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환
2003.7.12, 09:08 PM
처음 사진기를 잡았을 때, 비록 친구의 사진기였지만 온 몸에 진땀이 날 정도로 흥분되었던 기억이 근 35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생생합니다. 그리고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선배들의 혹독한 그리고 그 당시,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리타분하고 지겹고 지극히 낭비적인 퀘퀘묵은 관습적 방법이 아닐까?도 생각했었습니다.
나는 당장에 공원(그 때는 비원과 덕수궁에 여고생들이 많이 몰렸었죠 아마?)으로 달려나가 폼 잡고 사진을 찍고 싶은데, 계란을 찍어와라, 촛불을 찍어와라는 등 흥미없는 것만시키고, 자기네들은 고궁에 가서 여학생들 사진을 찍어 온 후, 일주일 내내 이쁘게 빼주려고 밤까지 세우곤 하더군요.
그렇게 한 6개월 억지로 버티다가(사실 내 사진기가 없어 선배 사진기로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었으니 싫어도 그렇게 버틸 수 밖에...) 사진구룹에서 탈퇴해버렸습니다. 에이~~ 사진 안찍으면 안찍었지...사진기 없는 사람 서러워 살겠나!! 이러구요.
그러다가 페추리(화인더도 잘 안보이는)가 생기고 나서, 종로서적에 가서 그 당시 나온 사진에 대한 책이란 책을 모두 구입해서(모두라 해봐야 2권?) 열심히 읽으며 멋진 사진 만들려고 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브레쏭이 누군지 안쎌 아담스가 누군지, 임응식님이나 현일영님이 누군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냥 사진이 좋고, 찍어서 내 손으로 사진을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아니 깊은 속 마음엔 사진기만 있으면 나도 멋진 여학생을 사귈 수 있다라는 욕망만으로 사진공부를 한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꿈인 영화감독도 사진을 알아야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은 했지만......
대학을 다니다가 때려치고 우리 나라 최초로 사진학 과정을 도입했던 예전 서라벌(74년도에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으로 넘어갔죠) 예대 사진학과를 가려고 다시 독학으로 공부해서 엄청난(?) 경쟁율을 뚫고 당당히 합격! 얼마나 기뻤던지 마치 내가 우리 나라의 사진사에 남을 인물이라도 당장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그러나...운명은 내가 그리되도록 용인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우리 나라 사진계를 위해서 였던건 것 같지만(요즘 생각입니다 이건) 그 당시 너무 허탈해서 군대에 가버렸습니다. 등록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면 기억하기 싫은 가족사가 들춰지게 되어 생략...
그러나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더군요. 군대에서 코쟁이 보도 사진가를 알게 되고, 그 사람의 갖은 잔심부름(민족적 차원의 존심이 상할 때도 있었음) 도맡아 해주며, 암실 작업을 배웠습니다. 손바닥이 노랗게 되고 까만 손금을 가질 때까지...그리고 비로소 브레쏭과 아담스(안쎌과 로버트), 엘스켄, 마이너 화이트, 만 레이 등등 외국 사진가들의 사진도 보게 되었고, 사진의 역사와 예술차원의 이미지들을 접했습니다.
제대를 해서 서울로 돌아와 사진과(서라벌 예대 초급대학 과정)를 졸업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 대화를 나눠보니 어라? 이거 대학에서 뭣들 배웠나? 이럴 정도라면 난 이미 학부 졸업한거잖아? 라고 자만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군대에서 독학으로 공부를 한 그 지식이 내 아집이 되어버렸습니다.
내가 배운 것은 사진사에 대한 것과 암실 기능 외에 아무것도 없었는데도, 이론으로 마치 유명한 사진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버린거죠.
(이야기가 지루하게 길어지네? 에구~~~시작하지 말껄~~~)
그 뒤 공모전으로 건방을 떨며, 기존 사진가들의 사진을 퀘퀘먹은 사실주의 사진으로 폄하했습니다. 충무로 흑백사진연구소에 모여 입에 침이 튀도록, 밤이 새도록 이론 자랑만 해대고, 공모전에 낙선한 분풀이를 보이지도 않고 죄도 없는 심사위원들에게 퍼부어대곤 했었죠.
그렇게 기고만장한 공모전 작가(? 잡가라고 해야하나?)노릇을 하다가 어느날 온몸에 소름이 돋고 땀이 나도록 전율이 이는 사진 한장을 보게 됩니다. 그 사진을 찍도록 가르쳐준 분을 찾게 되었고, 머리통에 기고만장한 이론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은 절대 가르치지 못한다고 냉정하게 거절하는 분에게 애걸복걸 3개월여 달라붙어 결국 초심으로 돌아 가 6여년 동안 공부를 하게 됩니다.
나이 40에 또다시 17살 때 지겨워서 도망쳤던 그 지루한 작업을 반복하게 되었고, 이제는 죽으라고 시키는대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6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가더군요. 아마 1994년도에 내가 병으로 쓰러지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분에게 배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올해 연세가? 80이 넘으셨겠군요.
그분이 내게 사진 배움을 허락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아집을 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억지로, 물리적인 방법으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누누이 격려를 했습니다. 이제 이 글을 쓰게 된 결론이 나옵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1994년 쓰러져(사진에 몰입해서 몸을 돌보지 않다가) 4년반동안 빈 샤터만 누르며 지냈습니다. 수술 후, 겨우 살아났기에, 눈도 잘 안보이고 호흡도 이내 가빠지고, 수전증이라도 생겼는지 사진기를 5분도 들고 있지 못할 정도로 벌벌 떨려서, 누워 사진기를 배 위에 놓고 빈셔터만 눌렀지요.
1999년 9월 경 친구와 둘이서 태백산 야간산행을 강행했습니다. 산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포기하면 사진도 포기한다라는 생각에서 올랐습니다. 아프기 전 1시간반 정도 걸리던 산행이 5시간 걸려 올랐습니다. 정상 가까이 장군봉 천제단 돌무더기가 내 눈에 들어오더니 내 눈 속에서 흐물흐물 춤을 추더군요. 오래도록 그렇게 춤을...
그리고 2002년까지 전에 배웠던 것을 기억하는 복습을 했습니다.
2003년 다시 흑백공부를 시작하며 그 동안 사용했던 contax를 몽땅 팔고 라이카를 장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사진을 계속한다해도 건강해야 15년? 그래서 어릴 때 그리도 만지고(가진다는 것은 꿈도 못꾸었으니까요) 싶었던 라이카 M3 더불스트록 바디를 구입하게 되었고, 랜즈를 하나 하나 장만해서 드디어 오늘 원하는 세팅을 했습니다. 35mm f2, 50mm f2 DR, 90mm f4.
내가 평생 꿈 꾸어왔던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물리적 변화를 스스로 시도했습니다. 아직도 내 안에 고여있는 아집도 발견했으니까요.
그러나 기계는 도구일뿐입니다. 라이카를 구입한 것은 다만 어린시절 내 소원을 스스로 이루고 싶었기 때문일뿐입니다. 싫컷 만져만이라도 봤으면 하던 그 사진기를 가졌으니 마음도 남달리 변화되지 않을까 하는 바램도 강합니다.
사진은, 요즘 느끼는 사진은 대화의 한 방편입니다. 인터넷처럼 커뮤니케이션 툴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만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을 멋지게 잘 표현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사진에 대한 대부분의 고민이 아닐까 합니다.
여기 클럽과 같이 인터넷에 포스팅되는 사진은 두가지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는, 내가 표현하려는 것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까? 확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만일 못알아 본다면 내 표현 방법에 결여되어 있는 것이 무엇일까? 알고 싶어하는 것입니다.즉, 보다 멋진 말하기 방법을 배우려는 것이 아닐까요?
어린 아이가 말하는 방법을 점점 익히듯이, 그렇게 우리는 모두 사진으로 말하는 방법을 배운다고 생각합니다. 혹 그 말이 서툰 것은 아직 표현 방법에 숙달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후천적 솜씨의 문제라고 할 수는 있어도 천부적인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혹 상심할 수도 있기에, 포스팅 된 이미지에 대해 가급적 좋은 측면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진정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부족한 부분을 언급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마 이것은 같은 표현방법을 배우는 그 친근함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 포스팅하는가? 사진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왜 그 말을 하는가? 만일 이렇게 따진다면 인터넷에 포스팅하기도 어렵고, 마음 먹고 댓글 달기도 참 어려워질 것입니다.
사진은 느낌입니다.
비주얼 커무니케이션은 직감으로 나누는 대화입니다. 그러므로 보는 즉시, 사진이론을 전혀 몰라도, 감각적으로 느껴집니다. 그 느낌을 그냥 문자로 쉽게 표현하는 그 사람의 평이 가장 솔직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만일 이론적으로 분석하는 평이 있다면, 특별한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은 참 이상합니다.
내가 모르는 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니까요. 그래서 때론 포스팅하기도 무섭습니다. 혹 감추고 싶은 내가 들어나면 어쩌지? 걱정이 되니까요.
늙으면 주착이 없어진다는 말 맞는것 같습니다. 제 경우에만......
그러니 이렇게 지루하고 긴 글을...누가 읽기나 할까?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독수리 타법으로 두 검지 빨개지도록 쳐대니.....참..나...
한국인 특유의 인내심으로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분이 계신다면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언제 맛 좋은 차를 나누면서 훈훈한 정을 나눠요.
참! 제 이미지 냉정하게 보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나는 당장에 공원(그 때는 비원과 덕수궁에 여고생들이 많이 몰렸었죠 아마?)으로 달려나가 폼 잡고 사진을 찍고 싶은데, 계란을 찍어와라, 촛불을 찍어와라는 등 흥미없는 것만시키고, 자기네들은 고궁에 가서 여학생들 사진을 찍어 온 후, 일주일 내내 이쁘게 빼주려고 밤까지 세우곤 하더군요.
그렇게 한 6개월 억지로 버티다가(사실 내 사진기가 없어 선배 사진기로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었으니 싫어도 그렇게 버틸 수 밖에...) 사진구룹에서 탈퇴해버렸습니다. 에이~~ 사진 안찍으면 안찍었지...사진기 없는 사람 서러워 살겠나!! 이러구요.
그러다가 페추리(화인더도 잘 안보이는)가 생기고 나서, 종로서적에 가서 그 당시 나온 사진에 대한 책이란 책을 모두 구입해서(모두라 해봐야 2권?) 열심히 읽으며 멋진 사진 만들려고 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브레쏭이 누군지 안쎌 아담스가 누군지, 임응식님이나 현일영님이 누군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냥 사진이 좋고, 찍어서 내 손으로 사진을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아니 깊은 속 마음엔 사진기만 있으면 나도 멋진 여학생을 사귈 수 있다라는 욕망만으로 사진공부를 한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꿈인 영화감독도 사진을 알아야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은 했지만......
대학을 다니다가 때려치고 우리 나라 최초로 사진학 과정을 도입했던 예전 서라벌(74년도에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으로 넘어갔죠) 예대 사진학과를 가려고 다시 독학으로 공부해서 엄청난(?) 경쟁율을 뚫고 당당히 합격! 얼마나 기뻤던지 마치 내가 우리 나라의 사진사에 남을 인물이라도 당장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그러나...운명은 내가 그리되도록 용인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우리 나라 사진계를 위해서 였던건 것 같지만(요즘 생각입니다 이건) 그 당시 너무 허탈해서 군대에 가버렸습니다. 등록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면 기억하기 싫은 가족사가 들춰지게 되어 생략...
그러나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더군요. 군대에서 코쟁이 보도 사진가를 알게 되고, 그 사람의 갖은 잔심부름(민족적 차원의 존심이 상할 때도 있었음) 도맡아 해주며, 암실 작업을 배웠습니다. 손바닥이 노랗게 되고 까만 손금을 가질 때까지...그리고 비로소 브레쏭과 아담스(안쎌과 로버트), 엘스켄, 마이너 화이트, 만 레이 등등 외국 사진가들의 사진도 보게 되었고, 사진의 역사와 예술차원의 이미지들을 접했습니다.
제대를 해서 서울로 돌아와 사진과(서라벌 예대 초급대학 과정)를 졸업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 대화를 나눠보니 어라? 이거 대학에서 뭣들 배웠나? 이럴 정도라면 난 이미 학부 졸업한거잖아? 라고 자만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군대에서 독학으로 공부를 한 그 지식이 내 아집이 되어버렸습니다.
내가 배운 것은 사진사에 대한 것과 암실 기능 외에 아무것도 없었는데도, 이론으로 마치 유명한 사진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버린거죠.
(이야기가 지루하게 길어지네? 에구~~~시작하지 말껄~~~)
그 뒤 공모전으로 건방을 떨며, 기존 사진가들의 사진을 퀘퀘먹은 사실주의 사진으로 폄하했습니다. 충무로 흑백사진연구소에 모여 입에 침이 튀도록, 밤이 새도록 이론 자랑만 해대고, 공모전에 낙선한 분풀이를 보이지도 않고 죄도 없는 심사위원들에게 퍼부어대곤 했었죠.
그렇게 기고만장한 공모전 작가(? 잡가라고 해야하나?)노릇을 하다가 어느날 온몸에 소름이 돋고 땀이 나도록 전율이 이는 사진 한장을 보게 됩니다. 그 사진을 찍도록 가르쳐준 분을 찾게 되었고, 머리통에 기고만장한 이론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은 절대 가르치지 못한다고 냉정하게 거절하는 분에게 애걸복걸 3개월여 달라붙어 결국 초심으로 돌아 가 6여년 동안 공부를 하게 됩니다.
나이 40에 또다시 17살 때 지겨워서 도망쳤던 그 지루한 작업을 반복하게 되었고, 이제는 죽으라고 시키는대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6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가더군요. 아마 1994년도에 내가 병으로 쓰러지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분에게 배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올해 연세가? 80이 넘으셨겠군요.
그분이 내게 사진 배움을 허락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아집을 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억지로, 물리적인 방법으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누누이 격려를 했습니다. 이제 이 글을 쓰게 된 결론이 나옵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1994년 쓰러져(사진에 몰입해서 몸을 돌보지 않다가) 4년반동안 빈 샤터만 누르며 지냈습니다. 수술 후, 겨우 살아났기에, 눈도 잘 안보이고 호흡도 이내 가빠지고, 수전증이라도 생겼는지 사진기를 5분도 들고 있지 못할 정도로 벌벌 떨려서, 누워 사진기를 배 위에 놓고 빈셔터만 눌렀지요.
1999년 9월 경 친구와 둘이서 태백산 야간산행을 강행했습니다. 산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포기하면 사진도 포기한다라는 생각에서 올랐습니다. 아프기 전 1시간반 정도 걸리던 산행이 5시간 걸려 올랐습니다. 정상 가까이 장군봉 천제단 돌무더기가 내 눈에 들어오더니 내 눈 속에서 흐물흐물 춤을 추더군요. 오래도록 그렇게 춤을...
그리고 2002년까지 전에 배웠던 것을 기억하는 복습을 했습니다.
2003년 다시 흑백공부를 시작하며 그 동안 사용했던 contax를 몽땅 팔고 라이카를 장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사진을 계속한다해도 건강해야 15년? 그래서 어릴 때 그리도 만지고(가진다는 것은 꿈도 못꾸었으니까요) 싶었던 라이카 M3 더불스트록 바디를 구입하게 되었고, 랜즈를 하나 하나 장만해서 드디어 오늘 원하는 세팅을 했습니다. 35mm f2, 50mm f2 DR, 90mm f4.
내가 평생 꿈 꾸어왔던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물리적 변화를 스스로 시도했습니다. 아직도 내 안에 고여있는 아집도 발견했으니까요.
그러나 기계는 도구일뿐입니다. 라이카를 구입한 것은 다만 어린시절 내 소원을 스스로 이루고 싶었기 때문일뿐입니다. 싫컷 만져만이라도 봤으면 하던 그 사진기를 가졌으니 마음도 남달리 변화되지 않을까 하는 바램도 강합니다.
사진은, 요즘 느끼는 사진은 대화의 한 방편입니다. 인터넷처럼 커뮤니케이션 툴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만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을 멋지게 잘 표현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사진에 대한 대부분의 고민이 아닐까 합니다.
여기 클럽과 같이 인터넷에 포스팅되는 사진은 두가지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는, 내가 표현하려는 것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까? 확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만일 못알아 본다면 내 표현 방법에 결여되어 있는 것이 무엇일까? 알고 싶어하는 것입니다.즉, 보다 멋진 말하기 방법을 배우려는 것이 아닐까요?
어린 아이가 말하는 방법을 점점 익히듯이, 그렇게 우리는 모두 사진으로 말하는 방법을 배운다고 생각합니다. 혹 그 말이 서툰 것은 아직 표현 방법에 숙달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후천적 솜씨의 문제라고 할 수는 있어도 천부적인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혹 상심할 수도 있기에, 포스팅 된 이미지에 대해 가급적 좋은 측면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진정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부족한 부분을 언급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마 이것은 같은 표현방법을 배우는 그 친근함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 포스팅하는가? 사진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왜 그 말을 하는가? 만일 이렇게 따진다면 인터넷에 포스팅하기도 어렵고, 마음 먹고 댓글 달기도 참 어려워질 것입니다.
사진은 느낌입니다.
비주얼 커무니케이션은 직감으로 나누는 대화입니다. 그러므로 보는 즉시, 사진이론을 전혀 몰라도, 감각적으로 느껴집니다. 그 느낌을 그냥 문자로 쉽게 표현하는 그 사람의 평이 가장 솔직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만일 이론적으로 분석하는 평이 있다면, 특별한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은 참 이상합니다.
내가 모르는 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니까요. 그래서 때론 포스팅하기도 무섭습니다. 혹 감추고 싶은 내가 들어나면 어쩌지? 걱정이 되니까요.
늙으면 주착이 없어진다는 말 맞는것 같습니다. 제 경우에만......
그러니 이렇게 지루하고 긴 글을...누가 읽기나 할까?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독수리 타법으로 두 검지 빨개지도록 쳐대니.....참..나...
한국인 특유의 인내심으로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분이 계신다면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언제 맛 좋은 차를 나누면서 훈훈한 정을 나눠요.
참! 제 이미지 냉정하게 보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