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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및 사진가

간송미술관 봄 전시 <오원 장승업 畵派展>

페이지 정보

  • 작성자 : 김용준
  • 작성일 : 08-05-14 11:46

본문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ㆍ1843-1897). 현대 한국 동양화의 시조로서의 그의 면모를 조명하는 ‘오원 장승업 화파전’이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18일부터 열립니다.
간송미술관이 봄, 가을 두 차례만 ‘그림 보물창고’를 열어 개최하는 정기 기획전입니다.
우리 사진하고는 무관한 하지만 다시 생각 해 보면 무관하다고 볼 수 만은 없는 그런 전시회이니 시간 되시거나 관심 있는 회원께서는 가족과 함께 따뜻한 늦 봄을 느끼는 성북동 나들이 한번 계획 해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아래는 한국일보에서 퍼온 글입니다.

영화 ‘취화선’으로 일반에 익숙해진 장승업은 상노(床奴) 출신의 미천한 신분에도 불구, 화재(畵才) 하나로 도화서 화원까지 지낸 인물. 조선 전통회화가 쇠잔해가던 19세기 말 해학적이고 화려한 회화를 선보이며 고고한 문인화의 전통을 대체하는 독보적인 화풍을 일구었다.

장승업에서 시작된 이 같은 회화사적 변화는 근대 개화기의 안중식과 조석진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에게 이어지면서 오늘날의 동양화 전통을 구축했다.

총 100여점의 작품이 걸리는 이번 전시에는 장승업의 작품 40~50점과 그의 제자 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晉ㆍ1853-1920),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ㆍ1861-1919), 백련(白蓮) 지운영(池雲英ㆍ1852-1935), 위사(渭士) 강필주(姜弼周ㆍ생몰연대 미상)의 작품이 함께 소개된다.

이들은 도화서가 폐지되면서 광통교 일대에서 상업적 직업화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한 첫 작가들로, 미술의 대중화와 궁중화풍의 민간화를 이룬 새로운 근대 화파였다.

안중식의 제자인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ㆍ1897-1972)과 심산(沁山) 노수현(盧壽鉉ㆍ1899-1978)이 각각 홍익대와 서울대의 동양화과를 창설한 인물이라는 사실은 우리 동양화의 근원이 오원에 가 닿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게 간송미술관의 설명이다.

장승업은 조선 성리학의 이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진경산수화를 배척하고 청조고증학(淸朝考證學)에 기반해 추상화풍을 만들어낸 김정희(金正喜ㆍ1786-1856)의 추사체를 자연스럽게 계승했다. 그러나 대상의 본질을 추상해낼 만한 인문적 소양과 학식이 없었던 탓에 그의 걸작들엔 감각적 회화미가 승하다. 왜곡과 과장을 통한 해학미도 두드러진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19세기 말은 학식 있는 사대부층이 몰락하고 중소 상공인과 부농이 부상하면서 그림 수요층의 취향도 일변했다”며 “다소 서툴고 허술한 단점이 노출되는 오원의 그림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것은 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전시에는 좌우 2m가 넘는 두루마리 작품인 ‘계산무진(溪山無盡’) 등이 일반에 처음 공개되며, 오원이 후원자였던 민영환을 위해 한 폭에 두 마리씩 여덟 마리의 말을 4폭에 나누어 그린 작품도 한꺼번에 소개된다.

민영환은 화명이 궁중에까지 퍼진 장승업이 고종의 부름을 받고 궁에 들어갔다가 자유분방한 기질 때문에 궁궐을 몰래 빠져 나와 술에 빠져있을 때 진노한 임금을 달래 오원을 자기 집에 데려가 그림을 끝내도록 도왔을 정도로 든든한 후원자였다. 1937년 민씨 일가의 소장품이 경매에 나왔을 때 간송 전형필이 당시 돈으로 700원을 주고 구입한 작품.

궁중 진상품이었던 ‘춘남극노인(春南極老人)’과 ‘추남극노인(秋南極老人)’은 오원의 심혈을 기울인 필묵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춘남극노인’은 화려한 채색의 궁중화풍을 가미하면서도 먹의 농담차로 소나무 껍질의 결을 살린 솜씨가 가히 압권.

오원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아 초기작은 거의 오원의 작품과 방불한 조석진과 안중식의 그림, 대부분 처음 선보이는 지운영의 그림이나 기러기를 잘 그렸던 강필주의 그림도 놓치면 아쉽다. 특히 안중식은 일자무식이라 그림 속 글씨를 대부분 대필 받은 오원의 가장 빈번한 대필자였다. 6월1일까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 (02)762-0442
추천 0

댓글목록

이영준님의 댓글

이영준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꼭 한번 가보겠습니다.

한지영님의 댓글

한지영

아... 감사합니다. 꼭 가봐야겠습니다.

손현님의 댓글

손현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올해의 봄은 그냥 지나칠 수 없군요...
간송미술관은 1년에 두 차례라 감질맛이 나기도 합니다.

박영주님의 댓글

박영주

1937년 당시 700원이라~
지금의 얼마만큼의 가치가 되는지 감이 잡히질 않네요..
선배님, 좋은 글과 정보 감사드립니다..^^

문범호님의 댓글

문범호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꼭 가봐야 겠습니다.

차명수님의 댓글

차명수

인용:
원 작성회원 : 박영주
1937년 당시 700원이라~
지금의 얼마만큼의 가치가 되는지 감이 잡히질 않네요..
선배님, 좋은 글과 정보 감사드립니다..^^


제 기억을 더듬어 보면 1937년 막노동자 하루 임금이 1원-1.5원이었습니다.
그러니 2년 정도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김형배님의 댓글

김형배

한성대입구 역 근처의 간송미술관인가요?

대학 다닐때 몇 번 가 본 적이 있었는데..
잠시 대학시절의 회상에 잠기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정화님의 댓글

김정화

저도 잔뜻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문화재의 보고 간송 미술관 1년에 딱 두번 일반인에게 공개되니
더욱 설레임이 밀려 옵니다.

이현직59님의 댓글

이현직59

봄가을로 두차례씩 2주에 걸쳐 전시합니다. 끝날때와 매스컴을 타면 관람객의 급증으로 오픈날로 가깝게 다녀오심 비교적 편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문교님의 댓글

정문교

간송 전형필선생께서 일본 식민지시절 우리나라의 국보급 문화재들이 일본사람들 손에 넘어가 일본으

로 반출 되는 것을 사재를 털어 고가로 구입하고, 수집하여, 오늘날 많은 국보급 문화재를 소유하고

있는 미술관 입니다. 모 재벌 회장 일가가 소유한 고가의 미술품이나 문화재 하고는 차원이 다른

미술관입니다.

이택규님의 댓글

이택규

매년 미술관을 갈때 마다 드는 생각은 그 소중한 미술품들에 대한 전시 관리가
소홀한 듯 해 돌아올땐 걱정으로 가득합니다.

작품에 몰두하는 관람자들의 열정은 이해하지만, 전시품을 넣은 유리상자에 팔을 올려 놓거나,
음료수 병을 올려 놓고, 아이들이 마구 뛰어다니는 걸 보면, 소중하게 지킨 문화제들이 혹시나
회손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맘은 벌서 전시장에 가 있네요~~!!

Jongseong Lee님의 댓글

Jongseong Lee

좋은 정보 주셔서 다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술을 동경하고 꿈꾸는 저에게 좋는 나들이었습니다.

이영준님의 댓글

이영준

저도 오늘 오후에 다녀왔습니다.
관람객이 너무 많아 대충 훑어보고
澗松文華만 몇 권 구입했습니다.
대충 넘겨봐도 참 대단하신 분이었다는 느낌이...

감사합니다.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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