 방황은 많은 분들이 경험하였고 지금도 그 소용돌이 속에 계신 분들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라이카 렌즈의 설계사상과 그 시대의 기술수준과 역사를 좀 더 잘 이해한다면 라이카 렌즈들이 가지는 특징을 잘 이해할 수 있고 그 시대의 렌즈들이 가지는 결점까지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며 라이카 렌즈에 대한 선택도 좀더 합리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다음의 글을 올립니다. 이 글은 Erwin Puts씨의 글을 일본서적에서 번역한 것입니다.


* 라이카렌즈설계의 3세대


이번에는 항상 해오던 수치분석보다 설계철학에 관해서 서술하고자 한다. 렌즈설계라는 것은 과학과 예술의 경계면에 있어서 MTF곡선을 보면 보정의 정도를 알 수 있지만 그것으로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렌즈가 피사체를 어떻게 연출하고 있는가 하는 점에 관해서 일 뿐이다. Max Berek시대부터 렌즈라고 하면 콘트라스트, 해상도, 구경비, 화각, 색의 재현, 중량, 크기, 가격 등의 요인으로 특성을 표현하지만 이러한 요소는 모두 서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 중에서 어떻게 균형을 취할 것인가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 설계(디자인)라 할 수 있다.

수차는 구면이나 비구면이나 모두 지니고 있는 숙명이므로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모는 화상은 결함을 가지는 것이 자연의 철칙이므로 수차는 균형을 이루도록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것이 렌즈설계라 할 수 있다. Berek은 이 점을 알고 있었고 Mandler, Kolsh, 그 후 현재의 라이카사의 렌즈부문의 부장으로 현대 최고의 광의 마술사 슐레더조차도 모두 이 원리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다만 위대한 설계에는 과학과 예술이 녹아 있으므로 설계방식은 모두 사람마다 다를 뿐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라이카렌즈의 발전의 역사를 3단계로 살펴보도록 하자.


* Max Berek의 시대


지금까지 없었던 35mm판이라고 하는 장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종류의 렌즈를 제작하는 것이 Max Berek의 사명이었다. 그러나 공작의 정밀도가 낮고 유리소재는 종류가 많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코팅기술조차 아직 미개발상태였으며 계산능력도 당연히 낮았고 감광재(필름)조차 질이 좋지 않았다. 그러한 열악한 조건에서 될 수록 대구경이면서 화질이 높은 렌즈를 만드는 것이었으므로 어려운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당시에는 라이카와 같은 초소형의 카메라에 상당히 두터운 필름을 장착하여 50mm f3.5의 침통식렌즈를 잡고 뽑아내어 얕은 피사계심도의 조건에서 핀트를 맞추어 촬영한 다음 3~4배 정도까지 확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점에 대하여 라이카 사용자들은 대단한 고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따라서 좋은 촬영결과만이 이러한 고생에 대한 보수였기에 이 것을 보증하는 것이 Berek의 의무였던 것이다.

1930년대에 Berek가 쓴 Handbook(실용광학의 기초)에는 여러 가지 수학공식이라든지 독일의 고문자의 기호 등이 나와서 압도되지만 실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말하고 있다. 자이델수차가 현저하므로 보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그는 우선 언급하고 있다. (폰 자이델은 球面, Comma, 비점(非点), 왜곡(歪曲), 상면만곡(像面彎曲), 색수차(色收差) 등을 지적하였다.) 그렇지만 자이델수차를 어떻게든 보정하더라도 보정하기 어려운 부분의 수차는 남아서 상면(像面)의 질을 떨어뜨린다. 화각이나 구경이 커질수록 보정하기 어려운 고차(高次) 수차의 문제도 증가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는 매우 중요한 점을 제안하고 있다. 자이델수차가 있는 렌즈는 모두 약간의 수차를 보정하지 않은 상태로 남겨두자. 상면전체에 수차의 균형을 잡고 미보정수차를 허용하도록 하자. 전체로서 균형을 잘 맞춘다면 화상은 매우 아름다워질 것임이 분명하다. 거기에 조리개의 위치와 비네팅을 잘 이용하여 잔존수차를 처리하도록 하자.

Berek은 계산이라는 것의 한계를 알고 있어서 두 단계의 작업을 하고 있었다. 우선 기초설계에서는 이론에 따라 경험과 창조력을 발휘하여 작업한다. 다음에 그 결점을 나타내는 몇 개의 빛의 경로를 밝혀내어 철저하고 세밀하게 계산하여 결과를 검증하였다. 유리소재의 부족은 설계로 보완하였으나 고굴절(高屈折) 유리소재의 부족이 가장 큰 난점이었다.

Berek이 설계한 렌즈는 1925년부터 1945년 기간에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지만 검토해 보면 앞서 언급한 점들을 확인할 수 있다. 초점거리와 밝기의 균형이 135mm f4.5나 28mm f6.3등의 무리가 없는 설계인 것이다. 50mm f2라든지 85mm f1.5등의 대구경에서는 개방근처에서의 이론적인 성능을 약간 희생하여 전체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서 조화를 이루어 낸 결상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은 Max Berek의 설계사상은 알려져 있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적정한 평가를 얻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Handbook에도 그 이름이 나와 있으나 역시 이름이 나 있는 사람들은 메르데, 베르테레, 트로니에, 리 등이다. 다만 당시에는 렌즈의 평가라 해도 기계나 이론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실제의 촬영결과로서 비교하거나 설계도면으로부터 수차를 계산하여 그래프를 그리든지 하였던 것이다.

Berek의 렌즈의 부드러운 묘사와 계조는 라이카의 재산이다. 당시의 바우하우스계의 운동은 (New Vision)을 추구하고 있었고 snap 사진의 거장들은 제재(題材)의 대비를 사진에 담고 있었으나 어떠한 경우에도 Candid photograph가 중심이어서 균형을 이룬 빛을 촬영하는 Berek의 렌즈가 여기에 잘 맞았다. 그는 음악에 취미가 깊었는데 수차에 대한 그의 사상에는 음악의 영향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Berek의 렌즈는 조리개를 조이면 상당히 좋아지는데 그것은 렌즈의 중심부를 통과하는 가느다란 빛의 다발(光束)만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이 정도에서는 쟈이델의 1차 수차만이 영향을 미치지만 Berek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어서 전체 설계 중에 매우 능숙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결과가 뛰어난 것이다. 아이젠슈테트라든지 드아노 등의 비단결같은 묘사, 카메라와 피사체사이의 친화력 가득한 관계, 그러한 것들은 Berek가 설계한 렌즈의 특징이 가장 잘 표현된 촬영결과라 할 것이다.


* Dr. Walter Mandler의 시대


Mandler의 시대라 하면 1960년경부터 1980년경까지로서 Wetzlar와 카나다의 Midland 양쪽에 우수한 렌즈설계의 Center가 설립되어 있는 여건이 매우 좋은 시기였다. Wetzlar는 APO라든지 Aspherical(비구면) 렌즈를 설계하고, 카나다는 레트로포커스를 맡는 등 업무를 분담하여 사이좋게 일하였지만 경쟁을 하였던 면도 있었다. 1960년대에는 고굴절의 신종 유리가 만들어진다. 옛날의 유리재료의 catalog을 보면 에른스트 앗베가 만든 소위 구형 유리만 나오는데 이것들은 저굴절이므로 보정하기 위해서는 메니스카스를 강하게 연마한다. 그러나 공작이 어렵기 때문에 제품의 균일성이 나빴다. 따라서 희토류를 사용한 신종 유리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1930년대에 란탄을 사용한 La 유리를 만드는 것에 성공한 곳은 의외에도 Kodak이었다. 그러나 방사능이 발생하므로 사용할 수 없었기에 방사능이 없는 고굴절유리를 모두 연구하였다. 다행히도 라이쯔 연구소는 성공하여 란탄크라운9(LaK9)을 개발하였고 설계담당자들은 이 고굴절 저분산 유리를 사용한 작업이 가능하였다.

당시에는 수차에 대한 연구가 진전되어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유리가 견인차적인 역할을 하였지만 오늘날에는 옛날 유리일지라도 이를 능숙하게 사용하여 동일한 작업이 가능하다. 컴퓨터의 사용이 가능케 된 것은 작업상 대단한 이점이어서 실제의 광로(光路)를 얼마든지 계산이 가능하므로 옛날이었다면 상상으로 이렇게 될 것이다 생각하며 설계하였던 것이 해결되었다. 따라서 유리소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못지않게 설계 계산의 중요성이 증가되었다고 말 할 수 있다.

설계의 현장에서는 Merit관수라는 것을 사용하여 보이지 않는 혁명이 진행되었다. 이 것은 수차관수나 그 밖의 Parameter를 조합하여 원하는 결상성능을 표현하는 관수를 만들어 여기에 맞는 렌즈의 수식(數式)을 만들도록 컴퓨터에 명령하는 것이다. Mandler의 (On the design of basic Double-Gauss Lenses ; 기본 더블가우스렌즈의 설계)라는 책에 이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다만 렌즈는 이제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개량하는 것이다. 트리플레트, 더블가우스, 레트로포커스, 대칭형광각 등과 같이 이미 과거의 유명한 설계가들이 연구하여 만들었으므로 그러한 것들을 컴퓨터를 사용하여 개량해 나가는 것이 현대설계가들의 업무가 된 것이다. 물론 수차의 균형을 잡는다고 하는 기본적인 작업은 옛날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컴퓨터를 사용하면 상면의 여러 곳에서 남아있더라도 괜찮은 수차를 미묘하게 균형을 이루게 하는 일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상면만곡을 해결하기 위하여 구면수차를 어느 곳에만 남길 것인가 초점면의 최적개소를 이동시킴에 따라서 효과를 억제하기도 하지만 조리개를 조였을 때에는 초점을 어느 정도만 이동시킬 것인가 등등 이다.

또 렌즈 주변부 보정부족 부분에 남아있는 고차의 잔존수차는 비점수차로 억제되므로 잔존의 비점수차를 주변부에 분배한다면 가장 앞선 성능의 렌즈가 단시간에 매우 저렴하게 제조할 수 있다. 그의 설계는 “가장 앞선” 이라는 말이 keyword로서 메리트관수를 사용하여 제한된 시간 안에 최고이면서 가장 앞선 것을 설계하는 것이 Mandler의 목적이었다.

렌즈의 설계가 코팅에 의하여 좋아지는 일은 없다. 따라서 2차대전 이전의 렌즈를 코팅하더라도 광학성능은 같아서 후레아가 감소할 뿐이다. 코팅의 이점은 구성매수를 늘려도 계면에서의 반사에 의한 콘트라스트의 감소를 걱정하지 않고 설계를 할 수 있다고 하는 점이다. 옛날의 엘마라든지 스미크론을 코팅한다하더라도 그다지 효과는 없을 것이지만 빛이 투과될 때의 손실의 감소는 물론 의미 있는 것이어서 옛날 렌즈의 f2는 투과율 면에서 말한다면 실제로는 f2.5였던 것이 코팅기술이 실시되는 시대가 되어 실제로 f2의 렌즈를 설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시대는 보도 사진가를 중심으로 대구경 보도용 렌즈에 대한 요구가 매우 커져서 Mandler의 스미클론 Trio(35, 50, 90mm)은 이러한 요구에 딱 맞았던 것이다. 개방부근에서도 전체의 콘트라스트가 높은 것이 보도사진에 적합하므로 이전의 렌즈들과 비교할 때 화상의 캐릭터로 추구하던 점이 완전히 달라졌다.

전쟁터에서 전투장면이라든지 사고 등의 생생한 현장이 콘트라스트가 높고 현장감 있게 기록되는 것이 좋다. Mandler의 설계도 이러한 요구에 맞추는 것과 광학적으로 좋은 보정을 이용하는 것 사이의 절충 또는 타협에서 용도의 종류는 다르지만 절충타협 한다는 점에 본다면 Berek의 시대와 같은 것이다.

1960년경부터 1980년경까지의 라이쯔의 렌즈는 매우 훌륭한 만듬새로 인하여 사상 최고라고 해도 좋다. 그렇지만 조립공정에서는 미세한 조정을 하였다. 따라서 광학적 성능은 사용된 유리와 제조상에 발생하는 오차에 의하여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상태였다. 앞서도 말했듯이 Mandler의 설계는 keyword가 “가장 앞선(最先端)”으로 현재도 아직까지 일류이지만 일본의 렌즈도 상당히 근접한 수준까지 와있다고 생각된다. 라이쯔의 설계에는 독특한 절충과 타협의 패턴의 특징이 있으나 짜이즈, 캐논, 니콘, Topkon도 최고의 것은 라이쯔와 동일한 품질수준에 도달하였다.

라이쯔는 상면만곡을 경시하는 것이 전통이 되어 왔는데 어째서 상면만곡을 가볍게 다루는가 하는 점은 라이쯔의 수수께끼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라이쯔의 설계는 더블가우스 고유의 성질을 미묘하게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점이 특징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멀티코팅은 그다지 사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제조공정이 복잡해지는 점과 그다지 효과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일반론적으로 말하자면 멀티코팅은 품질을 향상시킨다고 평가되고 있다. Mandler의 시대에는 35mm사진에 대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 일류의 렌즈가 생산되었으나 줌렌즈와 같은 분야는 일본에게 뒤처진 듯 하다.


* Lothar Kolsh 의 시대


제 3은 Kolsh의 시대로서 설계사상이나 제조기술도 크게 변하였다. 1980년부터 1990년까지의 시기는 APO Macro Elmarit R같은 것은 예외로 하더라도 그다지 새로운 설계의 렌즈는 나오지 않았으나 그 후의 Solms Leica시대가 되어 새로운 설계의 렌즈가 새로운 유리소재와 새로운 제조기술에 의하여 생산되게 되었다.

그때까지의 Leitz렌즈가 지녀야 할 격이라고나 할까 주형(鑄型)이라고 할 틀을 깬 것은 Kolsh 이다. 이 것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연마나 압형(압축하여 만든)의 비구면렌즈를 사용한 점일 것이다. 제조기술면에서는 제조 오차를 Leitz시대의 몇 분의 일 수준으로 낮추었다. APO Summicron 90mm f2 ASPH를 보면 이와 같은 개량의 결과를 잘 알 수 있다. 개방조건에서도 Summarex 85mm f1.5를 F11로 조인 것보다도 화질이 좋고, Summicron 90mm f2를 F4로 조인 것과 견줄 수 있을 정도이다. 이와 같은 렌즈의 생산이 가능한 시대이기에 Leica사의 설계진은 수차의 문제를 다룰 때에도 옛날에 하였던 것과 같은 절충과 타협은 필요 없게 되었다. 물론 이상(理想, 꿈)의 렌즈가 현실에서 제조되는 것은 아니지만 절충과 타협은 지금까지보다는 매우 높은 정밀도의 수준에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Berek의 설계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채광조건이 나쁜 곳에서도 촬영을 가능하게 하였다고 말 할 수 있고, Mandler의 설계는 보도사진가가 인간의 세부를 기록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면 Solms의 설계를 정의한다면 무어라 해야 할까?
옛날의 다게레오 타입의 사진을 보면 더 이상 생각 할 수 없을 정도로 세밀하게 디테일이 확실하게 묘사되어 있음에 감동하게 되며, 카메라의 눈으로 정밀하게 재생된 세상에 의하여 초현실적인 것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Solms 세계의 특질은 이와 같다.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을 오려내어 언제까지나 기억하고 싶은 감동을 고정할 때 우리들은 렌즈에 의하여 자신을 초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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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오승환님의 댓글

오승환

저는 라이카 렌즈가 성능의 개선만을 목적으로 진화 한줄 알았는데 세대별로 렌즈의 목적이 달랐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좋은 사진도 잘 감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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