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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진가 5. -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

페이지 정보

  • 작성자 : 도웅회
  • 작성일 : 02-05-13 16:22

본문

▽ No, 212
▽ 이름:도웅회 (redelmar@hanmail.net)
▽ 분류:기타
▽ 2002/1/28(월) 17:46 (MSIE5.5,Windows98,Win9x4.90) 61.252.206.70 1152x864
▽ 조회:629

위대한 사진가 5. -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



앙리 까르띠에-브레송(Hanri Cartier-Bresson, 프랑스,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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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고 라이카사진에 대한 생각의 출발점이기도 했던 그는 '라이카'와 '까르띠에-브레송' 그리고『결정적 순간』, 이 세 이름은 사진사에 영원히 빛을 발할, 뗄래야 뗄 수 없는 삼위일체의 표본이다. '라이카' 없는 '까르띠에-브레쏭'을 생각하기 쉽지 않지만 '까르띠에-브레쏭'만큼이나 '라이카'의 명성을 높여준 사람도 없다. '라이카'를 만난 '까르띠에-브레쏭'이 만들어낸『결정적 순간』은 캔디드 사진의 결정판으로 그의 사진집 이름일 뿐만 아니라, 캔디드 사진 미학의 용어로 통할만큼 사진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까르띠에-브레쏭(Cartier-Bresson)이 대상에 접근하는 방식은 이제까지의 사진가들과는 다른 독특한 일면이 있었다. 그는 주관과 객관이라는 이분법적인 입장에서 대상을 논리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직관에 의한 생명적인 공감으로 파악하려 했다.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주장에 의하면 대상을 인식하는 방법은 두 가지로, 하나는 대상을 외부에서 관찰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내부에 들어가서 직접 경험하는 방법이다. 까르띠에-브레쏭은 직관을 통해 생동하는 생명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방법을 시도했다.


그가 생명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방법은 대상에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대상 속에 들어가서 대상과 함께 하나로 공감하려는 경험적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까르띠에-브레쏭의 사진적 관점은 '너'와 '나'라는 상대적 입장이 아니라 '우리'라는 절대적 입장이다.
까르띠에-브레쏭의 대상을 인식하는 입장이 특이한 것은 대상의 본질에 대한 견해이다. 그는 모든 대상의 궁극적인 실재는 생명력이라고 보았다. 자연 안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변화의 배후에 어떤 불변의 실체(實體)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의 실재(實在)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되는 그 자체, 생명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상의 본질을 시각적인 조형 원리로 파악하려는 '새로운 시각(New Vision)'주의자들, 광학적인 냉철한 시각으로 대상의 본체를 철저하게 객관화하려는 즉물주의자 등과는 대상에 대한 접근방식이 달랐다.
생명력은 물질적인 것과는 달리 끊임없이 생성하고 약동하는 지속적인 것이어서, 그의 생명적 직관은 지속(持續)의 직관으로, 영원한 과정으로서의 지속을 사진기에 담으려 하였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카르띠에-브레쏭은 대상을 시·공간적으로 파악했다. 일반적인 경우 시간과 공간을 분리된 독립적 범주로 파악하지만, 그는 이 둘을 서로 뗄 수 없는 통합된 것으로 인식한 것이다. 즉 생명적인 본질은 결코 분석적으로 나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하나로 통합된 전체성을 갖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의 대상에 대한 접근 방식은 하나로서의 전체로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이다.
사진은 기계에 의한 기록이기 때문에 표현이 단순하고 제약조건이 많아 과연 예술일 수가 있는가 하는 예술적 타당성에 대한 반문이 많이 있었다. 또한 역사적으로 사진의 예술성을 추구하는 경우, 사진의 표현적인 한계를 타개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까르띠에-브레쏭은 이와는 정반대로 의도적으로 가장 평범하고 가능한 한 단순하게 사진의 기록적 속성 그대로 표현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주제의 선택에 있어서 그렇고, 주제를 다루는 자신의 사진적 시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까르띠에 브레쏭은 소재가 가장 함축적인 국면을 드러내며, 환기력을 가장 잘 발휘하는 형상에 놓이게 되는 바로 그 순간을 읽어내는 데에 능했다. 그는 소형 사진기가 그런 것을 즉시 사진에 담게 할 수 있는―마치 육안의 연장처럼―이상적인 무기임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우연에 의존하는 것과는 결코 다른 것이다. 그는 파인더를 통해 항상 음화 전체의 짜임새를 고려하며 구성한다. 그의 초기 작품들―그는 1932년 그의 첫 번째 라이카를 구입했다―에는 형태의 강조와 더불어 평범한 눈으로는 시공(時空)에서 보이지 않을 그런 평범한 것의 측면을 포획한 기쁨이 있다. 인간에 대한 그의 관심은 보다 열정적인 것이었다. 1938년 런던에서의 조지Ⅵ세의 대관식 사진과 같은 거의 풍자화에 가까운 작품도 적지않게 제작했다. 거기에서 그는 화려한 구경거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무심한 구경꾼들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는 렌즈에 의해 맺히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이미지가, 형태와 표현 그리고 내용의 시간을 뛰어넘어 영원한 조화를 획득하는, 바로 그 절정의 한 순간을 붙잡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신속하게 계속적으로 촬영할 수 있는 35mm 사진기의 능력을 잘 보여준 탁월한 사례를 남겼고, 혼신의 힘을 다해 작업하고 있다.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주로 전세계를 무대로 촬영 여행을 하는 것으로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나라에서 찍은 사진이든 민족적 특징이나 국가마다의 고유한 지역적 색채가 전혀 풍기지 않고 거의 똑같이 일상적 상황만이 공통되게 처리되었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는 찍힌 대상들의 개별적 특징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오직 일상적 상황만이 한결같이 부각되어 있을 뿐이다. 바로 이 점이 까르띠에-브레쏭의 사진 미학에서 주목되는 특징의 하나이다. 그의 사진에서의 주제는 언제나 일상적 상황 바로 그것이었다.
그가 사진에 담으려는 주제가 이렇게 평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또한 지극히 평범한 것이다. 그는 오로지 라이카 사진기에 거의 대부분 50mm 렌즈를 끼고 대상을 찍었다. 예외로 광각렌즈나 망원렌즈를 쓸 수밖에 없는 경우에도 고작 35mm 광각렌즈나 준(準) 망원렌즈를 사용할 뿐이었다. 그래서 가능한 한 평범한 시선의 궤도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는 일상적 시선으로 모든 사진의 대상들을 처리하였던 것이다.
까르띠에-브레쏭의『결정적 순간』이 지니고 있는 의의는 촬영 기법의 기민한 반응, 즉 명사수가 표적의 한가운데를 꿰뚫는 놀라운 적중률과 같은 단계를 하나 더 넘어선 것이다. 그의 사진에서 누구나가 감탄을 금치 못하는, 의미 내용과 사진적 형식의 완전에 가까운 일치는 뒤집어서 생각하면, 사진이 본능적으로 함유하고 있는 내용과 언어와의 자동적인 일치기능에서 온 동일한 의미전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이러한 사진에 대한 완성도는 제2차 세계대전 후 50년대의 새로운 영상사진의 등장을 가져왔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젊은 세대들에 의해 전개된 영상사진의 새로운 성격은 인간의 내면의식과 영상언어의 심층적인 일치에 대한 추구였다.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윌리암 클래인(Wiliam Klein), 그리고 엘스킨(Van Der Elsken) 등에 의해 주도된 영상사진의 새로운 자각은 이미 까르띠에-브레쏭의 사진작업에서 자각된 실마리의 본격적이며 적극적인 추구라고 말할 수 있다.

사진의 선승(Zen master)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을 말하면서 아마도 그의 사진집 제목으로부터 유래된 <결정적 순간 Image a La Sauvett, The Decisive moment>를 언급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까르띠에 브레송은 단순히 <결정적 순간>으로 응축되기에는 그 폭이 너무나 큰 작가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는 사진 예술을 통해 철학(哲學)한 인물이자 후대의 많은 사진 작가들에게 있어 숱한 영감과 감화를 준 위대한 사상가의 풍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그가 어떤 말이나 글로 전했다기 보다는 그의 사진작업들을 통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누구보다 뛰어난 사진 기자이기도 했다.

Image의 추구

까르띠에 브레송은 1908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섬유회사를 경영하고 있었고, 까르띠에 브레송은 어려서부터 미술을 비롯해 당대의 여러 예술적 경향들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조건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는 후일 그가 사진 작업을 통해 평생 이미지를 추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게 되는 첫 출발점이었다. 그는 처음엔 화가가 될 생각으로 1927년부터 2년 동안 그림을 공부했다. 그는 자크 에밀 블랑슈, 앙드레 로트 밑에서 공부하기도 했고, 초현실파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테리아드 출판사를 드나들기도 했다. 이때부터 그의 삶은 형상(image)의 엄격성에 집중된다. 아프리카에 체류하면서 라이카 카메라를 처음 구입한 그는 멕시코, 미국 등지를 여행하면서 폴 스트랜드 곁에서 영화를 배우고, 1932년에는 줄리안 레비 화랑에서 처녀전을 열기도 한다. 또 프랑스로 귀향한 뒤로 장 르누아르와 자크 베케르 감독과 함께 영화제작에 참여하기도 한다.

스물 두 살 무렵이던 1930년 마르세이유에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평생 라이카 카메라만을 애용했다. 당시는 중형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그가 라이카를 즐겨 사용했다는 것은 그가 르포르타주 사진가로 활동한 사실과도 관련이 깊다. 1932년부터 2년 동안 스페인 지중해 연안, 멕시코, 미국의 각지를 다니면서 각종 사진을 찍었다. <폐허에서 노는 아이들>은 이때에 그가 찍은 대표작이다. 1936년 봄, 그는 파리의 어느 신문사 사진부에 들어가기 위해 입사시험을 보았는데 낙방하고 말았다. 이때 헝가리 출신의 로버트 카파와 데이비드 세이무어도 응시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그날 우연히 들른 어느 카페에서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서로 교류가 시작되었고, 이날의 만남에서 의기투합한 그들은 후일 이란 사진작가들의 연합통신사를 설립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그 역시 프랑스군에 종군하여 영화사진반에 참가했으나 1940년에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포로수용소에 갇힌 그는 몇 번의 탈출 시도 끝에 1943년 겨우 탈출에 성공하여 파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파리에 돌아온 그는 이내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가했고, 이때부터 프랑스의 저명한 예술가들의 인물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까르띠에 브레송은 전쟁 후에도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uge), 루오(Georges Rouault) 등을 촬영하며 예술가의 내면의 깊이를 어떻게 화면에 정착시킬 것인가에 노력을 쏟았다.

종전 후인 1946년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대규모로 열린 그의 작품전을 통해 그의 명성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이듬해인 1947년 로버트 카파, 데이비드 세이무어, 조지 로저 등이 중심이 되어 <매그넘MAGNUM>을 설립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사진기자들의 불안한 지위와 특정 매체(신문사와 잡지)의 틀에 박힌 편집 방향과 포맷으로부터 벗어나 사진가의 개인의 관심과 개성 그리고 자유로운 해석을 보장받기 위해 창립된 사진 에이전시가 바로 <매그넘>이다.(그러나 이런 매그넘의 경향과 탄생이 현재에 와서도 그대로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이름인 매그넘MAGNUM이 '크다'라는 의미의 희랍어로 위대한 사진가를 지칭한다고 하지만 이는 동시에 대형연발권총을 의미하는 영어‘Magnum’의 동음이의적 관계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진의 탄생이 처음엔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에 의한 것이었고, 근대성의 산물이었던 것처럼 매그넘은 닫힌 서구의 시각을 그대로 대변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에 <매그넘과 인간가족전>편에서 좀더 자세히 다루겠다.)어쨌든 경제적 착취와 기존 매체들의 모든 압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설립된 국제보도사진가 집단체로 세계에서 가장 실력있는 사진통신사 중 하나가 되었으며 설립 이듬해 뉴욕에도 사무실을 개설했다.

매그넘의 주요사진가이자 주요 설립자 중 하나였던 카파는 1954년 인도차이나에서 지뢰를 밟아 사망했고, 침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데이비드 세이무어는 1956년 수에즈 상륙작전 때 사망했고, 베르너 비쇼프는 1954년 페루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러나 이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매그넘이 타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그후로도 주로 미국인들을 중심으로 젊은 신세대 사진가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며 더욱 규모를 키워나가 현재에 이르고 있다. 브레송은 그후 3년 동안 중공, 인도, 버마, 인도네시아, 이란 등으로 여행하여 동양 민족의 생활과 그 풍토를 촬영하였다. 그 사진들은 중공이 정권을 잡기 전후의 민중의 혼란 상태와 인도 민중의 비참한 생활상태 등을 박진감 있게 표현하여 주목을 끌었다. 이제는 고전이 된 그의 첫번째 대형 사진집은 <재빠른 영상들>(1952)이다. 거의 20여 년간 그는 세계를 누비면서 당대의 가장 위대한 탐방기자로 대접받았다. 그는 이제 다시금 그림으로 돌아와 있지만 그것은 그에게는 현실과 시각의 본질적인 문제를 추구하는 또 다른 방식일 뿐이다. 그 후 또다시 소련을 여행하며 공산주의 정권 아래의 민중의 일상생활 모습을 촬영하고 발표하는 한편 1955년에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사진가로서는 최초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이때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진가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로 중량감있는 사진 표현으로 보는 사람을 감동시켰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과 결정적 순간

만약 그가 단지 그냥 한 명의 충실한 보도사진가라면 그가 지금처럼 유명한 사진작가로 추앙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그보다 한발 더 나갔기 때문이었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천재성은 매그넘의 모험을 따랐으나 자기 자신은 그보다 더 멀리 앞서 나갔다. 그러나 1933년의 스페인 여행에서 그는 본격적인 르포르타주 사진에 착수하게 된다. 그는 여기에서 자신이 두뇌를 써서 사공한 이미지보다 "결정적 순간"의 탐구에 훨씬 재능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기자의 사진찍는 행위를 가장 완벽하게 정의했던 인물이 바로 까르띠에 브레송이다. "사진은 어떤 사실의 의미와, 그 사실을 시각적으로 설명하고 가리키는 형태의 엄격한 구성이 한순간에 동시에 인지되는 것이다." 현실의 어떤 치밀한 순간을 포착하고 또 형태들이 함께 어울리도록 하는 데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이미지에서는 다소 차가우면서도 섬세한 멋이 나며, 그것은 찬양도 비판도 아닌, 단지 현실을 꼼꼼히 분해하고 거기에 어떤 스타일을 결부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르포르타주는 승리를 거두고 있으면서도, 개성적인 표현을 추구하는 사진가와 이미지를 대중적으로 이용하려는 이념적 체제 사이의 분열의 싹을 키우고 있었다. 불과 극소수의 작가들만이 가장 생생한(거친) 사실과 접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표현 욕구에 제동을 걸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고사이트 & 참고 도서

『대표작으로 보는 세계사진가들의 사진사상』/ 임응식 지음/ 해뜸/ 1986년
- 우리나라 사진계의 원로 작가이자 교육자인 임응식 선생이 19세기말 20세기 전반기의 사진 작가들의 사진 경향과 생각(사상), 사진을 정리하여 글로 옮긴 내용이 담긴 책이다. 한 권으로 여러 작가들을 알 수 있게 된다는 장점이 있는 책이다. 다만 <해뜸>출판사의 책들이 대개는 수록한 사진도판들의 사태가 썩 좋지 못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진 책 치고는 염가판이고, 그만큼 다양한 작가들을 다루고 있는 책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한 번쯤 꼭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사진예술개론』-열화당 미술신서52<개정판>/ 한정식 지음/ 열화당/ 1997년
- 한정식 선생이 작심하고서 만든 책답게 사진예술에 대한 개론서로서 가장 잘 정리되어 있다. 물론 사진 실기에 관한 책은 아니다. 사진에 별 관심이 없는 이들도 참고삼아 한 번 정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상식 밖의 예술사』/ 정윤 지음 / 새길/ 1995년
- 예술사를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느껴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읽다보면 상식도 늘고 예술이란 게 복잡한 이론을 늘어논다고 해서 알 게 되는 것이기보다는 자신이 어떻게 느끼고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임을 새삼 일깨워주는 대중적인 예술사 입문서적이다. 단, 오탈자가 제법 많은 편이고, 작자의 착오에서 비롯된 듯한 잘못들이 군데군데 보인다는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서 모차르트 죽음 편에서 영화 <아마데우스> 중 모차르트 역을 맡았던 배우를 '발 킬머'라고 한다거나 사실은 '톰 헐리'였다, 등등이 그렇다.

포토그래퍼
- 개인이 만들었다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잘 정돈된 사진 사이트입니다. 추천합니다. 다들 한 번씩 보세요.(한글)

사진의 거장
- 사진에 관심이 있으시다구요. 그럼, 당연히 이 사이트를 알아야 합니다. 이 사이트를 모르고는 최소한 인터넷상으로는 사진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죠. 반드시 알아두시고 그러면 공부하는 데 여러모로 도움이 될 사이트입니다. <마스터스 오브 포토그래피> 사진작가들에 대한 명예의 전당 같은 곳입니다. 강력추천(영문)

매그넘
- 로버트 카파나 브레송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매그넘(MAGNUM)이야기를 빠뜨리면 이들이 얼마나 슬퍼하겠는가? 매그넘도 이들을 기념하고 있다.(영문)

포톨로지
- 브레송의 다양한 사진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사진의 거장>편에서 보다 더 많은 사진이 있으므로 브레송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필히 방문해보실 것.(영문)

워싱턴 포스트
- 가끔 놓치면 후회할 껄이란 말을 쓰고 싶을 때가 있는 데 브레송에 관한 한 이 사이트 역시 그렇다. 포트레이트를 중심으로 그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영문)

포르토
- 사진의 거장답게 그에 대한 좋은 사이트는 아주 많은 편이다. 나머지는 알아서 발품들을 팔아 보시길 부탁드린다.(불어)

그는 절대로 연출하지 않고, 트리밍하지 않는 것을 특징으로 삼았다. 1952년 출판한 그의 사진집 <결정적 순간>에서 그는 자신의 사진미학을 권두에 밝혀두고 있다. 그는 촬영 대상의 움직임 중 가장 좋은 순간을 가장 적절한 시간에 포착했다. 이를테면 그는 피사체에게 '아, 좋아요. 잠깐 거기 멈춰 서세요.'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에게 있어 결정적 순간이라는 것은 단순한 시간적인 것이 아니고 대상 자체의 본질이 가장 잘 드러나고 있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그는, 촬영하는 동안 현실을 조작하려 해서는 안되며, 실제의 자연광을 존중하지 않고서 플래시 라이트의 도움을 받으면 어떤 사진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사진찍히는 사람이 카메라나 그것을 다루는 사람에게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고, 복잡한 장비나 반사판 등 사진을 찍기 위해 필요하다고 우리가 믿고 있는 여러 기자재들은 멋진 작품을 만드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믿었다. 또한 그는 현상, 인화 과정에서의 조작과 사진을 트리밍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또한 그는 카메라의 앵글의 변화들을 통해 강조를 주고 주의를 환기하는 형태의 촬영에 반했고, 광각이나 망원렌즈로 촬영하는 것도 되도록 멀리했다. 그는 또한 칼라 사진에 대하여, 흑백사진에 의해 포착되는 삶의 움직임과 성취감을 손상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어느 정도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왜 트리밍조차 거부했는가?

까르띠에 브레송에게 있어서 사진은 일종의 구도(求道)와 같은 것이었다. 그를 포함하여 많은 사진작가들(드니 브리아, 마이너 화이트 등)이 염두에 두었던 것은 사수가 과녁을 명중시키기 위해서는 자신과 과녁 사이의 거리를 재어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과녁에 동화시킴으로써 과녁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진가는 자신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다만 사물들의 존재만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연과 구성 사이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는 카메라를 자신의 눈의 연장으로 인식하고 마치 시선을 따라 사물이 보일 때 그것을 마음에 담는 기분으로 카메라를 조작했다. 그는 우리의 시선이 대상을 보이는 데로 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인위적으로 재단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그런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미지를 조작할 수 있는 수단의 절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진을 마치 불교의 선승이 도(道)에 이르는 과정과 흡사한 것으로 변화시켰다. 선승이 순간의 직관으로 도에 이르는 것처럼 그의 카메라 역시 순간으로 승부를 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직관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거기에서 '본질'까지 파악할 수 있다고 그는 믿었던 것이다.

그에게 사진의 시각적 구성이란, 사진가 자신의 감각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었다. 그는 말이 사라진 세계에서 이미지라는 도(道)를 추구한 철학자였다. 그는 당대의 많은 유명인들을 촬영했으나 정작 자신은 사진에 찍히기를 달가와 하지 않았고, 자신의 작품에 표제를 달지 않으려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엔 때와 장소만 있을 뿐 제목이 없다. 그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스쳐 지나가는 실재의 외관에 모든 능력이 집중되는 순간에 숨을 죽이는 것이다", 라고 말하였고, 그 순간이라는 것은 단순한 시간적인 것이 아니라 대상 자체의 본질이 가장 잘 나타난 순간이라고 하였다. 더구나 주위와의 관계와 광선 등의 상태까지 포함해서 '광선과 구도와 감정이 일치된 순간' 즉, '대상과 촬영자의 내부의식의 일치'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었다.



* 그의 작품 *

http://www.photology.com/bresson/
http://www.npg.si.edu/exh/cb/index-int2.htm

http://www.porto.art.br/bresson/piccoli/piccoli.htm
http://www.porto.art.br/bresson/nadia/nadia.htm
http://www.porto.art.br/bresson/india/index1.html
http://www.porto.art.br/bresson/euro/index1.html
http://www.porto.art.br/bresson/america/index1.html
http://www.porto.art.br/bresson/portrait/page000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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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종흥님의 댓글

이종흥

몇달전 타계했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평소 좋아하던 사진가인지라 브레송의 사진전을 지난달 부산에서 보았습니다 . 브레송의 사진을 원본으로 본다는것에 참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살아생전 마지막 친필 싸인이라 많이 흔들린 필체라고 소개를 하던 분의 말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러한 사진의 선구자들의 작품을 대할때면 지금의 제 모습이 너무 안일하진 않나 생각해봅니다 소중하게 올리신 도웅회님의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건욱님의 댓글

이건욱

오늘부터(5월21일)예술의 전당에서 사진전 한다죠?

정현주님의 댓글

정현주

처음 사진을 접할때 이분을 좋아하지 않은분은 없을것같아요..
트리밍하지 않은 브레송사진을 좋아햇습니다..
글잘읽엇습니다..^^
근데 예술의전당에서 언제까지 하나요??

노찬형님의 댓글

노찬형

표가 한장 생겨서 가볼려고 했는데.
좋은 글 감사합니다.

지일구님의 댓글

지일구

예술의 전당에서 7월 17일까지 입니다.
이제 이번주가 지나면 당분간은 그렇게 크게 전시하는 것을 볼 기회가 드물지 않을까 싶을만큼 전시된 작품수가 많습니다.

권종철님의 댓글

권종철

결정적 순간... 사진을 모를 때는 그게 뭐 대단한가 생각했는데
점점 대단함이 느껴지더라구요..

사진인의 영원한 스승이 아닐까합니다.

송명근님의 댓글

송명근

전시회 있다는 소식만듣고 갈수가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이재유님의 댓글

이재유

오늘 ICP에 앙리 카티에 브레송의 Scrap Book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브레송이 직접 정리한 스크랩북에서 떼어낸 진짜 사진들을 보니 신기하더군요. 사진들도 너무 작고 오래되서 색도 바랜듯 보이고 사진위에 빨간 유성펜같은게 묻은것도 보이더구요. 첨보는 사진들도 많아서 좋았습니다.

김정대님의 댓글

김정대

우연히 서점에서 사진집을 보고서
아.! 감탄사를 외쳤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땐 이 사람이 누굴까.. 하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이렇게 좋은 정보(?)를 접하게 되어
너무나 기분이 좋네요.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박상현pshyun님의 댓글

박상현pshyun

벼르고 벼르다가, 좀 전에 사진집 주문했습니다.

8만원이나 하는 가격이 좀 부담스러웠지만,

(할인을 받아도 7만원 가까이 되더군요. ㅡ.ㅡ)

막상 주문버튼을 누르고 나니까, 괜히 뿌듯합니다. ^^

전주일님의 댓글

전주일

역시 브레송의 사진들은 예나지금이나 감동입니다

소장하고 싶지만 가격이^^;;;;

브레송의 풍경사진들도 무척 마음에 들던데...

언제 함 맘먹고 질러야겠네요~~~

김 준식님의 댓글

김 준식

가장 생생한 사실이.. (거친) 사실이라는게.. 왠지 와 닿네요..

김주홍님의 댓글

김주홍

늦은 내용일수도 있는데, 지금 일본 도쿄의 박물관에서 8월까지 브레송의 모든 사진에 대한 전시회를 하고 있습니다.
도쿄의 왕이사는(황궁) 근처에 하나밖에 없는 일본 도쿄의 무슨 박물관인데, 그곳에서 브레송의 사진전시회가 있으니, 일본에 계신분 혹은 일본도쿄로 여행하시는 분은 한번 들르셔도 괜찮으실듯. 이번 전시회는 일본에서만 열립니다.

안형진/브러운님의 댓글

안형진/브러운

^^전 오늘 사진집보려고 도서관에 가보려합니다~^^요즘은 구립도서관에서

책을 저녁10시까지나 빌려주더군요~^^두근두근합니다

오주용님의 댓글

오주용

책으로만 조금씩 접할 수 있었던 작가의 작품을 보게 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최경민님의 댓글

최경민

ebs 지식e채널이란 프로에서 처음 봤던 레송이 형님..
정말 강렬한 인상이었습니다..

김 민 석님의 댓글

김 민 석

동영상을 봤습니다. 사진찍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 시더군요.

권오현=님의 댓글

권오현=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 작가에요.
그분의 느낌을 배우고 싶군요.

지충구님의 댓글

지충구

한때 그의 사진을 닮아보려 애를 쓰던 시절이 있었죠. ㅋㅋ

김혁님의 댓글

김혁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많은 엽서속의 사진 주인공

백승현님의 댓글

백승현

서점에서 사진집을보고 정말 감동이...

최승원님의 댓글

최승원

기록과 창작의 경계에 서서 고민하고 갈등하던 내게 길을 열어준 사진가. 그러나 더 어려운 과제 또한 던저준 사진가. 이처럼 완벽한 사진가가 또 있을까....정지된 피사체를 세팅해가며 사진을 만드는 일은 너무나 쉽다. 그러나 빠르게 움직이는 혹은 어디로 움직일지 모르는 피사체를 상대로 좋은 사진을 만드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통제할 수없는 피사체를 대상으로 완벽한 사진을 만든 그가 정말 위대해 보인다.

홍순익님의 댓글

홍순익

선물로 받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사진집을 보고서
공감하며 닮아가려고 노력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필름을 현상하고서는 실망만을 했던....
그리고 또 이큅에 신경을 더 쓰고
열심히 노력해야 겠습니다

Arch.김현수님의 댓글

Arch.김현수

봐도봐도 가슴을 설레게하는 글과 사진 너무 멋있어요

오창우님의 댓글

오창우

쁘레송에 관한 1시간 분량의 동영상을 링크합니다..

http://video.google.co.kr/videoplay?...+bresson&hl=ko

말년의 쁘레송과 Charlie Rose라는 분과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많은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져있더군요.. 짧은 영어로 대충 귀 담아 들었습니다만..^^
특히 개인적으로 가슴에 와닿은 얘기로는 이소룡이 주연했던 용쟁호투에서 도입부에서 수련하는 제자에게 머리로 생각하지말고 느끼라는 꾸짓음과 유사한 내용이었습니다..
Sensitivity,Geometry란 그의 사진에 있어 어떤 의미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이승형]님의 댓글

[이승형]

브레송 정말 감동의 명작이기에 충분합니다.
볼때마다 고개가 숙여집니다.

유재홍/백만님의 댓글

유재홍/백만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분이십니다.


좋은 자료 감사히 잘 봤습니다.

강욱조님의 댓글

강욱조

제가 가장 처음 알게된 "유명한 사진가"님입니다.. 알고보니 가장 유명한 분이셨더군요..
헌데 아직 이분의 주요 작품을 제대로 보지를 못했습니다.
몇몇 작품을 인터넷 상으로 보긴 했는데 실제 사진집 같은 것으로 보고 싶네요..
암튼.. 감사합니다~

이화수님의 댓글

이화수

라이카를 알게 된 계기가 된 브레송.
그의 작품을 너무나 좋아하기에
닮고 싶은데..

아직 너무 머네요

김솔하님의 댓글

김솔하

리얼리즘 사진에 관심이 있다면
절대 모를수가 없는 분이지요~ 이분의 전기도 책으로 나와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임수준님의 댓글

임수준

... 카메라는 사물의 이유를 묻는 물음에 답하기에 적합한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이 물음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최선의 경우 카메라는, 직관이라는 고유한 방식으로, 묻는 것과 동시에 답한다. 그래서 나는 '객관적 우연(hasard objectif)'을 찾아 능동적으로 소요(逍遙)하는 가운데 카메라를 이용했던 것이다.

- 모스크바 에세이 후기, 1973

+

그의 글중에서 기억에 남는 문구라 옮겨봅니다.

이 수찬님의 댓글

이 수찬

브레송과 라이카 그리고 결정적 순간
저도 함께 하고싶습니다.

-박성환-님의 댓글

-박성환-

브래송 덕택에 라이카를 알게 되었지요...
브래송 사진집이 집에 몇권있습니다..
카파와 함게 제일좋아하는 사진가에요

김유동님의 댓글

김유동

H.C.B 관련의 글들은 역시 존경과 칭송의 글이 많네요.
자서전을 읽은 후 그에게 사진은 그의 예술 혼을 표현하는 한가지 수단(?)정도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말년은 데생화가로서 사진가였던 시절을 결코 높이 치지 않았던 만큼,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결정적 순간" .... 사진을 진정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가슴 떨리는 문장입니다.

현재혁님의 댓글

현재혁

저도 참 좋아하는 사진 작가인데.. 느낌은 좀 다르지만 우리나라 최민식 작가님하고 ~

노승찬님의 댓글

노승찬

사진 공부할수록 더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분입니다.
"결정적 순간"!!!

우동균님의 댓글

우동균

브레송은 어떤 모습으로 사진을 찍을까 궁금해서 인터넷에서 몇 장 찾아 올려봅니다..^^
그리고, 그 카메라와 렌즈들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지네요..^^ 첫째 사진은 HCB in France에 전시된 브레송의 카메라라고 하네요.^^





강희경님의 댓글

강희경

라이카와 브레송.
절묘한 시대적 만남이 우리를 즐겁게 합니다.
이 시대의 브레송은 우리 모두가 아닐까요?
소중한 자료 잘 보았습니다.

송창은님의 댓글

송창은

정말 소줄한 자료에 감사드립니다. 이 글타래와 중간에 언급된 참고자료 덕에 한동안 즐거운 공부가 될것같습니다

김명주님의 댓글

김명주

얼마전 카쉬전에선, 카쉬룩, 이라는 고유의 스타일을 보았는데.

아, 사진에 자신의 스타일을 담는 다는 것.
매력적인 듯 합니다.

홍성표님의 댓글

홍성표

궁금하던 자료였는데 감사합니다.^^

김명곤님의 댓글

김명곤

소중한 자료 잘봤습니다.....브레송.최고네요^^

이우진.님의 댓글

이우진.

브레송.. 너무 멋집니다.
소중한자료 감사합니다.

허영주님의 댓글

허영주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
사진인의 전설이 되었군요~

라이카인들의 전설이기도 합니다

많은 님들의 가슴속에 남아
오래도록
영혼을 지배 할 것 같습니다

세월은 흐르고
시대는 변하고 있습니다

브레송의 모습만
높이 떠서 바라볼 뿐
다른 지표는 보이지도 않는 군요

그를 따라가고
닮으려 노력 하는 모습들도
많이 느껴집니다

사진이 무얼까???
참 많이 생각해 봅니다

오래 된 자료인데.....
도웅회선생님 성의를 다한 글 감사합니다
잘 읽어 보았습니다

박 하루유키님의 댓글

박 하루유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당신처럼 저도 순간에 모든걸 걸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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