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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갖고 싶은 카메라 (바디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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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리지환
  • 작성일 : 10-08-17 18:06

본문

1.Introduction
그리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접하는 이야기 하나.
인용:
"저희 집 장롱에서 이런 카메라가 나왔어요. 이게 뭐죠?"
"아, 그것은 라이카라는 카메라 회사에서 나온 M3 후기형과 리지드 렌즈입니다. 좋은 카메라네요. 축하드립니다."


지금보다 좀 더 많이 어렸을 적, 우리 집 장롱에서도 카메라 한대가 나오긴 했다. 은색의 캐논 FTb와 50mm 표준렌즈 하나. 처음 본 지 대략 10여년 가까이 흐른 다음에야 완전 수동식이라 나름대로 용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보급기종으로 경제적 가치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다지 가슴이 설레이거나 동공이 커지는 흥분은 애초에 이미 사라졌고, 렌즈가 부옇게 보였던 것이 김이 서린 게 아니라 곰팡이였다는 것을 알고는 큰 실망감만 남았을 뿐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왜 우리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라이카를 사지 않으셨을까'라는 철없는 아쉬움만 간직한 채.

좀 더 시간이 흘러, 당시에 그 "라이카"라는 카메라가 그 어려웠던 시절 집한채, 혹은 한 밑천에 맞먹을 정도의 가격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예전의 소시적 생각이 얼마나 철딱서니 없는 것이었는 지 깨닫게 되기까지는 또다른 10년이 필요했다.



2.First Passion
군생활 때 비교적 개인시간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라 그 "FTb"를 들고 다니며 상당히 많으 사진 - 동료나 부하들, 연인과 친구들 - 을 찍었고, 비록 그 때 찍은 사진들의 행방은 전혀 알 수 없게 되었지만 당시의 즐거움과 기쁨은 지금도 생생하다.

한창 카메라를 메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던 무렵, (또 한참의 시간이 흘러 이곳 회원으로 근황을 다시 알게 된) 친한 형님의 "M6"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본 "Leica"였다. 그 때 떨리는 마음을 억지로 누르며 자못 차분한 목소리로 가다듬고 물었던 질문, "이거 얼마나 하나요?" 단순한 호기심이나 비싼 카메라에 대한 힐난, 혹은 부의 과시에 대한 거부감, 이런 감정이 아닌, "나도 꼭 갖고 싶다. 나만의 카메라를, 나의 라이카를." 이라는 개인적인 바람의 질문이었다.

그 전에도 개인 홈페이지에 '내가 갖고 싶은 것들'이라는, 지금 보면 상당히 유치한 글의 말미에 "주머니에 쏙 넣을 수 있다는 M6"를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있었는데, 막상 실물을 보니 걷잡을 수 없는 두근거림이었다.



3.First Leica
하지만 정작 "Leica"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카메라를 사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몇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회사를 다니다가 어찌어찌하다보니 중국에서 1년 정도 생활할 기회를 얻었는데, 마침 경제적인 여유도 되고해서 중국에서 보는 여러가지를 사진으로 담고자 Digilux 2를 장만하게 되었다. 당시는 DSLR은 소위 준전문가 이상만 사용하는 것이란 인식이 강했고, 그렇다고 고급형 컴팩트 카메라는 "손맛"이라는 것이 없었다. 반면에 조리개와 촛점, 셔터스피드를 모두 손으로 돌려서 조작할 수 있었던 Digilux 2는 바로 내가 찾던 그런 카메라였다. 더욱이 "Leica"라니. 상하이에서 홍콩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Mong Kok의 카메라 상을 나설 때엔 이미 파나소닉의 쌍둥이 모델이고, 가격을 생각한다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있다는 경제적인 합리성 따위는 저 멀리 날려버린 후였다.

참 좋았고, 또 많이도 찍었다.
산 지 채 보름이 되지 않아 타고가던 차량이 전복되는 대형사고를 겪을 때에도 카메라만은 품에 꼭 안고 지켜낼 정도로 나한테는 가장 소중한 것 중 하나였다. 창밖으로 세상이 뒤집히는 와중에서도 제일 먼저 떠오른 아내의 얼굴 다음으로 카메라를 생각했으니. 이후 "나의 것"이라는 생각으로 모서리가 까지고 몸체가 긁히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고 무척이나 많은 사진을 찍었다. 실크로드, 내몽고, 만주, 홍콩, 티벳, 인도... 사실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많은 사진을 원없이 찍었던 때가 바로 이 카메라를 사용할 때가 아닌가 싶다.



4.Second Leica for My Love
한국에 돌아온 후, 아내에게도 나의 기쁨을 나누어 주고 싶었다.
마침 C-LUX라는 역시 파나소닉 제품과 동일한, 그러나 빨간 딱지가 붙어 있는 작고 귀여운 카메라가 나왔고, 이거다 싶은 생각에 아무런 마설임 없이 구매했다. 그 때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선물을 받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던 그 얼굴, 아직 눈에 선하다.

이후 함께 여행을 다닐 때에도, 좁은 월세 방에서 복작거리며 살 때에도, 집을 늘려서 아파트로 이사할 때에도 기쁜 순간에는 항상 그 카메라가 추억을 기억하게 해 주었다.



5.At Last, the REAL ONE
좋은 것은 좋은 것이지만, 뭔가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진짜를 원했다. 10여년 전 처음 들여다 본 뷰파인더의 이중상, 부드럽게 돌아가는 자그마한 렌즈의 촛점링, 낮게 짤깍거리는 조리개의 걸림, 그리고 낮게 속삭이는 셔터. 사진 자체 뿐만 아니라 사진을 찍는 그 행위마저도 즐거움으로 만들어 주는 그 느낌.

이미 손안의 새 처지가 되어 버린 Digilux 2는 아무리 아날로그 느낌이라고는 하지만 뭔가 부족한 것이 항상 걸렸고, EVF의 답답함도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CCD 불량 사태로 두어달 A/S를 다녀오고 나니 부쩍 손길이 가지 않게 되었다. 그 사이 넘볼 수 없는 가격대의 M8은 중고가가 거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처음 M8을 받았을 때엔 렌즈도 없었고 바디뿐이었는데, 렌즈를 장만할 때까지 바디만 만지작 거리며 공셔터를 날리면서도 (셔터소리에는 사실 충격이 컸다. 이건 아닌데...) 앞으로 이것으로 찍을 일을 생각하면 괜시리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며칠이 지나 첫렌즈로 Elmarit-M 28mm ASPH를 물렸는데, 이는 역시 이곳 라이카클럽의 모 선배님의 추천글을 읽고 결정한 것이었다. 얼마 후 감사의 쪽지를 보내드렸고 따뜻한 말씀의 답장을 받았다. 사람 내음 물씬 풍기는...

이후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저것 나에게 보다 맞는 렌즈를 찾아 헤메기를 반복하며 좋은 분도 만나고 아쉬운 사람도 만나는 사람 세상을 몇번 경험하다 보니, 결국 내 손에는 M8과 무한대 스토퍼가 달린 Summilux 35mm 2세대 렌즈가 남게 되었다. 정말 마음에 들었던 Summaron 35mm f/2.8 이라던가 Summicron 50mm 3세대 같은 경우에는 아쉬움을 진하게 남긴 채 내 손을 떠나기도 했다. 그동안 갤러리에 이것저것 사진을 올려보기도 하고 다른 선배님들의 사진에 감탄 내지는 감동을 하기도 하면서, 새로운 사진 세상을 접하기도 했다. 역시 이발소 포스터나 호프집 달력이 눈에는 즐겁지만, 이곳 갤러리의 마음을 울리는 사진이 더 좋은 듯하다.



6.My Wish
수학적으로, 혹은 가십성 상식으로 말하길 "6"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라고 한다. 자기 자신의 약수를 모두 더해도, 곱해도 자기 자신의 숫자라나... 짧은 듯 하긴 하지만 뭔가 주절거리는 나의 이 글도 소위 완전수로 끝나게 되니 살짝 기분이 싱숭생숭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욕심(?)이 멈추면 좋으련만.

사실, FTb도, Digilux 2도, M8도 나에게는 과분하면서도 훌륭한 만족감을 준 것임에는 틀림 없다.
그러나 애초에 카메라를 처음 접할 때부터 나에게는 수동, 기계식, 심사숙고, 기다림, 이런 것들이 감성적으로 깊게 자리하고 있었고, 그러한 가치들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희망사항을 넘어 "나의 것"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으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일천한 나의 사진 경험에도 불구하고 내가 바라는 카메라의 조건은 (바로 이것이 이 긴 글을 통해 부여받고자 했던 당위성의 목표 대상이다.) 몇가지가 있다.
- Leica M 시리즈의 크기를 지녀서 작은 부피로 재빠르게 들고 나갈 수 있을 것.
- 블랙 페인트라서 내가 쓰면서 황동이 드러나고, 내 자식에게 물려줄 때에는 흠집 하나, 까짐 하나가 모두 추억으로 전해질 수 있을 것.
- 전면의 모델명이나 로고가 도드라지지 않아서 찍히는 사람이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도록 할 것.
- 노출계가 달려 있어서 나의 부족한 감각을 일깨워 줄 수 있을 것.
- 완전한 기계식이라서 전자제품의 짧은 수명을 보완하고, 기계적인 수리로 오래 사용할 수 있을 것.
- 필름 리와인더는 경사지게 붙어 있고 손잡이가 달려 있어서 재빠르게 조작할 수 있을 것.
- 셔터 소리는 나에게만 속삭일 수 있는 나만의 것일 것.
- 파인더 프레임은 최대한 단순하여 눈이 번거롭지 않을 것.

이런 조건들이 바로 몇년을 묵으면서 가다듬어진 내가 원하는 카메라, 나만의 카메라의 조건이었다.
라이카사의 홈페이지에 있는 A la Carte 만들어 보기로 시뮬레이션해 보면 대략 아래 그림의 MP 같은 모습이거나 M6 LHSA Special Edition 정도인데, 사실 가격이 상당해진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리고 항상, 그리고 간절히, 바란다면 언제나 그러하듯이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을 가져본다.


ps. 개인적인 느낌을 적는 것이라 평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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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서재근님의 댓글

서재근

차분하게 카메라내력에 대해 써 내려간 글을 역시 차분하게 읽다보니,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결코 충동적이 아닌 나름대로의 조사와 판단에 의해,
충분한 이유와 필요에 의해서 새로운 카메라를 구입하고,
또 상당 기간 예뻐하며 사랑해 주는 리지환님의 모습이 떠 올랐기 때문 입니다.

언젠가 까만 뺑끼 알라까르테 MP를 손에 쥐는날,
기쁨을 저에게도 전해 주세요.....

강웅천님의 댓글

강웅천

글을 읽으면서 순간순간 제 과거도 같이 읽는거 같아 짜릿짜릿 했습니다. ^ ^
제게는 몇개의 올드바디와 M6 non-ttl이 있습니다.
기능이나 성능에서의 큰 차이가 없고, 아직 MP를 만져보지 못한터라 M6를 고집스럽게 쓰고 있습니다만..
저도 기회가 된다면 M6에 M3 상판을 얹은 녀석 정도를 만들어보고 싶으네요.
지금 당장은 여러 렌즈들을 섭렵해보고 오래된 렌즈들이 발하는 포스에 좀더 깊게 빠져 들고 싶습니다.

글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장정하님의 댓글

장정하

꼭 알라 페인트 손에 쥐시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역시 알라는 자신이 만드는 알라가 최고인듯 해요.. 올드바디를 넘어 m7에서 mp블랙을 지나 현재 실버까지 너무 급하게 왔습니다. 디지털 m 아직 손안에 둔적은 없지만, 필름이 끝나는 날 저도 디지털로 넘어가겠죠^-^ m8 부럽네요

임규형님의 댓글

임규형

라클 인사계로 일하다 보니 할아버지께서 쓰시던 라이카 얘길 몇 번 보았습니다.
아버님이 물려 주신 카메라 얘기도 감동적이었는데 할아버님의 카메라는 두 말
할 필요도 없었지요.

저도 선물로 받은 것이 하나도 없어서....
선물로는 두 번 준적이 있으니 잘 한거겠지요?

늘 전투형을 써왔는데, 요즘은 M6 밀레니엄 에디션이 눈에 밟히네요.
블랙 페인트 즈미룩스 까지 함께면 좋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살 것 같지는 않지만 단 하나의 바디와 렌즈만을 강요당한다면
그렇게 할 것 같긴 합니다.

신한주님의 댓글

신한주

이글을 읽고 한동안 끊었던 장터를 들락거리게 되는 건 아닌지...^^;

김경표님의 댓글

김경표

가져야 할 당위성이 분명하십니다.
그러니 꼭 가지게 될것이라 생각되네요.
그놈을 가지셨을때 다시 한번 그 기쁨을 접하고 싶네요.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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