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엽 사진전 <청계의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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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이상엽
- 작성일 : 08-06-01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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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를 들고 청계천을 산책한 기록들입니다.
마당 넓은 시원한 갤러리 입니다. 회원여러분을 기다립니다.
대안공간건희 이상엽 기획초대전
淸溪의 나날들
일 시 : 2008년 6월 17일(화) - 6월 30일(월)
Open : 2007년 6월 17일(화) 오후 6시
장 소 : 대안공간건희 02-554-7332
문 의 : 대안공간건희 02-554-7332 geonhi@geonhi.com
이상엽 017-326-9921 inpho@naver.com
전시 작업 소개
전시제목 : 淸溪의 나날들
전시작품 : 청계천변을 담은 흑백 사진 22점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전시형태 : 11X14 inch 20점, 1X1.5 m 2점
전시내용 : 이 전시는 2002년부터 현재까지 사진가 이상엽이 촬영해 온 청계천 주변의 모습을 정리하여 보여준다. 작가는 지난 7년 동안 변화되는 풍경들에 관심을 갖고 그 상징들을 카메라로 담아내면서 청계고가의 거대하고 우악스럽던 콘크리트가 사라지고 물이 흐른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세련된 콘크리트로 대체된 것은 아닌지 회의하고 의심할 뿐이다. 게다가 수 십 년 동안 도심 속 인간들이 만들어 온 정신문화가 한 순간에 해체되어 버린 것에 대해 너무나 아쉬워한다. 요즘 청계천변을 걷다보면 언제 이곳에 고가도로가 서 있었는지 새삼스러운 생각이 드는 이들에게 이 사진이 의미있는 무엇이 되었으면 한다. 사진가는 이왕 도시민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조금 더 인간적인 도시를 건설해 가기 위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색을 권하고 있다.
작가노트
淸溪, 도심 개천에 대한 인문적 관찰 보고서
내가 처음 청계천을 가본 것은 온 나라가 대통령의 죽음으로 어수선 할 때쯤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는 중학교용 참고서를 싼 값에 산다는 핑계로 청계천 헌책방을 어슬렁 거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홀로 도심을 탐색하고 다녔다. 하지만 어디서도 개천을 발견 할 수 없었기에 왜 청계천이라 하는지 몰랐다. 내 발밑으로 물이 흐르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대신 이곳은 하늘 높이 고가도로가 솟아 있었고 지어진지 20년이 흐른 낡은 삼일아파트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60년에 폭 50미터짜리 도로가 청계천을 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든 도시는 그 역사가 오래될수록 필연적으로 도심의 공동화현상이나 슬럼화를 겪게 된다. 조선의 한양도 예외는 아니어서 청계천의 다리 밑은 빈민들의 차지였다. 그러던 것이 일제식민지 시대에는 도시로 들어오는 빈농들의 차지였고 전쟁 후에는 난민들의 차지가 됐다. 일본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의 청계천 사진은 그 곤궁함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진일 것이다. 그래서 이승만은 청계천이 싫었나 보다. 그 위를 도로로 덮어버리고 주민들은 모두 성남 등으로 소개시켰다. 그렇게 만들어진 도로위에 박정희는 선진국풍의 고가도로를 만들었다. 1971년도 일이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 김수근이 기획했다. 당시 서울시의 총 자가용 대수가 단 4천 75대 였다. 그런데 삼일고가에서 내려다보이는 왕십리와 황학동은 너무나 구차해 보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 일대를 모두 가릴 삼일아파트를 건설했다. 그 멋진 도로를 이용해 박정희는 아차산 밑 워커힐 호텔로 놀러갔다.
나는 고가도로의 그늘에 가려 음침하게 성장해 온 이곳이 좋았다. 이곳은 밝고 고상한 대신 복잡하고, 남루하며, 음흉한 곳이었다. 그곳에는 청춘의 울분을 어루만져 줄 최신 백판(불법복제 LP)과 빨간책(불법 포르노물)이 존재했고, 헌책방은 사회전복을 꿈꾸는 게바라들의 지식창고였다. 나는 그곳에서 흥정을 배웠고, 고단한 노동의 눈 그림자가 드리워진 여공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내 청계천 행은 이어졌고 세월이 흐른 후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사를 오게 됐다.
2002년 초 어느 날 부터 나는 라이카에 필름 한롤 넣고 청계천을 산책했다. 물론 그 때도 청계천은 보이지 않았고 여전히 고가도로가 음침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당시 이명박 시장은 고가도로와 도로를 뜯어내고 청계천을 복원하겠다고 장담했다. 막연하게나마 이곳이 많이 변화하리란 예감을 했다. 그래서 누가 어싸인먼트를 준 것도 아니고, 특별히 작품을 만들어 보겠다고 시작한 것도 아니다. 그저 시간 날 때 마다 카메라를 들고 산책을 하면서 한 장 두 장씩 이미지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풍경은 차츰 변화했다. 고가가 사라지고, 아스팔트를 뜯어내고 물이 말라버린 하천 바닥을 파내기 시작했다. 주변 노점상은 하나 둘씩 사라지고 천변 삼일 아파트는 부서지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좋아하던 LP판을 팔던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청계천은 다시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내 사진 기록은 불편부당하지는 않다. 개발독재 시절의 거대하고 우악스럽던 콘크리트가 사라지고 물이 흐른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싶지만, 그것이 또 다른 세련된 콘크리트로 대체된 것은 아닌지 회의하고 의심할 뿐이다. 게다가 수 십 년 동안 도심 속 인간들이 만들어 온 정신문화가 한 순간에 해체되어 버린 것에 대해 너무나 아쉬워한다.
사진은 잘 찍었건 못 찍었건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 독특한 기운이 맴돈다고 한다. 발터 벤야민이 이야기한 아우라 쯤 될까? 하지만 이 사진들은 아직도 희미한 정착액 냄새를 피운다. 즉 아직도 날 것에 가깝다는 것이다. 하지만 굳이 이 필름을 꺼내 사진으로 만든 것은 도시의 망각은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는 점 때문이다. 요즘 청계천변을 걷다보면 언제 이곳에 고가도가가 서있었는지 새삼스러운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이 사진이 의미있는 재료가 되었으면 한다. 이왕 도시민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조금 더 인간적인 도시를 건설해 가기 위해서 말이다.
작가 프로필
이상엽(Lee Sang Youp)
다큐멘터리사진가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1991년 <사회평론 길>에서 글을 쓰면서 늦게 사진을 시작했다. 초기 운동적이며 사회비판적 사진을 추구했다. 1996년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한겨레21> 등 여러 매체에 사진과 글을 기고했다. 1999년 진보적인 다큐멘터리 사진 웹진 <이미지프레스>를 창간했고 <여행하는 나무> 등의 무크지를 만들었다. 사진집 <아이들에게 전쟁 없는 미래를> 이후 출판에 힘을 써 <이상엽의 실크로드 탐사>, <그 곳에 가면 우리가 잊어버린 표정이 있다>, <레닌이 있는 풍경> 등의 개인 저서와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1, 2>를 기획하고 저술했다. 사진전으로는 자신이 기획했던 <아이들에게 전쟁 없는 미래를>전 등이나, <동강사진축전, 33인의 다큐멘터리사진가>전 등의 초대전, <중국 1997~2006> 개인전 등이 있다. 지금은 중국과 시베리아 등지에서 역사공동체에 대한 다큐멘터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주요 기고 매체
한겨레신문, 중앙일보(중앙선데이), 경향신문, 문화일보, 아사히신문, 주간 아에라, 월간 내셔널지오그래픽(한국판), 월간 지오(한국판, 폐간), 시사저널, 한겨레21, 신동아, 월간중앙, 월간 우리교육, 월간 말 등 주요 시사 매체에 포토스토리 기고. 월간 포토넷, 월간 사진, 월간 사진예술 등 사진예술 잡지에 칼럼과 사진비평 기고.
개인전
2004년 <머나먼 실크로드> 수유+너머, 서울
2005년 <아시아> 브레송, 서울
2005년 <아시아 공감>전 네이버
2007년 <중국 1997~2006> 갤러리 나우, 서울. 고토 갤러리, 대구. 영광갤러리 부산.
2007년 <레닌이 있는 풍경> 아트비트 갤러리, 서울
기획 및 전시
2000년 < NO WAR NO CRY>, 문화일보갤러리, 서울
2001년 <경기도, 도자 예술의 혼>, 인천국제공항특별전시장, 인천
2001년 <이미지프레스 포토저널리즘 페스티벌>, 포토아이갤러리 등, 서울
2002년 <이주노동자들의 삶>, 느티나무까페 등 전국 공단지역
2005년 <여행하는 나무> 브레송
단체전 참여
2000년 <젊은 사진가전> 대구시민회관
2004년 <동강 사진 페스티발> 다큐멘터리사진가 33인전, 영월
2005년 <동감> 4인의 이주노동자전, 서울시청 앞, 서울
2005년 <아시아전> 김지하 '생명포럼' 주간 파주 출판단지 아시아센터
2005년 <연접지점, 아시아가 만나다> 광주문화예술진흥원 구 전남도청
2006년 <얼굴의 시간, 시간의 얼굴 >대안공간 휴 홍대앞
2007년 <전쟁표면> 평화박물관 스페이스 피스, 인사동 서울
그 외 다수
저서
2000년 < NO WAR NO CRY> (기획, 공저) 가각본
2002년 <고선지> 문화부특별선정 E-BOOK 시리즈, 와이즈북토피아
2002년 <동티모르> 문화부특별선정 E-BOOK 시리즈, 와이즈북토피아
2003년 <실크로드 탐사> 인문학 시리즈 ‘탐사와 산책’ 20, 생각의 나무
2004년 <낡은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기획, 공저) 청어람 미디어
2005년 <이미지프레스 01 풍경, 여행하는 나무> (기획, 공저) 청어람미디어
2005년 <그곳에 가면 우리가 잊어버린 표정이 있다> 동녁
2006년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2> (기획, 공저) 청어람미디어
2006년 <이미지프레스 02 사람, 사람들 사이로> (기획, 공저) 청어람미디어
2006년 <신 실크로드> 한국언론인협회
2007년 <중국 1997~2006> 눈빛
2007년 <내 삶의 마지막 노래를 들어라> (사진, 공저) 이른아침
2007년 <윈난, 고원에서 보내는 편지> (기획, 공저) 이른아침
2007년 <레닌이 있는 풍경> 산책자
마당 넓은 시원한 갤러리 입니다. 회원여러분을 기다립니다.
대안공간건희 이상엽 기획초대전
淸溪의 나날들
일 시 : 2008년 6월 17일(화) - 6월 30일(월)
Open : 2007년 6월 17일(화) 오후 6시
장 소 : 대안공간건희 02-554-7332
문 의 : 대안공간건희 02-554-7332 geonhi@geonhi.com
이상엽 017-326-9921 inpho@naver.com
전시 작업 소개
전시제목 : 淸溪의 나날들
전시작품 : 청계천변을 담은 흑백 사진 22점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전시형태 : 11X14 inch 20점, 1X1.5 m 2점
전시내용 : 이 전시는 2002년부터 현재까지 사진가 이상엽이 촬영해 온 청계천 주변의 모습을 정리하여 보여준다. 작가는 지난 7년 동안 변화되는 풍경들에 관심을 갖고 그 상징들을 카메라로 담아내면서 청계고가의 거대하고 우악스럽던 콘크리트가 사라지고 물이 흐른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세련된 콘크리트로 대체된 것은 아닌지 회의하고 의심할 뿐이다. 게다가 수 십 년 동안 도심 속 인간들이 만들어 온 정신문화가 한 순간에 해체되어 버린 것에 대해 너무나 아쉬워한다. 요즘 청계천변을 걷다보면 언제 이곳에 고가도로가 서 있었는지 새삼스러운 생각이 드는 이들에게 이 사진이 의미있는 무엇이 되었으면 한다. 사진가는 이왕 도시민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조금 더 인간적인 도시를 건설해 가기 위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색을 권하고 있다.
작가노트
淸溪, 도심 개천에 대한 인문적 관찰 보고서
내가 처음 청계천을 가본 것은 온 나라가 대통령의 죽음으로 어수선 할 때쯤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는 중학교용 참고서를 싼 값에 산다는 핑계로 청계천 헌책방을 어슬렁 거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홀로 도심을 탐색하고 다녔다. 하지만 어디서도 개천을 발견 할 수 없었기에 왜 청계천이라 하는지 몰랐다. 내 발밑으로 물이 흐르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대신 이곳은 하늘 높이 고가도로가 솟아 있었고 지어진지 20년이 흐른 낡은 삼일아파트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60년에 폭 50미터짜리 도로가 청계천을 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든 도시는 그 역사가 오래될수록 필연적으로 도심의 공동화현상이나 슬럼화를 겪게 된다. 조선의 한양도 예외는 아니어서 청계천의 다리 밑은 빈민들의 차지였다. 그러던 것이 일제식민지 시대에는 도시로 들어오는 빈농들의 차지였고 전쟁 후에는 난민들의 차지가 됐다. 일본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의 청계천 사진은 그 곤궁함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진일 것이다. 그래서 이승만은 청계천이 싫었나 보다. 그 위를 도로로 덮어버리고 주민들은 모두 성남 등으로 소개시켰다. 그렇게 만들어진 도로위에 박정희는 선진국풍의 고가도로를 만들었다. 1971년도 일이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 김수근이 기획했다. 당시 서울시의 총 자가용 대수가 단 4천 75대 였다. 그런데 삼일고가에서 내려다보이는 왕십리와 황학동은 너무나 구차해 보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 일대를 모두 가릴 삼일아파트를 건설했다. 그 멋진 도로를 이용해 박정희는 아차산 밑 워커힐 호텔로 놀러갔다.
나는 고가도로의 그늘에 가려 음침하게 성장해 온 이곳이 좋았다. 이곳은 밝고 고상한 대신 복잡하고, 남루하며, 음흉한 곳이었다. 그곳에는 청춘의 울분을 어루만져 줄 최신 백판(불법복제 LP)과 빨간책(불법 포르노물)이 존재했고, 헌책방은 사회전복을 꿈꾸는 게바라들의 지식창고였다. 나는 그곳에서 흥정을 배웠고, 고단한 노동의 눈 그림자가 드리워진 여공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내 청계천 행은 이어졌고 세월이 흐른 후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사를 오게 됐다.
2002년 초 어느 날 부터 나는 라이카에 필름 한롤 넣고 청계천을 산책했다. 물론 그 때도 청계천은 보이지 않았고 여전히 고가도로가 음침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당시 이명박 시장은 고가도로와 도로를 뜯어내고 청계천을 복원하겠다고 장담했다. 막연하게나마 이곳이 많이 변화하리란 예감을 했다. 그래서 누가 어싸인먼트를 준 것도 아니고, 특별히 작품을 만들어 보겠다고 시작한 것도 아니다. 그저 시간 날 때 마다 카메라를 들고 산책을 하면서 한 장 두 장씩 이미지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풍경은 차츰 변화했다. 고가가 사라지고, 아스팔트를 뜯어내고 물이 말라버린 하천 바닥을 파내기 시작했다. 주변 노점상은 하나 둘씩 사라지고 천변 삼일 아파트는 부서지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좋아하던 LP판을 팔던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청계천은 다시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내 사진 기록은 불편부당하지는 않다. 개발독재 시절의 거대하고 우악스럽던 콘크리트가 사라지고 물이 흐른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싶지만, 그것이 또 다른 세련된 콘크리트로 대체된 것은 아닌지 회의하고 의심할 뿐이다. 게다가 수 십 년 동안 도심 속 인간들이 만들어 온 정신문화가 한 순간에 해체되어 버린 것에 대해 너무나 아쉬워한다.
사진은 잘 찍었건 못 찍었건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 독특한 기운이 맴돈다고 한다. 발터 벤야민이 이야기한 아우라 쯤 될까? 하지만 이 사진들은 아직도 희미한 정착액 냄새를 피운다. 즉 아직도 날 것에 가깝다는 것이다. 하지만 굳이 이 필름을 꺼내 사진으로 만든 것은 도시의 망각은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는 점 때문이다. 요즘 청계천변을 걷다보면 언제 이곳에 고가도가가 서있었는지 새삼스러운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이 사진이 의미있는 재료가 되었으면 한다. 이왕 도시민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조금 더 인간적인 도시를 건설해 가기 위해서 말이다.
작가 프로필
이상엽(Lee Sang Youp)
다큐멘터리사진가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1991년 <사회평론 길>에서 글을 쓰면서 늦게 사진을 시작했다. 초기 운동적이며 사회비판적 사진을 추구했다. 1996년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한겨레21> 등 여러 매체에 사진과 글을 기고했다. 1999년 진보적인 다큐멘터리 사진 웹진 <이미지프레스>를 창간했고 <여행하는 나무> 등의 무크지를 만들었다. 사진집 <아이들에게 전쟁 없는 미래를> 이후 출판에 힘을 써 <이상엽의 실크로드 탐사>, <그 곳에 가면 우리가 잊어버린 표정이 있다>, <레닌이 있는 풍경> 등의 개인 저서와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1, 2>를 기획하고 저술했다. 사진전으로는 자신이 기획했던 <아이들에게 전쟁 없는 미래를>전 등이나, <동강사진축전, 33인의 다큐멘터리사진가>전 등의 초대전, <중국 1997~2006> 개인전 등이 있다. 지금은 중국과 시베리아 등지에서 역사공동체에 대한 다큐멘터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주요 기고 매체
한겨레신문, 중앙일보(중앙선데이), 경향신문, 문화일보, 아사히신문, 주간 아에라, 월간 내셔널지오그래픽(한국판), 월간 지오(한국판, 폐간), 시사저널, 한겨레21, 신동아, 월간중앙, 월간 우리교육, 월간 말 등 주요 시사 매체에 포토스토리 기고. 월간 포토넷, 월간 사진, 월간 사진예술 등 사진예술 잡지에 칼럼과 사진비평 기고.
개인전
2004년 <머나먼 실크로드> 수유+너머, 서울
2005년 <아시아> 브레송, 서울
2005년 <아시아 공감>전 네이버
2007년 <중국 1997~2006> 갤러리 나우, 서울. 고토 갤러리, 대구. 영광갤러리 부산.
2007년 <레닌이 있는 풍경> 아트비트 갤러리, 서울
기획 및 전시
2000년 < NO WAR NO CRY>, 문화일보갤러리, 서울
2001년 <경기도, 도자 예술의 혼>, 인천국제공항특별전시장, 인천
2001년 <이미지프레스 포토저널리즘 페스티벌>, 포토아이갤러리 등, 서울
2002년 <이주노동자들의 삶>, 느티나무까페 등 전국 공단지역
2005년 <여행하는 나무> 브레송
단체전 참여
2000년 <젊은 사진가전> 대구시민회관
2004년 <동강 사진 페스티발> 다큐멘터리사진가 33인전, 영월
2005년 <동감> 4인의 이주노동자전, 서울시청 앞, 서울
2005년 <아시아전> 김지하 '생명포럼' 주간 파주 출판단지 아시아센터
2005년 <연접지점, 아시아가 만나다> 광주문화예술진흥원 구 전남도청
2006년 <얼굴의 시간, 시간의 얼굴 >대안공간 휴 홍대앞
2007년 <전쟁표면> 평화박물관 스페이스 피스, 인사동 서울
그 외 다수
저서
2000년 < NO WAR NO CRY> (기획, 공저) 가각본
2002년 <고선지> 문화부특별선정 E-BOOK 시리즈, 와이즈북토피아
2002년 <동티모르> 문화부특별선정 E-BOOK 시리즈, 와이즈북토피아
2003년 <실크로드 탐사> 인문학 시리즈 ‘탐사와 산책’ 20, 생각의 나무
2004년 <낡은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기획, 공저) 청어람 미디어
2005년 <이미지프레스 01 풍경, 여행하는 나무> (기획, 공저) 청어람미디어
2005년 <그곳에 가면 우리가 잊어버린 표정이 있다> 동녁
2006년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2> (기획, 공저) 청어람미디어
2006년 <이미지프레스 02 사람, 사람들 사이로> (기획, 공저) 청어람미디어
2006년 <신 실크로드> 한국언론인협회
2007년 <중국 1997~2006> 눈빛
2007년 <내 삶의 마지막 노래를 들어라> (사진, 공저) 이른아침
2007년 <윈난, 고원에서 보내는 편지> (기획, 공저) 이른아침
2007년 <레닌이 있는 풍경> 산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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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박 강 민님의 댓글
박 강 민
안녕하시죠..?
여유를 가지고 전시회에서 뵙겠습니다.
요즘도 가끔씩 사진집 보고 있습니다.........
^^
정상훈님의 댓글
정상훈좋은 작품 많이 발표하시네요. 윈난 사진집을 보면서 쓰촨성 지진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김종오님의 댓글
김종오
요즘의 촛불문화제와 관련된 청계천사진들 많은 관심이 갑니다.
전시회 가보겠습니다.
장공순님의 댓글
장공순왕성한 활동과 그 결실,,,전시회를 축하드립니다.
정성시님의 댓글
정성시서울가는 김에 구경할랍니다. 축하합니다.
박경복님의 댓글
박경복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