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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작은 역사> 발터 밴야민/최성만 옮김

페이지 정보

  • 작성자 : 김승현
  • 작성일 : 14-02-05 11:41

본문

도서출판 길/ 2007년

사진에 관해서 이야기할때 꼭 등장하는 책입니다. 책이라기 보다는 에세이 정도의
글입니다. 짧지만 유명한 글이라서 소개하려고합니다. 간단하게. 책의 내용도
50페이지 정도밖에 안됩니다. 밴야민의 다른 논문들과 함께 발테 밴야민 선집으로,
<기술 복제시대의 예술작품>과 함께 실려있습니다.
<기.복 시대의 예술작품>은 사진을 포함해서 모든 예술품의 기술복제에 대한
현상을 설명하는 그의 대표적인 글입니다.

밴야민은 두 가지 현상을 집중적으로 생각합니다. 우선은 예술품이 근대 자본주의
시대에와서 기술복제에 의해 대량생산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과 연결해서 두번째는 대량생산된 예술품은 소위 '아우라'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근대사회의 테크놀로지에의해서 예술이 무한 복재가 가능해졌다는 것은
다아 아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예술의 해방일까요? 예술의 타락일까요?
문화.예술의 엘리트주의 편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이 테크놀로지의 문화.예술의
타락이며, 저급문화의 보편화입니다. 그러나 귀족들의 예술독점으로부터
예술을 대중화시켰다는 점에서보면 테크놀로지는 예술을 해방시켜준 도구라고
말 할수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사진은 어떤 것일까요? 카메라 옵스쿠라가 현실화되면서
사진에 대한 미래를 꿈꾸는 자들은 한두 사람이 아니였습니다만, 사진은
시작부터 개인이 아닌 국가가 독점하게됩니다. 그래서 초기 사진은 비교적
역사속에서 모호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주목을 받지 못하게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후 사진이 몀함판사진으로 돈을 벌면서 사진기술이 시장과 만나게됩니다.
신기술이 등장하면 오래된 개념은 변하게됩니다. 그러나 사진도 초기에는
그런 대접을 받지못합니다. 찰나적인 영상을 고정시키는것은 불가능한일이라고
규정한것입니다(특히 독일 언론). 그러나 사진이 보편화되면서 점차 그 영향력은
커지게되고, 사진기술이 인간과 사회에 끼친 영향은 엄청난 여파로 밀려옵니다.
인간이 욕망해서 생겨난 기술이 이제는 인간에게 큰 영향을 미치면서 인간의 의식,
일상생활을 규정합니다.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오늘날의 사진영상이
대량복제되고 유통되고 소비되어서 인간의 마음과 사회전체의 여론과
미적 감각에 큰 영향을 미치고있습니다. 사진은 이제 소수 사진가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사진의 해방이라고 말 할수있겠습니다.
다른 한편 사진은 죽었다고 말 할수 있을까요? 진정한 예술품으로서 사진은 죽었다고
말 할수 있을까요?
탄생부터 본질적으로 "사진은 손으로 그린 그림이 우리에게 결코 줄수 없는
마법적 가치를 우리에게 줄수 있다"고 밴야민은 주장합니다.
"카메라에 비친 자연은 눈에 비친 자연과 다릅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인간이
의식을 갖고 엮은 공간의 자리에 무의식적으로 엮은 공간이 들어서기때문"이라고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걸어갈때 어떤 모습인지 아는것 같지만 실재로 고속 촬영을해서
돌려보면 자기가 무의식적으로 몸을 흔들며 걷는 모습을 그때야 알게됩니다.
사진은 의식과 무의식의 만남입니다. 밴야민은 원래 사진이 풍경사진이 시작이아니라
추상,인물사진이 시작이라고합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사진이 발명되고 사진기의 랜즈는 처음에
왕실의 인물을 찍기위해서 사용되었다고합니다 (그 다음은 귀족과 한참후에 보통사람들).
왕실의 인물을 찍기위해서 사용된 랜즈가 가장 비싼 랜즈라는것입니다.
요즘도 아주 고가로 거래되고있습니다. 그다음 사진은 풍경으로 옮아가게됩니다.
밴야민도 앗제의 이야기를 하고있습니다. 앗제가 사진으로 보여준 대상들은
문학적인 모티브이기도합니다. 난간의 일부라던지, 나무가지와 가스등,
앙상한 나무의 우듬지, 방화벽, 구명튜부가 달려있는 등잔걸이. 앗제의
그런 영상들은 침몰하는 배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현실에서 아우라를
빨아들인다고 밴야민은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아우라는 무엇일까요?
아우라의 상실을 슬퍼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아우라는 공간과 시간으로 짜여진 특이한 직물로서 아무리 가까이있어도
멀리 떨어진 어떤 것의 일회적 현상이다. 아우라는 일회적입니다.
특정 시간과 공간속에서 일회적입니다. 한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않는 것입니다.
사진을 촬영할때 그 장소와 그 시간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음악도, 그림도, 연극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술복제시대에는 이 영상을 무한히
복제할 수 있습니다. 그 대신 일회적이어야 하는 아우라는 사라지는것입니다.
실황 음악을 직접가서듣기와 CD로 듣기의 차이같다고나할까요?
사진가는 촬영할때 그 공간 그 시간의 영상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 사진가는 그 촬영 영상의 아우라를 함께 숨쉬는 것입니다.
복제예술품을 통해서는 그런 것이 불가능하겠습니다. 어섬프레하게
그려질수는 있겠지만....복제물에도 일시성이 있긴합니만, 아무래도 반복성이
더 중시되는 것입니다. 근대의 기술이 우월한 예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아우라의 상실을 근대 북제 예술의 약점으로 거론하지만,
밴야민은 꼭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기술의 발달은 세상변화의
조건이고, 예술도 그 조건속에서 변화해간다고 생각합니다.
예술품을 역사적 맥락속에서 논의해야 할 것인지...
기술복제가 공간과 시간속에서 생성된 아우라를 소멸시키는 현상을
순응해야 할 것인지...논란이 많은 짧은 글을 소개하였습니다. #

(*사진은 다음에 첨부하겠습니다.)
추천 0

댓글목록

박재호님의 댓글

박재호

좋은글 감사 합니다.

윤은선님의 댓글

윤은선

꼭사서 읽어 보고싶네요,
어름프시나마 고민하던것을 풀어줄수도 있을듯 합니다,
사진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지만
그림보다 더 극명하게 자신을 대할수 있는 매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더 어렵기도 쉽기도 하는거겠지요,,
무엇을 찍을껀지에 대한 고민에서 이제 왜 찍는지를 더 고민합니다,
왜라는 답이 나오면 무엇을 찍을지를 잡게 되겠죠,,,,
토욜 아침 힘차게 시작해 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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