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가 만들어내는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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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구덕진
- 작성일 : 07-03-2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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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m3와 DR을 구입하고 테스트만 한 상태에서 중국 상해에 갔습니다.
1년정도 머물 계획을 위한 답사차 들른 상해 화랑단지 m50...
건물들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못했답니다.
공장을 개조해서 화랑단지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한창인 그 곳에서
라이카가 재미있는 인연을 만들어줬습니다.
중국 현지 젊은 작가들과의 만남이었죠...
화랑단지 내에는 그 곳에 스튜디오를 만들고 작업하며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거의 쓰러져가는 건물에서 비가 샐것만 같은 높은 천정 아래이지만
작업에 있어서는 정말 치열함이 느껴지더군요...
수일이 지나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면서 수도없는 작품삼매경에 빠져서 있는 저에게
누군가가 담배를 권하더군요...
서로 말도 통하지 않고 얼굴을 보면 그냥 미소지으며 2시간이 넘는 시간을 같이 보냈습니다.
처음 제 손에 들려져 있는 카메라를 보고는 자신도 사진으로 작업하는 사람이라며
크게 웃어보이더군요^^*
저는 케논디카와 m3를 가지고 있었죠
처음에는 디카에 관심을 보이더니 자신의 디카가 니콘이라며 보여주더군요.
그리고는 라이카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아름다운 카메라라며 바라보는 모습에서 부러움반 호기심반...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때로는 손짓발짓으로 두시간을 넘게 앉아서 이야기를 했답니다. 세계공통어가 바디랭기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만은 아니었나봅니다.
이 세계에서는 카메라 하나로도 만남이 이뤄지나봅니다.
나중에 통역하는 친구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지만
중국 젋은작가들은 거의 디카를 사용한다는군요...
이유는 중국에 있는 필름은 신용할 만한 것이 없고 현상인화또한 믿음이 안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디카로 작업을 하고 디지털로 인화를 한다고 하더군요...
왜 그 작가가 라이카를 보며 부러워 했는지 한국에 돌아와서야 알았답니다.
중국 필름으로 찍은 사진중에 건진 사진이 한장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면서 반성해 봅니다.
이렇게 많은 좋은 필름들이 있고 언제 어디서나 현상인화가 가능한 곳에서
장비가 없다고 사진을 못찍는다는 변명만 늘어놓는 제 자신에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약이 성사되질 않아서 당장은 중국으로의 작업여행은 힘들어졌습니다.
다시 돌아가겠다고 약속한 그 작가에게 작은 편지를 보내려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1년 뒤에 다시 기회를 노리고 꼭 그곳으로 돌아가겠다고...어쩌면 북경 아트페어에서는 만날지도 모르겠다며...
그 사이 중국어도 조금 공부해야 할 것 같습니다.
1년 뒤에는 조금 성숙된 모습으로 라이카를 들고 그 작가를 만날 생각입니다.
라이카가 만들어 준 작은 만남을 소중히 간직하며...
1년정도 머물 계획을 위한 답사차 들른 상해 화랑단지 m50...
건물들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못했답니다.
공장을 개조해서 화랑단지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한창인 그 곳에서
라이카가 재미있는 인연을 만들어줬습니다.
중국 현지 젊은 작가들과의 만남이었죠...
화랑단지 내에는 그 곳에 스튜디오를 만들고 작업하며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거의 쓰러져가는 건물에서 비가 샐것만 같은 높은 천정 아래이지만
작업에 있어서는 정말 치열함이 느껴지더군요...
수일이 지나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면서 수도없는 작품삼매경에 빠져서 있는 저에게
누군가가 담배를 권하더군요...
서로 말도 통하지 않고 얼굴을 보면 그냥 미소지으며 2시간이 넘는 시간을 같이 보냈습니다.
처음 제 손에 들려져 있는 카메라를 보고는 자신도 사진으로 작업하는 사람이라며
크게 웃어보이더군요^^*
저는 케논디카와 m3를 가지고 있었죠
처음에는 디카에 관심을 보이더니 자신의 디카가 니콘이라며 보여주더군요.
그리고는 라이카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아름다운 카메라라며 바라보는 모습에서 부러움반 호기심반...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때로는 손짓발짓으로 두시간을 넘게 앉아서 이야기를 했답니다. 세계공통어가 바디랭기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만은 아니었나봅니다.
이 세계에서는 카메라 하나로도 만남이 이뤄지나봅니다.
나중에 통역하는 친구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지만
중국 젋은작가들은 거의 디카를 사용한다는군요...
이유는 중국에 있는 필름은 신용할 만한 것이 없고 현상인화또한 믿음이 안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디카로 작업을 하고 디지털로 인화를 한다고 하더군요...
왜 그 작가가 라이카를 보며 부러워 했는지 한국에 돌아와서야 알았답니다.
중국 필름으로 찍은 사진중에 건진 사진이 한장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면서 반성해 봅니다.
이렇게 많은 좋은 필름들이 있고 언제 어디서나 현상인화가 가능한 곳에서
장비가 없다고 사진을 못찍는다는 변명만 늘어놓는 제 자신에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약이 성사되질 않아서 당장은 중국으로의 작업여행은 힘들어졌습니다.
다시 돌아가겠다고 약속한 그 작가에게 작은 편지를 보내려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1년 뒤에 다시 기회를 노리고 꼭 그곳으로 돌아가겠다고...어쩌면 북경 아트페어에서는 만날지도 모르겠다며...
그 사이 중국어도 조금 공부해야 할 것 같습니다.
1년 뒤에는 조금 성숙된 모습으로 라이카를 들고 그 작가를 만날 생각입니다.
라이카가 만들어 준 작은 만남을 소중히 간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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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서재근님의 댓글
서재근
소중한 인연 계속되길 바랍니다.
만남의 의미를 소중히 아는 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저는 제조 수출입을 하는 관계로 오래전부터 여러나라의 사람들과의 인연을 만들어 왔습니다. 사업을 위한 만남이 아닌, 그저 좋아서 만나다보니 사업도 연결돼는 그런 경우도 많았답니다.
20년전에 만난 호주의 바이어들은 이제는 70대후반의 할아버지가 되어있지만, 요즈음도 가끔 전화와 멜루 안부를 묻곤 한답니다.
사업을 거의 정리하는 요즈음, 뒤돌아보면 정으로 통했던 호주 할아버지, 대만의 친구, 일본의 아저씨등등 그들과의 인연과 많은 사연들을 돌아보며 입가에 웃음을 지어봅니다.
참 제가알았던 아저씨중엔 Saltman 이란 유태인 아저씨도 있었습니다.
소금사람 이라는 성을 가지고 있으니 조금 우습지요?
저의 사업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분입니다. 새쌍둥이 아빠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