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심사
페이지 정보
- 작성자 : 신 정식
- 작성일 : 09-04-27 22:19
관련링크
본문
물론 크리스마스에 나누어 주는 오색떡 한덩어리와 연필 몇자루, 공책 한 권 때문이었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지금은 이름을 이야기 하기 곤란한) 여자아이를 보기 위해서 였다.
그 하얗고 예쁜 얼굴을 한 아이가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부르는 찬송가 소리는 정말 천사의 노래였으니까...
교실에서 부르던 노래소리를 못 잊어 교회까지 찾아갈 정도였으니
아마도 일종의 " 짝사랑 " 아니였을까...
게다가 그 아이네 집은 우리 동네 유일한 2층집 부자여서
생일에 초대를 하는데 꼭 바나나가 상 위에 있었다...
지금은 먹다가 버릴 정도로 흔한 바나나를 그 당시 구경이라도 할 수 있었던 집이 얼마나 되었을까...
1학년 때 이어서 2학년에 올라서는
우리 동네에 사는 그 아이 때문에 날마다 우리 집 앞 공터는 운동장이었다.
땀 뻘뻘 흘리며 놀던 우리는 늘 " 얘들아 ! 더운데 이리 와서 사이다 마셔라... " 하시는 그 아이 엄마 목소리를 또한 기다렸고...
그래서 짖궂은 성환이가 야단을 맞아도 유일하게 좋다고 한 " 천사아줌마 "였다.
어느 날 칠성사이다 마시러 들어간 그 아이 집 마당에는 " 천사의 꽃 "이 있었다... 바로 빠알간 튜울립 ....
난 태어나서 처음 본 그 꽃이 그 아이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였었다.
그래서 붙인 이름이 " 천사의 꽃 "이었지...
지금도 빠알간 튜울립만 보면 그 아이가 생각난다.
그런 사연을 안고 다닌 나의 " 당일교회 " 생활은 3학년에 막을 내렸다.
교회라면 지옥보다 더 못한 곳으로 지금도 치부하고 계신 우리 아버지 때문에...
그래도 난 지금도 교회를 다닌다.
중 고등학교 다닐 때는 친구의 꼬임에 빠져 맞으면서도 다녔다.
" 에라... 난... 모르겠다... 길가의 잡초는 밟혀도 꽃이 핀다. "
매로 때우고 도서관 간다고 일요일 아침 집을 나서서는
당시 영등포 경찰서 옆에 있었던 교회로 갔던 나는
지금까지도 왜 그랬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때는 내 마음에 둔 여자 아이도 없었는데...
하여간 그 때 습관처럼 지금도 주말에 농사일로 진부에 가지 않을 때면 교회를 간다.
그런 내가 교회보다 자주 다니는 곳이 있으니 바로 절이다...
아직 절에가서 절을 해 본 일은 없지만 간혹 부처님 오신 날 같은 때 절에 가면 연등도 산다.
물론 기와 시주도 종종 하고...
교회 다니는 사람 마음과 절에 다니는 사람 마음이 뭐가 다르랴... 하며...
나는 좋아하는 절이 몇군데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서산 개심사이다...
심심하고 답답하면 혼자서라도 불쑥 튀어나가 휙 달음질친다.
조그맣고 아담한데도 꽉찬 절집이다.
봄에는 가지가지 벚꽃이 만개하고 초여름엔 연못 옆에 배롱나무 꽃이 아주 좋다.
절에 오르는 깊은 솔길은 늘 상쾌하며 가을엔 단풍도 볼만하다.
찾는이 드문 겨울에 눈이라도 소복이 내려 앉으면 그 고즈녁함 또한 일품이다 ...
우연히 이 절에 들르게 된지 몇 년 있다가 보니
유홍준의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가 나왔는데 이 때문에 세칭 뜬 절이 되었다.
이 절의 기둥은 자연목 그대로 가공하지 않고 구불어진 채로 써서 그 S 라인이 보기 매우 좋은데
유홍준이 이 것을 그 책에 써서 지금도 사진이 종종 올라온다.
그래서 벚꽃 만개한 봄 주말이면 관광버스가 사람들을 잔뜩 토해 놓는다.
한적한 분위기 찾아 다니던 나는 이 때면 몹시 마음이 상한다 ...
공연히 내 마음속의 그 아이를 들킨 것 같은 기분으로 ...
더군다나 아무나 아무데나 돌아다니며 왁자한 소리를 내면 더욱...
그러다 보니 나만 알고 즐기는 곳에도 훼방꾼이 찾아 든다.
하지만 그들은 오직 화려한 벚꽃에만 눈이 가 있다.
이제 싹이 돋아 기와 담장을 파랗게 덮을 담쟁이의 흔적에는 관심도 없이 ...
화려한 벚꽃은 확 타올라 몇 날에 지지만
이 때 누렇게 세월 담고 남의 눈에 띄일까 색을 감춘 담쟁이는 검은 기와를 속에 안고 푸르름이 몇 달을 가는데...
어느 새 개심사 절집 헛간 위에도 봄의 화려함이 내려 앉았다.
낡은 지붕과 이끼 앉은 돌담은 오히려 벚꽃과 함께 운치를 더한다.
보송한 말랑말랑한 피부의 손주를 품에 고이 싸 안은 쭈글탱이 할머니 때문에 우리의 정감이 더하듯이 ...
댓글목록
서재근님의 댓글

아 ! 개심사...
지난 18일 두번재 개심사를 방문 하였습니다.
왕 벛꽃 구경갔습니다.
그때는 구경도 못했고,
지금쯤 왕벛꽃이 한창일거라 생각해 봅니다.
생각 같아서는 2-3일 내로 다시가고 싶은데 어려울것 같습니다.
무척이나 작고 아담 하지만,
마음가득 포근함과 소박한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그런곳 이었습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몇장의 사진 올려 봅니다.
강인상님의 댓글

들려주시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띄게 해주시는군요..^ ^
개심사.
저도 주일에는 교회에 나가지만,
언젠가 계획을 세워 꼭 한 번 들러보고 싶은 곳입니다.
신정식 선배님, 서재근 선배님 사진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김솔하님의 댓글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유성수님의 댓글

개심사는 원래 조용히 숨어 있는 참한 절이었는데
유홍준의 책 때문에 세상 세파에 내던져져서
요새는 그만 관광지로 전락한 절이되어버렸지요.
충남 사람들이 아끼던 숨은 절이었는데 안타까운 생각도 듭니다.
박진호@님의 댓글

특이한 제목으로 클릭하게 되었는데,
봄의 기운을 느끼고 돌아 갑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절 이었군요 ㅎㅎ
한경덕님의 댓글

좋은글과 봄느낌을 물씬 느낄수있는 사진 잘보고갑니다~
조윤성01님의 댓글

개고생 광고생각하고 개심사란 글 봤는데 심사본다는 그뜻이 아니라 한참 웃었네요
근데 올려준 사진도 좋지만 댓글로 올려진 서재근님 사진 또한 끈적한색감이 일품이네요
함 가고 싶네요
박경복님의 댓글

글을 읽고서, 잠시 옛 생각에 잠겨 보았습니다.
아련하지만, 아직도 선명한 얼굴들이 떠오르네요.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김경표님의 댓글

역시 저도 절이란 생각은 못했습니다.
어릴적 얘기는 정말 정감이 갑니다. 어린 마음의 생각이라는게 때묻지 않아서 그런지
모두 다 똑같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같이 공감하게 되지만...
사진 또한 훌륭합니다. 꼭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박연철님의 댓글

개심사..얼마전에 저도 갔다왔어요.
좋은 시선으로 좋은 사진들 많이 담으셨습니다.
임재식님의 댓글

그래서 짖궂은 성환이가 야단을 맞아도 유일하게 좋다고 한 " 천사아줌마 "였다.
마치 수채화같은 글과 그림 감사합니다.
내 생에 천사아줌마같은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 생각합니다.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이메일주소 무단수집을 거부합니다.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 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