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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진가 1. -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

페이지 정보

  • 작성자 : 도웅회
  • 작성일 : 02-04-22 00:05

본문

▽ No, 203
▽ 이름:도웅회 (redelmar@hanmail.net)
▽ 분류:기타
▽ 2002/1/23(수) 21:54 (MSIE5.5,Windows98,Win9x4.90) 61.252.207.11 1152x864
▽ 조회:509

위대한 사진가 1. -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


시간문제로 사진작품을 대하기가 어려운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나마 현대사진 작가들을 소개하고 제한적이지만 그

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글을 게재하고자 합니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Alfred Stieglitz)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는 1864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모직물상을 하는 미국 상류 가정의 여섯형제 중 맏아

들이었다. 여섯 살 때 그의 집안은 뉴욕으로 이사를 했다. 독일에서 맨손으로 건너와 집안을 일으킨 아버지는 모

든 일에 진취적이고 적극적이었으며, 예술에 대해 매우 관심이 많았다. 그가 열여섯 살 되던 해인 1881년, 아버지

는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온 가족을 이끌고 유럽으로 건너갔다. 스티글리츠는 처음엔 베를린공과대학에서 전기기

계공학을 전공했으나, 2년후 베를린대학으로 옮겨 사진화학을 전공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사진활동을 시작한 것

은 1887년 무렵부터였다. 이 해에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찍은 사진이 런던에서 공모한 현상에 일등으로 당선된 것

이다. 이로부터 3년이 채 안 되어 그는 무려 150개가 넘는 메달과 상장을 받을 만큼 사진에 몰입하였다. 그때부터


사진은 그의 전부였으며, 한 평생을 바칠 보람이었다. 그가 미국으로 돌아간 것은 1890년, 그러니까 유럽으로 건너

온 지 만 9년만이었다. 본국으로 돌아간 그는 맨처음 사진제판업에 손을 댔으나 그리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사진찍는 데 열중하는 한편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클럽을 지도하는 데에도 부지런했다. 1893년부터 96년까

지 3년 남짓 사진잡지의 편집을 맡기도 했으며, 1897년엔 그를 중심으로 모여든 사진작가들이 정식으로 사진클럽

을 만들고 기관지로서 '카메라노트(Camera Notes)'를 창간했다. 스티글리츠가 미국 사진계의 중심인물로 떠오른

것은 1902년 사진분리파 운동을 전개하면서부터였다. 사진분리파 운동은 20세기의 분수령을 넘어서는 역사적인

운동인데, 사진분리파 Photo-Secession Group란 다름아닌 그가 새로 조직한 사진클럽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것

은 사진클럽의 이름을 넘어서서 새로운 사진의 기치를 내건 선언으로서, 낡은 사진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따로 새

롭게 나선 파란 뜻이었다.

사진분리파 운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그는 1903년 기관지 '카메라 워크(Camera Work)'를 창간했고, 1905

년에는 '291'이라는 화랑을 열었다. 기관지는 1917년까지 간행되었고, 화랑은 사진분리파의 발표무대일 뿐만 아니

라 전위적인 미술가들에게도 문을 열어 놓았다. 그리하여 화랑 '291'은 현대사진의 산실일 뿐만 아니라 미국 현대

미술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아뭏든 이 화랑은 당시 미국의 전위적인 예술혁명의 진원지로 부각되었다.


1917년을 고비로 사진분리파의 운동은 일단 공식적으로는 막을 내렸다. 제1차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 미국이

휘말리면서 독일계 이주인인 그에게 모든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공적인 단체

활동에서 손을 떼고 자기 작업을 계속하는 한편 다시 새로운 화랑을 열었다. 전쟁으로 인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그

는 부단히 자기 사진의 새로운 변신을 꾀하였다. 이제까지 주로 일상적인 사회적 현실에 기울이던 관심이 인물이

나 구름쪽으로 바뀌어갔으며, 30년대로 넘어가서는 그가 자라난 뉴욕을 중심으로 한 건물들에 쏠렸다. 그의 여생

은 주로 화랑을 통해 신인들의 발굴과 이들의 뒷받침에 힘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스티글리츠는 그 밑에서 자라난

새세대들에 의해 현대사진의 아버지로 받들어지게 되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은 1946년,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다음해였다.


스티글리츠가 사진작가로서 또한 사진운동가로서 사진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세잔느가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비

중만큼이나 크다. 19세기 사진의 역사가 그에게서 일단 끝나고 20세기의 사진의 역사가 새롭게 태동되었기 때문

이다. 이러한 역사적 전환은 다름아닌 그의 순수사진 straight photography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에 의해 이루어졌

다. 사진분리파 운동이 내건 순수사진이란, 일찍이 루이 자끄망데 다게르(Louis Jacques Mande Daguerre)가 사진

을 발명할 당시에 신봉되었던 순수한 기계적 기록성을 되찾자는 것이었다. 즉 렌즈가 본래 갖고 있는 정확하고 정

밀한 광학적인 기능을 사진의 기본으로 다시 회복하자는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얼핏 보기에 단순하고 대

수롭지 않게 들린다. 그러나 이 주장은 역사의 흐름을 뒤바꾸어 놓는 새로운 지표가 되었다.


1839년 사진이 발명된 이래로 사진의 역사적인 흐름은 크게 두 갈래로 이어져왔다. 하나는 실용적인 목적으로서

의 기록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창조적인 표현으로서의 예술사진이다. 실용적인 기록사진은 무엇보다도 사진의 기

계적 기록성에 바탕을 두고 대상의 충실한 재현에 힘썼다. 이와는 반대로 예술사진은 대상의 충실한 재현보다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데 치중하였다. 그러므로 기계적인 기록성은 기록사진에 있어서 절대적인 기본원리

인 데 반해, 예술사진에 있어서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여기에서 기록사진과 예술사진은 서로 별개의

것이 되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사진의 주류를 이루는 두 갈래 흐름은 더욱 간격이 벌어졌다. 기록사진은 다만 실용

적인 목적을 이루는 데 만족했고, 예술사진은 사진의 특성에는 무관심한 채 예술적인 표현을 뒤쫓는 데만 치중했

다. 살롱사진의 등장은 세기말적인 배경에서 나타난 것이었다. 이 두 갈래 흐름은 더욱 저마다의 길로 치달아 기록

사진과 예술사진은 별개의 것으로 갈라져 있었다.


스티글리츠의 순수사진 운동의 의의는 이렇게 상반되는 두 갈래 사진의 흐름을 하나로 통합하여 변증법적인 새로

운 경지를 이룩한 데 있다. 그가 기치를 든 순수사진 운동은 사진의 예술성을 수립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가 내세운 순수사진의 입장은 정반대로 기록사진의 노선을 따르는 것이었다. 그동안 예술성을 추구해 온 모든

예술가들이 제약과 한계의 굴레라고 결정을 내린 사진의 기계적 기록성이, 오히려 사진의 독자적인 예술성이 자리

잡을 터전임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가 사진에 발을 들여 놓은 188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가 살롱사진의 전

성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그동안 까맣게 잊혀졌던 사진의 기본원리 위에다 사진의 독자적인 예술성을 추구

할 것을 정면으로 주장했다. 그러면 이제까지의 모든 사진작가들이 예술성을 추구함에 있어서 정면으로 마주쳤던

기계적 기록성의 한계를 그는 어떻게 극복했을까?


스티글리츠는 사진예술의 기본미학을 사실주의 바로 그것이라고 간파하였다. 사실주의란 문예사전에는 "어떤 대

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재현해도 훌륭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주의 주장"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주

의의 자각은 자연과학의 발달에서 말미암은 시대적 변화이다. 사실주의는 19세기 중반부터 차츰 고조되어 온 세계

적인 추세로, 자연과학적인 입장에서 대상에 새롭게 접근하려는 예술의 새로운 시도였다. 그는 사진이야말로 이러

한 시대적 추세에 가장 적합한 예술형식임을 간파한 것이다. 그가 들고 나선 순수사진이란 사진의 과학적인 속성

이 예술적인 표현에 방해가 되기는 커녕 오히려 자연과학적인 입장에서 대상을 새롭게 발견하려는 예술적인 새로

운 조짐의 첨단임을 주장한 것이다. 이로써 그동안 혼미를 거듭해 온 예술사진의 문제는 일단락 지어지고 사진은

예술로서의 길을 찾아나서게 되었다.


스티글리츠의 사진세계는 1917년을 경계로 전기와 후기로 뚜렷하게 갈라진다. 전기는 철저한 사실주의의 추구이

고, 후기는 사실주의를 딛고 넘어서 은유적 사실성의 세계를 새롭게 전개한 시기다. 전기를 대표하는 것은 <삼등

선실> <종점> <5번가의 겨울> 등이며, 후기를 대표하는 것은 이퀴벌런트(Equivalent) 시리즈와 인물 및 건축사진

들이다. 전기를 대표하는 작품들 가운데서도 <삼등선실>에 그가 표방하고 나선 순수사진, 즉 사실주의의 뚜렷한

이념이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우선 그는 카메라의 눈을 현실 한복판으로 돌려서 이를 지시하고 있다. 이전까지의

모든 예술을 추구하는 사진가들은 현실 밖으로 눈을 돌렸었다. 그런데 그는 현실을 직시하되 사회적 현실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특등실과 삼등실이라는 대조를 통해서 삶의 생생한 모습을 철저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

가 이 사진에서 예술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살롱사진가들과 같은 미의 추구가 아니라 삶의 진실의 추구이다. 살롱

사진작가들이 대상의 미화에 급급했던 그 당시 그는 대상을 철저하게 파헤쳐 끝내 흔들리지 않는 참다운 삶의 리

얼리티가 무엇인가를 제시하려 하였다. 이것이 바로 사실주의의 미학이다. 이러한 그의 전기 사진세계는 후기에

와서 다르게 변모된다. 대상의 객관적 진실의 파악에서 한걸음 나아가 객관적인 현실에 은유적인 상징성을 부여함

으로써 자기 자신의 감정이입을 꾀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변신을 잘 드러낸 것이 20년대부터 작업을 계속한 구

름사진들이다. 그는 일련의 구름사진들의 제목을 모두 '이퀴벌런트'라고 붙였는데, 이런 데서 그의 사진적 의도를

였볼 수 있다. 이퀴벌런트란 '동등한 것' 또는 '대응하는 것'이란 뜻이다. 구름에 '구름'이라는 제목을 달지 않고 구태

여 동등한 것, 대응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이것은 구름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느끼는 그 무엇과 동등하거나 대응되

는 것임을 나타내려 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그의 사진적 태도가 자기 세계 속으로 내면화되었음을 알려주

고있다. 그리하여 그의 후기 사진들에는 사실주의의 구체적인 설명성이 가시고 은유적인 상징성이 깃든다.


그는 사실주의의 입장을 더욱 공고히 하고 내면화하기 위한 시도로서 클로즈업을 통한 정물적인 대상 파악을 추구

. 클로즈업은 대상에로의 극단적인 접근이며 정밀묘사이므로, 이러한 정물적인 처리는 사실주의의 확대이며 강화

인 동시에 부분을 통한 전체의 암시이다. 그가 후기로 넘어와서 클로즈업 수법을 많이 동원한 까닭은 한 부분을 집

중적으로 강조함으로써 화면 밖으로 밀려난 전체를 암시하여 사진의 상징성을 살리려는 의도에서였다. 그가 20세

기 현대사진에 주춧돌을 놓은 것은 사진의 눈을 통해 현실을 현실 그대로 보는 동시에 보이는 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까지 드러내고자 한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자각은 오랫동안 제 길을 못찾고 갈팡질팡하고 있던 사

진예술을 본궤도에 올려놓았으며, 후기의 은유적인 사실성의 추구는 폴 스트랜드(Paul Strand)와 F.64 그룹으로

이어지고 다시 오늘날의 젊은 영상사진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쳐서 뚜렷한 맥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현대사진

의 기초가 되는 사실성(realistic) 은 보여지는 현실의 세계 그자체라기 보다는 그 현실로부터 이탈되어 사진가의 창

의력과 사진적기술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사실의 세계이며 또한 새로운 현실의 세계인 것이다.그러므로 그러

한 추상성과 결부된 내면의세계를 보여주는 사실성이야말로 진정한 현대사진의 기초적 사상이라고 볼 수 있는 것

이다..

* 참고(인터넷 자료) * 그의 작품들 *
http://www.artsmia.org/get-the-pictu...itz/index.html
http://www.nga.gov/feature/stieglitz/6photo_a.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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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박영길님의 댓글

박영길

슈베르트가 음악의아버지면 스티글리츠는 사진의아버지라불리죠..

손현님의 댓글

손현

언젠가 우연히 책에서 the terminal 이란 사진을 보고 꽤 감동받은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스티글리츠가 1890년대에 찍은 사진이더군요... 놀랐습니다.
올려주신 좋은 자료들을 틈틈히 읽고 있는데 좋네요. 감사합니다.

신동승님의 댓글

신동승

언젠가 문득 꺼낸 사진집에서 발견했던 멋진 사진...이었던거 같습니다.

이성재님의 댓글

이성재

좋은글 편하게 잘 보았습니다.

염규태님의 댓글

염규태

역시 라이카 클럼에 드러서니 지식과 이론의 전계가 이루어 지는 것 같읍니다. 예날이 좋아서 늣게 시작한 일이니 잘부탁 바람니다.맑

김지훈 poet님의 댓글

김지훈 poet

라이카클럽에서 제일 흥미있는 <위대한 사진가>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김익겸님의 댓글

김익겸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으니 사실주의는 그에게 신선한 충격이었겠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홍순익님의 댓글

홍순익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취미로서의 사진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탁헌도님의 댓글

탁헌도

훌륭한 사진가임에 틀림없습니다.
달리 미국사진의 아버지겠습니까?

최경은님의 댓글

최경은

도웅회님이 작성하신 스티글리츠의 글을 읽고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참고로 제시한 사이트의 글을읽고 이것도 유용할것 같아 첨부파일로 올립니다.
처음에 한글로 작성했는데 한글파일을 직접올릴 수 없어 ms word파일로 변환시켜 함께 올립니다.
또한 html문서로도 작성해서 올릴려 했는데 본 게시판이 복잡한 html문서를 지원하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혹시 그림과 태그가 들어있는 문서로 올릴 방법이 있다면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박수석님의 댓글

박수석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정엽님의 댓글

이정엽

최근 관심을 가지게 된 분인데.. 조용히 잘 읽고 가겠습니다.

이준원vw님의 댓글

이준원vw

흠.. 이제막 사진을 시작한 저에게는..^^ 정말 좋은글이네요;;
모두 정독해봐야겠습니다 ^^;;

유재홍/백만님의 댓글

유재홍/백만

이런 자료도 참 너무나 감사하고 소중한 자료입니다.

감사합니다.

강욱조님의 댓글

강욱조

너무나 소중한 자료 감사합니다..
사진에 대해 암것도 모르다가 이제사 이런저런 유명한 사진가들에 대해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렇게 상세한 내용들이 있었네요..
앞으로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공부 모드로 들어가야 할 듯 싶습니다~ ^^;;

문용식님의 댓글

문용식

소중한 자료 잘 읽었습니다. 하나하나 배워가야겠어요..

채수명님의 댓글

채수명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위대한 사진가의 사진세계를 자세히 알려줘서 많은 도움이 됬습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문원식님의 댓글

문원식

잘못된 정보..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는 회화주의를 이끈게 아니라 반대로 사진 분리파운동의 선구자입니다..

오경민님의 댓글

오경민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이 수찬님의 댓글

이 수찬

가입되기 전에 몇 번 읽어도 감사 인사 못했습니다. 좋은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강대전님의 댓글

강대전

어디서.......들어본 이름인데 사진가였군요...아 무식이 죄..ㅠ.ㅠ

김가람님의 댓글

김가람

사진정보까지 주시니 감사합니다.

김익겸님의 댓글

김익겸

다시 읽고 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유노아님의 댓글

유노아

좋은 글 감사합니다.

허영주님의 댓글

허영주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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