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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진가 8. - 폴 스트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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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도웅회
  • 작성일 : 02-05-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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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215
▽ 이름:도웅회 (redelmar@hanmail.net)
▽ 분류:기타
▽ 2002/1/29(화) 15:26 (MSIE5.5,Windows98,Win9x4.90) 61.252.215.201 1152x864
▽ 조회:355

위대한 사진가 8. - 폴 스트랜드 -


폴스트랜드(Paul Strand) 1890-1976
.................................................. .................


사진분리파 운동의 정립자이며 즉물사진의 개척, 사진의 예술성과 과학적 속성의 일치점 모색하였던 폴 스트랜드는 12세 때에 처음 카메라를 접하게 되어 그 후 60여년 동안 사진활동을 했다.

폴 스트랜드는 30년대와 40년대에는 사진보다는 오히려 영화쪽에 더욱 힘을 기울이기도 했지만, 그는 미국 사진계의 중심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스트랜드는 뉴욕의 느 카메라 클럽에 가입해 그곳 암실을 사용하면서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와 '291화랑' 에 드나드는 예술가들과 울린다. 스티글리츠는 스트랜드가 291화랑에서 제1회 개인전을 가질 수 있게 적극적으로 주선해 주었으며, 1916년부터 발간해 오던 '카메라워크'지의 최종 호 지면을 그를 위해 전폭적인 할애해서 특집을 꾸며주기도 했다. 스티글리츠는 그의 작업은 거칠고 직접적이다. 사진은 오늘에 맞는 표현을 하고 있다 라고 말하며 또한 그는 진짜 사진가다. 마음에서 용솟음치는 대로 일하고 있다며 스트랜드 야 말로 이제 까지 그가 찾던 신인이 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스트랜드는 사진 분리파 운동을 완전히 정립했다는 평을 받는다. 물론 사진분리파가 내건 순수사진운동 등을 시작한 것은 스티글리츠였다. 스티글리츠의 사진분리파 운동에 의해 사진의 기계적 특성에 바탕을 둔 사진예술의 창조가 독자적인 사진미학으로 정립됐으며, 이를 계기로 사진예술은 비로소 정상 궤도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기게 때문에 스티글리츠가 빠진 사진분리파 운동은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스티글리츠가 찍은 사진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가 부르짖었던 순수사진의 이론만큼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스티글리츠는 그가 배격했던 회화적인 사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스트랜드는 20세기의 모든 예술이 당면한 시대적 과제는 과학과의 결합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사진을 예술로서 새롭게 정립시킬 수 있었다. 대상을 정밀하게 표현하는 재현효과에 집중 서민의 얼굴 통해 사회적 관심과 삶의 진실 추구 하였다. 그는 사진의 예술성과 과학적인 속성의 일치점을 모색하고, 스티글리츠가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했던 관념적인 요소들을 배격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사진의 기계적 기록성을 더욱 철저하게 강조해서 즉물적인 극한의 한계까지 파고 들어가 사진분리파가 내건 순수사진의 주장을 보다 더 발전시켰다.

스트랜드는 그때까지 아무도 시도지 못했던 즉물사진을 개척했는데, 이것은 사진의 광학적인 복제기능의 철저한 추구이며 개발이었다. 그는 렌즈의 심도를 깊게 해서 대상을 정밀하게 나타냄으로써 실물 그대로를 화면에 옮겨 놓은 것 같은 재현효과를 거두고자 하였다. 스트랜드는 주로 밑바닥 인생의 생활상을 통해 사회적 관심을 나타냈다. 그는 가난하거나 사회적 지위가 낮더라도 절대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심을 잃지 않는 서민의 얼굴을 찍어 나갔다.

이런 사회적 관심과 삶의 진실에 대한 추구는 그의 사진 작업을 통해 일관적인 작업으로 나타난다. 될 수 있는 한 대상 가까이 다가가서 정공법으로 대상을 찍어 전형적인 본질을 파악하려 하였는데, 이러한 특성 때문에 시간성 보다는 공간성이 강조되고, 박력이 넘치며 직관적 호소력을 갖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즉, 클로즈업과 정밀묘사에 의한 기계적 기록성의 극대화가 육안의 한계를 뛰어 넘는 새로운 시각의 신선감을 불러 일으켰다. 스트랜드는 사회적 다큐멘터리 사진에서부터 정물사진이나 건축사진, 그리고 디자인적인 요소가 강한 조형적 사진까지 넓고 다양한 영역의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이질적인 요소를 렌즈가 갖고 있는 광학적 재현기능의 완벽한 구사를 통해 각각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1922년에 프리랜서 사진가로서 주간지의 일을 맡았으며, 1930년에서 32년에는 멕시코에 체재하며 1년 뒤에 멕시코 정부 사진담당관의 책임자로 근무했다. 이 당시 모스크바를 방문 했을때, 소련 영화감독인 세르게이 에이젠스타인에게 영화 공동제작을 제의 받았으나 거절한다. 그러나 그후 그는 사진활동을 하면서 영화에도 함께 손을 대기도 했다.

1946년에서 47년에는 사진가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회를 개최하였고, 프랑스의 프로필, '어느전원' 등의 사진집도 여러권 출판하였다. -- 인터넷 자료--



*그의 작품 *

http://www.artnet.com/Magazine/featu...dahl4-3-98.asp
http://www.temple.edu/photo/photogra...rand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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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승현님의 댓글

김승현

폴 스트란드의 이야기 잘읽었습니다. 얼마전에 폴. 스트란드의 <인물/건축물/풍경>으로 나누어진 사진집을 한권샀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지는 않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주는 인물들의 사진을 즐겨찍었다는 대목이 참 마음에 듭니다. 최근 좀 용기있게 인물사진을 찍고 싶으면서 폴의 이와같은 입장이 마음에 와 닫습니다. 평생 한가지 사진기만(*소형 주름 상자 스타일이던데...) 사용했다고 하더군요. 글 감사합니다.

김승현님의 댓글

김승현

인용:
원 작성회원 : 김승현99
폴 스트란드의 이야기 잘읽었습니다. 얼마전에 폴. 스트란드의 <인물/건축물/풍경>으로 나누어진 사진집을 한권샀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지는 않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주는 인물들의 사진을 즐겨찍었다는 대목이 참 마음에 듭니다. 최근 좀 용기있게 인물사진을 찍고 싶으면서 폴의 이와같은 입장이 마음에 와 닫습니다. 평생 한가지 사진기만(*소형 주름 상자 스타일이던데...) 사용했다고 하더군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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