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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행복한 남자 앗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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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구덕관
  • 작성일 : 07-10-1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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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사부님의 사진가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같이 공유하고자 글을 올립니다.


죽어서 행복한 남자 으젠느 앗제 ( Eugene Atget)


이미 여러분들은 몇몇 글들 (비만과 사진, 사진이 만들어진 이유 등...) 을 통해서 제가 얼마나 사진을 보는 시각이 독선적인지 보아 왔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나에 독선적 작가론을 통한 사진사적 이야기를 슬슬 시작해 보려 합니다.
도저히 나의 독선이 역겨워서 읽을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공감 할 수 있다면 같이 공부하는 분위기로 시작 합시다.

이미 내가 현대 사진을 통해 이야기 한 것처럼 내 글이 모두에게 공감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고 시작하니까요.

아쉬운 점은 제가 경제적으로는 부자가 아니어서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글에 도움이 될 작가의 사진을 올리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네요.

사진이 보고 싶은 분은 영문 이름을 복사해서 인터넷 검색창에 넣고 찾으시면 많은 싸이트에서 볼 수 있으며 좀 더 리얼하게 많은 사진을 보고 싶다면 방법은 저희 갤러리에 오셔서 비치된 작품집을 보는 것도 번거롭지만 좋은 방법 일듯 하네요.

대부분 사진의 역사에는 처음으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가 등장하지만 그것은 미국적 시각에서의 해석이고 전 시대적 흐름으로 앗제를 먼저 놓고 싶네요.

우선 작가들을 다루면서 난 그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고 어디서 공부 했으며 하는 것들은 생략 하려고해요. 그런것들은 여러분이 조금만 노력 한다면 여러 곳에서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그 작가의 사진을 이해하고 느끼는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테니까요.

죽어서 행복한 남자라고 했나요?
앗제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앗제가 그 생을 얼마나 불행하게 살았는지는 잘 아실 거예요.

우리말로 조실부모하고 참으로 밑바닥 인생을 걷다 40이 넘어 우연히 마련한 고물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으로 근근이 끼니를 이어 가다가 자폐증과 우울증으로 죽어간 사나이니까 결코 살아서 그의 삶이 행복했다고는 볼 수 없겠지요.

그는 살아서는 사진계에서 전혀 관심을 받아 본 적이 없고 죽어서야 자신의 사진이 세상에 알려지고 훌륭한 사진가로 평가 받고 있기에 죽어서 행복한 남자로 타이틀을 잡아 보았네요.

다른 많은 책에서 앗제를 다루고 앗제의 사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후대에서 나름대로의 앗제에 대한 미화적 해석이라는 것이 제 글에 결론입니다.

물론 그의 사진이 형편없는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는 예술행위의 정의를 내려 보고 넘어 가야겠네요.
예술은 의식의 표출로 정의되어지지요.
그런 면에서 앗제는 사진 활동에서 자신이 그 어떤 주장이나 의식에 의한 표출을 살아서 말 한적이 없다는 거지요.
후대에 그의 사진을 보고 신비주의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만 과연 앗제는 그런 의식에서 사진을 찍었냐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네요.
우선 앗제의 작업실 간판부터 말해야겠네요.
그의 작업실 간판은 “ 화가를 위한 자료”라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그는 철저하게 화가들에 밑그림으로 쓰이는 사진을 찍어 그 사진을 화가들이 정확하게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자료로 판매하여 연명 했다는 거지요.

그가 갖고 있던 문제점에서 우선은 자폐증을 말해야겠네요.
그는 그로 인해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려했던 작가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파리의 뒷골목을 주로 촬영 했으며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새벽이나 저녁 무렵으로 촬영 시간이 제한되어 있지요.

그런 느낌들이 후대에는 새벽 분위기와 도시의 거리속에 등장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신비감을 주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반문을 하고 싶습니다.
거기에 효과음으로는 우울증에 걸린 그는 대상을 조금은 우울한 시각으로 접근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앗제가 사람을 찍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앗제의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앗제와 형편이 비슷하거나 조금 못한 사람들로서 자폐증의 앗제가 거부감 없이 만만하게 접근 할 수 있는 그런 대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가 그를 서민들의 삶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카메라의 시인”이라는 닉 네임을 붙이게 된 이유가 아닌가 생각 됩니다.

그럼 우리는 앗제의 사진적 위대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난 그것을 기록성에서 찾습니다.

시대적 상황에서 당시는 예술을 표방하던 살롱 사진가들이 사진의 기본인 기계적 기록성을 떠나 당시의 인상주의 화가들의 화풍과 비슷한 표현을 하는 기법에 급급하던 시기에 앗제는 기계적 기록성만으로도 충분히 예술성을 살릴 수 있다는 사진의 본질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아 사진적 특성을 살리는
현대사진의 시발점을 제시 했다는 거지요.

그의 사진이 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파리를 복원하는데 공헌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에 꾸미지 않은 기계적 기록성에 의존한 사진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쟁 후에 발달된 도시문화가 높아진 시민 소득으로 잃어버린 예전의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게 된 것도 그에 기계적 정확한 서민들의 기록성 때문에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는 분명 살롱 사진이 만연하던 사회적 사진 풍토 속에서 벗어나 리얼리티하게 파리를 기록한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기록 사진가라는 점에서 그의 가치를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술은 가난해야 한다고 했나요? 아니요 피카소 같은 부유함 속에서 윤택한 표현을 한 작가도 있지요.
하지만 우리가 그의 사진에서 갖는 공감대는 그가 다른 생활적 수준에서 그저 흥미롭게 바라본 서민들의 삶이 아닌 사진 속에 등장하는 서민들과 똑 같은 삶을 살면서 바라본 시각이었기에, 그들의 정서나 어려움을 공감하면서 카메라에 담은 리얼리티이기에 우리 가슴에 진하게 다가오는 거지요.

분명 그의 사진 속에서 우리는 일상적 생활에서 보지 못하던 도시의 뒷골목을 보게 합니다.
누군가 등장하게 될것 같은 예감이 드는 도시, 방금 누군가 지나가 버린 빈자리 같은 여운.... 묘하게 앗제의 자폐증 때문에 이루어진 촬영 시간 또한 우리가 주로 활동하는 시간에서 벗어난 시간대에서 느끼는 서정성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조금은 더 낳은 경제적 여유를 갖고 취미생활을 위한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서민들의 삶이 아닌 자신이 처한 똑 같은 입장에서 마치 과부 마음 홀애비가 안다는 식으로 그 속에 녹아들어 바라본 애절한 시각이 우리의 가슴 속에 깊이 다가 올 수 있는 사진으로 승화 시킨 거지요.
죽어서 행복한 남자 으젠느 앗제, 그의 사진을 알아본 만 레이(Man Ray)가 고맙고, 그의 사진 1만여장을 고스란히 보관 할 수 있게 한 만 레이의 조수였던 베래니스 애보트 (Berenice Abbott) 가 고맙다.
으젠느 앗제 그는 죽은 후에야 평가 받는 사진가였지만 현대 사진의 시발점에서 분명 위대하고 가치 있는 사진가이다

글 : 사진가 조인상 www.photocla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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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JK이종구님의 댓글

JK이종구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공감되는 부분도 많구요.

강웅천님의 댓글

강웅천

뒤늦게 에보트가 내놓은 앗제의 사진집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간단히 케르테즈에게 영향을 끼치고, 브레송으로 이어지는 경향만 생각했었는데,
그의 서글픈 인생까지 곁들이고보니 연민이 더 깊어지네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김주홍님의 댓글

김주홍

작가들은 서로 다른 세상에서 다른 관점에서 사진을 하고 그리고 했었군요.
좋은 글 읽고 갑니다.

박한님의 댓글

박한

좋는 글 덕분에 사진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지충구님의 댓글

지충구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사진에 대해 점점 알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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