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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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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구덕관
  • 작성일 : 07-10-1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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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인가?

사진에 관심을 갖고 사진사를 접한 사람은 참으로 많이 들었던 이름이다.
그는 왜 사진사에서 현대 사진의 아버지라 불리 우고 있는지? 에 대한 답은 한마디로 마케팅에 성공이다.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 했던가?
그 당시 독일에서 이민 온 그의 아버지는 자수성가 하였고 귀소본능이라기 보다는 문화적 역사의 길이가 너무 짧은 미국 사회에서 언제나 동경의 대상은 유럽이었다.
그런 이유로 독일 유학길에 오른 그가 우연히 사진 공모전에서 수상한 일이 그가 사진에 관심을 갖고 평생 사진을 위한 길을 걷게 되는 동기가 된다.
스티글리츠 하면 우리는 흔히 사진 분리운동을 말한다 하지만 Seccesion 이란 단어를 그는 독일 유학시 접하게 되는데 그것은 후기 인상주의 이후에 회화가 구상적인 표현에서 추상적 표현시대로 접어들면서 프랑스에서 야수파와 입체파로 구분 되듯이 독일에 표현주의 작가들이 기존의 회화에서 탈피 하자는 운동으로 내건 회화 분리운동에서 따온 이름이다.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사진 분리운동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사진 분리 운동을 사진과 회화를 분리 하자는 것으로 사진은 사진이고, 회화는 회화다. 라고 알고 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그에 이런 주장은 사진예술의 기본 미학을 사실주의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사실주의란 “어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재현해도 훌륭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주의“이다.
이것은 그 당시 예술을 추구하던 사진가들이 현실 밖에서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노력하던 시대에 사진의 기계적 특성이나 과학적 속성이 자연과학적 입장에서 대상을 새롭게 발견하려는 첨단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 그의 생각이 사진에서도 카메라를 현실 한복판으로 돌려 사회적 현실을 직시하는 사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난 언제나 현대사진을 “우리가 지금 여기에 서 있는 자리, 그리고 내 손엔 카메라가 있다”에서 시작하라고 말한다.
그런 측면에서 스티글리츠는 이미 백여년 전에 이미 현대 사진의 개념이 현실의 직시라는 것을 간파 하고 있었음에 우린 초점을 맞추고 그를 바라 보아야한다.
그렇다면 그는 철저하게 자기주장에 맞는 사진을 찍었는가? 에 대해 누군가 반문하면 답은 아니다. 이다.
나는 앞에 앗제를 말한 적이 있다.
앗제는 철저하게 기록적 사진을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연한 기회에 그가 죽고 나서 인정받은 것은 살아서 자기주장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티글리츠는 분명한 자기주장을 위해 체계적인 마케팅을 폈다는 것이다.
최초의 사진 기관지인 “카메라 워크 (Camera Wark)"지의 창간이 그렇고 291갤러리 운영이 그랬다.
하지만 실로 그의 사진을 분석해 보면 실제로는 사실주의 사진보다는 회화주의적 살롱사진의 양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인 사진 분리운동을 전개하면서 보여준 사진들은 삶의 한 복판에서 현실을 직시하는 사진임이 분명하다.
“삼등선실”이 그렇고 “종착역”“5번가의 겨울”등이 그렇다.
후기에 그는 사실주의에서 좀 더 진보된 내면적인 감정이 이입된 사진 씨리즈로 “이퀴벌런트 (Equivalent)"를 보여준다.

이쯤에서 우리는 알고 넘어가야 할것이 있다.
그에 새로운 사진 정립을 위한 노력이다.
물론 스타이겐(Edward J, Steichen)의 도움이나 조언이 있었다 하더라도 모두가 진정이라 우겨 말하는 회화주의적 살롱사진이 만연하던 사회에서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하며 그것을 주장하기 위해 전기세를 못 내어 난방을 할 수 없는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생각과 같이하는 사진들을 전시하기 위해 운영한 291갤러리가 그렇고, 회원들의 회비로 간신히 운영되던 갤러리를 자기 생각과 다른 사진으로 빠지는 회원들과 과감히 결별하며 더욱 어려워진 경영란 속에서도 대중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중단하지 않고 발간한 카메라 워크지의 발행 등으로 지켜온 그에 생각이 후에 폴 스트랜드(Paul Strand)를 걸쳐 웨스턴(Edward Weston)에 와서는 철저한 기계적 기록성이 실제의 사물을 그 대상을 통해 다른 대상을 연상 하게하는 (예: 웨스턴에 피망사진) 그간 어떤 미술 사조에서도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사진의 미학을 완성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그의 불굴의 노력과 깊은 카리스마로 지켜온 자기주장이 진정한 현대사진을 시작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고 그를 따르던 그의 제자들에 의해 “현대 사진의 아버지”로 추앙 받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생각해 보자.
작가에게 있어서 자기주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고 자기주장의 정립이나 정당성을 위해 작가 스스로 얼마나 논리적 이어야하며 많은 노력을 해야 함을...

나는 작가론을 통해 대충 두 명의 작가를 수박 겉 핧기 식으로 정리해 보았다.
우리는 대부분 작가론을 펼 때 연대별로 누가 어떠했다는 식으로 나열한다.
하지만 여러분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앞으로 전개될 작가들은 모두 앗제와 스티글리츠의 사진적 정서에서 발전되고 진보된 표현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난 유럽적 사진 정서와 미국적 사진 정서라고 말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 두 사람의 영향으로 표현되고 있는 현대 사진가의 사진세계를 말 할 것이다.
어쩌면 이 두 사람은 사진에 있어 양대 산맥인지도 모르겠다.
우린 흔히 프랑스 영화를 보면서 참으로 지루 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조용하게 별 커다란 싸이클 없이 흘러가는 것도 인생이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대부분 박진감 넘치고 참으로 스펙타클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 같은 변화무상한 생을 사는 사람도 하나의 인생이다.
유럽에 가서 표를 사건,유명한 음식점 앞에서 줄을 서 보면 참으로 마치 숙연 할 정도로 자기 순서까지 조용히 기다린다.
미국에서도 자기 순서까지 잘 기다리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기다리며 잘 알지도 못하는 앞 뒤 사람과 자기 순서가 될 때 까지 참으로 열심히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본다.
두 사람의 사진이 그렇고 유럽과 미국의 사진적 정서가 그렇다.
앗제의 사진에서는 너무도 조용해서 마치 신비주의나 초현실주의까지 논해질 정도로 사진의 표현 요소가 정적이면서 내면적이다.
스티글리츠 사진에 보면 추운 겨울 종착역에 도착한 말이 힘들게 숨쉬는 콧김이 보일 정도로 동적이다.
특등실과 삼등선실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면서 외면적으로 현실 비판적 시각을 바로 드러내 놓는다.
이런 것들이 양쪽에 사진 표현의 차이일 것이며 앞으로 등장하게 되는 작가들은 어느 쪽 정서에 치우쳐 사진을 표현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자.

글 : 사진가 조인상 www.photocla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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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JK이종구님의 댓글

JK이종구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앞으로의 글에도 기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강웅천님의 댓글

강웅천

색이다바랜 스티클르츠의 '스티글리츠'를 다시한번 들춰보았습니다.
그들의 지난 업적과 노력을 떠올리며 그들의 혼이 실린 사진들을 들여다보면
감동이 더 짙더군요.
한번더 스티글리츠와 연관하여 미국과 유럽으로 구분되는 정서가 반영된 느낌의 차이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조인상님의 홈피에도 찾아가 봐야겠군요 ^ ^

서재근님의 댓글

서재근

좋은글이 있어 글타래 위로 올려 봅니다.

이런 글들이 눈에 들어온걸보니
저도 이제는 기계과에서 벗어 나나 봅니다.
ㅎㅎ

박상환님의 댓글

박상환

덕관님 여기서 뵙네요.^^
좋은 글 읽고 갑니다. 다음주 에 뵙겠습니다.~

김승현님의 댓글

김승현

스티글리츠의 "사진적 주제"란 말이
생각이납니다. ^^
그 한마디 말로 사진이 가야할 길을 밝혀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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