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이야기 (3)
양정훈 디지털 칼라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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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작은 분지가 내려다 보이는 야산 모퉁이에 자리를 깔았다.
여름 풀들이 더운 태양빛을 받아 푸른 빛으로 번뜩였다.
아내는 황토색 자루에서 오렌지 몇 개와 집에서 먹다 남은 바나나 두 쪽, 비스킷 한 봉지와 사탕 몇 알을 꺼냈다.
조심스럽게 사탕 한 알을 입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아내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사탕을 깨물지 말고 빨아먹어요. 꼭."
"알았어. 이번엔 꼭 빨아먹을 거야."
아내는 비닐봉지를 들고 혼자서 들꽃들이 지천으로 핀 분지로 내려갔다.
난 자리에 벌렁 누웠다. 상수리나무의 얽힌 가지와 잎 사이로 푸른 여름 하늘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안의 사탕을 깨물었다. 부서진 사탕은 또 한 번의 깨물음으로 더 잘게 부서져 입안에 흩어졌다.
아내와 난 사탕에 관한 한 보조를 맞추기가 힘든 사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사탕의 단 맛이 떠나자 무료해진 나는 아내를 내려보며 분지 반대편 오래된 묘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한 눈 멀리 아내가 있는 곳에도 서양벌노랑이꽃과 함께 붓꽃들이 듬성듬성 피어있었고,
그 옆으로 지칭개와 엉겅퀴가 높은 꽃대 위에 짙은 자줏빛 꽃들을 달고 있었다.
나는 묘비에 새겨진 생과 졸의 날짜를 눈여겨보며 무덤 아래 누운 자들의 나이를 계산했다.
땅 밑의 시간이 사라진 사람들을 덮은 낡은 흙 위에도,
살아있는 시간의 한 단락 위에서 나이를 먹어가는 내 머리 위에도 여름의 태양은 똑같이 머물고 있었다.
나는 삼매지경에서 아무런 생각조차 없이 한낮의 뜨거운 무료함 속에서
태양을 받아들이고, 더위를 받아들이고, 바람을 받아들이다가,
그 바람마저 끊겨 미풍조차 불어오지 않을 때면,
산비둘기와 뻐꾸기의 먼 울음소리를 바람의 울음소리처럼 들었다.
죽은 자들과 산 자를 가르던 시간이 사라져버렸다.
내가 다시 자리에 돌아오자
아내는 어느새 꿀풀과 노란 솜방망이꽃을 가슴에 안고 웃음을 던지며 서있었다.
여름은 여전히 산 자와 죽은 자들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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