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도 아닌 것이, 출사도 아닌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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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손현
- 작성일 : 07-07-1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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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선배가 한 명 있다. 사회생활을 하고 처음으로 안 선배. 휴가를 받았는데 혼자 외국가기도 뭣하다고 서해나 이틀 다녀오자. 그러시더라. 흠... 그냥 '네' 하고 대답했는데. 막상 여자 둘이서 차 없이 안면도로 2박 3일 다녀오려니. 것도 장마철에. 한 4-5년 전에 갔던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그래도 낯선 안면도.
첫날. 남부터미널에서 차 타고. 안면도에 도착하니 1시. 펜션 (실은 민박수준) 사장님이 마중을 나오셔서 도착지 영목항 근처까지 쭉 들어갔다. 갯벌이 펼쳐진... 짭짜롬한 냄새가 배어있는 한적한 항구. 갯벌체험이든 뭐든 뭔가를 한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한적한 항구. 맥주 한 캔먹으며 갯벌보고 있었다. 두번째 맥주캔을 뜯던 중에 희소식. 사장님께서 영목항 갈 일 있으면 데려다 주시겠다고 하시네. 그 길로 영목항가서 2만원어치 회를 떠 왔다. 펜션 앞에 돗자리깔고 회랑 소주랑 먹고 있는데 비가 온다. 후다닥 싸들고 방에 들어가서 (어차피 제일 싼 1층 방이라) 문 활짝 열어놓고 홀짝홀짝... 오는 비 보면서. 먹다보니 매운탕까지 팔팔 끓여서 각 병씩 비우고. 그래도 겨우 육시. 흠... 당췌 뭘 해야하는지. 사다놓은 맥주를 또 마시기 시작했다. 들끓는 파리떼와 싸워가며 캔맥주를 콸콸콸. 그 날은 그렇게. 씻고 잤다.
날이 밝고. 비가 올 듯 말 듯. 다행히 내리진 않고 선선한 날씨였다. 사장님이 자연휴양림에 떨궈놓고 육시반쯤 오시겠다고 하신다. 꽃지까지 걸어가서 (헉...!!!) 일몰보고 거기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고분고분 '네' 하고선 숙취가 덜 된 몸으로 자연휴양림 봉우리를 다 오르락 내리락 하고선, 사장님이 알려준 지름길 (지름길이라 하기엔 몇 km가 되는...ㅋㅋ)을 걸어걸어, 물어물어... 일단 꽃지해수욕장까진 도착했다. 인터넷으로 보던 섬 비스무리한 거 2개가 바다에 있길레. 아. 여기다 싶더라. 역시나 할 게 없다. 도착시간이 1시. 사람도 없다. 흐린 날씨에 해수욕하는 대삐리 한 5-6명 저 멀리 보인다. 돗자리 펴놓고 캔맥주를 먹기 시작. 먹다보니 캔이 옆에 굴러다니고 있네... 1시부터 7시까지 했던 얘기 또 하고. 맥주 먹고. 하늘보고 누워서 자다가. 또 일어나 맥주먹고. 사장님 언제나 오시려나. 육시에 딱 맞춰서 돗자리 걷고 기다리고 있는데... 1시간 정도 더 기다리란다. 마침 비가 온다. 추적추적 내리더니... 쏟아질 기세. 매점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계속 기다렸다. 동반자는 맥주. 사장님 도착. 펜션 들어가서 씻고 전날 사다놓은 삼겹살을 구웠다. 그냥 소주는 힘들지 싶어서 쏘맥으로. 먹을만큼 먹고 잤지...
다음날. 남은 밥이랑 참치, 김치랑 먹고 서울로 오는 직행버스타고 왔다. 곰곰 생각해보니 사진은 흑백 1롤, 컬러 반도 안 찍고 올라온 거다. 허접한 실력에 뭘 찍어얄지. 그냥 안면도의 일상을 휙휙 찍은 것 같은데. 사장님께서 안면도역에 데려다주시면서 한말씀 하시더라. "여자 둘이 와서 술만 먹다 가네?" "아..네... 하하-" 민박수준의 저렴하고 편한 펜션이었는데 다음을 기약하긴 힘들다. 민망해서.
댓글목록
JK이종구님의 댓글

저는 손현님이 소년인줄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숙녀분인줄 몰라뵙고...
아무튼,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행과 출사네요.
무진장한 장비들로 열댓명이 호들갑떠는 출사도 싫고, 술도한잔 마을도 찬찬히 돌아볼 수 있는 여유. 그러면서 내가 마을에 녹는 것인지 마을의 풍광이 내카메라에 녹는것인지 알듯 모를듯 한 출사...
김윤진님의 댓글

재미있는 여행기 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 가지겠지요 다르다면 차를 가져가서 몇군데 더 들리고,식당에서 밥을 먹든지,혹 나이가 젊으신 분들은 또래를 만나 어울리던지
그리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장충기님의 댓글

음, 제 생각에는 휴가 제대로 보내고 오신 것 같네요.
저도 언제 한번 그런 한적한 휴가를 즐기며 머리속 좀 깨끗이 비워보고 싶습니다.
어딘가를 가면 무언가를 하여야 한다는 강박감이 휴가를 휴가답지 못하게 만듭니다.
강정태님의 댓글

저도 손현선배(라클에 먼저 가입하셨으니 선배임에 틀림없습니다)가 남자인 줄 알았습니다. 호들갑 떠는 여행(휴가)보다 느긋한 기분으로 즐기는 그 여유가 부럽군요.
사진이야 마음 내키면 찍는거고, 어차피 여행은 머리 식히러 가는 것이니까....
뭔가를 느끼게 하는 여행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서재근님의 댓글

술을 못하는 저로서는 이런글을 읽으면서,
그때의 기분을 상상해보려 노력 합니다.
술마져 안마시면 무엇을 했을까요?
인생, 여행, 비, 한적함, 바다, 동반자 이런것들이 술과 어우러 지는듯 합니다.
JK이종구님의 댓글

항상 생각하는 여행.
정작 여행을 가서는 서울에서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도시인들.
결국엔 여행지에 가서도 잘 꾸며진 대형 횟집에 차를 주차하고 중국산 광어와 우럭과 진로 참이슬을 마시고, 2차로 노래방에 가는 여행아닌 여행.
그것과 비교한다면 손현님의 여행이 참여행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생각에 촬영했던 사진의 링크를 걸어봅니다.
http://www.leicaclub.net/gallery/bro...searchid=49388
손현님의 댓글

이종구님>>
같은 서해로군요. 전에 인상깊게 봤던 사진들입니다. 흐흐...
2박 3일동안 술 먹고, 주절주절 얘기 나눈 것 외엔 한 게 없네요.
나중에 올라오는 차 안에서 그랬죠.
"선배.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어요.."
"그래. 서울 도착할 때까지 잠이나 자자..."
손현님의 댓글

손현=소년 남자인 줄 아셨다는 분들.. 아. 잼있네요.
저는 서른 한살 결혼 3년차 줌마입니다! 하하하-
이름 때문에 생긴 비하인드 스토리가 꽤 많아요.
남편이랑 태국 여행을 갔는데
가이드 아저씨가 우릴 보더니 당황하면서
한 10분만 통화를 좀 하고 오겠다고 하더군요.
남자 둘인 줄 알고 줄줄이 잡아놨던 유흥의 스케줄을 다 취소하시느라.
여행 막날에 말씀해주시는데 넘 웃겼죠...
허나, 5일내내 가이드아저씨랑 술만 먹다가 온 태국여행.ㅋㅋ
이재유님의 댓글

저도 남성분이신줄 알았는데요. 사실 페퍼민트 페티의 아이콘을 보구 반신반의 했었습니다... 하하... 딱 어울리는 아이콘 아닌가 싶네요~
이용훈님의 댓글

손현 선배님(줌마님) 혹시 휴양림에서 꽃지까지 걸어가는데 길 물어보지 않으셨나요?
우리 충청도에서 길 물으면 "다 왓슈~~" 하면 20리 남은거고
"죠기유~~" 하면 10리 남은 거 여유~~
알었슈? ㅎㅎㅎㅎㅎㅎ..
손현님 글 읽으면서 이런경험하지 않았나 생각 해 보았습니다.
안면도 자연 휴양림에서 꽃지 까지라.... 흠! 꽤 한참 걸었겠네요.
저도 이번엘랑 안면도 길 걸어 볼까합니다.
전석주님의 댓글

딱 내 스타일이네요.
저도 집사람과 며칠 여행 떠나면 목적지가 없답니다. 그냥 강원도면 강원도, 방향만 잡고 떠나지요. 그래 거기 경치가 좋으면 그냥 머물다가 막걸리 한잔에 취해 하루 저녁 신세지고, 뭐 요즘에는 민박도 많고 대개는 음식점에서 방 한칸 빌려 주기도 합니다. 그러다 새벽에 잠 깨면 안개속에 카메라 들고 나가고, 낮잠도 즐기다가 문득 횟집도 찾아 해메고...
예약 없이 다니는 것이 얼마큼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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