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사진가> -미나마타.한국.베트남 취재기/구와바라 시세이 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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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김승현
- 작성일 : 14-01-2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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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곤 옮김 눈빛/2012년
일본의 아마추어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일본의 최고의 다큐 사진가가 된
구와바라 시세이가 말하는 나의 사진, 나의 삶이라는 책 표지의 설명이있습니다.
책의 제목처럼 이책은 어떤 작가의 사진 삶을 통해서 다큐 사진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것입니다.
구와바라 시세이 (1936- )는 일본 시마네현 츠와노 출생으로, 도쿄농업대학과
도쿄사진전문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수은 중독 공해병인 '미나마타병'을 주제로 한
첫번째 작업이 1962년 일본사진비평가협회가 주는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사진계에 입문하였습니다.
1964년부터 두번째 작업으로 한국을 취재,기록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40년간
한국을 수십차례 드나들면서 10만여 컷의 방대한 작업을 축적하였습니다.
그가 한국에서 촬영한 사진은 '사전 전면에서 벗어나지만 현실의 핵심을 찌르는
영상미학과 표현 스타일'을 시종일관 견지해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1982년 일본 이나노부오 사진상과 2002년 한국에서 주는 동강 사진상을 수상합니다.
한국에서 그의 다른 책은 그가 한국에서 작업한 사진들을 모은 사진집
<내가 바라본 격동의 한국>(2008,눈빛)이있습니다.
그는 2010년 일어난 북한의 포격 사건으로 세계적인 시선을 모았던 연평도를 2011년
방문합니다. 이것이 그의 최근 한국 방문이며, 작업입니다.
이책은 다큐멘터리사진은 무엇인가로부터 시작합니다. 다큐멘터리사진은 일본에서
'보도사진'이란 명칭으로 1933년 부터 사용됩니다. 이것은 미국의 화보 주간지
라이프(Life)지가 창간되기 3년전의 일입니다.
물론 일본에서 '포토그래퍼'란 용어보다는 '카메라맨'이란 말이 먼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 카메라맨이란 용어를 싫어합니다.
한국에서도 사진기자가 한때 카메라맨이란 말로 쓰였던것같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종식되고, 라이프지가 1972년 사라집니다.
로버트 카파는 전형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1960년 도쿄농업대학을 졸업하고 전공분야에서 직업을 찾을 필요를 못느낀
시세이씨는 1960년 5월 10일 '미나마타'를 취재(*프리랜서로서)하기위하여 기차를 타게됩니다.
그 일이 앞으로 그를 다큐사진가로 만들 최초의 작업이될줄 모르면서 말입니다.
병원 의사들은 사진으로 이 해괴한 병을 취재하겠다는 그를 처음에는 이해하지못하지만,
지인의 도움으로 그는 취재할 기회를 얻게됩니다.
아마도 한국의 상황처럼 여러 편견속에서 어렵게 시작한 취재활동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수은중독을 발생시키 대기업은 이 사실은 감추려고하고, 의사들은 한참동안
이 병의 원인을 찾지못합니다. 수은이 의심스럽지만, 이 작은 어촌마을의 주민들은
그 오염된 물고기를먹고 살지 않을수 없습니다.
작은 어촌에서 그는 그 병에 걸린 사람들을 가까이하면서 충격을 받게됩니다.
그러면서 '피사체가 충격적이면 충격적일수록 오히려 부드럽게 찍은 사진이
역설적으로 더 좋은 효과를 내는 경우도있다"고 말합니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사진을 일회적으로 지나쳐 버릴 수도 있다는 그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사진이라고해서 표현기술을 소홀이 여기면 안되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사진을 찍는것만으로서 기록사진의 사실성을 충분히 드러내진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미나마타병의 환자인 어떤 소녀를 천사처럼 표현합니다.
그는 이 작업 과정에서 취재나온 유진 스미스도 만나게됩니다.
문화적인 이유로 일본 사진가가 찍을수없는 사진을 스미스가 찍었다고
시세이는 말합니다.(*환자의 엄마가 환자를 목욕시키는 장면)
책의 뒷면 나오는 그의 이야깁니다. "나는 사건이나 문제의 현장에 직접들어가
나만의 눈으로 그들을 포착하고자 애썼다. 어떤 조직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입장에서, 문자 그대로 핸드메이드의 다큐맨터리 사진을 찍어왔다.
그런 나에가 다큐멘터리 사진가라고하는 용어가 오히려 더 잘어울리는것같다."
나만의 눈이란 말은 모든 예술에 적용되고 또 다큐 사진가에게도 적용되는가 봅니다.
그리고 아마추어의 장점은 어떤 소속이없기때문에 오히려 사진을 통해서 자유롭게
말할수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책은 재미있어서 몇 일 사이에 읽게되었습니다.
잇따라 나오는 한국 이야기와 베트남 이야기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일본인 작가가본 한국의 이야기는 새로운 시각을 기대하면서 보게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많이있지만, 더 많이 더욱 세계적인
작가들이 나오게되길 바랍니다.
시세이 작가의 부인이 한국여자란 것도 그의 한국관심과 관련이있다고 생각합니다.
흥미있는 이야기입니다. ^^
* 사진 1 : 미나마타환자의 '성년식'날 기념사진 1977
** 사진 2: 한국 1965년 수표교 근방
일본의 아마추어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일본의 최고의 다큐 사진가가 된
구와바라 시세이가 말하는 나의 사진, 나의 삶이라는 책 표지의 설명이있습니다.
책의 제목처럼 이책은 어떤 작가의 사진 삶을 통해서 다큐 사진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것입니다.
구와바라 시세이 (1936- )는 일본 시마네현 츠와노 출생으로, 도쿄농업대학과
도쿄사진전문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수은 중독 공해병인 '미나마타병'을 주제로 한
첫번째 작업이 1962년 일본사진비평가협회가 주는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사진계에 입문하였습니다.
1964년부터 두번째 작업으로 한국을 취재,기록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40년간
한국을 수십차례 드나들면서 10만여 컷의 방대한 작업을 축적하였습니다.
그가 한국에서 촬영한 사진은 '사전 전면에서 벗어나지만 현실의 핵심을 찌르는
영상미학과 표현 스타일'을 시종일관 견지해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1982년 일본 이나노부오 사진상과 2002년 한국에서 주는 동강 사진상을 수상합니다.
한국에서 그의 다른 책은 그가 한국에서 작업한 사진들을 모은 사진집
<내가 바라본 격동의 한국>(2008,눈빛)이있습니다.
그는 2010년 일어난 북한의 포격 사건으로 세계적인 시선을 모았던 연평도를 2011년
방문합니다. 이것이 그의 최근 한국 방문이며, 작업입니다.
이책은 다큐멘터리사진은 무엇인가로부터 시작합니다. 다큐멘터리사진은 일본에서
'보도사진'이란 명칭으로 1933년 부터 사용됩니다. 이것은 미국의 화보 주간지
라이프(Life)지가 창간되기 3년전의 일입니다.
물론 일본에서 '포토그래퍼'란 용어보다는 '카메라맨'이란 말이 먼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 카메라맨이란 용어를 싫어합니다.
한국에서도 사진기자가 한때 카메라맨이란 말로 쓰였던것같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종식되고, 라이프지가 1972년 사라집니다.
로버트 카파는 전형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1960년 도쿄농업대학을 졸업하고 전공분야에서 직업을 찾을 필요를 못느낀
시세이씨는 1960년 5월 10일 '미나마타'를 취재(*프리랜서로서)하기위하여 기차를 타게됩니다.
그 일이 앞으로 그를 다큐사진가로 만들 최초의 작업이될줄 모르면서 말입니다.
병원 의사들은 사진으로 이 해괴한 병을 취재하겠다는 그를 처음에는 이해하지못하지만,
지인의 도움으로 그는 취재할 기회를 얻게됩니다.
아마도 한국의 상황처럼 여러 편견속에서 어렵게 시작한 취재활동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수은중독을 발생시키 대기업은 이 사실은 감추려고하고, 의사들은 한참동안
이 병의 원인을 찾지못합니다. 수은이 의심스럽지만, 이 작은 어촌마을의 주민들은
그 오염된 물고기를먹고 살지 않을수 없습니다.
작은 어촌에서 그는 그 병에 걸린 사람들을 가까이하면서 충격을 받게됩니다.
그러면서 '피사체가 충격적이면 충격적일수록 오히려 부드럽게 찍은 사진이
역설적으로 더 좋은 효과를 내는 경우도있다"고 말합니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사진을 일회적으로 지나쳐 버릴 수도 있다는 그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사진이라고해서 표현기술을 소홀이 여기면 안되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사진을 찍는것만으로서 기록사진의 사실성을 충분히 드러내진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미나마타병의 환자인 어떤 소녀를 천사처럼 표현합니다.
그는 이 작업 과정에서 취재나온 유진 스미스도 만나게됩니다.
문화적인 이유로 일본 사진가가 찍을수없는 사진을 스미스가 찍었다고
시세이는 말합니다.(*환자의 엄마가 환자를 목욕시키는 장면)
책의 뒷면 나오는 그의 이야깁니다. "나는 사건이나 문제의 현장에 직접들어가
나만의 눈으로 그들을 포착하고자 애썼다. 어떤 조직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입장에서, 문자 그대로 핸드메이드의 다큐맨터리 사진을 찍어왔다.
그런 나에가 다큐멘터리 사진가라고하는 용어가 오히려 더 잘어울리는것같다."
나만의 눈이란 말은 모든 예술에 적용되고 또 다큐 사진가에게도 적용되는가 봅니다.
그리고 아마추어의 장점은 어떤 소속이없기때문에 오히려 사진을 통해서 자유롭게
말할수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책은 재미있어서 몇 일 사이에 읽게되었습니다.
잇따라 나오는 한국 이야기와 베트남 이야기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일본인 작가가본 한국의 이야기는 새로운 시각을 기대하면서 보게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많이있지만, 더 많이 더욱 세계적인
작가들이 나오게되길 바랍니다.
시세이 작가의 부인이 한국여자란 것도 그의 한국관심과 관련이있다고 생각합니다.
흥미있는 이야기입니다. ^^
* 사진 1 : 미나마타환자의 '성년식'날 기념사진 1977
** 사진 2: 한국 1965년 수표교 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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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유경희님의 댓글
유경희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전 부터 관심이 있었는데...
서점에 가서 찾아봐야 겠습니다.
김승현님의 댓글
김승현
이 짦은 소개글을 쓰면서 유교수님하고, 최관식님 처럼
일본에서 활동하고있는 우리 라클의 회원분들이
생각났습니다.
한국사람이 사진으로 본 일본이란
주제의 책이 있을텐데요....소개좀해주시고,
또 그런 사진집 기획해보시죠?
댓글 감사합니다.
김용준님의 댓글
김용준
책장을 넘기는 내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 작금의 한일관계를 바라보며 일본을 생각하고 우리 보다 우리나라를 더 잘알고 사랑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또한 포토저널리즘 작가의 본분을 그 누구보다 철처하게 지키고 지켜 나가려는 작가정신에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책 소개 해 주신 김승현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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