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반데니소비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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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김명기
- 작성일 : 09-10-1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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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눈앞 들녘엔 농부의 보람이 가득하다. 아침 일찍 논길을 걷다 콤바인을 운전하는 농부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들의 입가에 묻어나는 미소는, 지켜보는 이방인의 마음까지 넉넉하게 만든다. 가을철 농부들이야 말로, 진정한 황금을 캐는 사람들이라고 할 것이다. 나는 가슴 속에 미소를 전이 받고 가벼운 발걸음을 옮긴다.

마음이 편안해야 글을 쓴다고 생각했다. 늘 일정한 형태의 일상과 평상심 속에서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늘 가난과 힘든 갈등 속에서 글을 토하곤 했다. 내 삶의 몇 가지 움직이지 않는 진리 중엔 그런 것들도 있었다. 어쩌면 입에 단내가 나도록 속 타는 현실 속에서 나온 글들이 진짜가 아닐까? 마음에 들지 않는 사실이지만 할 수 없다. 삶의 대부분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나는 현재 사업가다. 새로운 분야의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좁은 오솔길을 발견한 여행자다. 이 오솔길이 끝나면 넓고 푸른 초원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몸이 피곤한 것은 당연하다. 500Kg이 넘는 말들과 씨름하다보면, 이정도 건강한 것이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다.
몸의 피로보다 실제로 더 피곤한 것은,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누가 잘하고 잘 못한 것은 의미 없다. 다만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겨난 것일까? 그저 길을 걷다가 돌부리에 채인 것일까? 나는 요 몇 주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반추해 본다. 가장 덜 나쁜 일부터 나열한다.
가장 가벼운 나쁜 일은, 일하던 직원이 말도 없이 슬그머니 사라진 것이다. 그만둔다는 말도, 사표도 없이 그냥 무단결근을 한 것이다. 알다시피 우리는 정해진 인원으로 팀을 구성해서 하는 일이다. 왜 사라진 것일까? 같이 일하던 동료들을 힘들게 하자는 의도일까? 전화도 받지 않으니 무책임 한 것 외에, 그의 의도는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좀 더 나쁜 일은 그 이후에 일어났다. 새로 뽑은 직원에게 문자가 왔다. '술 먹고 사고 쳐서 경찰서에 있어요. 합의가 될 때까지 일 못할 것 같습니다.' 이게 무슨 일? 참 젊은 혈기는 사람이나 말이나 늘 문제로구만. 그러고 며칠이 지났다. 계속해서 자리를 비워 둘 수도 없는 일이고, 며칠이지만 함께 일하던 직원이니 일이 어찌되었는지 궁금했다. '사건이 어떻게 되어가나? 연락 바람.'
그리곤 엄청난 욕설이 담긴 문자를 받았다. 왜 일까? 무엇 때문에 나이든 내가 그에게 욕설이 든 문자를 받아야 할까? 결근하는 직원의 근황을 궁금해 한 것이? 인지상정으로 안부를 물은 것 때문에? 그런 것이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욕을 해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일까? 나는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이런 건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가장 나쁜 일은 고집이 만들어낸 것이다. 내가 개발한 안전 승마연습장치로 특허를 받았다. 그리고 함께 협력해서 안전한 승마와 승마대중화를 위해 일할 업체를 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와 동일한 장치를 만들어서 영업을 하는 곳이 있었다. 물론 나는 변리사와 의논을 했고, 소를 제기 했다.

특허 하나로 팔자를 고칠 것도 아니고 나는 약간의 특허 사용료와 특허권자의 명의를 장치에 부착해 주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내 의사를 밝혔다.
그래서 이걸 변리사 하고 풀어나가면 약 2,200만원이 든답니다. 그쪽에서 맞대응을 하면 저도 2,200만원이 들고요. 그러니 이게 얼마나 낭비 입니까? 게다가 저는 특허증을 들고 있습니다. 그쪽에서 만약 패하기라도 한다면 2,200만원에 막대한 벌금을 따로 내셔야 하고, 저도 제가 사용한 비용과 손해배상 등등, 민, 형사 소송을 제기 할 것입니다. 이쯤에서 서로 손해 보지 않는 범위에서 멈추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상대방은 고집을 피운다. 그러니 나도 내 특허 권리를 지킬 수밖에. 실제로 50%도 들지 않을 비용을 몇 배로 손해보고 3년간 지루한 소송에 시달리고 끝나봐야 어차피 이익날 일도 없는데, 끝까지 하겠다고 한다. 자존심 때문이라나? 자기 물건에 내 명의를 붙일 수는 없단다. 이미 특허가 난 동일한 시스템에. 나는 웃는다. 돈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인가 보다. 자존심 때문에 몇 천씩이나 날리다니. 그런다고 없는 자존심이 만들어지기라도 하는 것일까?
나는 가난하다. 돈이 아깝다. 변리사와 함께 내 특허권을 지키자면 많은 돈이 소요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나와 있는 특허를 지키지 않을 바보가 있을까? 나는 최선을 다해 내게 국가에서 준 권리를 지킬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비용과 마음의 상처까지 가시적으로 보상 받을 것이다.
적어놓고 보니 요즘 내 일상은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내가 이럴 때 할 일을 이미 알고 있다. 나는 삽을 들고 마방으로 갔다. 오전 내내 19칸의 마방을 바닥까지 싹싹 긁어내고 새로 깔끔한 톱밥을 깔았다. 몸에는 무리한 일이지만, 마방에는 톱밥 향기가 가득하다. 행복한 말들은 뒹굴며 톱밥목욕을 하고, 아예 엎드려 일어나지도 않고 푹신한 새 톱밥의 포근함을 즐긴다. 말은 정말 깔끔한 동물이다.
하루가 지난 오늘, 나는 지금 몸의 각 부위가 지르는 비명과 뻐근함을 느끼며 행복해 하고 있다. 육체노동은 마음의 병과 고민까지 가라앉힌다. 해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가끔은 벽돌 쌓기에 열중한 이반데니소비치처럼 살아야 한다. 물론 이반은 여전히 갇힌 채로겠지만, 내게 이런 건 얼마 지나지 않아 굉장한 행복이었음으로 밝혀질 일이다. 나는 문득 전화를 열고 아내에게 말한다. '사랑합니다.' 라고.
송화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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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강인상님의 댓글

선배님께서 늘 들려주시는 삶의 진한 향기가 묻어나는 글 감사합니다.
얼마 전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저도 늘 우리 아이들에게 말한답니다.
"자기의 할 일-의무-을 다하고, 그에 맞는 것을 바라는 것-권리-은 당연한 것이다."라구요.
선배님, 무엇으로보나 당연한 일입니다.
적지않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시겠지만, 꼭 쟁취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또한 언제나 건강하시고, 평안하세요. ^ ^
김명기님의 댓글
강인상님 안녕하세요?
늘 친절한 댓글 감사합니다.
단순하게 사는 것이 최고인데, 이상하게 자꾸 복잡한 일에 말려드는군요.
나만 단순해서는 안되는 것이 삶인 것 같습니다.
특허증을 들고도 그걸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과 복잡한 일을 벌여야 하다니..
세상 정말 만만치 않네요... 어쨌든 잘 풀려가겠지요.
저도 정의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니까요... ^~^
하희상님의 댓글

가끔은 우격다짐이 더 통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생각보다는 많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카샤 한 그릇에 만족해 하는 이반처럼, 담배 하나에 행복한 카피탄 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서재근님의 댓글

오랜 만입니다.
글을보니 답답합니다.
저 쪽에도 변리사와 상의 했을것이고,
그 쪽에 변리사야 이기고 지는것은 두번째 문제이고, 일단은 소송이 진행되어야 일감이 될터이니,
어쩌면 승산이 있다고 부추겼을수도 있겠지요.
소송비가 2,200이나 든다니 판단하기가 쉽지 않겠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그립습니다.
어려운 일이 닥칠수록 "원칙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어려운 일 일수록 정도를 걸으라는 막연한 말씀밖에 달리 어찌할 수 없는 제자신이 답답해 집니다.
이럴수록 스트레스는 피하시고,
즐거운 일만 생각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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